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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작가 김동규_김범_김봉태_김세진_김소라_김용관 김인배_김환기_노충현_문영민_뮌_박준범 서용선_송상희_오인환_유근택_유영국_이효연 주재환_주태석_지석철_홍순명_장 미셸 바스키아 조나단 보로프스키_루이즈 부르주아_피터 할리 사라 모리스_쿠사마 야요이 (28명)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주말,공휴일_10:00am~06:00pm / 월요일, 1월1일 휴관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 SeMA, Nam-Seoul Museum of Art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 2076(남현동 1059-13번지) 1층, 2층 Tel. +82.(0)2.598.6247 sema.seoul.go.kr
본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수집해 온 소장품 중에서 잊는 행위와 그로 인해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다양한 맥락을 담고 있는 작품들을 남서울미술관에서 겨울 동안 선보이고자 마련되었다. 전시 제목 『망각에 부치는 노래』는 이번 출품작 중 하나인 루이즈 부르주아의 작품 제목 "Ode à l'oubli"를 인용한 것이다. 'Ode'는 어떤 사물이나 인물에 대한 찬가(讚歌)를 뜻하는데, 특히 낭만주의 시인들이 특정 대상에 관한 시를 쓸 때 자주 등장하던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망각에 부치는 노래'는 단지 기억을 잊고자 하는 마음을 의미하기보다는, 잊는다는 것 그 자체에 대해 써내려간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전시와 동명의 작품 「망각에 부치는 노래」(2004)는, 루이즈 부르주아가 결혼 후부터 노년이 되기까지 일상에서 사용한 갖가지 의류를 자르고 꿰매어 만든 하나의 그림책이다. 좋은 기억도, 아픈 기억도 정성스럽게 해체하고 꿰매어 새로운 차원의 창조물로 탄생시킨 부르주아의 시적인 태도는 우리가 기억과 경험을 대하는 다양한 접근 방식을 포용하는 제스쳐라고 할 수 있다. ● 따라서 본 전시에서는 잊어가는 과정, 잊고 있었지만 문득 떠오르는 기억, 특정한 경험에서 오는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한 행동,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지만 상상 속에서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 것에 대한 표현, 지나간 여정에 대한 재해석 등을 담은 쿠사마 야요이, 루이즈 부르주아, 김환기, 유영국, 김봉태, 유근택, 노충현, 박준범, 김소라, 지석철, 주태석, 김동규, 오인환의 작품을 통해 망각과 회상에 대한 다채로운 시선을 제안한다. ● 그리스 신화 속 망각의 신 레테(Lethe)는 망각의 강을 통해 죽은 이들의 기억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고, 그들을 새로운 차원의 세계로 보내주는 다리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망각은 단지 기억을 잊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망각 뒤에 침잠되는 진실과 재생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 사회적 사건과 거대 담론 뒤에 가려져있으나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개인의 일상에 대한 미시적 시선들, 앞모습보다도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있을지 모르는 뒷모습, 진리로 간주되는 대상에 대한 회의적 시선과 재해석, 단순화되고 추상화된 그리드 속에 은폐된 도시인의 이면에 대한 이야기 등을 담은 뮌, 송상희, 김세진, 홍순명, 문영민, 이효연, 장 미셸 바스키아, 서용선, 김범, 김인배, 사라 모리스, 김용관, 주재환, 조나단 보로프스키, 피터 할리의 작업은 우리로 하여금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것과 절대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숙고하게 한다. ● 전시가 열리는 기간 동안 한 해의 마지막과 시작을 맞이하는 관람객들이 작품을 통해 각자의 내밀한 기억을 반추하면서, 보다 친근하게 전시에 다가갈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망각에 부치는 노래」(2004)는 2002년에 오리지널 버전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작품을 작가가 뉴욕 소재의 한 공방과 함께 석판화, 디지털 프린팅, 염색, 바느질, 자수기법 등을 사용하여 동일하게 제작한 에디션 작품 중 하나이다. 부르주아가 90세 되던 해인 2002년에 제작된 오리지널 작품은, 그녀가 평소에 사용하던 옷과 생활용품을 자르고, 배열하고, 꿰매어 만든 32장의 페이지와 2장의 텍스트 페이지로 구성된 일종의 그림책이다. 그녀가 1938년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결혼을 기념하며 제작했던 리넨 타월이 바탕면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작품의 표지와 페이지의 중간마다 'LGB(Louise Bourgeois Goldwater)'라는 이름의 약자가 수놓아져 있는 것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그녀가 직접 사용하던 옷과 가재도구들에 스며있던 지극히 사적이고 내밀한 기억들은 직물이 해체되고 재배열되는 과정 중에 삭제되고, 그림책이라는 새로운 창조물로 우리에게 제시된다. 실용적 기능을 잃어버린 직물이 전혀 새로운 목적을 가진 존재로 재탄생 되는 것이다. 즉, 그녀의 '망각' 과정이 도리어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대상이 된다는 것인데, 이로써 그녀의 작업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망각과 기억의 역설적인 공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김환기는 한국 추상미술의 제 1세대 작가로서 한국적인 정서와 이미지를 서구의 추상과 접목하여 고유의 예술 세계를 정립한 화가이다. 그의 작업은 시기별로 일본 유학 시대(1933-37), 서울 시대(1937-56), 파리 시대(1956-59), 서울 시대(1959-63), 뉴욕 시대(1963-74)로 구분되는데, 이 작품은 뉴욕 시대 중 전기에 속하는 회화이다. 그는 1968년부터 밑칠하지 않은 면 캔버스에 묽은 액체 상태의 물감을 사용하면서 번지는 효과를 실험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작품은 다음 해인 1969년 작으로, 그 실험의 과정 중에 있는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십자구도를 띠며 날것의 순면 위에 칠해진 물감의 확산이 돋보이는 작업으로, 1970년부터 제작된 전면점화의 탄생에 영향을 미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수평과 수직의 선이 화면 중앙에서 꿰어지고, 그를 중심으로 생성된 면들이 한국을 떠올릴만한 색채로 - 푸른색, 붉은색, 검정색, 흰색, 즉 노랑을 제외한 오방색 – 채워져 배경 속으로 아스라이 스며드는 풍경은, 그가 뉴욕에 첫발을 디디고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도 끊임없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자신이 놓인 환경을 접목한 독자적인 언어를 시각화하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게 한다.
「WORK」(1967)은 산의 풍경을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등의 색면으로 분할하여 나타낸 작품이다. 작가는 주관적으로 해석해 낸 고향 산천의 모습을 기하학적으로 단순화시킨 형태와 선명하면서도 감정이 드러나는 원색의 색채로 표현하였다. 한 평생 작가의 삶을 이어가면서 지속적으로 추상을 추구했던 유영국이 가장 애착을 느꼈던 것은 '산'의 이미지였는데, 그것은 산으로 둘러싸인 고장 울진에서 자란 유년기 추억에 대한 그의 향수와도 관련된다. 작가에게 있어 산이란 삼각형의 봉우리와 곡선의 능선을 가진 추상으로 환원할 수 있는 완벽한 모티프였으며 아름다웠던 유년시절을 회고할 수 있는 장소였을 것이다.
1999년부터 시작되어 여전히 지속중인 시리즈 작업의 하나인 「숫자 따라가기」는 작가가 방문했던 다양한 장소들의 번지수를 촬영한 사진 2,000장을 1에서 1,000까지 순서에 따라 배열한 2개의 세트로 구성된 작품이다. 2,000장의 사진은 50장씩 묶여 총 40개의 액자로 구성되었다. 아라비아 숫자의 순서를 따른 재배열은 각각의 숫자가 지시했던 장소와 시간의 순서들과는 무관하게 사진들의 순서를 자동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으로 조합된 것이다. 따라서 원래 숫자들이 내포했던 구체적인 장소와 위치의 지시성과는 대립된다. 2,000장의 사진들은 장소들에 대한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동시에 개인의 경험을 중립화하는 일상의 순서체계를 드러내고 있다. 사적인 여정을 기록하기 위해 촬영되었던 이미지는 기호로서 일종의 기능적인 의미를 갖게 되고, 표피적으로 읽히는 새로운 이미지로 재생산된다.
노충현은 현실의 이미지를 스산하고 몽환적이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실제로 존재하지만 마치 세상에 없는 곳과 같은 풍경을 선보이는 작가이다. 몹시 쓸쓸하고 메마른 광경이라는 의미의 '살풍경' 연작을 제작하기도 했던 그는,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제작한 이 작품에서도 조각난 빙판 위에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을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모자 달린 점퍼와 장화로 겨울 복장을 한 사람이 조각난 얼음들을 바라보고 있는 광경은 아슬아슬하고 쓸쓸해 보이지만, 다른 시각에서 보면 함박눈이 내리는 날의 겨울 풍경을 감상하며 골똘히 생각을 이어가는 한 사람의 고요한 일상으로 보이기도 한다.
미술사를 전공하던 시절부터 개념미술과 후기 미니멀리즘에 깊이 관심을 가졌던 할리는 신기하학적 개념주의 '네오-지오(Neo-Geo)'의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테크놀로지에 근거한 유토피아적 상징으로서의 기하학적 형상들을 사용하여 오히려 기하추상을 근간으로 하는 모더니즘 미술을 비판하는 태도를 보여왔으며, '지오메트릭 페인팅'(Geometric paintings)을 기반으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이번 전시 작품 「푸른 감옥」 역시 일견 기하학적 추상 회화 작품으로 인식되지만, 모더니즘 추상회화와는 그 내용과 목적이 다르다. 할리의 작품에 등장하는 형상은 감옥과 같이 밀폐된 도시 공간, 디지털 코드와 그것을 전송하는 네트워크망을 통해서만 교류하는 현대인의 고립 등을 추상적 형태로 지시한다.
뮌은 김민선과 최문선이 함께 활동하는 미디어 아티스트 듀오이다. 얼핏 빛이 어우러진 별자리를 보는 듯한 작품 「캐릭터(점, 선, 면)」는 사실 정치와 경제 등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소위 상류층 가문끼리의 혼맥도를 형상화한 것이다. 4대 재벌에서부터 시작하여 점차 발전시킨 이 조명 가계도는, 전구들은 점으로, 색색의 아크릴 조각은 면으로 기능하며, 그들을 잇는 선은 철제로 이루어져 있다. 여러 층위의 선이 복잡해질수록 전구와 아크릴의 수도 많아지며, 완성된 작품은 스테인드글라스와 같은 종교적 느낌마저 창출한다. 화려한 조명 속에 숨겨진 그들의 현실, 그리고 사랑과 결혼이라는 아름다운 표면 뒤에 오가는 모종의 거래와 문제들을 상상하게 하는 작품이다.
「엽서들」은 작가가 여러 도시에서 수집한 낡은 엽서의 앞면과 뒷면을 차례대로 보여주는 작업으로, 질병의 확산과 이주의 문제 등 거대한 사회적 사건들이 사사로운 엽서의 내용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암시한다. 엽서는 이미지와 텍스트가 얇은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존재하는 지극히 내밀한 서사인 반면, 내용이 노출된 채로 수많은 이들의 손과 눈을 거쳐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점에서 모순을 지니는, 다양한 층위의 안팎이 서로 교차되는 매체이다. 영상 속에서 엽서의 앞과 뒤를 연속적으로 제시하는 두 손의 반복된 움직임은, 우리로 하여금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관계는 물론, 노출된 이미지의 이면에 가려진 진실, 엽서의 이동 경로와도 같은 이주민의 삶과 균의 확산이 지니는 연관 관계 등에 대한 여러 질문을 던진다.
애초에 미술의 재료라고 생각되지 않는 일상적 소재들로부터 새로운 시선을 끌어내는 데에 주목하는 김범은 인간의 근본적인 인식과 지각의 문제에 관해 질문을 던지는 작업들을 공상, 수수께끼 등의 엉뚱하면서도 기발한 장치를 통해 선보이는 작가이다. 모두 왼쪽을 가리키고 있는 화살표 총 4점으로 이루어진 작품 「화살표」는 '캔버스' 위에 '수묵'으로 그려낸 '기호'이다. 대개 수묵은 종이와 어울리며, 캔버스는 유채 물감과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이 작품에서 작가는 당연하다고 생각되던 관계들에 의문을 담아 관람자에게 조용히 제시하는 방식을 택한다. 캔버스 위에 수묵으로 그려진 대상은 추상도 구상도 아닌, 실용적 기능을 가진 '화살표'라는 기호이다. 또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화살표의 방향은 오른쪽이지만, 미세하게 다른 두께와 모양을 지닌 4가지의 화살표 그림은 단호하게 모두 왼쪽을 가리키고 있다. 이렇듯 작품 안에 숨겨진 많은 모순들은, 사회에서 암묵적으로 간주되고 있는 절대적 올바름이라는 것에 대한 의심과 반문을 제시한다.
사라 모리스는 기호와 상징의 관계에 주목하며 밝은 색과 간결한 선으로 구성된 작품을 제작해왔다. 그 중에서도 「오리가미」 시리즈는 일본의 전통 종이접기 방식인 오리가미의 패턴을 접지선과 그 사이의 면들을 다채롭게 채색하여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소장품 「거북이(오리가미)」는 캔버스 위에 가정용 유광 페인트로 그려져 있으며, 종이접기의 모든 세부 과정을 드러내는 종이의 뒷면을 드러내 보여준다. 한편, 불투명하게 칠해진 색면들의 조합은 마치 기하학적 추상회화로 보이기도 하며,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
Vol.20171211f | 망각에 부치는 노래-SeMA 남서울 소장품 기획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