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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7:00pm
인디프레스_서울 INDIPRESS 서울 종로구 효자로 31(통의동 7-25번지) www.facebook.com/INDIPRESS/
'회화-부조'에 스며든 절단과 접합의 기이한 향연 ● 김원백의 작업은 평면성과 입체성, 이 양 측면을 모두 다 지향하며 포괄한다. 각각의 평면을 차곡차곡 모아 올려 저부조의 입체로 집적하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회화와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두 시각예술 장르의 조형적 특징들을 한꺼번에 그리고 동시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다. 이 레이어의 중첩이 만드는 감각의 양면성 – 평면성과 입체성 – 이야말로 그의 작업을 이해하는데 있어 양식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그의 작업은 회화라 할 수도 없고 조각이라 할 수도 없는, 그러나 회화이면서 동시에 조각인 그 자신만의 독특한 표현 방식으로 귀결되고 있다. ● 김원백의 '회화-부조(painting-relief)'는 전체로서 크게 볼 때 서로 다른 두 가지의 이질적인 프로세스를 경유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절단이고 두 번째는 접합이다. 먼저 캔버스에 여러 차례 물감을 겹쳐 칠한 다양한 색깔의 천들을 미리 준비한 후, 이 각각의 천들을 자신의 감흥에 따라 즉흥적으로 자르거나 오려내면서 갖가지 형상들을 만들어내고, 임의로 다시 이 절단된 천들을 캔버스 위에 여러 겹으로 쌓아올린 다음 적절히 접합하면서 작품이 완성된다. 작가 자신의 표현 그대로 칼과 가위가 붓이고 색을 입힌 천이 물감이 되는 것이다. 절단이란 애초의 한 대상물을 새로운 두 대상물로 완전히 분리시키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의 작업에서 자르기, 오리기, 뚫기를 매개로 한 분리의 과정이란 그저 새로운 것이 원래의 것으로부터 떨어져 나간다는 일차적이고 단순한 의미만을 내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떨어져 나가면서 동시에 본래의 것과는 전혀 다른, 자신들만의 새로운 형태를 이루어낸다. 자식이 부모로부터 나왔으되 – 그래서 자식도 부모처럼 사람이지만 – 그렇다고 자식이 부모 그 자체는 아닌 것과도 같다. 동종이나 별개인 것, 즉 색채로서는 원래와 동일한 특질로 제시되나 형태로는 전혀 다른 새로운 양상으로 풀려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른다는 행위에는 선명하고도 단호한 천지불인(天地不仁)의 사유가 그 의미항으로서 깊이 내재되어 있다. 일수불퇴(一手不退)의 긴장, 그래서 한 번 잘라버리면 다시는 붙일 수 없는, 그것으로 그냥 끝이 되어버리고 마는 엄정한 세계인 것이다. 반면 붙이는 행위는 떨어져 나간 것들을 다시 겹치면서 접합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긴장을 보듬고 분리를 역전시키는 행위이다. 그래서 분리가 죽음의 메타포라면 접합은 재생의 메타포이다. 여기에는 치유와 회복의 뉘앙스가 있다. 또한 이미 피투(被投)된 대상들을 가지고 이루어 낼 수 있는 최선의 결과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작가의 인간적 궁리와 치열한 심사가 어루만지듯 스며들어 있기도 하다. 그 단호한 절단의 세계로 이루어진 개개의 단편들은 이를 통해 비로소 조화와 화합의 합일경으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 과정들 속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가장 강조되어야 하는 착점(着點)은 극도로 유려하고 리드미컬한 자연스러움에 관한 문제이다. 거의 우연에 가까운 그 흐르는 듯한 자연스런 감각이 이처럼 복잡하고도 다양한 색채와 형태의 겹침을 미적 경이의 세계로 이끌어 가게 하는 것이다. 김원백의 작업에는 자신이 너무나도 좋아하고 즐긴다는 재즈의 리듬과도 같은 어떤 예리한 흥취가 도도하게 그리고 면면히 유동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들은 만물의 나타남과 스러짐, 존재의 생성과 소멸이라는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생사라는 주제는 무정물(無情物)이 아닌 정물, 무생물이 아닌 생물의 문제이기에 이는 생명의 구성에 가장 핵심이 되면서 동시에 필수불가결한 유전자(gene)라는 개념과 필연적으로 조우하게 된다. 그의 조형 속에서 접합에 의한 재생의 과정은 원래의 상태 그대로 다시 살아나는 상태 역전의 단편적 사태가 아니라, 수없이 많은 서로 다른 양상의 재생 가능성들을 암시하면서 생명체의 확장 가능성을 무한한 경우의 수들로 팽창시키는 복합적 사태인 것이다. 김원백 작업의 확장성과 다양성은 그 자신의 연작 제목 '유전자로부터'의 숨겨진 본뜻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마치 DNA에서 무작위의 다양한 염기서열에 따라 무수히 많은 유전 정보들이 만들어질 수 있음에도, 실제로는 그 중에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단 하나의 개체만이 발현되듯, 김원백의 화면 역시 조형적 가능태(可能態)라는 무작위의 무한히 많은 경우의 수들 가운데에서도, 결과적으로는 오직 하나의 최종적 확정태(確定態)로서만 수렴, 귀결되어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들에서 한 화면 속에 포괄되어 있는 구상적 특질과 추상적 특질을 완벽하게 구분해 낸다는 것이 실은 그다지 용이치만은 않다. 개별 단위 색면들과 색띠들만을 미시적으로 바라보는 관객들에게는 모종의 형상들에 대한 일련의 연상 – 구상성 – 이 완전히 배제되어질 수가 없다. 그러나 전체 화면 구성 속에서 거시적으로 드러나는 패턴화된 색면들과 색띠들의 덩어리를 관찰하면 뜻밖으로 화면 전반에서 그 구상성이 상당 부분 사라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의 화면에서는 열주(列柱) 형태의 반복이라는 거시적 패턴의 유사성 이면에 각 열주들 내부에서의 미시적 개체의 차별성이 수많은 변주의 양상들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이처럼 화면에서 구상과 추상, 유사와 차별이 혼융되듯, 생명에서 육체와 정신이 서로 뒤섞여 분리되기 어려워진, 일견 양의적이나 동시에 이 양의성이 함께 통합된 어떤 기이한 구조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들기도 한다. 또한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정신 활동의 로고스와 파토스 즉 이성과 욕망의 어떤 측면들과 대응시킬 수 있는 상호 대극적인 속성들과도 이들 구상성과 추상성은 서로 침투하며 교감하는 듯 보인다. 이는 생성시키려는 힘과 소멸시키려는 힘들이 서로 교차하는, 인간 정신의 에로스와 타나토스가 명멸하는 극렬한 모순의 한 지점과도 깊이 연관되고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의 의미론과 조형론은 서로 분리될 수 없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으며 이러한 혼재 속에서 처음과 끝이 없는 무한한 생성과 소멸의 단초와 진행을 생생하게 제시해내고 있다. 보이는 외현으로서의 색채와 형태는 다양하고 또 다양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재적 본질과 근원은 오묘하고 또 오묘한, 현지우현(玄之又玄)의 미학적 경지에까지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작가의 2008년 부산 개인전에 풀잠자리와 장구벌레의 이미지를 그린 색연필 드로잉 1점과 네 방향의 방사상으로 펼쳐진 유전자 이미지를 그린 색연필 드로잉 1점, 그리고 거미, 나비, 카멜레온 등의 이미지들과 전형적인 열주형 유전자 이미지들을 각각 병치시킨 작품 3점이 출품되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그는 등산을 하면서 만나게 된 다양한 곤충들의 이미지를 카메라로 촬영한 후에 이들의 세부 형태를 변형시키면서 구상체들을 추상화된 조형의 양상으로 진행시켜 나아가는 과정들이 어떠한지를 아주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작업이 애초에는 현상과 구체성에서 출발하지만 결국에는 원리와 추상성을 지향하게 되는 전형적인 귀납적 사고의 결과물임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그의 작업의 최종 지향이 원리적임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그저 도그마적인 결정체로서만 머무르지 않고 오히려 조형적으로 풍부하고 오밀조밀한 변이들의 발현을 통해 종내는 화면들이 그 자체로서 또 다른 현상학적 향연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그가 얼마나 생물과 인간 종의 생성 원리를 예술적으로, 또 예술가가 아니라면 해결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밀어붙여, 자신의 작업을 바라보는 관객들을 감성적으로 설득하면서, 동시에 그 자신의 독특한 예술적 방법론을 확고히 관철시켜내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학문과 예술이 기묘하게 결합된 일종의 학예일치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자연에 대한 관찰이 체계적 이론의 정립에까지 이르게 되는 과학적 패러다임의 한 양상이 작가의 예술적 프로세스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는 일면을 상기시켜 주기도 했다. 이는 예술이 세상을 해석하는 하나의 새로운 과학적 방법론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표현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이질적 요소들의 종합을 현상에서 원리를 추출하는 일련의 진행 과정으로 파악해 본다면, 다양한 색면 형태들의 우연적 결합이 하나의 완결된 조형상(造形相)으로 정리되는 필연적 과정 역시, 자연과학과 같은 학문 체계가 지향하는 세계 해석의 방법론과도 결국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접합체(zygote)와 배아(embryo)가 발생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출생 시점의 개체 형태로까지 진행되는지를 연구하는 발생학(embryology)의 텍스트나 하등동물로부터 고등동물까지의 계통발생 과정의 연구를 통해 동물들의 형태와 구조가 이루어지는 체계와 법칙을 추적하는 비교해부학(comparative anatomy)의 텍스트에서 보았던 수많은 도상들이 작가 작품의 어떤 요소들과 겹쳐지면서 오묘한 연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개체 이전의 배아 형태, 포유류 이전의 파충류나 원시 생물에 대한 작가의 깊은 사유가 작업들의 도상 속에서 그대로 펼쳐지고 있었다. 또한 그의 작업들은 유전자 배열을 임의 조작하여 새로운 돌연변이종을 만들어내는 분자생물학(molecular biology)의 방법론과 별반 다르지 않은 진행 과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의 도상들은 DNA에서 RNA로, RNA에서 단백질(protein)로 진행되는 복제(replication), 전사(transcription), 번역(translation)의 개념들을 한눈으로 직관, 통찰하게 하는, 강력한 부적의 형식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복잡해 보이지만 기능적으로 특화된 유기적 배열, 선명하게 구분하는 칼날처럼 결기어린 단호한 도상들, 가을 산처럼 화려한 색면 위에 서려진 자유와 질서의 모순적 변증법, 강렬한 동세 속에 감추어진 고요하고 은은한 침잠, 맑고 투명한 정신에의 심원(深遠)한 천착, 그것들은 모두 그가 추구해온 생명의 신비 그 자체였다. 마치 신비로운 생명을 지어내고 있는 조물주의 손길과도 같이, 그는 자신이 창조하려는 생명체의 설계도를 마치 누에가 실을 뽑아내듯, 그렇게 하염없이, 하염없이 뽑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 김동화
Vol.20171215i | 김원백展 / KIMWONBAEK / 金原白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