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ntiscape'(Lenticular+Landscape)

나형민展 / NAHYOUNGMIN / 羅亨敏 / painting   2017_1115 ▶ 2017_1128

나형민_달무리_lenticular_60×9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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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11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리서울 갤러리 LEESEOUL GALLERY 서울 종로구 인사동 23-2번지 2층 Tel. +82.(0)2.720.0319 www.leeseoul.com

동양의 산수화는 미적 관조의 대상이자 누워서 즐긴다는'와유(臥遊)'의 대상이다. 보고 싶고, 가고 싶고, 궁극적으로는 그 자연에 거하면서 즐기고 싶은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동양화의 대표적 화목이다. ● 산수를 그린다는 것은 지도나 지형을 측량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 정서와 사상이 풍치(風致)에 투영된 '의경(意境)'이라 하였다. 그래서 산의 모습은 걸음걸음마다 그 풍광이 바뀌며, 산의 이치를 알기 위해서 면면을 보아 앞뒤,좌우를 살펴야 한다고 곽희(郭熙, 북송)는 말하였다. ● 산수화에서는 고원(高遠), 평원(平遠), 심원(深遠)이라 하여 다양한 시각을 한 화폭 속에 구현해 왔다. 그런데 소위 '삼원(三遠)'이란 단순히 세 가지의 다른 시점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시각을 바탕으로 한 다시점의 공간이자 무한의 세계로 확장되는 동적인 공간의 표현이다. 그래서 조선시대 대표적 화가인 이인문(李寅文,1745(영조 21)∼미상)의 산수화를 강산에 다함이 없다, 끝이 없다 하여 '강산무진(江山無盡)'이라 이름 하였다.

나형민_쥐불놀이-정월_lenticular_60×90cm_2017
나형민_쥐불놀이-정화_lenticular_60×90cm_2017

전시명 '렌티스케이프(Lentiscape)'는 렌티큘러(Lenticular)와 랜드스케이프(Landscape)를 합성한 조어(造語)로 최근 작업하는 지평선의 풍경을 렌티큘러 방식으로 재해석하여 산수화에서의 다층적 시각을 새로운 방식으로 시도한 작품 유형을 의미한다. 렌티큘러(Lenticular)란 볼록 렌즈를 나열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서로 다른 여러 개의 영상이 보이도록 한 것으로 예술작품은 물론, 문구류 광고 등 다양하게 사용된다. 간단하게는 2개 이상의 그림을 병첩하여 보는 각도에 따라 변환되는 이미지의 구현도 가능하며, 공간감을 주어 입체적 화면을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렌티큘러의 시점에 따른 변환, 입체의 속성을 이용하면 산수화와 같이 다원적이고 동적인 공간을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와유의 대상으로서의 전통적인 한지의 산수화가 아닌 새로운 방식의 산수화, 또는 산수 정신의 구현을 실험하였다. 결론적으로 Lentiscape(Lenticular+Landscape)란 고정된 시점으로서의 풍경화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전통적인 족자나 횡권 형식에서 보여 왔던 횡적, 종적 화면의 확장을 렌티큘러라는 렌즈를 통해 집약적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새로운 산수화, 풍경화의 시도라고 할 수 있다.

나형민_상원(上元)_한지에 채색_60.5×91cm_2016
나형민_쥐불놀이-잔설_한지에 채색_60.5×91cm_2017

'쥐불놀이' ● 나형민의 작품은 주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 지평선에는 오래된 건물이 서있기도 하고 초록색 풀숲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근작에는 불꽃, 대보름달 등이 등장한다. 지평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무언가 저 지평 너머에 지금의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꿈이 담긴 다른 세계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토피아(Utopia)'라 명하기도 하고 히말라야 산맥 속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샹그릴라(Shangri-La)'이자 '천국'이라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평에 다다르게 되면 또 다른 지평이 펼쳐져 있고 결국, 자신은 여전히 현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평은 그 너머 무언가 희망과 설렘의 몽실몽실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항상 지평에 도달하여 좌절된 이상, 추락한 꿈을 목도하면서도 또 다른 뭉게구름 가득한 지평을 바라보며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희망과 소망을 다시 꿈꾸며 삶을 경주한다.

나형민_쥐불놀이-조응_한지에 채색_60.5×91cm_2017
나형민_쥐불놀이-낙락장송_한지에 채색_60.5×91cm_2017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꿈과 소망을 기원하는 대표적인 날이 정월 대보름이다. 크고 둥근 달을 상원(上元)이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보름달을 바라보며 가족의 건강, 직장에서의 성공 등등 나름의 소원을 기원한다. 특히 정월 대보름에는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는 '쥐불놀이'라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쥐나 해충으로 인한 병충해를 막기 위해 논밭을 태워 정결히 하면서 남은 재로 새로운 생명. 새싹을 잉태하기 위한 준비라고 할 수 있다. 보통 불의 상징은 소멸, 파괴의 이미지가 강하나 쥐불놀이는 소멸의 과정을 통해 부정적 요소를 정화하는 것으로서 작품 속의 불꽃 이미지는 낡은 것을 태워 새로운 것을 소생시키고자하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래서 민간신앙에서는 쥐불놀이를 통해 모든 잡귀와 액(厄)을 쫓아야 1년 동안 아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한다. 예전에는 쥐불놀이에 쑥방망이를 사용했다고 하는데 본인의 경우는 빈 깡통에 구멍을 뚫어 불을 붙이고 들판에서 빙빙 돌리면서 밤하늘을 불빛 원형으로 물들이며 힘차게 던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은유적으로 표현된 쥐불 속에는 새 생명을 잉태하고자 하는 '재생(rebirth)'의 의미와 이상향에 대한 기원이 담겨 있지만, 은은한 수묵 빛을 머금고 있는 보름달이 드리워진 청록색의 서정적 수풀의 고요를 깨는 듯 한 불꽃을 통해 들판에서 활활 불태웠던 추억이... 소망이... 다시금 되살아나 역동하길 기대해 본다. ■ 나형민

Vol.20171115a | 나형민展 / NAHYOUNGMIN / 羅亨敏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