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얼거리다 mutter

고경남展 / KOKYUNGNAM / 高炅男 / painting   2017_1110 ▶ 2017_1123 / 월요일 휴관

고경남_중얼거리다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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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충북문화재단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아직은 다듬어지지 않는 원석들의 빛은 투박하다. 반투명의 얼룩덜룩한 우유색 원석을 갈고 닦아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을 만드는 과정을 보자면, 그것을 다듬어 내는 장인의 손길의 빠르고 거침없음에도 불구하고, 숙련도과 정교함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두루뭉술한 돌의 면들을 모나게 깎아서 각도에 따라 빛들의 난반사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해야만 다이아몬드라는 빛나는 보석을 손에 쥐게 된다. 작가가 되는 과정들도 그러하다. ● 고경남 작가의 작업의 과정들을 보자면 날 것 같은 캔버스에 휙휙 획을 그으며 문지르는 기법이 마치 다이아몬드 보석공의 손길과 유사한 느낌이 든다. 터덕터덕 색들이 올라갈 때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면들로 캔버스를 뒤덮기도 한다. 한참을 닦고 깎아 만든 그림은 다이아몬드라는 보석처럼 반짝이게 되었을까?

고경남_침략의 반짝임-황금산을 찾아_캔버스에 유채_163×260cm_2017

지난 2015년 한 해 동안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의 경험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그의 작업들은 관계의 모호함 속에서의 낯선 경험들이 뒤섞인 인물과 풍경의 혼성된 형태들을 그리는 작업들이고, 작가가 기억하는 고향 제주의 풍경들에 새로운 추상적 관념들이 들러붙어서 그려지게 되었다. 스스로의 새로운 예술 환경에 대한 고민들이 새로운 작업의 아이디어들로 변형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풍경은 고경남 작가의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시작들로부터 근래의 작품들은 작가 자신의 내면에 있는 표현의지로 관념적인 것들을 그려내려고 노력함이 보이고 있다. ● 외면으로 보이는 것들은, 형태와 형식의 선명함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그의 의도들은 캔버스위의 물감들을 두텁게 바르면서 표출되었고, 지난 습작들 속에서 단순하지만 '그린다'는 행위자체에 몰입하려는 의식적인 행위들을 시도하였다. 한편으로는 표현의 대상은 모호해졌지만, 그리려고 하는 표현 행위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은 그에게는 온전히 예술가로의 순간이 되었다.

고경남_아버지와 함께 이승이_캔버스에 유채_45×53cm×3_2017

행위자체에 몰입이 되면 될수록 대상은 사라지게 되었고, 선명함을 버리려고 대상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것은 마치 지난 미술사속에서 거쳐 온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그림들처럼, 대상의 형태성보다는 표현성 때문에 일어나는 심리적 이미지들을 찾는 것처럼 보였다. ● 그러나 내면을 관찰하자면, 그것이 곧 심상의 표현, 심리적 기억에 의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욱이 기억을 재현하거나 보이는 것들의 심리적 해석도 아니다. 그려진 것들을 보자면, 내재적 기운과 선과 여백, 말하고자 하는 것들의 반복, 중첩된 획에서 드러나는 것이며 실제였거나 기억하는 풍경에 대한 표현이기 보다는 이미 볼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기억의 뒤편의 새로운 풍경을 그려내는 듯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습관으로 체화된 기억의 뒤편에 아직도 남아있는 것들을 지우는 행위처럼 보인다.

고경남_휘몰아치는 것들의 응집1_캔버스에 유채_190×260cm_2017
고경남_휘몰아치는 것들의 응집2_캔버스에 유채_81.5×130cm_2017

인간에게 기억은 구체적인 형상과 서사로 이루어지지 않는 이미지의 조합들이다. 기억이란 신경단위에 실질적으로 남겨진 흔적으로 비교적 오랜 시일 동안 저장되어짐을 의미한다. 이를 두고 기억 흔적(memory trace)라고 부른다. 이에 대한 부호를 알 수 있다면, 신경단위에 남겨진 흔적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이어서 한 사람의 일생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각인된 기억들을 의식적으로 지울 수 있는 것일까? ● 기억은 강렬한 충격을 가해서 순간적 상실이 만들어지기도 하고, 시간경과에 따라 서서히 망각해가기도 한다. 그러나 습관과 사고와 같이 체화된 기억을 바꾼다는 것은 경험의 다양성, 새로운 가치에 대한 인식들로 기존의 각인되었던 것들을 갈아냄으로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리고 기억의 지움은 새로운 대상으로의 변화를 예고하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은 기억의 상실을 동반한다.

고경남_지귀-흐릿하지만 마주친_캔버스에 유채_112×145cm×2_2017

새로움을 향한 변화는 체화된 것들 떠올리는 것들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낯선 것들과 우연한 것들 불편한 것들을 친구로 삼고 몰입하게 한다. 그러나 그 변화들의 행위들이 중첩되어질 때마다 반문되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오래된 가치적 확신이다. 그래서 고경남 작가는 때로는 스스로가 알 수 없는 자신의 행위들 속에 일정한 제한 조건들을 만들고, 그리고 최대한 열정으로 전환하고자 하는 그의 예술의 신념들은 종종 좁디좁은 형식과 표현 자체에 갇히기도 한다. ● 그래서 "지우기"였을까? 그의 작업은 그리기보다 지우기에 더 많은 행위를 소모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갖추어진 형식과 규칙들을 버리고, 관찰의 습관들을 바꾸고, 표현하고 묘사하는 방법들을 지운다.

고경남_무심천, 거닐고 거닐다_캔버스에 유채_53×65cm_2017

필자와 고경남 작가가 처음 소통한 작품들은 세밀하게 묘사하고 표현하는 기법들이 복제되는 형식의 그림이었다. 2014년의 청주의 "숲속 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 "기이한 숲"에서 보여줬던 거대한 풍경 안에 숨어 있는 아이의 모습을 그려낸 그 작품들의 회화적 흔적은 지금 오늘의 전시작품들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가 없다. ● 뚜렷이 달라진 회화이미지들 만큼이나 형식과 서사가 선명했던 과거의 그의 작품들 「기억의 숲-감추거나, 숨기는, 침략의 반짝임, 바람꽃, 속삭이는, 꿈을 마주보다」의 외연을 구축하던 회화적 방법들은 해체되었고, 오늘날의 작업에서는 내적인 표현의지의 형상들, 풍경과 기억의 해체, 대상과 시선의 분할, 선과 색의 중첩, 구도와 외곽의 흐트러트림들이 혼재되어 있다. 그렇다면 그의 과거의 작품들로부터 오늘의 작업들로 통과한 것들은 무엇일까?

고경남_흘러가는 덩어리1,2_캔버스에 유채_163×130cm×2_2017

필자의 눈에 확연히 다르게 보이는 것은, 과거와 기억의 흔적들의 표현이라는 고정적 시각들을 벗어나고자 하는 작가의 '지우기'에 대한 몰입이었다. 그의 기억과 행위의 차이는 '그리다' – '지우다'를 연결하고, 그리고 새로운 방식으로의 '그리기'로 전환한다. 무질서와 정보사이의 연결을 예술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오늘날의 필자만의 비평적 방법은 아니다. 그러나 더욱더 관심을 가게 하는 고경남 작가의 "숨겨진" 것들의 대한 발견은 획과 의미, 면과 색 사이의 공간속에서 전혀 낮선 의미와 느낌을 창조할 수 있는 자질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필자는 그것이 때로는 독창적인 방식의 달콤함에 숨겨진 생생하고 격렬한 날 것 같은 육화된 내장과 같은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고경남_중얼거리다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7
고경남_중얼거리다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7

그래서 오늘의 그의 작업에 보이는 기억하는 풍경에 대한 '지우기'의 과정들은 원석을 다듬는 보석공의 반복적 작업들보다 더 자주 자기변화의 반복적 행위를 수행하는 방법들로 표면화된다. 내부에서 표현 언어를 통제하고 있는 개연성의 법칙을 깨트리기 위해 반복적인 표현 언어 구조를 통해서 통상적인 의미와 관계없는 정보들을 전달하는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그것이 고경남 작가의 회화적 중얼거림이다. ● 이제 예술가로의 불완전한 시작은 내일에 대한 모험심으로부터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 살아가기의 작가 자신을 만들고 있다. ■ 성원선

Vol.20171113k | 고경남展 / KOKYUNGNAM / 高炅男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