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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8_0327_화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한벽원미술관 HANBYEOKWON ART MUSEUM 서울 종로구 삼청로 83(팔판동 35-1번지) Tel. +82.(0)2.732.3777 www.iwoljeon.org
춤추는 자연: 이종송의 작품세계 ● 이종송은 1990년대 초부터 '움직이는 산'을 테마로 한 산수화의 창작에 매진해왔다. 1990년대 중반까지 그의 작품은 현재와는 사뭇 다른 추상성이 매우 강한 작업을 보여주었다.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기하학적인 형태, 먹의 농담과 번짐의 활용, 입체적인 나무판을 이용한 부조적인 화면 등은 당시 그의 작품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그의 작업은 보다 자연주의적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아마도 당시 작가가 '예술가는 전위적이어야 한다.'는 부담을 털어냈던 것이 아닌가 싶다. 이 때부터 그는 자신이 평소 좋아하던 산행山行에서의 견문과 감흥을 편안한 시각과 필치로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했고, 이를 특유의 흙벽화 기법에 접목시켜나갔다.
이후 이종송의 작품은 스스로의 마음 한 부분을 풀어낸 듯이 편안해졌고, 자신만의 독특한 개성도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가 평소 관심을 가졌던 벽화기법에, 자연의 실제 경관을 소재로서 수렴하였던 데에는 조선후기 산수화의 선구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겸재謙齋 정선鄭敾으로부터 받았던 감화가 적지 않았던 듯싶다. 중국의 역대 저명 화가들의 명작과 그들의 양식, 기법이 중요했던 시대적 상황 속에 이에 매몰되지 않고, 주변의 실제 경치를 답사, 관찰하고 그로부터 느낀 바를 화폭에 담아냈던 정선의 작품과 작화방식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이다. 이종송이 자연에 마음을 두고 이를 화폭의 주제이자 소재로 삼게 된 이유이다.
그렇지만 결코 그가 정선과 같은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것은 아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시각도, 그려내는 양식도, 기법도 전혀 다르다. 다만 온 우주의 이치와 원리를 함축하고 있는 자연을 끊임없이 접하고, 경험하고, 느끼고, 이를 화폭에 담아냄으로써 정형화, 박제화되지 않은, 살아 숨 쉬는 또 다른 자연을 재현해내는 면모를 따랐던 것이다. 하지만 정선과 이종송의 공통점이 아주 없지는 않다. 시각적 사실성만을 지향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사실 회화繪畵가, 예술이 사실의 재현이 아님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백하다. 정선 역시 실제 경치를 다루되 그 경치를 눈에 보이는 그대로 다루지 않았었다. 오히려 자신이 느낀 바에 따라 강조할 곳은 강조하고, 생략할 곳은 생략했으며, 변형해야하는 곳은 가차 없이 변형시켰다. 이러한 태도는 이종송에게서도 발견된다. 그의 작업 역시 실제 경치에 근간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를 정치精緻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 느낌을 최대한 살린다. 오히려 실제 경치를 그린다기 보다 경치로부터 받은 감흥 자체를 산과 물, 나무의 모습을 빌어 표현한다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 같다. 이렇게 본다면 정선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오히려 차이점이 더 두드러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까지 이종송이 그려온, 다양한 자연의 형태를 요약하고 있는 작품들은 바로 이러한 산물이라 하겠다.
"난 느낌이 없으면 사생하지 않습니다. 느낌이 나로 하여금 스케치북을 펼치게 만들 뿐이지요. 나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은 바로 현장 사생할 때입니다."라는 이종송의 언급은 그의 작품의 성격을 가장 잘 드러내주고 있다. 그렇지만 그는 자연으로부터 받은 느낌을 중시하면서도 자연의 형태 자체도 외면하지 않았다. 바로 이것이 그의 작품이 꼼꼼한 세필細筆로 그린 풍경화나 천연색의 사진보다 더욱 자연답게, 자연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자연의 본질과 형상을 동시에 취한 것으로, 필자는 실제 작가가 자연의 전신傳神 포착에 있어 큰 성과를 얻었다고 본다.
이번 전시의 출품작 역시 이전 작업과의 연결성이 뚜렷하다. 주변의 아름다운, 또 생동미 넘치는 자연을 작가 특유의 행복하고, 긍정적인 시각을 이용하여 질박하면서도 화사한 벽화기법을 통해 담아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하지만 이번 신작 가운데 춤추는 자연의 모습이 새롭게 등장한 점이 눈에 띈다. 과거 그의 작품은 '움직이는 산', 즉 순환하는 자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고 움직이는 작가의 시선과 감흥이 응축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제 그로부터 한걸음 더 나아가 자연의 춤이 테마로 등장한 것이다. 화면 속에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듯한 나무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흥겹게 춤을 추는 나무는 나무가 아닌 사람으로도 보인다. 시각적으로 남성, 여성의 실루엣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사실 작가의 의도였다. 그는 어느 날 현장에서 자연을 관찰, 사생하던 도중 묘하게 자연과 하나 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오랜 시간 자연 안으로 들어가 있었던 탓에 상당부분 동화가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그의 근처로 별 두려움 없이 야생동물들이 다가오기도 했다고 한다. 일종의 '자연과의 합일'이 이루어졌었던 셈이다. 춤추는 나무, 춤추는 자연의 모습은 바로 작가의 이러한 당시 감흥의 표현이다. 이제 자연에서 받은 느낌을 그리는 것을 넘어서서 자연과 하나 된 인간의 모습을 담아낸 것이다. 춤추는 나무의 모습은 자연의 모습이기도, 작가의 모습이기도, 또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자의 모습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작품을 바라보면서 인생의 기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 비단 필자에 국한된 일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 장준구
Vol.20180327b | 이종송展 / LEEJONGSONG / 李宗松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