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손기환의 회화 ● 1. 최근 손기환은 「3。 - 죽음의 백조」란 제목의 대작을 그렸다. 기울어진 채 서 있는 잠실 제2롯데타워를 그린 풍경화다. 녹색의 지평선과 주홍색면 하늘이 불안하고 비스듬하게 대비되는 가운데 새떼와 전투기가 아무런 소리도 없이 무음으로 날고 있는 길고 간단한 구도다. 성남 공군비행장에서 이·착륙하는 비행기와 123층인 롯데타워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활주로 방향을 3。튼 것을 소재로 한 것. 이 촌극은 사기업의 이익을 위해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전을 간단하게 무시해버린 것으로 불법 정경유착의 한 실례다. 활주로를 3°틀어버린 물리적 사실과 함께, 한국사회 전체가 엉뚱한 방향으로 123°쯤 어긋나버린 인식의 주소지, 그 허탈함을 그린 것이다. 그러니까 이 그림은 현실권력이 어떻게 부당하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구조를 연역해내는 문화적 행위이자, 귀납적으로는 그런 현상에 대한 정치적 동의를 구하는 행동이기도 하다.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기를 바라는 김수영의 시 구절처럼 경치로서의 '풍경' 너머를 '반-풍경'적 의도로 포착한 비판적 시선에 다름 아니다. ● '반-풍경'. 풍경에 反한다는 것. 눈으로 보는 시각의 범주를 넘어서서 풍경을 풍경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 왜일까. 근대 이후 풍경은 죽었기 때문이다. 데카르트의 "인간이 자연의 주인이게 하라"는 명제처럼, 산업사회 이래로 인류는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지명하고 그 능동성을 사살했다. 그런 폭력적 인위에 의해서 풍경도 자연과 함께 그 성격을 박탈당했다. 한국에서는 제3공화국에 들어서 서구의 근대적 개발방식을 추종했다. 국토는 난개발 되었고, 거기에 분단국의 군사적 목적까지 더해져서 풍경은 더 능욕을 당했다. 손기환의「한강」연작은 이런 국토와 풍경의 죽음을 쓸쓸하게 독백한다. 자연은 간 데 없이 회색 가득한 화면에 GP와 벙커 넘버만 기입된, 전술적 작전지도의 개념이 '풍경화'를 대체한 현실을 형상 없이 그렸다. 뿐인가,「DMZ-강박산수」연작에서는, 그가 근무했던 DMZ의 기억과 전통적인 조선시대 문인화나 산수화에서의 풍경들이 오버랩되는 강박을 기록한다. 거꾸로 옛 산수화를 보면 DMZ의 풍경이 떠오르는 강박도 동시에…. 그것도 명료한 형광색으로. 그래서 손기환의 '산수山水'는 풍경이되 '反-풍경'이다. 한반도의 풍경, 그 표피적 일루젼 뒤에 감추어진 분단현실의 심리적 풍경이자, 이데올로기의 정치적 도해라서 그렇다. ●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문득, 손기환의 1980년대 대표작인「타! 타타타타」가 떠오른다. 평범해 보이는 일상의 이면, 그 복합적 구조를 간단 명료하게 단 하나의 장면과 말풍선으로 제시했던, 개념적으로 풍경에 접근했던 민감함이. 시각적이지 않은 사회적 현상을 형상화하면서 자연스럽게 비판적 메커니즘으로 관객을 끌어들이는 감수성과 판단력까지. 그런 기민한 만화적 순발력을 회화에 적용하는 어법이 연상된 것이다.
2. 「3。」이전 손기환의 2010년대 작품은「DMZ-마주보기」와「DMZ 풍경」연작처럼 분단의 현재적 현상과 현장을 쿨한 분위기로 조립한 조형공간이다. 일체의 감정이나 서정을 거세한 채 물리적 현장성과 현실성만을 그렸다. 때로 작가 몸의 궤적이 캔버스 위에 붓질의 흔적(「DMZ 풍경-강박산수」연작)으로 문인화 같은 드로잉의 맛을 보이기도 하지만, 내면의 기운이나 감정을 발산하는 것은 아니다. 차라리 그런 작업 과정에서의 미적 쾌감이나 감성보다는 결과인 역사성과 정치적 서사에의 인식에 집중한다. 역사성이야 손기환이 선택한 소재들에서 이미 충분히 설명이 된다. 요는 정치성이 어떻게 그의 화면에서 드러나고 작용하는지에 대한 미적 장치, 혹은 그런 역사적 형상성이 야기하는 주제에 관한 것이다. 그만큼 손기환의 작품구성은 그가 채집한 다큐적 자료와 현재적 시사성이 상호 충돌→배치→흡수되며 주제를 도출하는 과정을 취한다. ● 'DMZ' 연작을 보자. 이명박·박근혜·오바마 등이 김정은과 망원경으로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그 사이로 이승만·김구·38선 표지판·여운형·박헌영·김일성 등의 한국 현대사의 주요한 장면 사진들과(DMZ-마주보기: 적과 동지), 조선시대 문인화풍의 풍경+만화(DMZ-마주보기 4), 그리고 미국의 영웅주의를 표상하는 '아메리칸 히어로'나 1970~80년대 남한에서의 반공 이데올로기의 상징인 만화캐릭터 '똘이장군'(DMZ-마주보기) 등이 배열된다. 이 그림을 그린 2012~14년, 망원경을 통해서 김정은이 바라보고 싶은 남쪽의 모습은 역설적이게도 자신들에게 적대적인 현실이었을지도 모른다. 북쪽을 바라보는 남쪽의 정치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고. DMZ 너머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보는 행위를 자국민에게 "보이려"는 설정으로 정치적 홍보를 한다는 것. 역설적이지만, 분단 고착화의 최대 수혜자는 현재 권력을 가진 기득권 바로 자신들이니까. 이 장면들의 병치와 편집은 망원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기득권력의 위선을 비틀고 풍자한다. 한반도의 평화정착이나 통일의 가능성보다는, 차라리 그것을 요원하게 만드는 정치적 현실을 씁쓸하게 재연하고 있는 것이다. ● 망원경으로 '마주보기'하는 특정 상황의 배치는 허구를 사실인 듯 보이게 만든 연출이다. 미국과 남북의 권력자 각자가 망원경을 들여다본 행위들은 물론 실재 팩트다. 오바마와 박근혜와 이명박과 김정은은 각기 다른 시간대에 군사분계선을 방문해서 남/북을 망원경을 통해 보았을 터인데, 그것을 손기환은 동시에 화면에 등장시킨 것이다. 시차時差와 시차視差를 넘어선 동시간대의 마주보기 상황으로 연출하고 편집한 것. 현재진행형인 것처럼 현장감을 살리는 이 방식은 리얼리티가 두드러진 다큐드라마 같다. 다른 시간대의 사건들을 꼴라쥬, 혹은 몽타쥬하면서 남북의 정치적 관계를 실제보다 더 사실같은 가상으로 가치중립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려진 이미지의 소스가 작가가 채집한 대중매체의 기록이자 기호記號라서 화면의 뉘앙스는 더 건조하다.(이런 드라이한 발성은, 상당수의 한국형상회화가 주정주의적인 표현성을 띄고 있음에 비하면, 주지적인 어법이라 이채롭다.) ● 이처럼 분절된 소재들의 비선형적 배치는 작가가 주제에 이르기 위해 촘촘히 짜놓은 서사적 진술을 위한 코드다. ① 대중의 일상에서 통용되고 있는 시각기호들의 선택→ ② 형상적 변형과정을 가한 후 재배치→ ③ 관객들의 형상에 대한 감성적 접근과 재배치에 대한 개념적 해석. ①②는 작가의 제작과정이고, ③은 관객의 작품 감상과 해석의 과정이다. 손기환이 작업을 통해서 지향하는 것은, ①②③ 전 과정을 통해서 발화자인 작가의 '의도'와, 관객의 감각적인 수용과 지각적인 해석이 동시 작동하며 어우러지는 공간이다. 그곳은 작가(주체)와 관객(객체)이라는 수직적 위계가 아닌, 수평적 입장에서 감성과 생각의 발신과 수신, 수용과 부딪힘이 발생하는 현장이기도 하다. 작품에 담긴 정보와 내용으로 관객은 팩트-작가의 의도-해석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작가가 제시한 현상을 분석하게 된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 대안성에의 과정을 도출하기 위해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것처럼, 이 과정은 제시된 문제에 대한 타당성에의 결론을 향한다. 작가와 관객 상호간의 시각과 논리로 접근-반박-합의를 이루는 것이기도 하다. 작업에서 자기 태도와 형식의 갱신을, 그리고 작품이라는 매개물을 통해서 관객과의 정서적 연대를 형성하려는 것이다. ● 작품에 대한 작가의 태도는 작업의도를 설정하고, 작업의도는 작업형식을 야기한다. 손기환은 작가로서 작업내용뿐만 아니라 미적형식을 관객들과 공유하려는 지점에 작업근거를 둔다. 팝아트적인 조형요소의 구사와 내용의 제시는 대중매체의 '팝'적 요소를 정치적인 주제로 전치시키는 컨버팅 전략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작가/관객, 창작/수용, 발신/수신이라는 미술의 이분법적인 위계성을 갱신 내지는 뒤집는 (미술 내부의)혁명을 지향하는 행위로도 여겨진다.
3. 팝아트는 자본주의가 생산한 물질과 이념적 소비물들이 시각기호로 결정화된 양식이다. 대량생산·대량소비·대중문화와, 관념/실제, 감성/인식, 의식/무의식을 아우르는 결과물이기도 하다. 기존 미술의 엄숙한 숭고미를 대체하는 발칙한 일상성이 작품에 수용되었다. 대중성 자체가 시각문화로 생산-소구-소비된 것이다. 팝아트의 미학·미술사적 가치는 이전까지 고급문화였던 미술의 틀을 전복하는 개념적 전회에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손기환은 팝아트의 대중성과 소통성에 일찍이 주목했다. 1980년대와 같은 엄혹한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미술을 통한 저항을 위해 팝아트의 쉬운 전달력과 소통기능을 활용한 것. 팝아트가 필요에 의해 자연스레 정치적 운동미술로 변신이 된 셈이다. 1980년대 초·중반 팝아트적 문법과 소통코드로 한국사회의 현실을 반영하고 비판했던 손기환을 비롯한 민중미술권 일군의 작가들(주재환, 민정기, 김정헌, 박불똥…등)이 그런 팝적 요소를 일정정도 자신의 작업에 끌어들이며 자기양식화에 성공적 결과를 도출했고, 그들 중 일부는 여전히 그 주제와 형식을 변주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들은 한국현대미술에서 주체적인 팝적 양식과 개념을 실증적인 정치성으로 증명한 선구자들이라 하겠다. ● 그러면 손기환은 어째서 '정치적 팝'이라는, 기시감이 들 되 낯선 경향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낸 것일까. 답을 구하기 전에 먼저 그의 회화와는 다른 단서로 목판화를 거론할 필요가 있겠다. 손기환의 목판화작업은 회화에 비해 서정적이다. 또한 액티브한 칼맛과 이미지는 회화에 비해 표현적이기도 하다. 회화는 소재들과 역사적 의미항들의 재배치로 인한 사회적 사건과 현상을 '진술'하고, 목판화에서는 거기에 개인적 감성을 덧붙여서 '표현'한다. 다루고 있는 장르나 매체에 따라 자신이 정한 내용 전달방식을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만화와의 융합을 시도하는 회화, 정서적인 감수성의 회화적인 목판화, 기타 만화나 애니메이션에서의 혼성적 형식이 손기환의 작업들에서 장르들 간의 속성을 넘나들면서 서사적으로 기능하고 있다. ● 미디어마다의 어법이나 조형적 맥락을 달리하듯, 회화에서도 손기환의 소통을 위한 전략적 형식선택은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다큐멘터리사진·만화·카툰·민화·문인화·근대기 딱지본 책표지·딱지·극장 간판 형식 등 이미 기호화되고 양식화된 대중적 시각이미지의 차용에 따라, 비슷한 주제라 하더라도 구사하는 문법과 형식은 다양하게 이루어졌다. 효과적인 전달을 확장하기 위한 형식 실험을 계속 진행한 것. 적절한 시각적 표지와 이미지를 제시하며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발언을 해온 것이다. ● 이런 방식은 표현적·서정적 회화가 갖는 작가의 주관적 감성보다는 객관적이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대중적 기호들을 분단의 기표로 전환시키며 시각적 관습의 해체 및 의미구조의 재생산을 꾀한다. "뻔"한 대중적 기호들을 차용하면서, 그 뻔한 소재들의 의미를 박탈하고 이를 또 다르게 재맥락화하는 데콜라주Decollage 혹은 브리콜라주Bricolage로, 그 의미를 전유하고 또 재전유Re-appropriation한다는 것. 손기환 본인의 사회·역사적 관점을 정치적 통찰로 번안하기 위해 팝적인 소재와 어법들을 전용한 것인데, 이는 기성정치와는 다른 화가의 시점에서 현실을 조망할 때 가능한 일이다. ● 대중매체를 통해 소비되어진 보도(광고)사진이나 만화도상들의 차용은 스투디움Studium의 범주에, 그런 소재들을 차용한 재배치는 특정 의미로 작용하는 풍크툼Punctum으로 진화해서 기의화된다. 그러나 여기서의 풍크툼은 보통의 회화들과는 달리 '표현'에 의한 감성적인 '결론'보다는, 공감과 인지적 해석을 통한 내용 전달의 메카니즘을 말한다. 손기환의 작업이 작업내용뿐만 아니라 회화라는 매체의 개념까지, 즉 정치성을 담보하는 소통구조와 기제를 아우르는 인지적 연상과정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며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직접적인 선전과는 다른 지점이다. ●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손기환(뿐만 아니라 모든 참여적 작가의) 작품이 당장 정치적으로 기능을 하는 건 당연히 아니다. 알제리의 굶주린 아이들에게 필요한 빵 한 조각보다 유용하지 못한 소설쓰기의 무력감을 토로했던 샤르뜨르의 경우처럼, 정치를 다루거나 말하는 작품들도 현실정치에 곧바로 작동될 수는 없다. 현실정치와 문화정치학적 입장으로 개진되는 예술행위와의 간극이다. 작품이 현실정치에 작동하는 것은, 미적 형식의 감상과 함께 작품과 관객 사이에서의 다층적 작용에 의한 해석의 결과로 인해서다. 작가의 기표가 관객의 기의로 콘텍스트화된 메시지가 공감을 통해서 증폭하며 사회적 연대가 될 때, 비로소 그 작품은 현실정치의 영역에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4. 이제부터는 지난 35년간 손기환 회화작업의 궤적을 간략히 살펴보자. 이 기간 동안 작업과정의 내용적 특성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역사성으로서의 해방과 분단, 그 분단을 야기한 세계 질서의 패자인 미국-한국 정치와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맥락에서의 접근과, 손기환의 개인사가 종합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회·문화적인 지점에서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분단된 남북의 실체적 문제로 조망한다. 다른 한 편으로 본 형식적 특성은 자료사진들의 조립과 재배치로 엮어내는 당대적 시각문화에의 접근이다. 이는 주정주의에 함몰된 한국의 구상미술에 대한 비판성을 동반한 것이기도 하다. 먼저 1982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간략히 기술해본다. -1982년. 작가로서의 모색기에 일견 미국의 팝아티스트 재스퍼 존스의 어법에 영향 받은 듯한「물리적 이미지」연작. 미국 팝아트에서 자주 보던 기호들과, 광고사진, 한국의 역사적 다큐사진자료들을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활용한 몽타쥬와 꼴라쥬 등의 습작기 작업들. - 1983년부터 '실천그룹'과 '힘전'등으로 본격적인 작품발표를 할 때의, 극장간판과 이발소그림의 방식을 차용한「벽화를 위한 습작」「넋」「불청객」「타!타타타타타」, 실크스크린을 활용한「의병」연작 등 자기 언어 장착기 - 1986년부터 시도한 만화적 의성어를 동반한 영화적 스펙타클의 결합으로 수도권 북쪽에 위치한 수색지역의 서사적 풍경에 다소간의 불안한 서정성이 가미된 원색의 풍경화「끌 수 없는 불」연작. 조선시대 민화적 뉘앙스가 더불어 펼쳐진다. - 이후 90년대로 연결되는「우리동네」연작, 대전차 방호벽 콘크리트 구조물「벽」연작, 그리고 군 시절 철책선 근무의 기억을 재구성한 90년부터의「추억록」연작. 92년도의「통일로」와「한강」연작의 표현적 회화성이 강조된 작품. - 1995년부터 한국과 미국의 만화, 여타의 보도(광고)사진 자료들을 실크스크린과 혼합기법으로 몽타쥬한「딱지」시리즈. - 1999년 이후 신동우의 만화가 원작인 홍길동캐릭터와 딱지형식(기타 팝업방식 등)을 차용한「홍길동」시리즈. - 2010년 경 부터 시도한 예의 본인의 본래 어법인 DMZ연작과 함께, 화투·만화·민화·딱지본 표지·고판화 양식 차용. 이렇게 나열한 전반적인 작업과정에서 두드러지는 손기환의 형식적 특색 몇 가지를 일별해 보자. 소재의 차용과 재배치에 의한 서사코드 ● 앞서 거론했듯이 손기환의 작업에 등장하는 것은 주로 대중매체에 등장한 이미지들이다. 한국 근·현대의 시각적 일상성을 담보하는 기호와 이미지를 차용해서 우의·풍유·환유적 방식으로 시대현실을 반영했다. ● 손기환의 작업은 타자와 공통된 경험의 지점에서 발언과 대화를 시작한다. 대중의 성공적인 관람을 이루는 가장 주요한 포인트를 위해서 좀 더 명료한 발음으로 발성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다양하게 인용·차용한 소재들의 재배치·전치傳置·몽타쥬·데꼴라쥬의 과정을 통해, 주제에 이르는 인지적 도상으로 내용을 전개해 나간다. 작가의 2016년 작업노트 한 부분을 보면, 이런 조형적 진행방식이 명료하게 이해된다. "옛 산수화 중 DMZ 풍경을 닮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강박된 시선'으로 조립하고 있는데, 옛 그림 이미지와 그림 안에 담긴 함의와 상징을 현재의 분단 풍경 이미지로 대치시킨 것이다. 금지된 정원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세계 유일의 DMZ라는 완충지대에는 우리의 오랜 분단 정서와 정치적 이데올로기, 아픈 상처와 역사, 냉전시대 유물로 남은 방벽·지뢰·철조망 등 각종 군사 시설의 잔재가 푸른 산과 아름다운 강으로 살짝 덥혀 있는 곳이다. 이런 무서운 공간이 생태 또는 평화로 위장되어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닌가, 나의 '강박 풍경'은 이러한 모순에 대한 나의 시선을 담고 있으며, 이를 화려하고 강한 원색의 풍경 이미지로 환치시키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대중미디어에 실린 이미지를 패러디해서 재배치하는 경우 관객들은 자신들이 알거나 경험했던 일상적 기호나 이미지들의 친숙성으로 작품에 자연스런 접근하게 된다. 작품과의 대화를 편하게 시작하며 작품을 능동적으로 해석하게 된다는 것. 미술에 대한 선험적 어려움이나 부담감을 상쇄한 지점에서 시작되는 작품과의 호흡은, 그 작품이 바로 관객 본인의 실제 삶이나 환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성을 띈다. 말풍선·의성어·의태어 등 만화적 타이포그라피 활용 ● "!,… ??"이란 말풍선이 떠 있는「불청객」이란 작품을 보자. 해방공간에 찾아온 점령군인 완전무장 미군은 한국인들의 열광적인 환영에 의아해한다. 그들은 2차세계대전에서 승리하고, 모스크바 3상회의 결과로 한국에 주둔했다. 그냥 점령군으로 온 것. 한국에 대해서 관심도 사전지식도 없고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자신들을 열광적으로 환영하는 인파에 "뜨아"하다. 이 그림은 여기까지만 얘기한다. 물론 미국에 의한 2차대전의 종전으로 조선은 독립했다. 그러나 그것이 미국이 한국을 아껴서가 아니고, 전쟁의 승리에 따른 전리품이자 공산권과 대치하는 지역적 요충지로 한반도를 선택한 것이었을 뿐이었다. 바로 그런 입장차와 괴리가 이 작품의 단 한 장면의 말풍선 하나로 집약되어 드러난 것이다. 그냥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주둔했을 뿐인데, 칙사의 대접을 받으니…, 초대받지 않고 스스로 찾아온 불청객은 "!,… ??" 할 밖에. ● 만화적 의성어나 음향효과에 의한 촌철살인의 형상성의 또다른 성공적 실례는,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1985년의「타! 타타타타타」에서 압권으로 드러난다. 녹색 벌판, 고즈넉한 가을의 서울 근교 전원. 그 푸른 하늘로 난데없이 무장한 헬기의 굉음이 정적을 깬다(요즘도 그쪽 동네에선 가끔 이와 비슷한 상황을 볼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한국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서울근교에선 민간의 영역을 침범하는 군사훈련들이 비일비재했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타!타타타타타"란 타이포그라프 아래로 몇 명의 군인들이 개미처럼 매달려 지나가는 훈련광경. 뭐랄까, 이 그림은 용산에서 제작되는 소위 '이발소 그림'의 그림체를 패러디한 것 같기도 하고, 또는 하급부대인 중대본부에 걸린 아마추어 사병이 그린 종군기록화(일종의 민화)로도 보인다. 당시 분단국의 일상이 얼마나 긴장되었고 서민들의 삶은 또 얼마나 일방적이고 흑백론적인 군사문화에 찌들어져 있었는지를, 그 내용에 적합한 그리기 방법을 의도적으로 선택해서 단 한 장면에 압축해서 반영하고 문제화한 수작이다. 여기에서 "타! 타타타타타"란 만화체의 음향효과는 작품의 완성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 「만화구조연구」「벽」연작에서의 리얼한 유기적 현장감을 기하학적으로 양식화하고, 거기에 "!"·"?!"·"콰쾅!"·"쏴아아아"같은 음향효과를 첨가해서 공간의 긴장감을 엄격하게 증폭한 작업들도 '풍경'을 단순한 풍경이 아닌 동시대적 상황으로 번안시킨다. 대하드라마의 미장센처럼 전체내용을 압축해서 계획적으로 구조화하고 잘 설계한 화면구성방식과 함께 작가의 발언을 정치·사회적 문맥으로 넓혀주는 기능을 한다. 이 외에도 조선시대 '무예도보통지' 의 목판삽화를 패러디한「자! 내 칼을 받아라」나「자! 덤벼라」, 90년대의「홍길동」연작,「끌 수 없는 불」「벽」연작 등에서 지속적으로 말풍선 형식과 의성어·의태어를 타이포그라피적 음향효과로 활용한 만화적 상상력과 문법은, 정지된 도상에 동적인 공감각적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일상적 서정성·표현성 ●「불청객」이나「타! 타타타타타」로부터 「DMZ」연작과 같은 작품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전통적인 회화 본연의 내면적 표현성과 서정성에 기댄 작업들도 있다. 1990년 경 작업인「우리동네」와「벽」「추억록」연작이다. 이 작업들은 액티브한 붓질과 대상 포착에서 두드러진 심리적 회화성을 띈다. 손기환의 작업에서 보면 이 시기에만 나타나는 현상이다. 통일로 주변이나 수색 근처의 변두리 마을, 공장, 군사적 용도인 대전차방어용 콘크리크 구조물 벽, 기괴한 모뉴멘트 같은 교외선 철교, 그리고 논과 밭이 어우러진 일상적 풍경들이 소재다. ●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손기환은 수색 지역의 군사시설과 허름한 외곽 공장들을 접하면서 기이한 장소적 일상성을 경험한다. 도심으로부터 소외된 군사보호구역의 개발제한과 낙후성, 휑한 정서적 고립감 같은 것. 드넓은 하늘을 배경으로 구성된 풍만한 전원풍경과 묘하게 얽힌 주변부 풍경인데, 분단이데올로기와 변두리의 외진 일상성이 충돌과 스밈으로 묘하게 결합하는 장소였다. 이곳을 그릴 때 손기환은 내면적 감정을 있는 그대로 분출하는 표현성을 택했다. 빠른 필치와 검고 굵은 선으로 빠르게 묘사된 이 풍경들은 우울한 무게감을 선사한다. 손기환의 내면적 감수성이 만만치 않음을 증명해주는 작품들이기도 하다. ● 전통적인 표현성으로 그려진 회화양식은 1992년의「No! Plotonium」이라는 작품에서도 보인다. 일본 원폭 유적지를 그린 것인데, 아마도 북핵개발 초기에 그린 듯하다. 핵의 공포를 증폭하기 위해서 히로시마 현장의 폐허를 최대한 비극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풍경으로 그렸다. 손기환의 작업전체를 관류하는 팝적 회화의 맥락에서 보자면, 이런 표현성 중심의 그리기방식은 다소 이채로운 지점에 있다.
키치형식의 차용을 통한 현대적 소통방식 ● 1980년대 초반「물리적 이미지」연작에서의 미국대중문화의 각종 기호와 한국의 일상풍경을 실크스크린으로 몽타쥬하고 거기에 드로잉을 더한 작업들부터 키치적 요소들은 지속된다. 84~86년의 구한말 독립군의 자료사진을 극장간판 형식으로 차용한「불청객」과「의병」연작. 99년도부터 2010년까지 아이들의 완구인 둥근 딱지형식을 차용한「딱지」와「홍길동」연작. 그리고 2005년부터의 「만화구조연구」와, 만화가 박기정·박기준 형제의「도전자」와「두통이」를 차용하며 핏줄을 강조한「형제」에 이르기까지, 그동안 파인아트에서는 기피해 왔던 하위문화의 시각물들을 직접적으로 화면에 등장시켰다. 현대미술이 등장한 이후 수십 년간 우리미술계에서 만연하던 철학적인 관념들과 사변적인 논리 같은 고급문화의 속성을 거부한 것이다. 일상에서 마주치는 시각적 소재들을 통해서 자신이 처한 동시대적 환경에 자신의 작품이 화용론話用論적으로 기능하며, 앞 세대의 시각문법이나 작가적 태도를 갱신하는 조형적 정치성까지 획득하기 바라서였을 것이다. ● 위에서 거론한 손기환의 작가적 태도는 민중미술운동과 자동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입장이었다. 다만, 손기환은 민중미술의 직접적인 투쟁보다는, 미술의 비판적 소통기능을 최대치로 키우기 위한 매체적 대중성에 더 치중하는 입장이었던 듯싶다. 이럴 때 하위문화의 키치적 형식 차용은 주제전달의 유효한 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여러 매체를 다방면으로 두루 활용하는 OSMU식의 소통확대방식은 손기환의 전략적으로 선택한 방법이다. 손기환은 실제로 자신의 회화를 베이스로 만화·카툰·애니메이션·판화·팝업·아티스트북 등으로 공감의 문맥을 넓히는 매체 활용을 지속해왔다. 그것은 보편적인 화단구조 내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에게서는 보기 어려운 실례다. 대중소비사회에 유효한 팝적 전달력과, 몽타쥬 형식으로의 이미지구축, 일러스트레이션의 간결한 그리기와 붓의 흔적, 원색의 구사, 그리고 여타의 시각미디어들을 종합적으로 활용하려는 손기환의 장르를 넘나드는 전략성은 여전히 진행 중에 있다. 전통적 문인화와 민화의 조형성, 그 맛의 차용 ● 1986년도의「끌 수 없는 불」과 최근작인「DMZ-화투」「DMZ-풍경(강박산수)」연작, 근대기 딱지본 소설책 표지형식을 차용한「딱지본 홍길동」 등에서는 전문적인 화가의 기교보다는 오히려 조선시대 탱화나 민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나이브하고도 소박한 표현법을 선택한다. 작가 스스로의 내밀한 표현력과 개성을 의도적으로 제거하며 익명성을 띈 서민적 미감으로의 계산된 이행이라 하겠다. 전통적인 민화·만화·고판화 형식의 결합이 빚은 이 그림의 맛은, 그러나 신파성을 철저할 정도로 모던하게 번안함으로 본인이 의도한 문제의식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확장했다. ● 튜브 그대로의 원색과 간단한 붓질-핵심으로 직진하기 / 손기환은 대부분의 물감을 원색으로 쓴다. 굳이 간색이 필요할 때는 최소한의 혼색만을 쓴다. 화면은 고명도와 고채도로 강렬하고, 형상은 선명하고 명료하다. 고전적인 3차원적 공간의 깊이를 재현하는 명암법·원근법·스푸마토기법, 거친 임패스토 같은 물질성은 별로 개입하지 않는다. 수묵화의 필선처럼 주저함이 없는 작가의 활달한 필치는 모두 평면성에 기반 한다. 그러나 이런 액티브한 화면이 결코 표현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형 요소들은 작가/대상, 작가/화면, 작품/관객 사이에서 쉽게 감정이입을 거부하고 중성적 거리를 확보한다. 즉 작품이 작가로부터나 관객으로부터도 독립된 이미지로 탈 재현과 탈 표현의 기호로 의미체계를 갖추는 구조물이 된다는 것이다. 작가의 정치적 입장을 담보한 형상작업이되 최소한의 재현과 서술로 작업을 견인하는데, 간단한 붓질과 원색의 구사는 그림에서 화장을 지운 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필요한 만큼의 정보언어로 기능하게 된다. ● 대체로 차가운 듯한 표정의 화면구축과 형상성은 손기환의 개인적 체질이나 성격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손기환은 "쿨"하다. 질척거리지 않는다. 말도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는다. 중언부언 설명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간략히 말하고 판단한 것은 바로 행동으로 옮기고, 지향할 점만 실행한다. 그래서 말하기와 작업하기에 있어서 우유부단함이 별로 없다. 그러니까 손기환의 작업에서 몇 가지 특성은 손기환이란 작가의 성격과 체질이 그냥, 자연스럽게, 뱉어지듯 진행되는 것이라 여겨진다. 화장과 같은 꾸미기 덧칠, 덧붙이는 설명, 장식, 과도한 물성에 의한 감정적 표현성의 과잉 등은 배척한다. 디테일한 묘사도 없다. 크고 호방한 붓질로 전체적 스케일과 내용을 담보한 형상의 핵심으로 직진만 할 뿐.
5. 이런 여러가지의 조형적 특성들이 손기환의 회화를 매체개념과 소통을 중심으로 하는 인식적 범주에 이르게 했는지도 모른다. 모더니즘 미적 이데아의 절대적 순혈성에 대한 거부의 태도로 연결되면서 말이다. 대중이 미술에서 소외되고 또 미술은 대중들로부터 고립되었던 기존 미술의 존재방식에 역행해서 미술의 세속화·키치화·기능화를 통한 일상성을 지향한 결과가 이렇듯 다양한 어법과 문법을 동반한 장르개념으로 연결된 것으로 여겨진다. 탈 제도와 탈 장르적 형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확산하며 그가 지향하는 정치적 문맥을 증명하려 한 것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것 자체가 이미 미술 내적인 정치행위인지도 모른다. 삶의 제 문제를 한곳으로 모아서 새로운 개념으로 실행하는 영역이 정치이니, 고착된 기존의 제도적·조형적·미학적 틀로부터 벗어나려는 손기환의 작업은 작업내용뿐만 아니라 생태적인 면도 정치와 유사해 보인다. 또 기존에 제도화된 작가 중심의 미적 기득권의 고착된 위계를 해체하기 위해, 미적 근거를 대중적 '팝'의 영역에 두고, '팝'적 언어를 차용해서, '팝'적으로 관객과의 감각과 인식의 평등한 대면과 연대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랑시에르적 '감각의 분배'도 일정정도 떠올리게 한다. 자신을 포함해서 이미 사회적으로 제도화·권력화된 미적 이데올로기나 위계에 대한 파열을 시도하며, 관객들 개별적인 감각으로의 수평적인 소통전략을 취하는 미적 태도도 그렇다. ● 한편, 정치적인 내용전달을 목적으로 전체적인 작업의 흐름이 중성적인 팝적 기호물들과, 감성을 자제한 '소외효과'의 거리두기 방식으로 제시된 이미지일지라도, 의도적인 회화적 장치와 언술의 행간 사이로 작가의 내면적 심리나 체험 등은 미묘하게 반영되어 나온다. 손기환의 그림에서 보자면, 이는 작가 개인의 이력이자 한국전쟁 전후로 태어난 그의 세대가 공통적으로 갖는 정서적 원형에서 형성된 전형성일 수도 있다. 한국전쟁으로 월남한 아버지의 귀소본능이 주축이 되는 가족사. 전쟁 직후 출생한 세대들이 겪었던 지독하게 획일화된 교육환경, 70년대 유신치하에서 자유를 갈구하던 대학생의 눈에 비친 유신독재정권과 지독한 반공의 비논리적 부조리와 모순들. 청년기 작가의 작업실이 있던 수색지역에서 일상적으로 겪은 분단풍경과 주변부문화. 그리고 마침내는 광주학살로 대변되는 80년대의 거대한 폭력. 군복무와 제대. 복학. 5공 정권에의 억압·저항·탄압·구속·작업…. 그런 보편적 체험들이 작업과정에 반영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자, 당연하게 작업의 소실점이 되는 일이기도 하다. ● 1980년대 초, 그 부조리하던 군부독재시대에 화가로 첫발을 내디딘 청년 손기환에게 사회적 모순을 타파하려는 미술은 구현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술은 손기환의 실존적 내면이 타자와의 정치적 연대의 장으로 확장하고 이행하는 데 유용한 무기였다. 작업의 내용만큼이나 활용하는 매체의 구조적 기능을 주시하게 되면서 새로운 그림체 양식이 필요했다. 그것이 손기환에겐 '팝'적인 것이었다. 손기환의 작업이 당시 민중미술에서 보편적인 "뜨거운" 그림들과 달리 절제되고 모던하게 보이는 이유다. 내용을 전달하는 미디어의 개념에 집중한 것은, 주관적 감성의 표출보다는 보다 객관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주지적 시각이미지의 창출이 더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그 바탕에 있어서다. 그래서 여러 장르를 아우르며 손기환은 정치적 형상성을 견인하는 시각매체들을 다양하게 활용하고 또 융합했다. 더불어 그런 작업내용과 형식을 문화산업적인 기능성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방식으로 소통의 확대를 꾀해 왔다. 그러면서도 영·미의 팝아트와는 다르게 한국 현실에 대한 끊임없는 문제의식과 작업양식으로, 한국현대미술에서는 보기 드물게 '정치적 팝·팝의 정치학'의 한 전형을 지속적으로 성취해온 점이 손기환 팝의 미적 가치라고 하겠다. ● 서울미술공동체와 초기 민미협 활동을 제외한 80년대 중반 이후 지난 30여 년 간 손기환은 파인아트가 주축인 기존 화단과는 유리된 채, 독자적으로 작업해 왔다. 만화애니메이션과 교수로, 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 SICAF의 집행위원장으로, 잡지 '만화정신'의 발행인으로, 화단보다는 만화계에서 기획자로 더 많이 활동해서다. 그러면서 손기환은 홀로 회화작업을 진행해왔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타자인 대중들과의 소통을 추구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홀로'란 지점에서 외롭게 작업해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손기환 스스로가 능동적으로 선택한 몫이다. 세계와 작업형식에 대해서 더 깊어질 수 있는 기회, 작업과정에의 몰입을 방해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이기도 하다. ● 손기환은 한국현대미술에서 그렇게 작업할 수 있는 시기를 부여받은 세대였고, 그 시기에 합당한 지향점을 선택했다. 그 결과로 미술의 전형성과 당대성, 그리고 소통의 평등성이라는 미적·정치적 입장을 실천할 수 있었다. 군부독재국가, 그리고 분단국의 작가로서는 자부심을 가질 만한 작가적 태도다. 80년 광주항쟁 전후 등장한 일군의 작가들처럼 그렇게 그는 리얼리스트의 길을 걸어왔다. 진부하지 않게 개인·역사·미술·일상·정치의 경계를 아우르는 한국적 '팝'의 "쿨"한 형식으로 자신이 살아왔던 시대와 삶을 심층적으로 증언하고 발언하면서. 이 글은 그렇게 외진 경계에서, 실존적 뚝심으로 작가적 입장을 포지셔닝해온 '작가' 손기환 형에게 보내는 우정의 헌사임을 마지막으로 밝힌다. ■ 김진하
■ 목 차 020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손기환의 회화 / 김진하 030 Political Pop, Politics of Pop: Paintings of Son Ki-hwan / Jinha Kim 038 政治性大众与大众政治学- 孙基焕的绘画 / 金镇夏 043 도판: DMZ 마주보기, 2017-2012 050 마주보기, 보는 것과 보고 싶은 것 / 고충환 068 손기환의 구현된 '강박산수' / 변종필 080 최근작 DMZ연작에 관한 생각 / 손기환 083 도판: 만화구조연구·홍길동, 2013-1999 103 달려라 영웅 홍길동 / 손기환 135 도판: 딱지연작 1996-1995 161 도판: 우리동네·벽·추억록, 1992-1990 163 손기환의 '그림풀기' / 백지숙 227 도판: 불청객·의병·물리적 이미지, 1990-1981 261 작가약력
Vol.20171226c | 손기환 - 정치적 팝, 팝의 정치학 / 글_김진하, 고충환, 백지숙, 손기환 / 도서출판 나무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