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삭개오의 노래 / Part 2. 존재의 위치

김경한展 / KIMKYUNGHAN / 金勁翰 / painting   2017_1222 ▶ 2017_1228 / 일,공휴일 휴관

김경한_삭개오의 저녁 식사_캔버스에 유채_46×38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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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 인스타그램_@kyunghankim01

초대일시 / 2017_1222_금요일_06:3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일,공휴일 휴관

염포예술창작소 소금포갤러리 울산시 북구 중리11길 2 Tel. +82.(0)52.289.1007 blog.naver.com/npypart

Part 1. 삭개오의 노래 ● 어두운 밤, 조용한 빛이 새어나오는 집 그리고 커다란 나무가 그려진 작은 프레임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경건함마저 들게 한다. 세밀하게 묘사하지도 않은 몇 번의 붓질로 표현한 풍경은 누구에도 방해받지 않으려는 듯 시간을 붙잡고 있다. 이 그림은 무엇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누가복음에는 삭개오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삭개오는 부자였고 세리장으로서 로마의 간부였지만 유대인들을 착취해 주변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했다. 어느 날 예수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삭개오는 그를 보기 위해 자신보다 월등하게 높은 돌무화과나무 위에 올라간다. 작은 신체적 조건을 이겨내고 몸부림쳐 올라가 결국 예수와 마주하게 된 삭개오. 예수는 그날 그의 집에 머물게 되고, 그는 삶의 깨달음을 얻는다. ● 예수를 영접한 삭개오는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진실된 관계에 대해 알게 되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도 진심어린 관심조차 받지 아니하고, 이해도 구하지 못한 그에게 내민 예수의 손짓은 얼마나 따뜻하였을지. 이방인으로서 사람들과 섞이지 못한 삭개오는 비로소 누군가에게서 자비와 온정을 느꼈다. 그것이 그를 변화시켰다.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작가는 그런 삭개오의 눈을 빌어 세상을 바라보려한다. 키 작은 삭개오가 나무를 오르는 과정에서 바라본 세상 혹은 세상 어디에 있을 또 다른 삭개오의 모습이 작가적 시선과 해석으로 작은 화폭에 그려졌다. 작가가 직접 삭개오처럼 나무에 올라가보기도 하고, 살면서 겪었거나 목도했던 경험들을 간단한 구도 속에 담아내었다. 자세하게 표현하거나 많은 색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붓의 한 획, 한 획에서 그동안의 진행해온 작업량만큼 쌓아올린 신념과 확신이 느껴지는데, 이지점이 보는 이들의 마음에 투영되어 공감을 이끌어내는 소통장치라고 보여 진다. 작가만의 조형적 요소에서 전달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동요가 관계의 메시지를 건네는 것이다. ●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삭개오의 노래' 시리즈가 '존재의 위치' 시리즈 후의 작업이라는 것이다. 자유롭게 추상화를 그리던 그가 다시 구상화를 한 것은 지난 오스트리아에서 작업한 '포도나무' 시리즈의 연장선이다. 포도나무를 3년 동안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완성된 작품들은 꽤 탄탄했다. 마치 인간 군상을 연상케 하는 나무들에게 영감을 받은 작가는 누구도 표현하지 않은 자신만의 회화적 성취를 집요하게 이루어냈다. 하지만 아쉬웠다. 익숙함에 매몰될 수 없었고, 더 확실한 작가만의 페인팅이 필요했다. 그 시작이 '포도나무'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무제」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발견한 2014년이었다.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Part 2. 존재의 위치 ● 회화는 미술사적으로 다양한 변용을 시도해왔고 변화했다. 사실적 재현으로 환영을 보여주거나 사회적 현실을 고발했으며 사진과 대립각을 세워 정체성의 위기를 맞이했지만 지독하게 독자성을 고집하며 사물이 되는 지점에 이르는 빌미를 제공했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넘어와 회화는 한동안 디지털 매체 속에 소외되기도 했고 현대적 회화로서 미학적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추궁당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리기는 존재했고 가치를 드러냈다. ● 끊임없이 새로운 형태와 개념을 생산하는 예술적 범람 속에서 이제 회화는 또 어떠한 스타일을 제시할까. 이러한 문제의 해결점은 작가 개인에게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은 회화 작가들에겐 하나의 과업이다. 작가 스스로도 자신만의 차별화된 조형 언어를 찾아내고 그것을 발전시키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험난한 일인지 모르지 않을 것이다. ● 김경한 작가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 역시도 잘하는 그림만 해서는 작가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선택한 연구의 길, 작가는 3년의 시간을 준비했다.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한국에 와서 그는 오롯이 형식 그 자체에만 천착한다. 깊이 있는 내러티브나 철학적 담론을 배제한 순수한 회화적 요소에 대한 것이었다. 그의 그림은 표면적으로 보자면 캔버스, 물감이라는 전통적인 재료의 사용, 점선면의 기본 구성, 무의식적으로 물감을 뿌리거나 면을 분할하는 여타 추상화와는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면 우연이지만 우연이 아닌, 말 그대로 연출된 화면을 발견하게 되는데, 구상작업에서 형태나 색감을 수정하듯, 이러한 방식을 추상작업에 적용했다고 볼 수 있겠다. 회화적 요소들이 단순히 채색하고 선을 그리는 것에 그치기보다는 캔버스 공간 내에서 역할을 수행해내도록 배치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를 희생하여 다른 하나를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요소들이 존재성을 드러내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그 어느 한 곳에 눈길이 고정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요소들 그리고 전체가 되었을 때 느껴지는 미적 감흥이란.

김경한_존재의 위치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62×130cm_2017

어쩌면 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미술사적 지식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캔버스에 올려진 거침없는 색과 과감한 터치들이 보여주는 조화에 몰입한다면 그다지 그러한 노력은 불필요하게 느껴진다. 온전하게 자신만의 페인팅을 찾으려는 의지와 열정이 스며든 화면을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 같은 추상작업 일지라도 다름에서 오는 감각적인 즐거움이 있다. 그것이 김경한만의 회화다. ■ 허금선

Vol.20171222c | 김경한展 / KIMKYUNGHAN / 金勁翰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