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or Fati

김상표展 / KIMSANGPYO / 金相杓 / painting   2018_0124 ▶ 2018_0131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윤갤러리 YOON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10길 7 Tel. +82.(0)2.738.1144 blog.naver.com/yoon_gallery

우정의 선물 ● 개인전을 치른 한참 후에 가장 오랜 벗으로부터 뜻하지 않게 녹음파일을 선물로 받았다. 경영학을 전공한 내가 갑자기 그림을 그려 전시한다는 게 대견한지 그 친구는 나를 응원하러 몇 차례 전시장을 방문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작품설명에 후렴구가 하나씩 하나씩 불어나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생생한 현장을 녹음해두었단다. 읽는 이들의 편의를 위해 약간의 첨삭은 피할 수 없었지만, 이 글은 녹음파일을 거의 그대로 풀어놓은 것이다. 녹취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음은 물론이고 청중이 아내의 친한 친구들이었기 때문에, 무척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 하나하나를 그릴 때의 태도와 느낌을 솔직하게 드러낸 듯하다.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역설적 자아 ● 아이의 엄마이기도 하고 한 남자의 아내이기도 하고 김명주씨의 친구이기도 하잖아요. 그때마다 다 다른 모습의 자기잖아요. 그럴 수 있는 것은 자기 안에 수많은 또 다른 자아들이 존재하기 때문이거든요. 그걸 경영학적 용어로 역설적 자아(Paradoxical self)라고 그래요. 역설이라는 것은 태극의 음양처럼 상호 모순되고 상충된 것이 공존하는 것을 말하거든요. 인간은 누구나 그렇게 다양한 자아를 가지고 있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도적 메커니즘에 의해 사회화되거나 혹은 자기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어떤 하나의 정체성이나 단지 몇 개의 자아만을 갖고 살아가게 되죠. 그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안정되고 평온하고 행복하고 균형된 삶을 살아가요. 근데 저 같은 인간은 내 안에 우글거리는 자아들, 그런 수많은 놈들이 그냥 계속 야생적으로 살아있는 거예요. 날 것으로 말이예요. 어렸을 적부터 나이가 들 때까지 퇴화하지 않고 내 안에 살고 있거든요. 그런 자아들이 제 안에서 서로 부딪힐 때마다 심리적으로 불균형과 부조화, 불안정 같은 게 발생하고, 그때마다 우발적으로 사건을 저지르게 되는데 오늘의 이 전시회도 그런 사건의 하나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렇게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다른 삶을 살다가 말이예요.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예술을 통한 인간의 구원 ● 그런데 그림을 그리면서 뜻밖의 상황을 경험했어요. 사실 저는 누군가로부터 유화를 배우지 않았어요. 유화물감의 물성을 통제하지 못했을 때는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표현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물성을 통제한 후부터는 내 안의 자아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어요. 얘네들이 튀어나오면서부터 제가 조금씩 자유로워지기 시작했어요. 숨을 쉬기 시작했어요. 뭐라 할까? 아름다움에 의해서 인간이 치유되고 구원될 수 있다는 것, 예술과 종교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 예술철학을 공부할 때 어려웠던 테제들이 체험적으로 이해가 됐어요.

김상표_김신현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몸의 리듬과 그리기 방식 ● 저는 변화하지 않고 어딘가에 고착되는 것을 싫어해요. 사실은 전시된 그림들이 40장 정도 되지만 모두 다 그리기 방식이 다르거든요. 서예를 한 3~4년 정도 했지만 유화를 안 배웠기 때문에 내 방식으로 붓질을 하거든요. 정말 내 방식으로 그려요. 이건 우리 딸아이를 그린 건데 그때 저는 우리 딸 아이를 꽃과 같은 마음으로 꽃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미워할 때 가장 미운 마음이 생겼을 때 그린 것이거든요. 정말 꽃과 같은 마음으로 꽃과 같은 붓질로 춤추면서 그린 거예요. 이렇게 이렇게 춤추며 꽃잎을 그리듯이 말입니다. 몸의 리듬, 이걸 안 타면 절대 어떤 작가도 이렇게 못 그려요. 제 그림은 사진을 아무리 찍어가도 똑같이 절대 못 그려요. 특정한 그림을 그릴 때마다, 그때마다 내 몸의 리듬과 심리상태가 굉장히 강렬하게 반영되거든요.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 _2018

심리 상태와 그리기 방식 ● 그 다음에 이 그림 같은 경우는 그날 제가 캔버스 앞에 앉았는데 그림을 그리면 웃는 내가 그려지는 거예요. 근데 난 절대 웃고 싶지 않은 날이었어요. 그래서 붓을 그냥 웃는 모습이 그려진 그 화폭에 찍었어요. 붓 3자루가 몽땅 파쇄되었죠. 여기 보면 찍은 느낌이 있잖아요. 웃는 이 아이에게 파쇄된 자아를 심어준 거죠. 어느 날의 그림 속에는 두꺼운 결들이 쌓여져 있는 자아가 있고요. 또 어떤 날에는 이 그림처럼 엷은 층들의 자아가 섞여져 있는 그림을 그리게 되었어요.

김상표_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억압된 것들로부터의 자유 ● 유화는 보통 한 색깔의 물감을 바르고 나서 어느 정도 마른 후에 덧칠을 하나 봐요. 저는 뭐 실험하니까 전공이 다르니까 계속해서 덧칠을 한 거죠. 덧칠을 계속하다 보면 검정색으로 변해서 통제를 못하게 돼요. 그런데 이 그림은 물성을 통제할 수 없는 상태까지 계속 그리다가 형상을 잡아낸 거죠. 마지막에 순발력으로 몇 초 만에 머리를 그렸어요. 저의 천주교 세례명은 토마스고 불교의 법명은 여연이예요. 종교적인 것을 떠나서 무엇인가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어떤 기억이나 아픔들이 다 이 그림에 담겨있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살아온, 또 전생의 업들을 다 토해낸 것 같은 느낌이랄까. 모든 업들을 내가 드디어 내 마음대로 통제하고 가두어놓은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와이프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아! 이제 비로소 내가 자유스러워진 것 같다 라고 얘기했어요. 그 다음에 집사람을 그렸는데 아내의 그림에서도 똑같이 아내의 업이 다 튀어나온 듯한 얼굴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내가 와이프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당신 또한 자유를 얻게 해줬다. 나한테 감사하세요.

김상표_아내미륵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미륵, 민중들의 꿈과 희망의 투사 ● 그 다음에 급작스럽게 부처를 그리게 되었어요. 근데 얼굴 보면 부처 같지 않잖아요. 화순에 운주사가 있는데 천탑천불이 있었다는 그런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예요. 제 고향이 광주이기 때문에 매년 두세 차례씩 거길 가게 되었어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아마 지금은 석불이 70기 정도 남아있고, 석탑이 12기인가 아님 20 몇 기인가 남아있다 합니다.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본산인 셈이죠. 운주사가 말입니다. 미륵이라고 하는 것은 원래 불교에서 미래의 부처를 부르는 말이잖아요. 운주사의 미륵은 특별히 다른 곳의 미륵과 다른 게 제작자가 전문가가 아니라 일반 민중들이었답니다. 그래서 나는 미륵을 민중들의 미래의 꿈과 희망이 투사된, Projection된 것이라고 보고 만든 사람이 민중이기 때문에 민중을 닮았을 거라고 해석한 겁니다. 이렇게 미래에 올 부처인 미륵에 대한 재해석을 하고나서 제 나름대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운주사 입구에 들어서면 바위 밑에 미륵이 한꺼번에 7~8기가 놓여있어요. 근데 어떤 3기가 탁 제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그게 아빠 미륵 같고 엄마 미륵 같고 또 아가 미륵 같았어요. 엄마 미륵에서 김명주씨를 발견하면 친구 입장에서 성공하신 겁니다. 엄마 미륵의 이 부분은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라 꽃잎처럼 그것도 핑크빛깔로 표현한 거죠. 그 다음에 어떤 미륵을 보니까 남편 미륵 같고 아내 미륵 같아서 여기에는 저와 아내의 모습을 담았어요. 또 어떤 미륵은 옆에서 보았을 때 여성 같았어요. 미륵을 민중들이 만들었다면 아마 자기 모습을 닮게 만들지 않았겠어요? 옛날에는 너무 어려워서 전쟁에 나가면 돌아올 수 없잖아요, 그리고 장사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남정네를 그리워하며 여인네가 만든 부처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제 상상력을 동원해서 눈도 둘 그리고 입도 이렇게 눈처럼 반으로 쪼개서 표현하게 된 거죠. 사실은 코밖에 없었습니다. Invisible한 것에서 Visible한 것을 떠올리고, 또 Visible한 것을 보고서 다시 Invisible한 것을 표현한 거라고 할 수 있죠.

김상표_미륵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김상표_미륵자화상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미륵자화상 ● 이렇게 9점을 그린 후에 마지막에는 미륵자화상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일어나니까 염불서승도라고 김홍도가 마지막에 죽기 직전에 그렸던 자기 자화상이 떠올랐어요. 연꽃인가 구름인가를 타고 서쪽을 이렇게 바라보면서 인생을 관조하는 그림이예요. 약간의 옆모습도 보이는 뒷모습이랍니다. 근데 막상 작업실에 가서 그림을 그리려고 하니까 염불서승도처럼 미륵을 표현하기는 어려웠어요. 대신 뒷모습만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미륵의 뒷모습을 그린 겁니다. 저쪽 벽면에 있는 자화상들, 그리고 아내와 딸의 그림들은 구상적이잖요. 그런데 미륵 그림에 와서는 반추상 형태로 바뀐 거예요. 거기다가 미륵의 뒷모습을 그리면서부터는 저도 놀랍게도 완전히 추상적인 형태로 급격히 진행을 한 겁니다. 이어서 미륵자화상의 앞모습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저는 좀 말쑥하고 날씬하게 생겼잖아요. 하지만 미륵자화상의 앞모습을 그리려고 했는데도 그렇게 안 그려졌어요. 갑자기 물감을 으깨고 부수면서 그리다보니 얼굴이 좀 넓적하고 마음이 이렇게 넉넉한 사람이 되었어요. 어쩌면 미륵이라는 것이 결국 민중들의 수많은 아픔을 다 담아내야 하고 소망을 품어내야 하니까 광대무변한 모습으로 그려져야 되잖아요.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그려지면서 결과적으로 미륵자화상의 앞뒤 모습이 형태적으로도 닮게 되었어요. 앞 모습의 미륵자화상에 찍혀져 있는 저 검정 얼룩은 제가 한 게 아니고요. 제 친구 중에 다큐피디가 있어요. 이게 제일 마지막에 그려진 작품이예요. 사실 안 마른 상태에서 가져 왔기 땜에 신경을 많이 써서 디피를 해놓은 건데 그 친구가 나를 위해서 사진을 찍으면서 부딪혀서 우발적으로 생겨난 거예요. 지금은 Interactive art가 유행이잖아요. 훗날에는 관객을 개입시켜 미륵을 그려봐야 한다는 컨셉을 저한데 준 걸로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대로 둔 겁니다.

김상표_아빠와 딸_캔버스에 유채_40.9×31.8cm_2018

사랑하는 아내와 딸 ● 이거는 셀카 그림인데, 예전에는 가족끼리 놀러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해도 괜찮았는데 지금은 너무 자기를 중요시 여기는 시대잖아요. 그런 게 힘들어서 우리끼리 사진을 찍었어요. 그래서 가족이 각자 다른 곳을 보는 그림이 그려졌답니다. 여기서 우리딸 아이 얼굴은 실제보다 조금 무겁게 그려졌는데 엄마아빠가 기가 세서 딸은 아직 그 기를 감당 못하는 것 같아 과장해서 기운을 맞춰놓은 거예요. 그 다음에 저기 두 장도 똑같은 셀카 그림들이예요. 하나는 셀카 부부를 그린 것이고, 옆에는 딸아이와 저를 그려낸 것이랍니다. 이렇게 해서 3장의 셀카 가족그림이 완성된 셈이죠. 와주셔서 감사하고 … ■ 김상표

Vol.20180125c | 김상표展 / KIMSANGPYO / 金相杓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