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1222_금요일_04:30pm
개막공연 / 미스터리 재즈
참여작가 전시 / 김선미_안유리_염지희_오세경_이유진_함혜경 아카이브 / 유수영(미스터리유니온) 실험극영화 / 정지나_조영천
후원 / 청주시_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관람료 / 문의문화재단지 입장객에 한해 무료관람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2월 16일 휴관
청주시립대청호미술관 CMOA Daecheongho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 Tel. +82.(0)43.201.0911 cmoa.cheongju.go.kr/daecheongho/index.do
현대미술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의 삶의 현상과 세상에 대해 질문을 끝없이 해왔다. 사건의 진실을 논리적으로 서서히 풀어나가는 추리소설의 플롯처럼, 동시대의 미술은 작품 이면에 단서들처럼 녹아있는 작가의 의도를 찾아야 하는 그것과 닮아있다.
『끝없는 밤』展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And Then There Were None』, 『오리엔트 특급살인 Murder on the Orient Express』등 수많은 추리소설 걸작을 발표하며 현재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영국의 대표적인 추리소설사 에거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 영국, 11890-1976)의 58번째 장편소설이자, 최근 영미권에서 붐을 이루고 있는 가정 스릴러의 대표적 소설로 평가받는 『끝없는 밤 Endless Night, 1967』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시 그녀가 살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은 급격한 진보를 겪으면서 전통적인 가치관과 진보적인 가치관이 혼재되어 진통을 겪고 있었다. 따라서 이번 전시에 영감을 준 은 추리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불온한 시대상이 반영되어 있으며,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의 독백 안에 복잡한 감정과 불안정한 심리가 섬세하게 뵤사되어있다. 또한 그녀는 '메리 웨스트매콧(Mary Westmacott)'이라는 필명으로 『봄에 나는 없었다 Absent in the spring』, 『두 번째 봄 Unfinished Portrait』등의 심리소설을 집필하여 가부장적인 사회 속에서 여성으로 삶과 고민을 반추하고,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소설 속에 투영시켜왔다. ● 이번 전시는 그녀의 글과 같이 개인 혹은 사회와 연관된 특정 사건이나 개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사적으로 풀어내거나, 냉혹한 현실 속에서서 맞닥뜨린 공포와 불안한 심리가 내재한 작품 및 가정스릴러 범주 안에 드는 추리소설 아카이브가 각 섹션 별로 전시된다.
허구는 실재의 눈을 가린다 ● 1전시실에서는 김선미, 염지희의 설치ㆍ영상작품과 오세경의 회화 작품이 전시된다. 이들은 허구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거나 연극적인 연출로 구성하여 허구와 실재가 모호한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각 작품의 내용과 소재는 다르지만 콘크리트 벽이 그대로 노출된 어두운 1전시실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렸다. 염지희의 콜라주 설치와 오세경의 회화는 무대와 함께 배우처럼 엮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마지막에는 김선미의 '유령여행사'에 입장하여 미스터리한 장소로 안내받은 듯한 착각이 든다. 세 작가의 작업이 한데 어우러진 이 허구의 공간에 들어온 관람객들은 마치 한 사건 현장 안에 들어온 듯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 염지희의 콜라주 회화와 오브제 설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공연이 끝난 아무도 없는 빈 연극 무대와 같다. 배우의 행동과 몸짓 그리고 대사로 채워질 이야기들은 공간에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연출된 사물의 몸짓에 녹아져 있다. 날카롭게 깨진 석고상 파편들, 멈춰버린 미싱, 박제된 뿔과 짐승의 가죽 등 염지희가 선택한 사물들은 마치 가위로 오려내서 재조합한 그의 콜라주 회화와 같이, 각자의 사연에서 벗어나 다시 새로운 공간에 조합한다. 이 조합된 사물들은 작가 특유의 멜랑꼴리한 감각으로 세련되게 연출되는 듯 하나, 작가는 이 다른 해석들을 지닌 이미지들이 전시장에 들어오면서 죽음을 맞이함과 동시에 해방이 된 것이라 말한다. 한편, 죽음과 절망을 노래하는 이 무대 한 켠에 네온사인으로 빛나는 '계속 열리는 믿음'은 삶에 대한 절실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이에게 던지는 작가의 희망적인 메시지이기도 하다.
오세경은 본인의 삶에서 포착한 사건과 그것이 속한 사회의 이면을 극적인 연출로 화면에 옮긴다. 각 장면에는 교복을 입은 여고생이 주로 주인공으로 등장하여, 현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을 대변해주고 있다. 신체적으로는 성장하였으나, 아직 사회적으로 성인이 되지 않아 제도와 규범으로부터 보호받아야할 소녀들이 뜻밖의 장소에서 명쾌하게 짐작할 수 없는 몸짓과 행동을 하는 모습, 이 장면을 마치 강한 플래쉬를 터트린 보도사진과 같은 콘트라스트가 강한 이미지로 화면 위에 묘사한다. 이러한 사실적인 이미지 묘사는 작가가 임의로 연출한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곧 어떤 사건이 일어나기 직전과 같은 긴장감과 불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김선미는 지난해 군산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중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가 되어버린 섬과 새롭게 생겨난 땅의 이야기를 여행사 컨셉으로 진행한 『유령여행사』를 재구성 하여 설치한다. 김선미가 기록한 섬들은 인위적으로 육지화가 된 사라진 섬들이다. 즉 이 섬들은 국토사업개발로 인해 본래의 모습과 기능을 잃게 된, 기록에만 남아있는 장소들이다. 『유령여행사』는 이미 사라진 장소들을 역추적하는 작가의 행위와, 관람객을 대상으로 실제 여행할 수 없는 섬의 여행자를 모집하는 아이러니함을 담고 있다. 또한 이 섬들과 섬에 얽힌 역사들이 정리되어 있는 '유령 여행사'안내서는 이 섬들의 과거가 이제 보이지 않는 전설이 되어 거대한 공단 사이에서 죽지도 살아있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로 유령처럼 떠돌고 있음을 상징한다.
비뚤어진 집 ● 2전시실 '비뚤어진 집'은 안유리, 이유진의 작품이 전시된다. 이들 작업의 시발점은 집을 떠나 먼 타지에서 이주자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근원을 찾는 여정으로부터 비롯된다. 몸으로 체득하고 겪으면서 느낀 국가와 민족, 언어와 언어 사이, 그리고 장소의 이동으로부터 생겨나는 모호하고 불확실한 경계들이 설화 혹은 전설과 같은 내러티브로 은유하거나 상징물 혹은 연표로 나타난다. 두 작가의 작업은 타인 혹은 타지로부터 발견한 단서들로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행위이며, 관람객은 영상과 드로잉 그리고 관련 오브제와 텍스트를 통해 작가의 삶에 대한 고민과 철학을 추리해볼 수 있는데, 무엇보다도 그들에게 말과 언어는 사라진 것, 잊혀진 것에 대한 기록이자 흔적과도 같은 것이다. ● 이유진의 작업은 자신과 가족 주변인들의 삶을 관찰하고, 사회 문화적 차이에 의해 다층적으로 형성되는 관계에서 출발한다. 이번 전시에는 2014년에 발표한 탈 시리즈에서 확장한 『108번뇌』와 동판을 제작하는 과정과 어머니의 출산을 비유한 『태몽』, 그리고 자전적 이야기가 담긴 드로잉과 우연히 발견한 문장들, 그리고 외국에서 수집한 구한말 시기의 슬라이드 필름 등의 오브제들을 통해 이유진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흔적들을 시작으로 점점 범위를 넓혀 가족도시국가의 흔적 등 역추적하여 스스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한다. 이 작업들은 끈질긴 노동과 반복적인 수집으로 쌓인 시간의 주름이 하나의 표층처럼 발현한다.
안유리는 사라진 이야기들을 추적하고, 자신이 체득한 말과 문장으로 들려준다. 특히 말과 언어 사이, 혹은 장소와 이동의 사이에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간극이 그의 작업의 주요한 지점들이다. 『유동하는 땅, 떠다니는 마음 ; 테셀에서 제주까지』에서 테셀(Texel)은 약 400년 전인 1653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들과 함께 상선인 '스페르웨르호'를 타고 일본으로 항해 도중 제주에 표류한 뒤, 13년 동안 억류생활을 하다가 다시 고국으로 귀국한 네덜란드 선원이 항해를 출발했던 장소이다. 안유리는 작품을 통해 이 오랜 시간을 떠돌다 다시 집으로 돌아온 선원의 항해를 자신의 이주 여정에 빗대어 들려준다. 연작으로 이어지는 『추수 할 수 없는 바다』는 떠나간 사람들의 자리에서 기도와 제를 올리는 존재들(뽕할머니, 영등할매)이 등장하는 신화와 전설이 은유적으로 표현한 문장들을 목소리로 들려준다. 이는 마치 그녀가 당시에 경험하거나 들은 '귀환할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한 애도이자, 이지 않기 위한 투쟁과도 같다.
봄에 나는 없었다 ● 3전시실은 문학적이고 서사성이 강한 영상작품과 현대사회에서 폭력과 차별에 노출된 사회적 약자로서의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현실을 반영하며, 『나를 찾아줘 Gone Giri』 이후 영미권을 중심으로 인기를 끈 '가정스릴러'에 주목한다. '가정스릴러'는 오랜 시간 동안 결혼과 가정이라는 인간의 최소단위 그룹이자 제도 안에서 여성이 폭력과 범죄의 잠재적, 직접적 피해자로 있었던 현 사회의 어두운 단면, 사회적 문제들이 묘사되고 있다. 최근에는 여성 작가들이 단순히 여성이 피해자로 등장하는 것이 아닌, 가해자가 되거나 적극적으로 사건을 헤쳐나가는 내용으로 전개하여 집필하는 것도 이 장르의 범주에 들어간다. 물론, 영국 귀족 신분이었던 에거사 크리스티의 문학을 비롯한 빅토리아시대에 성행한 탐정소설들은 상류층의 보수적이고 귀족적으로 우월함이 내재하여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당시 여성으로서 소민과 정체성의 혼란을 섬세한 글로 담은 에거사 크리스티의 소설은 현재 하나의 장르로 부상하고 있는 가정스릴러의 한 줄기를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섹션에서는 추리소설전문서점 「미스터리유니온」 대표 유수영의 북큐레이팅으로 '가정스릴러' 도서자료를 함께 전시한다. '가정스릴러'는 정이라는 닫힌 문 뒤에서 일어나는 은밀한 폭력, 불편한 진실을 다루는 범죄들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으며, '결혼에 대한 잠재적인 위기'부터 여성이 취한 현실과 사회적 부조리를 여성의 관점으로 쓴 소설까지 몇 가지 키워드로 구성되어 관람객이 전시장에서 열람할 수 있다.
가정스릴러 도서아카이브와 함께 지난 9월 '실험영화변주곡'에 소개된 정지나, 조영천 감독의 실험극영화 2편과 미디어아티스트 함혜경의 단편까지 총 3편의 영상은 각기 다른 소재와 내용을 다루지만괴담보다 더 괴담 같은 현실들, 마음 한편에 불편하게 남아 있던 숨겨놓은 케케묵은 감정선들을 건드리게 한다. 함혜경은 주로 일상에서 접하는 이야기나 본인 혹은 주변의 경험담을 가지고 인터넷상에 표류하는 이미지를 재구성하거나 미디오영상 등으로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든다. 그중 이번 전시에 출품한 『나이트 피플』은 두 형사의 건조한 대화로 전개되는 단편극이다. 두 형사는 어느 강남아파트에 거주하던 한 여성의 실종 전 흔적을 짚어가며 범인을 추적해나간다. 그러나 그 둘의 대화의 끝은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하고, 이 사건은 미제로 남아 결국 괴담이 된다. 이 영상은 작가가 우연히 듣게 된 이야기를 모티브로 얻어, 현재 하루가 멀다고 뉴스와 언론매체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건과 범죄들이 괴담과 같이 떠돌며 덤덤해지는 현시대의 공포스러운 상황을 반영한다.
마치 공포 판타지 소설의 한 장면이 연상되는 정지나 감독의 실험극영화 『303』은 아이와 어른 사이의 모호한 위치에 서 있는 소녀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소녀는 이제 겨우 본인의 의사를 말하며 정당함을 요구할 수 있는 인격이자 자아를 상징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성장을 불안정성으로 규정한 사회적 보호자들은 끊임없이 사랑과 관심이라는 전제하에 소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종교적 규율과 부당한 요구들로 위협을 가한다. 이 영화에서는 이러한 외적인 규율과 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소녀의 내적 갈등을 그로테스크하게 묘사하여 사회적 규율과 규칙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질문한다. 마지막으로 조영천 감독의 『모우』는 과도한 개발과 급격한 변화의 진통을 겪고 있는 도시의 이면과 이로 인해 사람과 생명이 떠난 폐허가 된 공간의 흔적을 추적한다. 영화 속 폐허는 과거에 한 가족의 추억이자, 삶이 깃든 가장 안전하고 따뜻한 울타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에 기록된 공간은 침묵만 남아있으며, 그 침묵은 사라진 것에 대한 공포와 공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미스터리 소설과 범죄서스펜스가 다루는 픽션이 과연 현실보다 지독한가. 현대미술은 매일 우리가 맞닥뜨리는 현실의 문제들과 이 불완전한 세상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곧은 눈으로 볼 수 있도록 날카로운 단서들을 던진다. 그 단서들은 사적이고 매우 난해하거나 때론 지독한 현실 묘사에 마주하기가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 하나만 기억하고 있다면 미궁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항해를 떠나는 것이 우리의 삶이자 몫'이라는 진실을. ■ 이연주
Vol.20171222g | 끝없는 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