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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애 홈페이지_artcelsi.com/chohyunae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9:00pm
GS 더스트릿 갤러리 GS THE STREET GALLERY 서울 강남구 역삼동 679-1번지(논현로 508) GS타워 B1,1층 Tel. +82.(0)2.2005.1173 www.gstower.co.kr
시간을 공간에서 물어보는 조현애의 수사학 ● 4세기 성 어거스틴은 시간을 일컬어 "인간의 정신이 경험하는 하나의 환영적인 산물"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또 18세기 독일 작가 폰 쉴러는 "미래는 느릿하게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가고, 과거는 영원히 멈춰 서 있다"고 했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러한 관념을 부정한다. 시간은 과학과 인간의 상상력 등이 담겨진 복합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는 또 다르다. 예술가는 그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 하며 또한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 드러내고 싶어 하는 욕망을 우린 예술가의 의지라고 하며 그것은 곧 그림이 된다.
우리는 그 다름을 향한 한 예술가의 수사학을 조현애의 「일체의 기억」 시리즈 작업에서 명확하게 제시 할 수 있다. 그녀가 수차례 개인전을 통해 집요하게 탐색해 온 일련의 기억 시리즈는 오랜 과거에서 시작하여 현대적인 공간으로 우리들을 기억의 풍경 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것 이었다. 특별히 그녀가 펼쳐놓은 기하학적 공간이나 구성에 다양한 이미지들에서 이미 우리는 시간의 출렁이는 물결에 파고와 흔들림을 발견 한다. 무엇보다 조현애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그 물결의 본질은 공간에 설치된 과거의 그림 이미지와 모던한 이미지들이 갑작스럽게 만나는 지점에 있다. 그러나 이 만나는 지점에 그녀가 의도하는 핵심이 있다. 그녀가 주제로 하는 이 시간은 아직도 여전히 추상적 개념이다. 작가는 고백하듯이 '삶이 지평이 아득한 아포리아의 세계이듯이 삶의 근거인 시간 역시 아득하다. 그래서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두껍다.일체의 기억과 흔적, 그리고 꿈과 기대가 층층이 주름 잡혀 있다.이 시간의 두께를 어떻게 가늠할까' 라며 그 무한의 시간의 실체와 본질을 화폭에 시각적 언어로 기술하고자 하나 그것이 아득한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적어도 그녀에게 시간을 드러내는 가장 이상적인 기술은 복고적이며 한국적인 소재를 한 공간에 끌어들이며 비교하는 방법이 직접적이고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조현애는 모던한 패션의 여인과 한국의 전통적인 한복에 올림머리를 한 여인을 환 화폭에 등장 시키면서 그 시간을 낯설게 대비 시킨다. 마치 조선시대 혜원의 풍속도나 미인도속에서 존재하는 여인을 현대 여성과 오버랩 시키는 꼴라주 풍의 기술이 그것이다. 이 서로 다른 이미지를 한 화면에 배치시킴으로 우리는 참 아득하고 멀리 있다고 생각되는 기억이, 시간을 넘어 공간을 초월하여 우리들의 눈앞에 실제 보이며 존재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물론 그것은 작가의 상상적 공간에서 펼쳐진다. 조현애는 그림을 감상하는 이들에게 타임머신을 타고 시공간을 넘나드는 환영을 현실적으로 드러내며 환기 시킬 것을 유도한다. 오랫동안 그녀는 여전히 이미 지나간 과거의 시간과 현재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 시간을 다룬 드라마에는 혜원 신윤복의 여자 주인공이고, 요즘 현대여성들도 함께 열연한다. 무대와 배경으로는 집도 있고 자동차도 있고 자전거를 타는 사람 등 다양하게 혼합되어 있다.
'일체의 기억'이란 타이틀로 진행되는 이 무대에 미인도의 여인들이 빈번하게 초대 하는 이유는 이 여인이 과거 그림 속에 등장하는 가장 유명하고 강력한 여인의 대명사이지 다른 특별한 사정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과거 시간에 대한 상징적인 인물일 뿐이다. 그야말로 "이 서걱거리는 조합은 뭔가." 라고 느껴질 만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작가가 좀 더 형이상학적이고 긴밀한 관계의 오브제들을 권유 한다. 마치 시인 존 던이 사랑을 서로 상대적인 관계를 가진 컴퍼스에 비유 한 것처럼 긴밀한 연결을 가진 상관관계성의 문제이다. 한복에 올림머리를 한 여인이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그 주변에는 갈대밭, 시계, 때로는 자전거가 보이고 , 구름이 떠 있는 하늘에 거꾸로 선 집이 떠 있기도 하다. 이 시간의 부조화 장면들을 오히려 그녀는 시간 앞에서 즐기고 있다. 그렇다면 이 그림들이 우리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 그것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화면과 공간구성의 복합적인 구성 때문이다. 공간을 분할하는 벽면 그 공간을 구별 짓는 컬러의 차별성 그리고 화면을 배려하는 기본적인 원근법에서 이 컴포지션은 빛을 발한다. 거리감을 충분히 느끼게 하는 모노톤의 벽면과 공간들 사이로 새롭게 현실적인 공간을 암시하는 모던한 여성의 이미지들이 미완인 듯 편집되어 자리 잡고 있는 것 등은 분명 신선하다. 즉 이것은 현실과 상상,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다양한 그녀의 시간을 이야기하는 절묘한 스킬이다. 이 작품들 속에는 그녀와 그녀 자신의 흔적들과 기억들이 모여 하나의 퍼즐처럼 단층을 이루고 있다.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기억 속의 풍요로운 세계, 점차 사라져가는 찰나들을 어떻게 붙잡을 수 있을까. 그녀는 이 물음에 대한 진지한 답변을 하고 계속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그녀의 그림인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전달법 ? 이러한 고민은 모든 현대 예술가들이 수세기에 걸쳐 오랫동안 고뇌한 화가들의 야망이기도 하다. 이러한 회화의 위대한 전통은 자유로운 표현방식 속에서 의미와 전달 ,새로움이라는 언어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죠셉 코주스가 의자의 진정한 본질을 어디서 찾아낼 수 있는지 물으면서 사물을 보는 방법이나 시각 등을 제시 한 것처럼 ,조현애는 잊혀진 기억의 환영을 현대적 인물들을 드로잉으로 호출하며 색면으로 분류하고,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시공간을 구축 한다. 그녀 역시도 이러한 초현실적인 회화의 전통적인 어법을 따르고 있다. 작가는 마치 하늘 위에 두둥실 떠있는 한 무더기 뭉게구름처럼 여인이 공간속을 떠다니며 거니도록 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작가와 우리는 시간은 결코 보이는 것이 아닌 "Time is nothing but change" "시간은 변화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라는 사실을 그림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결국 시간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느낄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다만 조현애에 의해서 우리는 그 시간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신뢰하는 것이다. 이 함축적인 시간의 표현법이 우리가 보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그녀의 매혹적인 형태 들이다. 우리는 그녀가 꿈꾸는 시간이라는 여인과 공간이라는 화폭과 마주하면서 시간은 순탄히 흐르는 강물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새삼 인정하게 된다. 동시에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던 사물들이 그에게 이끌려 나오면 그것이 시간으로 변모한다는 사실도 떠올린다. 그래서 예이츠가 "시인은 (뿐만 아니라 화가들까지도 )허가 받지 않은 입법자"라 명명했었을 것이다. 나는 조현애의 공간이 현실의 공간이 아닌 시간의 공간을 넘어 , 생각하게 하는 그림을 그리려 평생 노력 했던 르네 마그리트가 추구했던 초현실적 공간으로 활짝 꽃피길 기대한다. ■ 김종근
Vol.20180317e | 조현애展 / CHOHYUNAE / 曺賢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