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작가와의 대화 사물의 집_이병철 / 2018_0413_금요일_10:00am 빛으로 가려진 공간_허수빈 / 2018_0510_목요일_10:00am 마을과 마주한 꿈_이돈순 / 2018_0705_목요일_10:00am
후원 / 성남시 주최,기획 /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관람시간 / 10:00am~07:00pm
오픈스페이스 블록스 openspace BLOCK'S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남문로43번길 13-2 Tel. +82.(0)10.2247.4346 openspaceblocks.com blog.naver.com/openspaceblocks4144
세 개의 전시를 통해 시작되는 새로운 시간 ● 성남의 본격적인 도시화는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드리운 짙은 그늘의 전형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서울의 위성 도시로서 구가할 수 있는 번영과 패권의 정점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역사와 현재가 병존하는 오늘날의 성남은 개발의 시대가 형성할 수 있는 양가성과 중의성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남의 독특함은 오픈스페이스 블록스가 '골목으로 들어온 미술'이라는 제목 하에 세 개의 개인전들을 연속으로 선보이는 방식으로 기획한 전시를 관통하는 주제적 속성이기도 하다. ● 1970년대 초에 발생한 '광주대단지 사건'은 서울의 아랫자락에 자리한 한촌에 불과했던 이 지역을 계획도시라는 형식으로 새롭게 호출한 역사의 시작일 것이다. 서울에서 밀려난 도시 빈민들의 애환을 안고 시작한 성남은 이후 서울의 확장으로 인해 짧은 기간 그 배후도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배후를 이루는 중심지는 이른바 '강남'이라는, 너무나 빠르고 강력하게 형성된 메트로폴리스였고, 성남은 그 질주하는 개발의 행로에 오랫동안 동승하지 못했던 것 같다. 욕망의 자본으로 점철된 강남은 그 확장의 과정에서 성남이라는 배후의 동반 개발을 선택하기보다 빈 벌판 위에 분당이라는 새로운 도시를 건설시키는 방식을 택하게 되고, 성남은 또 다른 소외의 역사를 맞게 되었다. 분당은 행정구역상으로 성남시에 속하지만 통상적으로 성남과는 다른 곳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개발과 소외의 반복된 역사 속에서 관습적 의미의 '성남'의 로컬리티가 배태되었다. 이전에 서울 청계천 일대의 판잣집에서 거주하던 이주민들에게 제공되기로 했던 20평의 필지단위는 한 가족을 위한 단독주택의 최소한의 면적으로 인식되었던 규모일 것이다. 그리고 원래 마당을 가진 검소한 1가구 주택으로 시작했을 이 지역의 집들은 오늘날 최대치의 용적률을 이끌어내기 위해 한 치의 빈공간도 허락하지 않는 조밀한 다세대 주택들로 변모되어 있다. 오픈스페이스 블록스가 위치한 태평동 일대는 다소 급한 경사면들을 중심으로 그러한 다세대 주택들과 작은 상가들이 밀집한 지역이다. 좁은 골목길들이 주택들의 앞뒤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주차를 금지하기 위한 기발한 표식들이 거리 곳곳에 놓여 있다. ● 이러한 지역의 속성을 기반으로 존재하는 오픈스페이스 블록스는 성남의 로컬리티를 포장하고 그 외부세계로 드러내는 방향보다 그 좁은 지역 속에서 부대끼는 현실들과 조우하며 드러내고, 또 공유하고자 하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러한 공간의 의지를 드러내는 실천적 행위의 표현으로 볼 수 있겠다.
프로젝트 전체를 이루는 세 개인전 중 첫 번째는 『사물의 집, 이병철』이다. 이병철은 성남에서만 40년 이상을 거주했다고 한다. 서양화를 전공했으나 목공방을 운영하기도 하는 그의 작품들은 성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20평 필지의 다세대 주택들이 가진, 독특하면서도 쉽게 드러나지 않는 조형미들을 포착한 것들이다. 재개발로 인해 철거를 앞둔 빈 집들에서 주로 수집한 창틀은 그의 손을 거쳐 하나의 프레임으로 변모한다. 그 창틀 구조 안에는 다세대 주택들의 다양한 모습들이 재현되어 있다. 그 이미지들은 주로 반지하의 애매한 구조물이거나 한정된 공간에 비현실적으로 채워진 다세대 건축물들의 독특한 미장센을 재현한 것들이다. 좁은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붉은 벽돌로 정해진 필지를 꽉 채운 다세대 주택들의 초현실적인 분위기는 얇은 목재판의 부조형식으로 구현되었고, 그 뒤에 펼쳐진 아득한 원경은 회색의 그림자 이미지로 그려졌다.
창틀을 프레임으로 쓴 이유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들여다보는 풍경이자 내다보는 풍경을 동시에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이는 그 스스로가 오랜 시간 이러한 환경에서 거주했던 사람으로서 내부자의 시선을 갖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집 문 밖을 나서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건축들이 반복적으로 펼쳐진 동네를 다니던 관찰자의 시선을 동시에 갖게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때문인지 그의 작품은 보는 각도와 거리에 따라 상당히 다른 형태로 드러난다. 하나의 작품 속에서 벽돌로 만들어진 다세대 주택 2층의 단단한 구조적 형태가 전체를 지배하는 것 같다가 다시 시선을 이동하면 그 아래의 지하도 아니고 1층도 아닌 반지하의 창문이 내뿜는 생경한 거리감이 주조를 이루기도 한다.
이병철의 작품들은 다분히 공예적이다. 작품을 제작하는 재료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작품들이 전체적으로 기대고 있는 조형적 성격 자체도 그러하다. 이번 전시의 기획자는 이병철의 작품을 언급하며 일상적인 거주공간의 중심에 위치한 전시장으로서 인근을 지나는 사람들이 쉽게 다가와 편하게 감상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가 말하는 접근의 용이성은 다분히 이러한 공예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며, 이는 지역민들에게 친화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요인이 된다. 그러나 그러한 시각적 특징은 작품에 내재한 시간성과 장소성에 집중하는 것을 방해하는 역효과를 야기하기도 한다. 가난을 추억의 모티브로 이용하는 목공예 작품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오브제다. 그 오브제들은 엄밀하게 말하면 클리쉐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병철의 작품들은 그러한 공예적 오브제의 미학과 분명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사실 그의 작품들 전반에는 강렬하지는 않더라도 묵직한 암울함이 흐른다. 그것은 결국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는 작가의 주된 정서를 대변한다. 작가의 주조적 정서와 함께 위에서 언급한 풍경의 생경한 조형성을 표현한 것이 이러한 연상 작용으로부터 작품을 분리시키는 요소로 기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요소들이 더 분명히 드러날수록 작품세계가 위치하는 층위의 고유성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
두 번째 전시는 빛을 주재료로 작업하는 작가 허수빈의 개인전, 『빛으로 가려진 공간』이다. 허수빈은 오랜 시간동안 빛의 켜짐과 꺼짐의 반복적 상황을 중첩시켜 보여주는 형식의 작업을 통해 서로 이질적인 감정의 양가적 병존을 이끌어내는 작업을 선보여 왔다. 그의 작품들은 특별할 것 없는 공간이나 보편적인 장소를 이미지나 입체의 형식으로 구현해 놓고 어떤 부분에 빛의 실재성을 가미함으로써 전체 대상에 특별한 감정을 이입시키는 것들이 많았다. 그가 선택하는 대상은 대개 일상의 진부함이 느껴지는 곳들로서 평범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정밀한 조명장치가 설치되어 있어, 정교하게 구획된 부분 조명이 점등된다. 여기에 그의 기술적 특별함이 은닉되어 있다. 허수빈은 급발전하는 LED 조명의 기술적 요소들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가진 작가이며, 그 재료들을 활용하기 위한 능란한 기술과 감각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작품에서 이용되는 부분조명들은 그 배경의 원래 일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작동한다.
그러한 자연스러움이 중요한 이유는 작품의 관람자가 기술적 요소에 대한 부차적 관심을 갖기 전에 전체가 풍기는 어떤 정서적인 상황으로 몰입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치 자연광이 작품의 어떤 부분을 통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지하 공간에서 재현된다거나 하루 중 가장 평온함을 주는 햇빛의 각도가 종일 유지되는 등의 상황들이 가능하게 된다. 대부분의 관람자들은 그러한 상황에서 모종의 정서적 환기를 경험하게 되고, 개념의 무게를 벗어버린 채 그 앞에서 온전히 내밀한 정서를 소통하게 된다. ●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그의 작품들은 그러한 특징들이 잘 반영된 것들이다. 그는 전시장이 위치한 성남 구도심의 흔한 건축물 사진을 촬영하여 프린트하고, 창이나 문 등의 구조 속에 부분조명을 점등하여 마치 건축물 안쪽에 밝혀 놓은 빛들이 은은하게 새어 나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이전에 전시했던 이병철과 마찬가지로 허수빈 또한 이 부근에서 오랫동안 거주해온 작가다. 때문에 그가 구현하는 일상적 풍경들은 그 지역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함을 찾기 어려운 보편적 풍경이지만, 그 지역의 특징을 일상적인 것으로 내재하고 살아가는 작가 자신이나 거주민들에게는 마치 자신의 집을 재현한 것 같은 직접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풍경일 것이다. 재현된 이미지들의 진부한 면모들은 부분적인 점등으로 인해 생생한 실재감을 갖는 현재형의 풍경으로 변모된다. 이러한 요소는 많은 수가 인근 거주민이기도 한 관람객들로 하여금 특별한 공감을 이끌어 낸다. 거주민들에게도 무감각해져버린 각자의 삶의 주변에 상존하는 일상적 풍경들이 빛이라는 재료의 가미를 통해 감정과 정서가 이입된 풍경으로 변화하는 과정은 그들로 하여금 잊고 있었던 정서의 환기를 경험하게 한다.
허수빈의 작품은 동시대의 미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한 선험적 조건들을 무화시킨다. 그의 작품 앞에서는 기술이나 주제와 같은 요소들의 무게를 탐색하기보다 스스로 접어두고 있어서 굳어버린 감성을 재호출하는 것이 더 유용할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속성은 다변화된 현대미술의 장에서 보편적으로 소통되기에 어려운 역설이 있다. 왜냐하면 동시대 미술에 익숙한 관객들의 보편적 감상법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시에서만큼은 그러한 엇박자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그것은 창작자와 관람자 모두에게 익숙한 지역성의 맥락과 보편성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사전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수빈은 이번 전시에서 정확하게 일반적인 관람객들이 즉물적으로 반응하는 보편적인 인식적 반응만큼을 요구하고 있다. 그것은 작가가 이번 전시가 여느 현대미술의 장들과는 다른 시공간이라는 전제를 분명하게 체화하고 있고, 또 그것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마지막 전시는 이돈순의 개인전, 『마을과 마주한 꿈』이다. 이돈순은 이 지역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한동안 타지에서 거주하다가 다시 돌아와서 정착한 작가이며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의 공동 운영자이기도 하다. ● 이번 전시의 가장 주요한 작품은 최근에 철거되어 사라진 건우아파트를 소재로 한 'playback- 사라지는 건우아파트'일 것이다. 오픈스페이스 블록스가 위치한 성남시 태평동은 천이 흐르는 아래쪽부터 영장산에 이르는 가파른 대지면 일대에 자리 잡은 곳이다. 그리 높지 않은 영장산을 넘어가면 바로 서울이다. 지금은 터널 등으로 인해 산 하나를 통과하는 것이 손쉬운 일이기에 이 지역은 서울에서도 가장 번화한 강남으로부터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이에 있는 셈이다. 그러나 지역의 독특한 역사를 상기해보면 심리적으로는 그 산이 서울과 지방을 구획짓는 엄중한 경계의 상징처럼 기능했을 것이라 유추할 수 있다. 그 산의 정상에 건축되어 오랜 기간 존재했던 건우아파트는 이 지역의 보편적풍경을 이루는 전형적인 요소였다. 이 저층 아파트는 지역의 끝이자 시작이기도 했고, 이 지역 어느 각도에서든 잘 보일 수밖에 없었던 아이콘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 오랜 시간과 역사가 더해져 자연스럽게 지역의 풍경으로 용해되어온 지역의 일부였다. ● 이돈순의 작품에서는 오랜 기간 누적되어 온 대상의 추상적 속성을 흔적도 없이 지워버리고 그 자리에 순식간에 새로운 고층 아파트를 건축해온 거대 자본의 면모가 엿보인다. 그의 작품은 철거가 진행되고 있던 어떤 순간을 강렬한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재현한 것이다. 구체적인 형태로 등장하는 것은 허물어진 건물의 잔해들 위에 있는 중장비일 뿐, 나머지 대상들은 거친 터치의 느낌으로만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세월이 적층되어 형성된 모든 요소들이 일시에 허물어져버린 상황의 심상을 유추하게 한다. 현장에서 찍은 사진을 컴퓨터 드로잉 작업을 통해 변형을 가하여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크기로 배치한 이 작품의 강렬한 느낌은 마주보고 있는 다른 작품, '어린이의 꿈'에서 발산되는 동심의 분위기와 대조를 이룬다.
'어린이의 꿈'은 작가가 전년도 '태평동 에코벨리커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어린이와 협업하여 만든 작품을 작가 특유의 못 작업으로 치환한 작품이다.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못들로 구축된 이미지는 주조를 이루는 동심의 천진난만함과 그 배경의 무질서한 이미지 파편들이 대조를 이루며 일정한 긴장감을 부여하는데, 날카로운 재료가 주는 물리적 심상을 통해 그 긴장감이 증폭된다. 전시장 밖을 덮고 있는 천막은 최근 재개발을 위해 이주를 마치고 텅 비어버린 인근의 금광동 재개발지구에서 채집한 90점의 이미지들을 모자이크로 배치한 작품, '삶의 자국들'이다. 여기에는 일상의 미시적 파편들과 곧 이주를 앞두고 있는 일시적 풍경의 독특한 모습들이 혼재되어 있다.
이돈순의 작품에서는 지역이라는 화두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직설적으로 드러난다. 이돈순은 두꺼운 이력을 가진 회화작가로서 단단한 회화성을 기반으로 하는 작품세계를 선보여 왔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그러한 조형미보다 대상의 사회적 속성과 그에 대한 복잡한 감정적 반응들을 강조하는 작품들을 보여줬다. 이러한 결과는 대상을 마주하는 자신의 심적 포지션을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개인 작업실에서 창작에 몰두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곳에 위치시켰다는 것을 감지하게 한다. 그는 작가이자 기획자로서, 또는 지역의 관찰자이자 일종의 실천가로서 스스로를 위치시킨 듯하다. ● 마을 주민, 어린이와 함께한 작가들 오픈스페이스 블록스의 프로젝트 『골목으로 들어온 미술』은 이렇게 세 개의 개인전들로 구성되었다. 이 세 전시는 지역에 대한 일상적인 리서치의 수준을 넘어 실질적으로 지역을 삶의 기반으로 두고 있고, 스스로의 작업 활동에 대한 주요한 모티브로 안고 살아가는 작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전시는 동시대 미술의 보편적 중립공간으로서의 전시장에 착륙한 독립적 전시인 동시에 독특한 역사와 풍경을 지닌 지역에 대한 각각의 사유를 창작의 주된 요소로 수용한 작가들의 실천적 행위로서의 성격도 지닌다. 성남은 동시대 한국 미술계의 주된 흐름을 선도하는 어떤 영감을 준 곳이다. 반면 스스로의 특별한 지역성에 대한 미학적 해석의 축적이 극히 적은 곳이기도 하다. 어쩌면 이 전시가 열리는 시점은 성남이 스스로를 자기맥락화하며 의도적으로 외면한 정체성을 재탈환하는 흐름의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다. 본 프로젝트와 같은 적극적인 시도들이 그러한 흐름을 실체화시키는 중요한 행위로 기능할 것이다. ■ 고원석
Vol.20180410j | 2018 골목으로 들어온 미술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