音もなく詩を吟ずる(默吟, 묵음, Poetry with Silence)

김정환展 / KIMJEONGHWAN / 金政煥 / painting   2018_0522 ▶ 2018_0527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8-02-04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53×41cm_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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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갤러리 기타노자카 Gallery Kitanozaka Japan, Hyogo Prefecture, Kobe, Chuo, Yamamotodori, 1−7-17 WALL AVENUE 3F Tel. +81.(0)78.222.5517 gallery-kitanozaka.com

김정환(金政煥)-그리고 쓰고 새긴 듯한, 검은 그림 ● 김정환의 그림은 검정색의 물질이 점유하고 있는 부분과 나머지 부분, 이른바 여백으로 이루어진 단순한 구성으로 이루어졌다. 종이위에 칠해진 영역과 칠해지지 않고 의도적으로, 우연적으로 불가피하게 남겨진 영역으로 형성된 이 미니멀 한 화면은 주어진 사각형의 평면을 다양하게 절개하고 있다. 무엇인가를 표현하고 재현하기 보다는 공간을 분할하고 나누고 의미 있는 구성으로 응고시켰다는 인상이다. 순간 칠한 부분과 남겨진 부분, 의미를 부여한 공간과 나머지 부분, 보여주는 부분(가시적 영역)과 의도적으로 은폐한, 억압한(비가시적 영역) 부분간의 상호작용, 길항관계가 이루어진다. 포지티브와 네거티브 한 공간, 음양의 공간 대비가 흥미롭다. 또한 그것은 쓰기와 그리기, 문자와 그림의 경계를 의도적으로 지우거나 그러한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원초적인 흔적과도 같다. 왜냐하면 이 그림은 그린 것인지 쓴 것인지, 회화적으로 칠을 한 것인지 아니면 저부조(조각)로 물질을 마감한 것인지 애매한 느낌을 준다. 화면의 상당부분을 시커멓게 덮고 있는 검은 물질(검정색)은 거대한 흐름, 기운, 운동의 경로 같기도 하고 특정 형상을 남기려는 시도 같기도 하고 문자의 부분 같다는 인상을 준다. 동시에 그 어느 것으로도 확정되지 않고 미끄러진다. 무엇보다도 이 그림에서는 칠해지고 남겨진 부분, 화면을 채운 검은색의 물성이 주는 힘과 그 색채의 의미,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오로지 단 하나의 색, 흑백의 구성만으로 전달하는 압축과 절제의 미학 같은 것들이 숨을 쉬고 있다.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8-01-28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35×27cm_2018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7-12-25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45.5×35.5cm_2017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8-01-14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45.5×52.6cm_2018

김정환의 화면은 마치 전각(篆刻)의 작은 사각형 안에서 구현되는 방촌(方寸)의 미학이나 서예에서 엿볼 수 있는 검은색과 여백의 미감을 연상시킨다. 그것은 작가의 다양한 이력에서 연유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서예를 했고 이후 서예작가를 위시해 전각 및 서예평론, 회화작업 등으로 영역을 넓혀온 이다. 현재 그는 서예와 전각을 기본으로 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 추상회화를 시도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지 서예와 전각을 응용한 특정한 조형행위에 머물지 않고 그 저간에 자리한 특유의 조형론, 동양의 예술론 등에서 길어 올린 문제의식을 대상화하면서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인상이다. 작가는 무엇보다도 검은 색에 의미를 부여하고 '검을 현'이 지닌 여러 뜻, 그 문자가 거느리고 있는 언어적 의미망을 반추시킨다.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수묵의 미학이 중심축일 것이다. 동시에 동양화론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언어와 회화의 관계(문자와 그림, 시와 언어) 또한 중요해 보인다. 동양문화권에서, 동양화에서 그림과 문자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근대 이후 문자와 그림은 별개의 세계로 나뉘었다. 이번 근작의 제목은 「묵음(黙吟)」이다. 묵음이란 '소리 없이 시를 읊다'라는 뜻이다. 그의 그림은 문자의 자취를, 시의 자리를 이미지화시킨다. 이미지와 문자는 상호보조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간다. 옛 그림을 보면 이미지와 문자는 항시 화면 안에 공존하고 길항했다. 우리가 접하고 경험하고 추억하는 세계는 이미지만으로, 문자만으로 자립하기 어려운 세계다. 김정환은 흑백의 단순한 구성을 통해 마치 그리듯이, 쓰듯이, 새기듯이 무엇인가를 흔적화 했다. 그것은 문자의 어느 한 부분을, 전각의 어느 한 파편을, 그림의 어느 한 부위를 추측케 한다. 상상하게 한다. (중간생략) ■ 박영택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7-07-31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53×41cm_2017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8-01-01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35×27cm_2018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8-05-01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41×27cm_2018

1. 하나의 선과 획으로 작가의 감성을 전달하듯, 하나의 색으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나의 감성을 전할 것 같은 검은색이 있었다. 2. 나의 작업 속에 드러나는 검은 이미지, 그것은 세상의 소란스러운 소리와 다양한 문자를 삼킨 것이다. 3. 동양에선 모든 사물이 양과 음의 성질을 통해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세상의 소리는 다양하다. 사람의 말이 공중에서 번지는 소리의 양각이라면, 나는 작업을 통해 그 소리를 흡입하여 음각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이 두 가지가 서로 조화롭게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다. 4. 어느 날 캔버스 위에 붓질을 하다가 검은색이 내 삶의 연대(連帶)라는 생각이 들었다. 검정은 음양학(陰陽學)에서 음의 기운을 품은 색이라고 한다. 어느 시인은 "검은색은 낮고 무겁다. 낮고 무거워서 위로 솟구치지 않는다. 아래로 하강하며 가라앉는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처음 검은색에 대한 자각은 서예를 시작한 지 한참 지나 필, 획이라는 성찰 이후였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면서 검은색에 대한 내 생각은 깊어졌고, 이제는 그것을 통해 내 속에 잠재된 감성을 끄집어내고 있다. 5. 나의 작업에서 검은색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흰색이다. 흰색은 처음엔 여백으로 존재한다. 그 여백을 통해 숨을 쉴 수 있다. 이후엔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흰색은 공(空)과 무(無)로 인식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자신의 존재성을 보이게 된다. ■ 김정환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8-01-27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45×28cm_2018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8-02-25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45×33.5cm_2018
김정환_묵음(黙吟_Poetry with Silence)18-03-18_ 캔버스에 여러 겹 붙인 한지, 먹, 규사_53×40.5cm_2018

金政煥(キ厶・ジョンファン) - そして、書いて刻んだような、黒い絵画 ● 金政煥の絵画は、黒い物質に占められた部分と残りの部分、いわゆる余白から成る単純な構成である。紙の上に塗られた領域と、偶然、意図的かつ必然的に残された領域によって形成されたこのミニマルな画面は、与えられた四角形の平面をさまざまな形に切開している。何かを表現して再現するのではなく、空間を分割して意味のある構成に凝固させた印象である。瞬間、塗られた部分と残された部分、意味を与えた空間と残りの部分、与えられる部分(可視的領域)と意図的に隠蔽した、抑圧した(非可視的領域)部分の間の相互作用、拮抗関係が形成される。ポジティブとネガティブな空間、陰陽の空間コントラストが興味深い。それはまた、書くことと描くこと、文字と絵画の境界を意図的に消したり、そのような区分を無意味にする原初的な痕跡のようである。なぜなら、この絵は、描いたものなのか、会話的に塗ったものなのか、それとも浅浮彫り(彫刻)で物質を形作ったものなのか、曖昧な印象を与える。画面の大部分を真っ黒に覆っている黒い物質(黒色)は、巨大な流れ、気運、運動の経路のようでもあり、特定の形状を残そうとする試みのようでもあり、文字の部分のような印象も与える。同時に、そのどれにも確定されず、横滑りする。何よりも、この絵画では、塗られた部分と残された部分、画面を満たした黒い色の物性が与える力と、その色彩の意味、そして、そのすべてをひたすら唯一の色、白黒の構成だけで伝達する圧縮と切除の美学のようなものが息づいている。 金政煥の画面は、篆刻(印刻)の小さな四角の中に表現される方寸の美学や、書道に垣間見ることができる黒と余白の美感を連想させる。それは、作家の幅広い履歴に由来する側面もあるようである。彼は、幼いころから書道に親しみ、その後、書道家をはじめ、篆刻や書道評論、絵画作業などに領域を広げてきた。現在、彼は書道と篆刻を基本とし、これをもとにした抽象絵画を試みている。ここには、単に書道と篆刻を応用しただけの特定の造形行為にとどまらず、その最近確立した特有の造形論、東洋の芸術論などからくみ上げた問題意識を対象化しながら作業を展開しているという印象を受ける。作家は、何よりも黒に意味を与え、'玄'が持つさまざまな意味、その文字が持つ言語的意味網を反芻させる。ここでは、何よりも水墨の美学が中心軸を成している。同時に、東洋画論で重要視されている言語と絵画の関係(文字と絵画、詩と言語)も重要に見える。東洋文化圏において、東洋画では絵画と文字は分離されない。しかし、近代以降の文字と絵画は別個の世界に分けられた。今回の近作のタイトルは「黙吟」である。黙吟とは、'声なく詩を吟ずる'という意味である。彼の絵画は、文字の痕跡を、詩の居場所をイメージ化させる。イメージと文字は、相互補助的な関係を形成しながら、互いに足りない部分を埋めていく。昔の絵画を見ると、イメージと文字は常に画面の中に共存し、拮抗した。我々が接し、経験し、思い出す世界は、イメージだけ、文字だけで自立することは困難な世界である。金政煥は、白黒のシンプルな構成を通じて、まるで描くように、書くように、刻み付けるように、何かを痕跡化させた。それは、文字のある部分を、篆刻のある一つの破片を、絵画のいずれかの部位を推測させる。想像させる。(中間抜粋) ■ 朴榮澤

1. 一つの線と角で作家の感性を表現するように、一つの色でそれが可能だと考えた。私の感性を伝えるにふさわしい黒があった。 2. 私の作品の中に現れる黒いイメージ。それは、この世の喧騒とさまざまな文字を飲み込んだものである。 3. 東洋では、森羅万象が陰と陽の性質を通じて調和を成すと考えられている。世界の音は多様である。人の言葉が空中で広がる音の陽刻であるとするなら、私は絵画を通じてその言葉を吸入し、陰刻したいと望ん。このような過程を経て、それらが互いに調和した姿を見せるのではないかと考えた。 4. ある日、キャンバス上に色をのせていたとき、黒が私の人生の連帯であるという思いに駆られた。黒は、陰陽学では陰の気運を含む色として認識されている。ある詩人は、"黒は、低く重い。低く重いがゆえに、上昇を志向することはない。ひたすら下降し、底に沈む"と語っていた。初めて黒について自覚したのは、書道を始めてから長年が経過し、筆や画に対する省察を経た後であった。本格的に絵画に取り組みながら、黒に対する私の考えは深みを増し、今ではそれを通じて私の中に潜む感性を引き出している。 5. 私の作品の中で、黒に意味を与えるのは白である。白は、最初は余白として存在する。その余白を通じて、呼吸をすることができる。その後に、さまざまな可能性を発見す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る。最終的に、白は、空と無として認識されるが、時間の経過と共に、それ自体の存在性が感じられるようになる。 ■ 金政煥

Vol.20180522b | 김정환展 / KIMJEONGHWAN / 金政煥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