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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516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30am~06:30pm / 일요일_12:00pm~06:30pm
갤러리 그림손 GALLERY GRIMSON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22(경운동 64-17번지) Tel. +82.(0)2.733.1045 www.grimson.co.kr
현대인들은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자신만의 안식을 위해 각자의 유토피아를 꿈꾼다. 그것이 현실이 아닐지라도 유토피아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는 공간이며, 자유롭게 자신의 이상을 펼칠 수 있는 세계이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개념과 사상, 이상세계를 표현하고 있듯이, 과거 선조의 화가들은 산수화를 통해 도원경을 구현 하였다. 이렇듯 산수는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서부터 이상적인 세계까지 표현할 수 있는 유토피아인 것이다. ● 임진성 작가 또한 산수를 표현하고 있다. 오랫동안 수묵을 바탕으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 작가는 몽유금강, 수묵풍경, 지두화 작업을 하면서 이 모든 작업의 바탕이 된 산수를 자신만의 이상향으로 이끌어 내었다. 금강산을 배경으로 한 「몽유금강」 시리즈는 단순한 재현의 산수가 아닌, 정신과 이상의 경계에서 새로운 이상경을 보여주고 있다. 금강산의 아름다운 산봉우리와 곳곳의 계곡은 작가에게 현실과 이상 사이를 표현하는 공간이 되었으며, 수직으로 내려진 금빛의 산봉우리는 푸른빛을 머금고 공중에 부유 하듯 떠 있다. 이로써 작가가 표현하는 금강산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은 또 다른 산수를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에게 금강산의 현실적 감각을 느끼게 하고 있다. 영원할 것 같은 몽유금강은 작가에게 안식이며, 사유를 담고 있는 것이다.
수묵의 물성과 중력을 이용한 수묵풍경은 자연발생적인 표현으로 추상과 구상의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다. 먹의 검은 빛과 물, 종이의 만남은 절제와 함축적 수묵정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작업으로 그 또한 비존재론적 경계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계획되지 않은 표현은, 때로는 역동적이게 때로는 정적인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으며, 새벽어스름과 여명의 강한 생동처럼 에너지를 쏟아내고 있다. 먹의 물성을 끊임없이 탐구한 작가에게 수묵풍경은 놀이의 한 일부분이 되어 수묵의 또 다른 형식과 조형성을 표현하였다. ● 이번 갤러리 그림손 초대전에 선보이는 몽유금강과 수묵풍경은 작가의 지속적인 작업의 일부분으로 작가는 현실과 이상, 존재와 비존재, 경계와 비경계의 사이 속에서 자신만의 피안을 찾고자 한다. 작가가 추구하고자 하는 산수는 우리가 바라보는 이상과도 같은 곳을 향하고 있음을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 있으며, 산수가 가진 생명력을 수묵의 다양한 표현 방식을 통해 예술적으로 재현하였다. ■ 심선영
임진성의 「몽유금강」, 새로운 장소신화(place myth)를 위해 ● 임진성은 실경산수 전통을 바탕으로 하되 '전통'의 도그마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실험을 통해 한국화의 경계를 확장해가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작가이다. 2007년부터 제작해온 「몽유금강」 시리즈는 전통을 과감하게 재해석해서 동시대성을 확보해가는 그의 실험의 대표적 예이다. ● 북한에 위치한 금강산은 원래 한국인들이 즐겨 그려온 소재였다. 17세기 중국의 화가들이 관념 산수를 대신해 실제의 경치를 그리기 위해 황산으로 갔다면 18세기 한국의 화가들은 금강산으로 갔다. 중국 화풍을 벗어난 한국적 리얼리즘 풍경화 즉 '진경산수' 양식이 발전한 것은 바로 이러한 금강산 여행문화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조선시대 문인사대부들에게 금강산은 단순히 재현의 대상으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정신수양의 장소였다. 그들에 의해 수많은 여행기와 시, 그림 등이 만들어졌다. 이후 한국인들에게 금강산은 죽기 전에 반드시 가보아야 할 가장 아름다운 산, 이상경으로서의 산이라는 장소 신화(place myth)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20세가 중반 한국전쟁 이후 분단으로 인해 금강산은 더 이상 갈 수 도, 볼 수도 없는 '금지된 이상경'이 되었다. 금강산 관광이 다시 시작된 것은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1998년부터이다.
임진성의 「몽유금강」 시리즈는 금지된 이상경이 아니라 실제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1998년 민간기업에 의해 금강산관광이 다시 시작된 이후 임진성은 이 신화속의 산을 보기위해 봉사단체를 따라 관광객이 접근할 수 없는 고성의 민간마을에 까지 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그가 본 것은 북한인들의 생활의 터전이었던 금강산이 남한인들의 관광지로 변하면서 갑자기 통제구역으로 되어버린 현실이었다. 분단 속의 개방이 가져온 모순된 현실 속에서 금강산은 더 이상 아름다운 이상경이 아니라 현실과 이상 사이를 떠도는 공간이었다. ● 「몽유금강」에서 임진성은 이러한 그의 체험을 표현하기 위해 한국미술사의 중요한 두 가지 전통을 이끌어낸다. 즉 진경산수 전통을 따라 금강산의 기암괴석과 산봉우리를 표현 하기 위해 수직준법을 사용하되 니금산수 전통에 따라 먹이 아니라 금분을 사용한다. 사실 고운 금가루를 아교에 개어 만든 안료로 그린 니금산수의 전통은 현대 한국에서는 이미 잊혀진 전통이다. 금이 귀했던 조선시대에 금안료는 왕실에만 한정적으로 허용되었다. 때문에 왕실용 공예품이나 불화 등에 주로 금분이 사용되었으며 니금산수도 왕실과 친인척관계를 가진 화가들에 의해 주로 그려졌다. 당시 사람들은 니금산수를 사치한 장식으로가 아니라 수묵산수에 비해 훼손되지 않는 이상향의 산수로, 또는 변치 않는 절개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반면 「몽유금강」에서 금분은 치장된 금강산의 현실을 상징한다. 검은 먹으로 짙게 칠해진 배경 위에 수직으로 길게 내려 그어진 수많은 금빛의 산봉우리들은 육중한 바위산의 중량감을 잃은 채 공중에 부유하고 있다. 그것은 훼손되지 않은 이상경이기보다는 이념 대립 속에 박제된 이상경 즉 관광지화된 금강산이라는 현실을 가르킨다.
2008년 금강산 관광은 중단된 채 현재까지 재개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초기의 「몽유금강」이 금강산의 재현에 보다 충실했다면 최근의 「몽유금강」은 재현성보다는 가는 붓으로 치밀하게 금분의 선을 수직으로 중첩시키는 작업 그 자체에 더 비중이 주어지고 있다. 작가는 새벽에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 검은 배경을 가르는 푸른 여백은 작가가 경험하는 새벽의 빛이자 경계의 시간을 의미한다. 즉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시간, 긴 침묵의 시간 속에서 한 선 한 선 작가는 선을 내리 긋는다. 쉽게 채워지지 않는 선을 긋는 반복적 행위, 그 속에서 그는 현대인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이상경, 화려하지만 신기루 같은 유토피아를 본다. 초기의 금강산이 정치적, 이념적 현실과 이상 사이에 부유하는 분단 상황에 대한 작가의 발언이라면 현재의 작업에서 금강산은 다시 산수의 전통으로 돌아가 오늘날의 시점에서 산수의 의미를 되묻기 위한 장소가 된다. 수없이 변해가는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자연과 인간이 합일된 이상경이 과연 금빛처럼 영원하게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금가루처럼 가볍게 떠다니는 신기루인 것인지.. 이런 의미에서 임진성의 「몽유금강」은 수묵으로 실경을 그대로 재현하는 산수가 한국화의 전형으로 아카데미화 되어가는 현재의 상황을 벗어나 새로운 공간, 새로운 산수화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 권행가
Vol.20180516e | 임진성展 / YIMJINSEONG / 任眞聖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