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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327_화요일_07: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1:00am~07:00pm / 월요일 휴관
온그라운드2 Onground 2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23 (창성동 122-12번지) 2층 Tel. +82.(0)2.720.8260 www.on-ground.com
산책자 Y에 대해 ● 평가의 행위가 어리석어지는 경우들이 있다. 이를테면 산책을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산책의 기술이 좋다느니, 산책의 경력이 대단하다느니, 산책하는 발걸음에 균형미가 있다느니, 말하는 일은 왠지 부끄럽다. 더불어 산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일컬어 훌륭한 인격을 뒷받침한다거나 진정성 있는 인간의 특성이라 할 수 없다. 산책을 하는 이 스스로에게 있어서도 오늘의 산책은 만족스러웠다, 늘 가던 길인데도 낯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산책하고 싶다는 정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다일 수밖에 없다. 이 글은 어느 산책자 Y에 대한 이야기다.
1. Y는 내가 아는 한 누구보다도 산책을 즐겨 하는 사람이다. 나는 몇 해 전부터 그를 알고 있었지만 근래 들어서야 그의 산책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Y는 거의 모든 것의 산책자다. 이를테면 모두가 가만히 앉아있거나 서있는 공간에서도 그는 산책을 일삼는다. 심지어 산책해볼 만한 크기의 공간이 없는 곳에서도 그의 산책은 멈추는 법이 없다. 산책만큼이나 개인적이고도 쉬이 드러나지 않는 보행이 있기 어려운 만큼 그의 산책은 다소간 내밀한 구석이 있었다. 사람들은 Y의 산책을 일컬어 '걷기의 재현'이라던가, '걷는 시간의 분할에 대한 운동성의 리듬'과 같은 알 수 없는 말들을 덧붙이기도 했지만 그런 말들은 어째서인지 Y와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도 Y가 워낙에 산책을 좋아하니 사람들은 그의 산책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말해달라고 조르곤 했다. 사람들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것에도 자꾸만 의미를 물어보는 척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Y는 스스로가 만족해할 만한 산책을 하는 것이 그 산책을 언어화시켜 포장하는 기술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스스로가 충만한 느낌의 산책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무엇보다 Y에게는 늘 그만의 '완전한 산책'에 대한 상이 있었다. ● 2. Y는 언젠가 '사실 하고 싶은 산책을 하기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곳에서는 늘 산책을 하더라도 왠지모르게 그 산책을 방해받고 싶었다고 했다. 어느 날은 한 주변인으로부터 '너의 산책은 매너리즘에 빠져있어!'라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Y는 그 말을 무던하게 받아들였다. 그때는 산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이 변함없고, 산책을 하고 싶은데, 어째서인지 산보 방법을 잃어버린 것처럼 느껴지는 나날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산책의 장소를 이국의 땅으로 바꿔버렸다. Y는 아마도 새로운 장소에 갔을 때 비로소 '내가 원하던 산책'을 새삼 깨달았던 것 같다. 홀로의 산책 시간이 대단히 충만하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저 스튜디오와 집 사이를 오가는 루틴이 반복되었는데, 이 모든 과정이 거의 영적인 느낌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산책을 방해받고 싶다는 욕구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는 그 변화를 다시금 무던히 받아들였고, 비로소 '산책의 이데아'같은 것을 걸어내기 시작했다. ● 3. 그의 플레이리스트는 클래식과 롯데 자이언츠 응원가까지를 넘나든다고 했다. 이것은 Y의 산책에도 적용되는데, 그러니까 A길을 걸을 때와 B길을 걸을 때 도무지 같은 사람이 산책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어떤 길은 최대한 가볍게 땅을 건드릴 듯 말 듯 산책하고, 어떤 길은 발자국을 빼곡하게 남기며 걸었다. 어느 날은 산책할 때 신는 신발을 이렇게 저렇게 바꿔보기도 했다. 이것은 전적으로 Y의 의지에 따른 차이라고 생각한다. 그 의지는 어디까지나 '만족스러운 산책'을 지향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가 이국의 땅에서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집 안에서 산책을 하기 시작했다. 내 집에서의 산책이라니,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런데도 그는 만족할만한 구석을 찾아냈다. 집에서 산책한다고 해서 산책하는 순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산책을 하지 않는 시간에서 산책을 시작하는 시간까지의 시간이 길어진 것 같았다고 했다. 다시 말해 산책에 과정이 생겼다는 것이다. ● 4. 어느 날엔가 Y는 말들이 모여있는 곳을 발견했다. 말에게 인근에 있는 파란 풀을 뜯어 주었더니 몹시 잘 받아먹어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파란 풀은 마비를 일으킬 수 있는 독풀이었다고 한다. 다음날 걱정이 된 Y는 다시 말이 있는 곳에 가보았다. 다행히도 말은 잘 살아있었고 그는 안도했다. 어째서인지 기이한 경험이었다. 말에게 풀을 뜯어주었던 날과 그 날의 산책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는 일은 사뭇 낯설었다. 주변 장소의 세세한 풍경이 떠오른다기보다는 말과 파란 독풀이 잔상으로 남아 맴돌 뿐이었다. 풀을 뜯어 준 날의 산책과 다시 말에게 찾아갔을 때의 산책, 그 모든 일을 상상하는 것 사이에 생긴 어떤 틈이 스스로를 낯설게 만들었다. 그것은 분명히 Y 자신의 기억이었지만 어쩌면 Y의 기억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나는 산책을 대하는 Y의 모습이 어째서인지 경건해 보였다. 그가 산책을 지겨워하지 않는다면 그는 평생 산책자로 살아갈 것 같다고 생각했다. '산책자는 Y다'라는 문장은 성립할 수 없지만 'Y는 산책자다'라는 문장은 성립하기 때문이다. Y는 오늘도 산책을 나갔을 것이다. 언젠가는 나도 동행해볼 만한 산책을 말이다. ■ 박수지
Vol.20180327e | 양준화展 / YANGJUNA / 梁準化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