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61204h | 이안리展으로 갑니다.
초대일시 / 2018_0511_금요일_06:00pm
Saalgoo Bar에서 맥주/칵테일을 팝니다. Saalgoo Music Bar에서 신청곡 받습니다.
관람시간 / 07:00pm~01:00am / 월,화,목요일 휴관
드로잉 스페이스 살구 Drawing Space Saalgoo 서울 성북구 성북로23길 91(성북동 217-42번지) www.saalgoo.com
#1 ● 1980년대 후반, 엄마는 명동에 고갱의 책 이름에서 따온 '노아노아'라는 카페를 차렸다. 그곳 작은 바 스탠드 뒤에 꽂혀있던 LP판 껍질의 그림들은 어린 내가 상상의 세계로 들어가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나무로 된 내장, 남색 벨벳 소파, 레이스 가림막 등은 촉각적으로 나의 몸에 남은 기억들이다. 엄마의 이모부는 오래전 서울 종로에서 '르네상스 음악감상실'이라는 공간을 운영하셨다. 그의 영향인지 엄마와 그 형제들은 음악을 좋아하셨다. '노아노아'가 운영되던 무렵 이모는 이화동에서 '장자'라는 카페를, 외삼촌은 충무로 거리에서 '몹시 취한 배'라는 랭보의 시 제목에서 따온 이름의 깜깜한 카페를 운영하셨다. 여전히 그 까만 카페의 작은 초록색 테이블 조명은 나의 기억 어딘가를 비추고 있다. 2000년대가 시작되어 엄마와 아빠가 열었던 바 '시카고'는 훗날 내가 프랑스 유학을 끝내고 돌아올 때까지 우리 가족 곁에 있었다. 그곳의 마지막 1년 반 정도는 내가 운영하였다.
#2 ● 사람들이 밤늦게 하나 둘 바를 찾아온다. 어두운 그곳에는 음악이 흐르고, 그들을 공간 속에 은신시켜줄 다양한 질감들로 가득하다. 그 질감의 구축에 대해 생각해본다. 먼지 하나가 쌓이는데도 시간은 필요하다. 어떤 공간은 구축되기보다 무너져 내림으로써 만들어진다. 우리가 술 몇 잔을 기울일 때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는 흠집과 좌절이 흘러내린다. 흠집, 좌절, 바닥, 바닥에서 잠시 떠오르게 만드는 열망과 씁쓸한 희망 따위가 들어있는 서랍들. 수많은 서랍들이 구도심 나의 바에서 매우 힘들게 열리고 다시 닫혔다. ● 많은 사람들이 바 문을 열고 닫았다. 마음고생과 마음고생이 마주 앉았다. 나는 그들의 영원한 중얼거림을 들어주고 그들이 떠난 자리를 깨끗이 치웠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어떤 기억은 최초의 색깔을 잃어버린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허덕이던 무언가가 내 안에서 빠져나갔다. 기억하기 위해 떠돌았다. 여러 장소를 거쳤다. 다시 북정마을이다. 이곳 살구와는 인연이 깊어 몇 번의 전시를 함께 해왔다. 돌아온 북정마을은 재개발 문제로 들썩인다. 살구 또한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내게서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생각하게 된다.
#3 ● 북정마을은 마치 산호초나 조개, 따개비같이 아주 작은 것들이 서로 붙어 군락을 이루며 사는 곳 같다. 나는 이곳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지기도, 반갑게 다시 만나기도 했다. 그동안 또 몇 개의 서랍을 채웠고, 그것들을 다시 열거나 채우기로 한다. 살구에 차린 바 스탠드 위에 작은 크기의 기억과 주워 모은 세상의 파편을 늘어놓아 본다. 고갱과 장자, 랭보, 어쩌면 르네상스까지. 파리, 시카고, 성북동, 살구, 북정마을에서 떨어져 나온 아주 작은 덩어리, 그것들이 먼지가 되는 시간까지. 그 사이에는 갈색 맥주병들이 놓일 것이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들, 조용히 스미듯 모인 사람들처럼. 나는 흔적이 남겨진 테이블에 홀로 우두커니 앉게 될 것이다. ■ 이안리
Vol.20180512b | 이안리展 / LEEAHNNLEE / 李按利 / install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