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8_0129_월요일_05:30pm
주최 / 코오롱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스페이스K_과천 SPACE K_Gwacheon 경기도 과천시 코오롱로 11 (별양동 1-23번지) 코오롱타워 1층 Tel. +82.(0)2.3677.3119 www.spacek.co.kr
코오롱의 문화예술 나눔공간 스페이스K에서는 2018년 새해 첫 전시로 런던의 신진작가 전시를 마련했다. 피비 언윈(Phoebe Unwin)과 톰 워스폴드(Tom Worsfold) 그리고 런던에서 활동하는 우리나라 작가 이진한이 참여하는 이번 전시는 낮인지 밤인지 분간 할 수 없는 일몰의 순간을 암시하는 '데이 인 이브닝(The Day in the Evening)'이라는 제목 아래 세 작가들의 주제를 공명한다. 피비 언윈은 형상과 배경 사이를 모호하게 흐리는 수법으로 장소성과 시간성을 제거한 모노톤의 회화를 선보이며, 톰 워스폴드는 일상 생활에서 파생되는 정서적 특질을 자신의 기억과 상상에 기반하여 화폭에 자유롭게 옮긴다. 이진한은 일상의 시각적 현전과 소멸 앞에서 작가 자신이 직면해온 감성을 회화적으로 표현한다.
이들의 회화는 저마다 독특한 내용과 형식의 회화를 창출하고 있지만 어떠한 영역으로 명확히 귀속할 수 없는 물리적 혹은 심리적 현상에 주목 한다는 데서 주제를 공유한다. 일상의 사소한 체험 속에서 대면하게 되는 이러한 모호함에 대해 상상을 가미하거나 감성을 관통시키고 기억을 상기하는 등 나름의 방식을 통해 각자의 의식을 풀어내고 있다. 이들이 탐구하는 대상의 특질을 함축하는 이번 전시 제목은 이처럼 각자가 영위하고 있는 보통 날 어스름하게 해가 질 무렵 낮과 밤으로 귀결할 수 없는 미묘한 순간으로 은유 한다. 명확함을 요구하는 이성이나 시각적 현전만으로는 존재의 차원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해 부유하는 이 불분명함을 회화의 주요한 기제로 끌어들여 펼쳐낸다. ● 한편 이들은 이 낮과 밤의 양분된 경계에 걸쳐있는 황혼의 시간과도 같은 이 모호함에 대해 어느 쪽으로 섣불리 편승시키기를 유예하려는 듯 분간 할 수 없는 존재들을 견디고 예민한 감성으로 어루만지는 태도를 일관한다. 이질적 감정이 빚어낸 불완전함 또는 명확히 손에 쥘 수 없는 가변적 존재 앞에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유를 통해 다양한 층위의 의미를 발생시킨다. 이 모호한 존재들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얼마든지 유동하고 변형되기에 임의적이며, 오늘의 것이 내일도 유효 할 것이라는 어떤 절대성을 부여할 수 없다는 데 있어 다중적이기에 지금 여기에 마주하는 존재를 강렬하게 사유한다. 이렇듯 이들은 준거가 되는 틀이 부재하는 모호한 경계의 불확실한 속성을 유희적으로 받아들이며 회화에 녹여낸다.
'데이 인 이브닝'이 암시하는 황혼은 빛과 어둠, 낮과 밤이라는 양립될 수 없을 것만 같은 것들의 경계를 허물어 두루 고찰하게 하는 창조적인 시간으로서 세 작가들의 주제를 가로지른다. 이번 전시에서 이들의 회화라는 창은 하나로 설명할 수 없는 모호한 존재들 사이에서 끊임없는 의미를 발생시키는, 그리고 의미의 미완이 허용되는 보다 넓은 장으로서 선보일 것이다.
피비 언윈의 회화는 사진이나 시각경험에 기반하는 재현 방식을 배제한 채 무엇으로도 특정되지 않는 불명확한 시공간을 그려내고 있다. 눈앞에 아른거리듯 특유의 희미한 분위기가 돋보이는 모노톤 회화는 그리기 방식이 아닌, 캔버스 위에 꽃이나 식물을 놓은 뒤 먹물을 에어브러시로 분사하는 독특한 수법을 통해 형상과 배경 사이를 흐린다. 이 밖에도 작업 과정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마찰도 예민하게 남기는 점토 판을 지지체로 활용하는 등 어렴풋 할 뿐 초점 맞춰지지 않는 감정의 특질을 다채로운 방식의 텍스처와 서정적 장면 위에 투영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평온한 목가적 풍경을 만끽하는 신체를 등장시킨 전작들과 더불어 시선의 원근을 둔 창문 밖 건너의 풍경, 아파트 블록 등 어느 도회적 공간을 떠올린 신작들을 선보인다. 대상이 마음에 부딪히는 순간에 생성됨과 동시에 또 산만하게 흩어지고 마는 감정의 순간적 단면과도 같은 그의 회화는 어떤 시간, 어느 장소에 대한 묘사를 소거하는 불명확한 이미지로 창출한다. 오랜 기억의 잔상처럼 윤곽을 흐리며 어떤 것으로도 특정되지 않지만 반대로 무엇으로도 바라볼 수 있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톰 워스폴드는 기억과 상상을 교차시킨 독특한 서사의 회화를 전개한다. 그는 다양한 회화적 표현법을 가미한 이미지조각들을 화면 위에 감각적으로 병치하며 일상생활의 경험이 파생한 감정의 내러티브를 새롭게 재구성한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신작을 포함한 최근의 작업은 보다 더 평평한 만화적 형상에 가까워졌으며, 희화적인 어조를 강조했다. 런던으로 향하는 교외의 통근열차에서, 저마다 휴대하고있는 각종전자기기들에서, 현대생활을 압도하고 있는 소비문화에서 등 다채로운 출처의 모티브들은 일견 보잘것없게 여겨지곤 하는 일상의 평범한 경험과 감정의 파편들로 수집하여 즉흥성이나 상상을 가미한 독특한 서사로 재구성된다. 그러나 체득된 경험을 상상력과 감정의 이미지로 소화한 그의 회화는 아이러니하게도 선형적인 시간성의 전개를 거부한다. 그는 이 엉성한 이미지파편들을 단정하게 가공하기보다 오히려 무질서하게 엮으면서 감정의 소사들을 어떻게 의미 있게 귀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지연시킨다. 도상들을 단편적으로 갈무리 하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난해한 경계에 두고 있는 그의 태도는 단지 대상을 관심 밖으로 도태시키는 태만과는 다른, 순간 순간 외양을 바꾸는 존재의 가치를 풍부하게 고찰하는 유희적 태도이다.
이진한은 대화를 하고 책을 읽고 대중가요를 듣는 등 일상을 스치는 소소한 순간에서 불현듯 느낀 생경한 감정을 빠른 붓질과 단순한 형상으로 표현해왔다. 그의 작업은 일상을 지배하는 관념의 틀 속에 익숙해져 있다가도 가끔 마주치는 이질적 감정을 개인의 감성에 관통시킨 자의적 이미지로 재편한다. 평범한 경험이 촉발한 낯선 감정은 그대로 유지되지 않고 소멸되거나 변이되기에 순간적인 붓질을 통한 이미지로 치환하며, 특유의 분절된 이미지가 주지하듯 그의 내러티브는 명료하게 제시되기보다 의미를 지속적으로 미끄러트린다. 한편 그의 회화에는 발이 자주 등장하는데, 손이 신체 상부에서 타인과 접촉하는 문화적으로 숙련된 것이라면, 신체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발은 외부에 잘 드러나지 않는 은밀하고 사적인 영역으로서 여과되지 않은 감정을 매개한다. 언어나 문화 등 일상을 성립시키는 외부세계의 질서 이면에 개인의 감정을 탐색하는 작가는 그 체계가 결코 제각각 다른 개인의 경험과 감정에 충분히 조응하지 못하는 부조리를 드러낸다. 이를 위해 무엇에 구애되지 않은 개인의 직관을 적극적으로 발동시켜 구현하는 그에게 생성과 소멸이 연속되는 감정은 그대로 흘려 보낼 진부한 것이 아닌 색다른 감각으로 다시금 번역될 수 있는 주관적 이미지이다. ■ 스페이스K_과천
Vol.20180129b | 데이 인 이브닝 The Day in the Evening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