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명진_김민정_김이박_오제성_이상용 이향안_전아라_정지현_조혜진_황문정
문의 / [email protected]
주최 / 어반 콘크리트 기획 / 박지형
관람시간 / 12:00pm~07:00pm
강남아파트 18동 서울 관악구 조원로 25 www.tumblbug.com/urbanconcrete www.instagram.com/space.urbanconcrete
A라는 장소가 장소로서 유효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에너지의 순환이 전제되어야 한다. 관악구 조원동에 위치한 강남 아파트는 서울에 대규모 주택 단지가 우후죽순 형성되던 1970년대 중반 지금의 자리에 들어섰고, 900세대에 가까운 중산층 가족들의 삶의 터가 되었다. 그러나 2001년 재난위험시설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이후 재건축이 결정된 작년까지 약 17년의 세월 동안, 아파트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점차 뜸해졌고 활발하던 에너지의 흐름은 점차 퇴화하여 장소로서의 의미를 잃어왔다. 잊혀져 가는 도시 속 장소가 갖는 에너지를 포착하는 유효한 방법은 무엇일까? 앙리 르페브르는 공간, 도시, 일상성을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그의 마지막 저서 『리듬 분석』에서 에너지의 상호작용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반복과 순환의 리듬이 존재하며, 이 리듬을 분석하는 것은 한편으로 도시의 불가사의를 이해하려는 시도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몸이라는 접속점의 참여와 실천이 공간을 지각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피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전시 『투명함을 닫는 일과 어두움을 여는 일』은 곧 사라져버릴 도시의 한 장소를 이해하기 위해 작가들이 몸으로 개입하는 행위의 방식과 과정에 집중한다. 아파트는 사적인 시공간이 반복적으로 채워지고 비워지는 과정을 통해 개인들의 생활 리듬이 새겨진 장소다. 따라서 본 기획은 투명한 창을 닫는 일, 혹은 어두운 문을 여는 일과 같은 일상의 제스처가 반복되며 남긴 흔적 위에 작가들의 비일상적이고 함축적인 행위들이 덧씌워져 과거의 시간을 현재가 가로지르는(혹은 간섭하는) 상황을 시각화하고자 한다.
출발은 작가들이 조원동 강남 아파트를 몸으로 경험하며 잔존물을 탐사하는 것에서부터였다. 10 명의 작가들은 비어있는 집을 일시적으로 점유하는 마지막 사용자들이 된다. 그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아파트에 남은 자취들을 더듬어 희미해진 시간과 기억을 건져 올린다. 그것은 단순히 폐허에 관한 낭만적 감상에 그치거나 남겨진 과거를 재배열하는 데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신 작가 개개인의 구체적인 행위를 통해 – 상징적인 오브제들을 탐닉하며 기록하거나, 유년 시절 기억을 소급하거나, 실재하는 장소에 가상의 상황을 접목시키거나, 흩어진 임시변통의 구조물을 찾아내거나 – 현재의 의미를 획득해나간다. 강남 아파트가 장소성을 잃고 그 속에서 흐르던 시간이 과거로 함몰되려 할 때, 작가들의 적극적인 개입은 밀폐되어 있거나 유실되었던 장소의 의미를 수용자에게 능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장치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예술의 매개가 작동한다.
시각 언어로 번안된 이야기의 얼개들은 집안 곳곳에 배치된다. 이들은 서로 모여 단일한 완결로 이르지 않는 대신, 각각의 집안에 개별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도시적 삶에 대한 지각을 느슨하게 공유한다. 본디 도시는 선형적인 시간과 순환적인 시간이 무수히 교차하며 삶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이자 물리적인 공간이다. 그 중에서도 언어화 될 수는 없지만 명징한 도시적 일상의 흔적들이 남아있는 도시의 폐허들은 언제나 많은 작가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는 사라질 모든 것들이 보편적으로 가지는 한시성의 묘한 스펙터클에서 기인하는 호기심일 수도 있겠으나, 남겨진 흔적 속에 내재된 다층적인 삶의 리듬을 발견하고 그것을 현재의 도시적 삶이 갖는 조건, 질서, 상황 및 문제들과 관계 지어보려는 욕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각 작품들은 강남 아파트의 장소적 특성(혹은 조건)을 토대로 이주의 상황, 반복되는 재개발, 비일상적인 도시 풍경, 소시민의 삶 등 자신이 직면하는 이슈들과 내밀하게 연결된다.
몸의 적극적인 개입과 행동이 장소성을 어떻게 확장하고 다층화 할 수 있는지에 주목하는 전시인 만큼, 관람객들에게도 신체의 능동적인 경험이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다. 전시 제반 환경과 관람 동선은 4월까지도 이사를 마치지 못한 일부 주민들을 피해, 또 지나치게 낙후되어 복원이 불가능한 집들을 제외하며 구성되었다. 따라서 관객들은 드문드문 작품이 있는 곳을 수고스럽게 찾아 들어가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고 비워지기를 반복했을 집들의 풍경과 조우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끝없이 재생산, 재배치되며 현재의 사회를 구성하는 도시의 풍경을 바라보는 작가들의 시선을 엿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강남 아파트가 더 이상 장소로서도 공간으로서도 존재하지 않을 2018년 하반기에도 당분간 이 곳에서 시작된 대화를 지속해 나갈 것이다. 논의는 강남 아파트라는 물리적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 과거와 현재, 혹은 미래에 발견된/발견할 도시 곳곳의 장엄했던 또 다른 자취 (the remnants of cities)를 찾아 꼬리물기를 하며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을 위한 재료가 되기도 하고, 작업의 끝을 맺는 단서가 되기도 할 것이다. ■ 박지형
Vol.20180427a | 투명함을 닫는 일과 어두움을 여는 일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