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0412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갤러리 이즈 GALLERY IS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52-1 (관훈동 100-5번지) Tel. +82.(0)2.736.6669 www.galleryis.com
유리구슬: 가시권 밖의 세상과 노닐다 ● 유리구슬 속 세상 사진가 유혜경은 2014년에 "바다에 나를 담다"를 주제로 사진전을 개최한 바 있다. 이 전시를 상기해보면 세상을 반전시키고 그 배경에는 평온한 바다 풍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풍경들은 해가 질 무렵의 바다를 배경으로 제작되었으며, 유리구슬은 인지되지 않는 풍경을 대변하고, 비가시적인 영역이 주류를 이루었다. 유혜경의 작품에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구슬이 현실과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는 도구로 작용하고, 한편으로는 작가의 자아를 드러내는 장치였다는 것이다. ● 유혜경 작가의 사진작품을 보다 깊게 이해하기 위해선 그녀의 사진에 남다른 묘미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 나는 2014년 유혜경 작가의 작품에서 유리구슬이 크게 두 가지 의미를 함의를 지니고 있다고 평론을 한 적이 있다. 첫째, 유리구슬은 고정된 시선을 벗어나서 시선의 반전을 시도하는데, 이는 우리가 평소에 인지하는 관습적인 시선에 대한 재해석이다. 둘째, 유리구슬 오브제는 자신이 바라본 대상에'자아'로 등장하여 현실과 비현실 세계의 경계를 드러내는 장치로 작용한다. 유혜경 작가는 유리구슬을 통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추억과 세상간의 교류를 시도하고, 문제의식, 현실, 비현실을 포함해서 속 깊은 얘기를 풀어나갔다. ● 이번에 발표하는 유혜경의 구슬 사진은 4년 전 작품의 연장선에서 새로운 구슬 사진을 관객에게 선보인다. 4년 전과 비교해서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현재의 사진이 과거와 다른 점은 대상이 바다에서'한국의 서원'으로 변화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의 대상이 바뀐 것은 작가에게 많은 의미가 부여되는 지점이다. 작가의 말을 빌리면 서원(書院)은 전국 어디에나 사당을 갖추고 제사를 통해 충효를 가르치고 역사 속에 민족의 혼과 뿌리가 배어 있고, 우리의 전통과 역사, 시간의 흐름, 좁은 공간, 한 줄기 빛과 어둠을 구슬 속에 담고 싶었다고 한다. ● 우리나라의 서원은 조선시대 향촌에 설립한 교육기관이었으며, 향촌을 교화하고 이와 함께 공동체의 삶을 추구했다. 사람, 자연, 건축이 혼연일체가 되는 문화경관이자,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치에도 불구하고 서원의 특성상 사진 컨셉을 잘못 정하면 문화재를 단순 기록하는 차원에 머물 수 있기에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유혜경의 사진은 이런 걱정과는 다르게 서원의 문화적인 가치를 유리구슬과 융합해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일상에서 흔히 보는 구슬은 새롭지 않지만, 작가에게 구슬은 무생물이 아닌 생명을 지닌 반신으로 개념화된다. 이런 시도는 예전의 전시에서는 구슬을 자아와 동일시한 한 것에 반해 이를 반신의 개념으로 구체화 시킨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구슬은 서원의 내부와 외부에 놓여있는데, 전체적인 프레임은 '구슬을 포함한 세상'과 '구슬 속 세상'으로 양분화 된다. '구슬을 포함한 세상'은 원래 장소에 없어야 할 생경한 구슬의 등장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모습을 떠 올려 볼 수 있고, '구슬 속 세상'은 외부의 세상이 구슬에 갇혀있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는 카메라 옵스큐라처럼 구슬은 세계를 그대로 비추지만 원래 자리 잡은 세계가 투명한 구슬 속에서 한 번 더 반복적으로 압축해서 보이기 때문이다.
유리구슬과 영적교감 ● 구슬의 압축 효과 중 시각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는데, 차라리 이 현상은 촉각적으로 다가온다. 구슬의 겉면은 얼음으로 응고 돼서 딱딱한 물질성이 촉각적으로 느껴진다. 구슬에서 촉각적 상황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탁월한 재능이다. 구슬 안의 경치는 형체가 없는 것을 만지는 것 같은'미묘한 감정'이 발생하며, 현실과 비현실, 안과 밖의 이질적 공간은 함께 어울려 경계 없는 세계로 빠져든다. 구슬의 본질은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작가의 감정으로 그 대상이 다르게 보인다. 사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작가의 마음결에 좌우된다. ● 이 사진에 좀 더 집중하면, 흰색 옷을 입은 남자 두 명이 서원을 배경으로 서있으며, 옷의 차림새와 몸의 형태로 보면 왼쪽의 남자는 30~40대 오른쪽의 남자는 60대 이상으로 느껴진다. 프레임 속의 화면은 흔들리고 포커스 아웃된 상태라 그들의 감정을 읽을 수 없고, 어떤 관계인지 알기 어렵다. 미뤄 보건대 두 명의 남자는 의도적으로 포즈를 취한 것처럼 느껴진다. 왼쪽 화면의 구슬은 프레임 속에서 적당한 위치에 놓여있고, 거꾸로 비친 구슬 안 풍경은 원경에서 사진에 찍힌 환경을 섬세하게 반영한다. 이 사진은 다른 사진과는 달리 대상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과의'영적 교감'이 느껴진다. ● 이런 효과는 구슬 속 세상이 마치 영국에서 실시한'스콜 실험(Scole Experiment)'의 다른 버전으로 느껴진다. 스콜실험은 시간이 지나면서 '수정구슬 실험'으로 발전하는데 이 실험에서 신비스러운 현상이 자주 목격된다. 고대 마야 시대부터 존재했던 수정은 현장의 상황을 기록하고 시대가 흘러서 그 당시와 같은 조건(온도, 날씨)이 형성되면 그 이미지가 현재에 다시 보인다는 것이다. 이는'레코딩 이론(Recording theory)'으로 그 당시에 녹화한 상태와 같은 조건이 되면 다시 이미지가 보이는 원리이다. 이런 얘기를 꺼낸 이유는 구슬 사진이 '수정구슬 실험'과 같지 않지만, 지금 여기 보이는 사람의 흔적이 마치 과거의 사람을 현재로 호출한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구슬 사진은 영적 세계가 아니어도 사색적, 명상적인 요소를 품고 있기에 이런 효과가 가능하다. 아마도 심미적인 예술세계를 창조한 것은 새로운 소재 덕분이라고 본다. 그녀가 즐겨 애용하는 유리의 재료는 한국 서원의 자연환경에서 받은 영적 감흥이 스민 존재일 것이다. 신비롭고 주술적인 분위기의 독특한 연출은 집중과 확산이란 조형언어로 이해된다. 더 나아가 작가 특유의 심성과 독창적인 분위기는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하는 작가 관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일까, 전체와 부분이 결합한 그녀의 작품에서 새로운 '영적 교감'을 느끼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유리구슬과 차경의 미학 ● 유혜경 작가의 작품이 뿜어내는 매력은 풍부한 감성과 차경(借景)의 깊은 울림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번에 선보이는 사진에 나타난 일관된 느낌이며 작품을 구성하는 키워드다. 차경은 풍경을 슬쩍 빌려 온다는 뜻이다. 가지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서 즐긴다. 내가 존재하고 있는 자리에서 풍경을 바라볼 때 풍경이 내가 있는 자리로 찾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차경은 옛사람들의 방식처럼 창밖의 세상을 빌어 정신을 노닐게 하고 나아가 창밖의 세상을 건물 내부로, 방안으로 끌어들여 그 풍경을 즐기는 것으로 이해된다. ● 작가는 서원의 주거공간 속에서 한옥의 가치를 한국적인 미와 시각의 정체성을 찾으려고 시도했다. 이런 과정에서 한옥의 특성에서 창을 통한 '차경'을 표현한 것이다. 작가의 사진은 활짝 열려 있는 서원의 건너편 풍경이 보이는데, 그 경치는 그림으로 그린 가짜 평면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실체로서 풍경화보다 훨씬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뭔가 다른 점이 있다. 차경을'구슬을 포함한 세상'과 '구슬 속 세상'을 통해서 본다. 차경은 본래 창밖의 세상을 끌어안는 것이지만,'구슬을 포함한 세상'이 제한적이라면'구슬 속 세상'은'구슬을 포함한 세상'에서 미처 보지 못한 그 너머의 풍경을 보게 된다. 내가 그 자연으로 들어가'노니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노니는 풍경'을 구슬 너머에서 보고 있었다. ● 조화롭지 않을 것 같은 구슬과 풍경은 이질감 없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차경을 표현했다. 선조들의 풍류가 깃든 차경의 미학은 현대의 사진 메커니즘 시각과 연동된다. 차경은 집의 창문을 액자처럼 활용해서 쉼 없이 변하는 풍경화를 집안에 걸어놓고 즐긴 것인데, 액자를 현대식으로 대입하면 사진의 프레임과 같다. 다른 점은 사진 프레임은 개인이 소유하고, 시간, 공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프랑스아 니네(François Niney)는 모든 촬영은 대상의 선택과 프레임화라고 했듯이 만약 프레임을 선택할 수 없다면 사진은 고정된 관객이 고정된 창을 바라보게 되고 작가는 풍경의 조각 하나를 전달할 뿐이다. 그 풍경의 조각이 현실의 실체를 보여줄 수 있는가? 이는 마치 인상주의 화가가 그린 하나의 풍경이 현상 너머의 실체를 드러낼 수 없는 것과 같다. 프레임은 사진의 화면을 구성하는 가시적인 사각형 틀, 이미지의 틀이며, 이미지 측면에서 사실적 기록이며 미학적 선택이기에 중요하다. 프레임은 사진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복제하는 것을 넘어 독립된 예술 작품의 가능성을 여는 창조적 장치다. ● 작가의 창의적인 측면은 차경을 사진의 프레임으로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구슬을 통해서 차경의 틈새를 만들고, 시간성이 정지된 적막의 울림을 표현한데 있다. 물론 작가가 미리 계획적으로 그런 미세 틈새를 만들려고 생각하진 않았겠지만, 예측 불가능한 불규칙성이 생성되고, 그런 예측 불가능성 속에 창의성이 숨어 있는 것이다. "나를 그대로 담아내고 드러내는 유리구슬을 통해 나는 나를 본다. 구슬은 바로 나다. 구슬은 서원의 내부와 외부에 놓인다. 구슬은 하늘을 품은 바다 위에 놓이고 바다를 품은 하늘 위에 놓인다. 사진을 찍는 일은 매 순간 도전받는 현실이며 고요하고 고독한 고백이다."유혜경의 작가 노트처럼, 예술가에게 작품의 완성은 끊임없는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얻는 결과이다. 자신과 반신인 유리구슬을 통해서 풍경을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한국의 서원'이 지닌 차경의 미학과 영적 감흥을 인지하고, 그 교감을 자신의 몸 안에 불러들여 긴 호흡을 통해 '작품'으로 표현했다. 유혜경의 유리구슬 사진은 관객과의 단순한 교감에 그치지 않고 세상을 새롭게 보는 시각을 전달한다. 어떤 모습이 보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4년 동안 새로운 표현양식과 소재의 변화를 거쳐서 제작된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는 작가가 유리구슬로 가시권 밖의 세상과 노니는 모습을 흥미롭게 엿볼 수 있다. ■ 김석원
Vol.20180411b | 유혜경展 / YOOHEIKYUNG / 劉惠㬌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