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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요일 휴관
한미사진미술관 The Museum of Photography, Seoul 서울 송파구 위례성대로 14 한미타워 19,20층 Tel. +82.2.418.1315 www.photomuseum.or.kr
박영숙의 실존적 초상(existential Portraiture) ● 기록이란 담보로 뷰파인더를 통해 타자의 얼굴을 담아내는 작업은 그 분명한 단서로 인해 태생적 한계를 안고 있다. 더구나 포트레이트(Portrait)라는 작업은 시각예술창작자에게 스스로가 설정한 경계와 제안이 공존하며 미묘한 긴장감을 야기시킨다.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 ● 36인은 박영숙의 선택적 주의(selective attention)로 포착된 인물들이다. 저널리스트에서 작가로 가던 과정에서 겪은 유방암이라는 상흔의 서른아홉의 환경에서 시야에 들어오는 다양한 인물 정보 중 오롯이 자신의 삶을 살아낸 특정한 인물에 주목하였다. 의탁한 삶이 아닌 주체로써의 삶을 살아낸 정체성의 포트레이트, 그 서른아홉의 박영숙에게 필요한 인물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선택된 초상들은 저널에서 흔히 보이는 과장과 장치의 수사가 없다. 다만 지극한 응시만이 그 선택된 대상에게 집중된다. 지긋하게 바라보고, 초상과 그 초상이 실존하고 있는 삶, 그 삶 속의 감정을 포착해 낸다. 익명의 타자가 아닌 분명한 대상들이다. 분명한 대상이라는 것은 분명한 삶과 동의어다. 인물이라 지칭할 때 획득할 수 있는 다수의 정보 중 얼굴, 직업, 삶의 배경이 박영숙의 시선을 만나 함축되고 상징이 된다. 그 과정에서 인물을 둘러싼 공간과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문 분야들은 낱개의 개별체가 아닌 유기적 본체자로 새로운 관계항을 성립시킨다. 주로 예술가들에게 집중했던 박영숙의 36의 포트레이트는 그래서 인물과 분리될 수 없는 그들의 창작 공간과 축척된 시간성을 동시에 확보한다. 그 생물生物 같은 공간과 직업과 인물. 박영숙에게 살아있는 것은 삶의 주체로서 실존을 의미한다. 그렇게 선택된 36명의 포트레이트다.
관계항(Relatum) ● "그 사람들은 거기에 가지 않으면 삶을 살 수 없어요. 그들이 서 있는 그곳에서 그들의 진짜 삶이 이루어지죠."(박영숙) '의미 있는 삶'을 '의미 있는 나이'로 오늘을 이루어 낸 존재들이라 작가가 칭하는 이들은 시인, 소설가, 작곡가, 화가, 연극배우 등 주로 예술가들이었다. 그들은 창작 산실인 작업실에서 연습실에서, 공연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산함과 동시에 획득해 낸다. 정체성의 공간과 의미 있는 나이를 가진 이들을 바라 본 40이란 나이에 죽음의 고비를 넘긴 사진작가 박영숙에게 이들의 공간은 전형의 방, 집을 넘어서는 의미를 가진다. 사학공부를 통해 문화와 역사를 거대 담론으로 설정하지 않고 일상의 살아감에 방점을 둔 작가에게 의미를 가진 이들의 일상적인 기록은 단순한 초상이 아닌 문화를 기록하는 일이기도 했다. 초상을 담기 위해 그들을 실존적 삶의 공간에 세우고 카메라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일에는 뷰파인더를 뛰어 넘는 마음이 담겼다. 즉, 초상과 공간을 분리하지 않고 유기적인 관계로 바라 본 것. 개체자의 낱개의 화면 구성 요소가 아닌 초상을 이루어낸 소요자所要者로서 공간과 조건을 목격한 것이다. 그러한 관계항을 읽어 냈기에 박영숙의 36_포트레이트는 대상을 번역하지 않는 사진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지만 사소한 조건(구도)과 작은 단서(소품)를 통해 함축적 메시지를 전함에 있어 번역의 수준을 넘어서는 창작의 요소를 갖추고 있다.
꺼내다(draw inspiration) ● 창조적 과정에는 작품에 임하는 정신적 태도와 선택적 주의 외에 영감(靈感)과 직관의 과정이 관여한다. 직관적 사고는 즉물로 드러난 여러 가지 상황들의 요소와 상관관계를 통합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이다. 이는 전체와 개체를 동시에 파악하는 시각적 사고의 정보처리 특성에 기인한다. 예술적 영감과 직관으로 획득된 독창적이고 새로운 결과물은 갑자기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적 과정을 분석해보면 지속적인 사유를 통한 통찰의 과정을 거쳐야만 탄생되는 소요이다. 박영숙의 포트레이트를 볼 때, 예를 들어 빈 객석의 의자들 앞에 선 인물을 볼 때 이것을 보는 응시자는 연극의 시작이나 끝난 후를 생각하거나 또는 인물의 심리까지도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작은 표정으로 타들어가고 있는 담배를 든 남자의 팔꿈치는 테이블 위에 놓여 있고 빈 잔 하나 앞에 있다. 작은 단서들. 박영숙의 렌즈를 통해 보여준 단서를 통해 관람자는 관객이 된다. 한 컷의 사진이 서사를 갖게 된다. 감정과 영감을 부여하며 화면을 바라보게 된다. 박영숙이 렌즈를 통해 꺼내 든 것은 초상, 즉 포트레이트만이 아닌 모델의 예술적 감정인 영감과 사진작가 자신의 교감을 동시에 꺼내 들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사진을 이해하는 것은 그림을 통해서가 아니라 연극을 통해서이다" (Roland Barthes) 초상사진에 있어 박영숙의 개입은 적극적이지도 능동적이지도 않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를 넘어선 창조성을 갖는다. 마음의 눈으로 파악한 대상을 물리적 조작으로 결과 짓는다. 때문에 박영숙의 창조는 무엇도 사실 아닌 것이 없고, 무엇도 사실 그대로인 것도 없다. 우리가 지금 목격하는 것은 기록과 재현이라는 학습된 사진 개념 범주에서 벗어나 초상의 실존로부터 찾아낸 픽션(fiction)의 합리적 창조다. 실존하는 초상에 대한 작가들의 시각적 반응은 단순한 '보기'의 문제를 너머 심미적 본체까지 관통했고, 동시에 이들이 포착한 대상은 예술적 직감마저 포괄한다. 사진을 기록의 매체로만 허술하게 이해하기엔 숨겨진 레이어가 많은 구조다. 박영숙의 Portraiture of 36 Friends는 단순한 지표의 인과관계를 넘어서, 그 지시적인 인접성 덕분으로 관람자를 관객으로 만드는 환유적 전염과 확장을 획득해 낸다. ■ 김최은영
Vol.20171228b | 박영숙展 / PARKYOUNGSOOK / 朴英淑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