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박고석_박경리_금수현_이중섭_박화성 김대현_정영렬_신경림_최만린_차범석 한묵_이중섭_정영렬_한묵
주최 / 성북구_노원구_구리시_남양주시 주관 / 성북구립미술관_성북문화재단
관람료 / 성인 2,000원 / 청소년 1,000원 어린이(8세미만), 65세 이상 노인, 매주 토요일 관람객, 6월 22~23일(성북동 문화재 야행) 무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성북구립미술관 SEONGBUK MUSEUM OF ART 서울 성북구 성북로 134(성북동 246번지) Tel. +82.(0)2.6925.5011 sma.sbculture.or.kr
정릉(貞陵)은 도심 가까이 있으면서도 능선의 골짜기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좁은 골목과 물길이 서로 어우러진 까닭에 자연과 사람의 공존이 자연스레 이루어진 동네다. 삼한시대 때부터 내려오는 지명인 '살한이'라는 정릉의 옛 이름 역시 깊은 골짜기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이런 지리적 특성 때문에 정릉은 성북의 다른 지역에 비해서도 비교적 개발속도가 더디게 이어진 곳이었다.
좁고 고불고불한 골목길과 언덕들이 말해주듯이, 이곳은 계획도시처럼 획일화된 생활과 경제수준, 천편일률의 모습으로 꾸려진 집들과는 거리가 멀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안은 북한산의 한 자락이 걸쳐 있으며 그로부터 청수淸水라 불릴 정도로 맑은 물이 흐르는 아름다운 곳으로, 예나 지금이나 여기에 삶을 담은 사람들의 애정 역시 담뿍한 곳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다. 여러 지역에서 모여든 군상들의 삶이 서로 기대거나 포개어 이루어진 역사를 지닌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 시간을 우리는'정릉시대'라 이름 붙이고자 한다.
특히 이번 전시는 척박했던 시기인 우리의 근현대사에서 민족 정신이 예술로서 꽃피우고 한국적인 미의식을 탄생시켰던 터전으로서의 정릉을 조망해보고자 기획되었다. 1950년대 중반 박고석, 한묵, 이중섭 등은 피난살이 이후 서울에 올라와 정릉에 터를 잡거나 잠시 머무르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정릉은 이들의 우애와 예술적 교류의 장소로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도심의 서북쪽에 자리한 지리적 특성은 당시의 가장 서민적인 정서를 담고 있어 공감과 소통의 예술을 이룩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데 영향을 주었다. 박화성, 차범석, 박경리, 신경림 같은 문인들은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글과 시를 써내려 갔고, 작곡가 김대현과 금수현 등은 민족의 가슴에 애상(愛賞)되는 음악을 다수 남겼다. 최만린과 정영렬은 우리의 미술에 대한 탐구를 지속한 결과 한국적 추상이라는 독자적인 화풍을 이룩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들 각각의 예술 세계를 탐색해보는 한편, 인연의 흔적들을 되살려봄으로써 정릉이 지니는 예술적 터전으로서의 가치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잊혀져가는 예술가의 흔적을 보듬어 바로 세우고, 보존하기 위한 의미 있는 걸음을 이어가보고자 한다.
2011년 성북동 예술가들의 흔적을 좇았던 『그 시간을 걷다』展에 이어, 성북 서북쪽 자락에 자리한 정릉의 예술가들을 삶과 작품, 교유관계로서 되짚어 보고자 『정릉시대』展을 마련하였다. 오늘날 정릉은 왠지 모를 향수와 정감이 남아있는 서울의 몇 안 되는 동네가 되었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아름다운 집들은 대부분 재개발 붐에 의해 허물어지고 자취를 감추었지만 여전히 옛 모습을 간직한 집과 터가 남아 그 공간 속에 함께 어우러진다.
많은 예술가들이 정릉을 거쳐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하고, 또 정릉에서 여생을 보내기도 하였다. 박고석의 글에 나오는 표현처럼'쫓겨오다시피 한 정릉'을 막다른 골목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로 의지하며 이끌어주어 삶을 이어가게 하는 힘이 바로 이 동네에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 힘이 정릉을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술인들의 마을로 만들어주고 있는 원천일 것이다. ■ 이유선
Vol.20180406i | 정릉시대 貞陵時代 The Jeongneung Age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