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0308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월~금_11:00am~05:00pm / 이외 시간 사전 전화 예약
지소갤러리 JISO GALLERY 대전시 유성구 현충원로347번길 42 42(구암동 652-3번지) Tel. +82.(0)42.471.4772 www.jiso.kr
기하와 색, 빛의 조합이 만드는 유동(流動)의 세계 ● 기하, 색, 빛은 권진희 작업의 가장 핵심적인 조형 요소다. 작가는 형태, 색, 질감 등 다른 세계들을 조합, 변주하여 최적의 조화미를 탐구한다. 여기서 최적의 조화는 조형요소들의 정도와 에너지를 이해함으로써 모두를 만족시키는 적절한 균형점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각기 다른 에너지를 발산하는 이질적인 세계들을 한데 모아 어울리게 만들기 위해서는 조율이 필요하다. 현실은 작가의 의도에 끊임없이 충돌을 가하고 침범하며 무너뜨리려 한다. 자연 재료의 변화 양상과 속도가 항상 작업 의 공정과 속도에 일치하는 것은 언제나 작업자의 의지나 상황과 무관하게 진행되기에 더욱 그러하다. 혹여 작업자가 급한 마음에 축축한 흙 띠를 마르기도 전에 빠르게 쌓아 올린다면 중력은 점점 기물의 무게중심에서 벗어나고 어느 순간 작업자가 애써 쌓아올린 기벽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이처럼 현실이 작가의 의도와 어긋나고 위계가 발생하는 것에 대해 도예가는 불편해한다. 현실과 상상을 어울리게 하기 위해선 현실세계의 질서를 인정하고 내가 하고 싶은 바를 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가의 상상을 중력과 물리적 법칙에 의해 구속된 실제 공간 속에 구체적 물질로 입체화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점이야말로 도예가들이 좌절하고 자책하는 이유다. 그러나 그것은 굴욕이 아니다. 현실 세계와 상상의 세계는 언제나 위계가 있기 마련이고 작가의 조형세계는 거듭된 혼란과 좌절 속에서도 차차 그 속에 내재된 정밀한 질서를 이해하고 대응의 방법을 터득해가는 가운데 구축되기 때문이다.
작가는 흔히 미니멀리스트가 채택하는 원뿔, 실린더 등의 형태를 변형 혹은 조합하여 그릇의 형태를 만든다. 원뿔, 원기둥은 기하의 기본이다. 동시에 이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담음'이라는 기능을 위해 선택해온 가장 전통적 용기(用器) 형태이기도 하다.(권진희의 그릇은 가장 전통적인 용기(vessel)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기능성에만 방점을 두기보다 작가가 새롭게 공예와 예술의 공유지 속에서 찾아낸 미적 사물로 접근해야 한다.) 작가는 하나의 도형만으로 형태를 구성하기도 하고 때로 여러 도형을 구조화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러 개의 기하를 구조화 한다 해도 형태는 변함없이 단순함과 명료함을 추구한다. 작가는 미니멀리스트의 질서 속에서도 흙 띠의 방향과 굵기를 달리하여 성형하고 색과 질감을 달리하며 투공을 만든다. 끊임없이 기하 혹은 지오메트릭스의 수학적이고 계산적인 질서를 흔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장치들은 지오메트릭스의 체계적 질서를 전복시키지는 않는다. 작가는 색의 명도와 채도, 유광과 무광, 흙 띠의 면적과 간격, 투공의 모양과 수를 계산하고 조절하며 잘 참고 있다. 이 중에서 특히 눈여겨봐야 할 것은 투공(透孔)이다. 작가는 흙 띠를 자르고 붙이고 파내고 긁어내면서 반복적으로 기벽을 비운다. 열림은 닫힘을 더욱 강하게 표현한다. 열린 공간, 쉼표 때문에 기벽의 존재와 두께 그리고 용기 내부의 공간은 더욱 확실하게 인식된다. 그러나 열림은 단지 연속의 결여가 아니다. 그것은 기벽을 기점으로 구획된 내부와 외부가 내통하는 숨구멍이다. 건축물의 창과 같다. 창을 통해 빛이 통과하고 바람도 흐른다. 작품에 따라 창은 규칙적이기도 비규칙적이기도다. 같은 형태와 색의 기물일지라도 창의 모양과 간격이 어떻게 뚫리는가에 따라 리듬은 달라진다. 그러나 리듬감은 창이 규칙적으로 반복될 때 극대화된다. 또한 투공은 공간 속에 놓인 입체 그리고 그를 비추는 빛의 관계를 극대화시킨다. 빛은 시각적 공간의 지각매개로서 사물이 지닌 형태와 깊이를 새롭게 지각하게 한다. 장식은 모더니즘적 공예시각에서 기능적, 심미적,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장식을 도자예술의 시공간성을 발견하는 중요한 도구로 전환한다.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 기벽의 위치와 두께 그리고 투공의 크기와 모양에 따라 다양한 빛의 스펙트럼이 만들어진다. 다양한 투공의 모양과 간격은 빛의 변주를 낳고 우리가 그것을 통해 다양한 시각적 경험과 새로운 공간인가를 경험하게 한다. 투공을 통과한 빛은 기물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어두운 바닥에 무아레(moire)효과를 만든다. 직접광(直接光)을 받은 기의 내부와 확산광(擴散光)과 반사광(反射光)을 받는 어두운 외벽 사이의 틈을 통과한 빛은 어두운 바닥에 광량과 방향에 따라 드라마틱한 빛무리를 만든다. 무아레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그리고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시시각각 유동하고 변화한다. 빛이 달라질 때마다 기물의 색과 형태도 변화한다. 이로서 관람자는 용기를 매개로 우리를 둘러싼 시공간 나아가 우리 세계의 유동성과 가변성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다. 즉, 권진희의 작업은 사물에 작용하는 보이지 않는 작용(operation)-빛을 이용해 모더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보았던 도자예술의 형식적 전제들 즉, 고정된 사물로서 도자예술을 시각장의 탈물질화, 내지 끊임없이 유동하는 존재로 재인식시킨다. 형태를 계단화하여 그늘지게 하고 다양한 색과 질감을 조합하는 것 역시 빛과 그림자의 대비효과를 더욱 극대화하려는 작가의 장치다. 그러나 형태와 색, 질감의 변주가 이외에 빛이라는 비물질(非物質)을 개입시켜 만들어내는 새로운 비물질적 시각적 경험이야말로 권진희 작업의 핵심적 조형미라고 할 것이다.
그간 작가는 예술과 공예 즉, 실존하는 사물로서 그릇이 품고 있는 부피와 공간의 문제를 추상개념으로 환원하려는 조형적 시도 그리고 재료, 기법, 소성에 따라 달라지는 도자공예의 다양한 효과를 새로운 공예미학으로 견인하려는 목표를 위해 자신만의 방법을 어느 정도 구축한 듯하다. 흙의 물성을 최대한 절제시키고 형태의 결을 다양화하는 방법, 기벽에 숨통을 트이게 함으로써 빛의 열리고 닫힌 정도를 조절하여 기물의 공간과 과 존재를 새롭게 인지하게 하는 방법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재 작가의 결과물에 반드시 흙과 불이 필수적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직접적으로 흙의 거친 물성이나 소성의 효과를 보여주는 것 혹은 타재료를 사용하는 것이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분명 흙과 불로 만들어낼 수 있는 색, 질감, 형태는 다른 재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것과 다르며, 결과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가치도 다르다. 나는 작가의 작업이 도자예술의 요소들을 십분 활용 할 때 더욱 높은 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새로운 작업을 위해서는 핵심 기술의 완성도를 높이고 기존의 작업이 내포하고 있는 새로운 가능성과 조합을 더욱 고민해야 한다. 재료와 기술 향상으로 현대도예의 표현의 스펙트럼은 광범위해졌으며 기존의 재료와 방법에 대한 고정된 인식과 방법에 의심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표현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현대도예의 기(器)작업의 성패는 특별한 어떤 효과나 기술이 아니라, 작품에 내재된 다양한 조형요소들 간의 조율과 균형을 도모하는데 달려있다. 최근 한국 도예의 기(器)작업은 세계 도예에 준하는 보편성과 유사성을 과도하게 뒤쫓고 있다. 앞선 밖의 것들과의 유사성 그리고 정체성 사이에서 의문과 우려가 끊임없이 제기되는 이유다. 당대의 예술작업이 그것이 태동한 현실과 미적기준을 충실하고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것이 소명이자 권한이라면, 굳이 한국적인 것을 강조하지 않더라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작업하고 있는 작가의 태도와 작품세계는 당연히 공시적(共時的)이면서도 경험적인 것 즉, 한국적 맥락에 대한 작가만의 통시적 이해와 깊은 고민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의 작업은 형태, 색, 공간에 대한 우리의 미의식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갖고 이를 다양한 방법으로 현재의 작업과 맥락화하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자신이 추구하고 변주해왔던 형태, 선, 색, 질감, 공간을 새로운 시각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다양하게 변신시킨다면 분명 우리는 그의 작업을 통해 곧 흙과 불의 조합으로 제시 가능한 새로운 조형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홍지수
권진희의 작품은 '황당'하다. 지문까지 찍힐 정도로 민감하고 까다로운 재료인 점토로 완벽하게 성형해 낸 능력도 그러하지만 소성까지 마친 결과물은 더욱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사용하는 자기토는 일반점토보다 변형, 파손의 우려가 크다. 더욱이 점토의 발색을 위해 안료를 첨가하게 되는데, 원하는 색을 얻기 위해서는 중량비 10% 이상의 안료를 섞기도 한다. 이 또한 작품에 물리적, 화학적 변화를 주게 되어 어려움은 크게 증가한다. 이러한 색점토를 두 겹, 세 겹 중첩시켰다는 것은 작품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자세를 짐작하게 한다. 번잡함을 피한 작품의 구성요소는 미니멀하고, 선의 굵기 (폭)등의 변형에 따라 작품이미지에 변화를 주는 스트라이프(stripe)문양은 전체적으로 수평으로 나타나 표정변화 없이 할 말 하는 그녀의 성격을 알 수 있게 한다. 불(火)이라는 수단을 거쳐야하는 도예작품은 모든 과정에서 제약을 많이 받는다. 그런 이유로 형태표현에 한계가 있다. 작품형태가 주로 원통형, 원추형 또는 역삼각형인데 에는 구조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국내외의 비중 있는 전시에 출품하여 이미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는 그녀의 능력으로 보아 세 겹의 색점토가 네 겹이 되고, 수평의 스트라이프문양이 수직이 되고, 원통이 육면체가 되어 좀 더 '황당'한 작품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 원경환
Vol.20180308c | 권진희展 / KWONJINHEE / 權眞姬 / ceram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