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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10:00pm
공간 이다 alternative culture space IDA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로 271(창우동 249-7번지) Tel. +82.(0)31.796.0877 blog.naver.com/space-ida
내 작업들은 공간과 시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어느 순간 어떤 공간에 내가 있었고 그때도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다. / 공간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 나라는 육체의 공간 안에 정신과 마음이 자리 잡고 있다. / 더 세분화하면 정신에는 수없이 많은 생각, 고민, 이성, 기억이 / 마음에는 셀 수 없는 감정과 상처가 자리 잡고 있다. // 여기에서 출발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 사회, 문화라는 / 각기 다르고 모호한 공간 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 이런 공간 속에서 나라는 주체의 시간을 되돌려 본다면 / 그 시간들은 언제나 잊고 싶은 기억과 잃기 싫은 기억을 안고 있다. / 그 기억들이 어떤 대상에 동질감을 느낄 때면 나는 그것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 이처럼 공간 그리고 계속되는 시간을 들여다보면 / 그 안에는 수많은 파편들이 가득 차 있다. / 불어오는 바람과 몇 번의 고비들은 쉼 없이 나를 몰아붙였고 / 그럴 때마다 나는 금가는 것이 아니고 휘어지는 것이 아니고 / 다시 부칠 수 없게 부서지길 그리고 부러지길 바랐다. // 그리고 그 공간과 시간의 파편들을 다시 모아 새로운 나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 나의 좁은 정신과 마음에서 시작된 작업은 / 어떤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마주한 대상들에 나를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다가 / 어느새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고 그 은밀한 이면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 스물의 파편들은 늘 새롭게 태어났다.
Sea, You, Glass ● 답답한 마음에 찾은 섬에서 아름다운 돌을 발견하였다. 그것도 잠시 / 돌이라 하기엔 무엇인가 어색했고 자세히 보니 부서진 흔적들이었다. / 둥글둥글하여 본래의 모습이란 찾아보기 힘든 // 밀려오는 파도에 부딪쳐 이리로 저리로 쓸리고, 지나가는 시간에 / 날카롭던 유리날은 부드러워지고, 투명했던 유리는 어느새 불투명한 상태로 / 이제는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런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다. /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 마치 지금의 내 모습처럼 그리고 우리들의 모습처럼 / 밀려오는 파도에 나는 어디로 흘러가는지, 원래의 내 모습은 어디에 있는지 // 흐르는 시간에 흐려져만 가지만 변한 모습일지라도 아름답게 간직하고 싶다. / 지금의 나와 지금의 우리는 어쩌면 변했을지도 모른다. /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가 아름답다.
The moment ● 지난 날 내 시간과 경험에 대한 미화된 추억 안에서 지금도 헤어나지 못하는 나는 / 맹목적 사랑으로 신격화한 우상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전혀 행복하지 않았고 절대적일 수 없었던 기억들에 의미를 부여하여 / 마치 사라지면 그 시간까지 지워 버려야 할 것처럼 불안에 떨었다. / 이런 기억에 나는 맹목적인 믿음을 주었다. // 추억이란 이름으로 사랑하여 신격화하다, 나는 현재 / 그 고리를 자르지 못하여 오류를 범하고 있다. / 영원할 것이라 믿었던 나의 우상들은 어느 날 증발하였고 / 수증기 또한 보이지 않을 만큼 사라져 갔다. // 그럴 것이었다. / 별 것 없는 하루, 그 하루가 한 달, 일 년, 십 년을 만들고 / 시간이 지난 후면 그때의 내 모습도 증발할 것이다. / 그러나 모든 걸 부정하면 더 이상 부정할 게 없어지기에 / 그 시간 속 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었기에 / 오늘도 나는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을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Life in the string ● 부정을 하니 현실이 부정되고 / 긍정을 하니 이상과 너무 멀어져 갔다. // 끈은, / 그 붉은 끈이 의미하는 동양적 상징과 내가 생각하는 시간과 공간을 더해 / 인연과 운명, 그리고 중요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 7, 13, 18, 22, 24. // 그래서인지 영원에 대한 믿음은 몇 번의 상처와 지나간 바람에 / 산산이 부서져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 과거의 시간과 추억이 더럽혀져 갔고 / 인연과 운명이라 믿었던 순간마저 부정으로 변하였다. // 하지만 순간을 영원으로 믿는 이 어리석은 믿음이 지속되어 /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끈은 / 삶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나는 / 붉은 끈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
다시, 그곳에서-버려진 농협창고에서 ● 농협창고는 농업의 근대화를 알려주는 가장 대표적인 건축물이라 말할 수 있다. / 농업의 근대화로 저장 공간이 필요했던 우리는 / 수많은 창고를 비슷한 형, 비슷한 색으로 짓고 이를 이용해 왔다. // 창고는 우리 식문화에서의 쌀의 중요성을 / 창고에 새겨진 글귀는 그 당시의 문화를 알려 주지만 /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예전의 창고를 방치하였다. // 밤길을 걷다 창고와 조우한 나는 / 텅 빈 창고가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할 수 있다는 희망을 / 독립적 공간으로 다시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 창고 또한 우리의 소중한 문화적 유산이었던 것이다. // 창고를 오랜 시간 바라보던 나는 / 빛바랜 창고에서 창고의 존재 가치를 새로운 시선으로 찾고자 했다. / 창고를 비추는 주변의 빛을 색으로 포착하며 / 빈 창고가 다시 빛을 발할 시간을 맞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Pure factory-문 닫힌 공장에서 ● 순수란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온전히 간직하는 것이다. / 그런데도 순수는 가변적이고 일시적이며 유동성을 가지고 있다. / 상황에 따라 순수는 가식이 되기도 하고 동정이 되기도 한다. / 어제의 순수와 오늘의 순수가 달라지기도 한다. // 어릴 적 순수했던 목표와 지향은 어른이 되어가며 잊힌다. / 구름에 가린 달처럼 보일 것 같지만 보이지 않아 / 나는 여기서 달의 의미와 달의 빛이 닿지 않던 숨을 곳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문이 닫혀 20년 동안 버려진 흉물스런 공장에서 / 달빛이 스며들 때까지 일하다 달을 안고 귀가했던 20년 전 사람들 / 가지고 싶었던 달을 가질 수 없었던 사람들의 / 순수하고 간절했던 꿈과 소망을 향해 / 그곳에서, 다시 한 번 밝게 빛나는 달을 보여주고 싶었다. // 침묵으로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 우리는 달의 모습을 보았는가, 달의 빛을 찾았는가 /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달이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 숨쉬기조차 힘들었던 현실이 늘 달빛처럼 반짝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잠시-재개발 지역에서 ● 잠시만 멈추길 바란다. //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개발의 시간이 연속되자 / 수십 년을 간직해 온 기억들은 / 쌓아온 시간에 비해 아주 짧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 이번 작업은 시간에 따른 재개발 지역의 공간을 촬영한 것이다. // 빈집에 들어서면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듯 / 여기저기서 사람의 흔적들이 느껴진다. / 하지만 현실은 아무도 살지 않는 나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 / 사람들이 버리고 간 그들의 기억들이 나를 반겨주었다. // 개발을 피할 수는 없다. / 이러한 현실을 부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 어느 여름에 쏟아진 소나기에 대한 기억도 기억할 수 있는데 / 몇 십 년을 한자리에 있던 나무, 담장, 낙서, 그들의 기억을 / 우리는 너무 간과하고 지나치는 게 아닌가. // 잠시 멈춰 기억해야 한다고 / 간절한 부탁을 하듯, 나는 속삭였다. ■ 오태풍
거울의 입김, 창의 눈빛_오태풍 사진전『스물의 파편』展에 부쳐 ● 복합문화공간 「공간 이다」에서는 2018년 1월 6일(토)부터 2월 2일(금)까지 오태풍 사진전 『스물의 파편(Fragments of twenties)』展을 개최한다. 광주대학교 사진영상학과에서 사진을 전공한 이래의 작업을 한자리에 모은 『스물의 파편』展은 올해 스물아홉을 맞는 오태풍에게는 소중한 사진적 연대기가 된다. 오태풍이 이십 대의 젊음을 걸고 촬영했을 이 작업들은 총 6개 시리즈로 구성되어 있다. 각 시리즈마다 20여 점의 사진으로 포트폴리오를 정리해 놓은 것을 보면 사진과 함께한 그의 젊은 날이 얼마나 진지하고 성실한 것이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 「Sea, You, Glass」는 물살에 마모되어 날카로움을 잃고 둥글게 변해 버린 유리날에 본래의 모습을 잃고 살아가는 인간 삶의 양상을 은유한 이퀴벌런트(equivalent) 사진이다. 오태풍은 시간에 의해 변화해 가는 이들 모습을 아름다운 존재로 묘사하여 이를 긍정하고 있다. 「The moment」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떤 순간이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사물에 의미를 부여한 사진이다. 오태풍은 행복하지 않았던 기억이지만 그 미화된 추억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는데, 그것은 그의 표현처럼 "모든 걸 부정하면 더 이상 부정할 게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별 것 없는 삶, 불안하기까지 한 삶에서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었던 미학적 근거 역시 그의 긍정의 힘에서 찾을 수 있다. 「Life in the string」은 붉은 끈과 삶의 좌표로 존재하는 시간과 공간을 엮어 인연, 운명, 영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사진이다. 다소 관념적인 이 사진은 붉은 끈이 지닌 동양적 상징을 이용한 작업으로,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믿고자 하는 오태풍에 의해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우리의 삶을 시각화할 수 있었다. ● 「다시, 그곳에서-버려진 농협창고에서」는 폐기된 농협창고를 촬영한 사진이다. 우리나라 곡창지대인 호남 지역에서 성장기를 보낸 그에게 농협창고는 예사롭지 않은 사진적 대상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농협창고에서 농자지천하지대본(農者之天下之大本)을 기치로 농업을 숭상해 왔던 우리나라가 맞이한 폐농의 상황을 직시한다.「Pure factory-문 닫힌 공장에서」는 20년 동안 문이 닫혔던 한 카세트테이프 공장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전주시는 팔복동을 한옥마을과 연계한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삼고자 팔복동의 폐공장(쏘렉스, 구 썬전자)을 인수하여 리모델링을 하고 '팔복예술공장'의 개관을 앞두고 있다. 오태풍이 그 시범운영프로그램으로 기획한 「팔복읽기: 공단파노라마」의 작가로 선정되어 작업한 이 작품들은 공장에 버려진 사물과 그가 공장 안에서 촬영한 사진을 혼합하여 보여준 이색적인 설치 작업이었다. 그는 주로 밤을 택하여 사진을 촬영하였는데, 그것은 야간 퇴근을 일삼으며 피 흘려 일했던 20년 전 노동자의 현실을 기억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잠시-재개발 지역에서」는 전주시 서신동의 재개발지구 '바구멀' 지역을 기록한 풍경 사진이다. 이마트와 롯데백화점이 인접한 곳이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도시 재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사라져가는 공간에서 그 마지막 삶의 흔적들을 채집하여 기록하였다. ● 흥미롭게도 오태풍의 이 『스물의 파편』展은 거울과 창의 경계에 걸쳐 있다. 모마(MoMA)의 사진부 디렉터 존 사코우스키(John Szarkowski)는 표현과 기록이라는 사진의 두 영역을 거울(mirrors)과 창(windows)에 비유한 바 있다. 오태풍이 표현에 초점을 맞춘 「Sea, You, Glass」, 「The moment」, 「Life in the string」이 자신의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 앞의 사진이라면, 다소 기록에 치중한 「다시, 그곳에서-버려진 농협창고에서」, 「Pure factory-문 닫힌 공장에서」, 「잠시-재개발 지역에서」는 세계를 조망하는 창 앞의 사진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작가 노트에서 "어떤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마주한 대상들에 나를 빗대어 표현하기도 하다가 어느새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고 그 은밀한 이면을 기록하기도 하였다."라고 밝힌 것처럼, 『스물의 파편』展은 표현과 기록이라는 두 사진의 영역에서 노출된 그의 사진적 고투였던 것이다. ● 그래서인지 오태풍의 거울 쪽 사진들은 따뜻하고 아름답다. 거기에는 그의 인간적 체취가 입김처럼 서려 있다. 그는 끊임없이 과거의 순수했던 순간의 기억을 붙들고 시간의 흐름과 함께 변화해 가는 자아와 힘겨운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 깊은 자의식이 내뿜는 거친 숨결 때문인지 그 입김은 뜨겁다. 대신 창 쪽의 사진들은 다소 차갑지만 명징하다. 거기에는 오태풍의 세계에 대한 인식이 눈빛처럼 빛난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창고, 폐공장, 재개발 지역의 풍경들이지만, 그것들은 모두 그의 예리한 눈빛이 포착해 낸 자본주의 시대의 사회 문화적 풍경들인 것이다. 근대화, 산업화, 도시화 정책으로 특정한 지역과 공간과 사람들만이 차별당하여 소외되고 배제되는 현실에 대한 차분한 비판이었다. ● 다행인 것은 오태풍의 『스물의 파편』展이 표현과 기록이라는 두 사진적 가치를 두루 섭렵했다는 사실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업은 그가 비록 스물의 '파편'이라고 표현했을지라도 충만한 사진적 밀도를 지닌 '완성본'으로 다가온다. 다만 문제는 거울과 창의 경계에 선 그의 작업이 이십 대를 지나 어떻게 진행될 것일까 하는 점이다. 초기의 표현적 사진에서 후기의 기록적 사진으로 이행해 온 오태풍의 작업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행보가 앞으로도 기록 쪽으로 치달을 것이라고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다. 오히려 문학적 감성과 회화적 감각을 자신의 '끼'로 무장하고 회화와 설치와 영상 작업에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 온 오태풍이기에 거울과 창의 경계뿐 아니라 장르의 경계까지도 훌쩍 뛰어넘은 예술 행로의 무한한 변신을 지금 이 자리에서 기대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 김혜원
Vol.20180106b | 오태풍展 / OHTAEPUNG / 吳泰風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