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1104_토요일_06:00pm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일요일 휴관
충정각 SPACE CHUNGJEONGGAK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길 8(충정로3가 360-22번지) Tel. +82.(0)2.313.0424
현재에 살아 있는 과거 ●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3가 360-22번지에는 한국풍과 이국풍이 혼합된 양식의 고택 한 채가 같은 자리를 100여 년째 지키고 있다. 충정로역 대로변에 인접한 좁은 골목으로 들어서면 예상하지 못했던 공간과 만나게 되는데, 한 눈에 보아서는 그 성격을 알 수 없다. 오래된 수목들과 석탑 그리고 디딤돌이 놓인 아담한 흙마당이 있고 흔한 담장조차도 없는 이공간은 그 누구라도 환영한다. 이곳에 발을 들인 사람들은 마당을 지나 고택 안으로 들어가는 짧은 걸음동안에 친숙하지만 낯선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공간의 초입에서 마주치는 '충정각'이라는 명패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안으로 들어서면 저마다의 향미(香味)가 감각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 '충정각'은 그동안 대안공간으로 알려져 있었다. 현재 이곳은 레스토랑을 겸한 전시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신진작가들의 재기 넘치는 작품들이 걸리는가 하면, 소규모의 대안적 학술행사 등의 예술모임이 열리고 있다. 그런데 이곳이 100여 년의 오랜 역사를 지닌 장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고택은 대략 1910년경에 건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자료에 따르면 현재의 충정각은 독일인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는데, 유럽과 일본 그리고 한국 건축이 혼융된 사택이란 점에서 한국근대 문화사적 의의와 보존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2007년 초까지 사택으로 사용되다가 부분적으로 보수공사를 거쳐서 같은 해 9월에 '대안공간 충정각'으로 개관하였다. 개관기념전시 『BBEULJIT』展에 붙인 글을 보면, 현재 충정각의 대표인 문동수씨는 건축의 옛 모습을 보존하고자 집 외부 마당은 거의 원형을 보존하면서 내부공간만 전시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보수했다고 한다. ● 충정각이 1910년경에 건축되었다면 100여 년이 훌쩍 넘는 오랜 세월을 지켜온 셈이다. 게다가 2017년 올해는 현재의 충정각이 일반 사택에서 전시공간으로 재탄생한 지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1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 시간이 교차하는 장소에서 11월 4일부터 30일까지 고봉수, 김민영, 김성욱, 소수빈, 최진호 작가의 『시간의 지층과 기억의 풍경』展이 열린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 또한 '충정로'와 인연이 깊다. 고봉수, 김성욱, 최진호 작가는 유년시절부터 이곳 충정로 일대를 삶의 터전으로 하여 성장하였고 현재까지 오랜 시간의 지층에 그들의 일상풍경을 예술세계에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작가들과 오랜 교우(校友)를 맺어 온 김민영, 소수빈 작가가 의기투합하여 공간의 의미를 더욱 풍성하게 이끌어 주었다. ● '상외지상(象外之象)'의 경계(境界)에서 바라보다 중국 동진시대의 학인이자 예술가인 고개지(顧愷之)는 '형(形)'으로써 '신(神)'을 묘사해야 한다고 말한바 있다. 여기서 '형'이 외적인 형식이라면 '신'은 형과 대비되는 내면적·정신적인 측면을 말한다. 즉 작품이란 작가의 내면과 정신이 투영된 '형상(形像)'으로 구현된다는 뜻이다. 보편적인 기준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상식적인 말이다. 그러나 오늘날 예술가들에게 '상(像)'이란 그리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대체로 구체적인 형상을 통해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현한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따른 한편으로는 회화나 조각이라는 '상'의 밖에서 자신의 예술적 지향점을 바라보고 있다. ● 푸전위안(浦震元)의 의경론(意境論)에 따르면 이와 같은 상황은 '형상 너머의 형상[象外之象]', 다시 말해 외적인 묘사중심의 '형사(形似)'가 아닌 '신사(神似)'라는 정신적이며 내면적 경지가 내포된 의경(意境)을 실천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부연하면, 예술작품의 외재적인 표상보다는 감정이나 경물(景物), 추상과 구상이라는 '형상 밖'의 경계(境界)에서 끊임없는 형상의 촉발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심원한 뜻을 확장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형상을 보는 동시에 '형상 너머의 형상[象外之象]'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고봉수 작가는 인체조각이라는 견고한 기호적 측면보다는 보편성의 문제로 시선을 이동시키고 있는듯하다. 마치 '상(像)'의 이면에 내재된 절대적 추상성을 지향하듯이, 인체에 대한 미의 관념화, 미적 형상화에 대한 고착된 개념에 주목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본다. 전통과 현대 그리고 동서로 양분된 '종교관, 인간관, 세계관' 과 같은 이념적 틀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상과 상 또는 오브제를 중첩하여 결합하는 방법으로 형(形)의 과장과 왜곡을 시도한다. 또한 전통조각이 지닌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조각의 표면에 광택을 입히는데, 예를 들어 '알루미늄 박' 같은 이질적인 재료를 덧씌움으로써 형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은폐시키고 있다.
김민영 작가에게 자신이 속해있는 도시의 일상은 그야말로 작업의 출발점이 된다. 생활의 터전인 '집'을 구심점으로 하여 '나-가족-집-마을-도시'등의 관계에서 자신의 작업에 대한 근거를 찾아간다. 작가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도시의 낮과 밤의 풍경을 따뜻한 시선으로 제시함으로써 '집'을 이 모든 도시 생활을 대표하는 상징이자 근원으로 위치시키고자한다. 각기 다른 집의 형상을 반복적으로 축적하고 이들 개체의 단위를 집적하여 변화를 꽤하거나 '파노라마 뷰(panorama view)'로 확장시켜서 화면에 넓게 펼쳐서 일상에 짐 지워진 무게와 일상의 풍경에 접근하고 있다.
김성욱 작가에게 조각은 국내외의 여러 곳에서 채석된 대리석이라는 물질이 지닌 특성과 조형을 거짓 없이 성실하게 탐구한 매일의 생활기록과 같다. 작가에 의하면 '돌'을 다루는 작업의 구조적인 성격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과 육체적으로 강도 높은 노동과 체력이 요구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운동을 접하게 되었고 일상이 된 운동을 즐기면서 신체의 '움직임'으로부터 온 영감을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대리석에 투영하게 되었다. 작가에게 운동과 함께 중요한 휴식 또한 작업의 연속된 과정일 것이다. 이 사후적인 요소들은 돌이 지닌 원초성으로부터 삶의 건강한 기억들을 이끌어내는 동력이 될 것이다.
소수빈 작가는 어떠한 상(像)이나 물(物)로부터 자유로운 시선들을 화면에 펼쳐낸다. 작가는 자신의 말처럼 '새롭고 특이한 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식물의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다양한 식물이 지닌 생태적 특징을 살펴 그들의 체계를 만들고, 식물에 잠재된 생명성과 순환과정을 천천히, 그러나 과학적인 면밀함을 바탕으로 관찰하고 기록한다. 그에게 작업은 때때로 일상과 교차하면서도 단단한 평행선을 그려나가고 있는듯하다. 외적인 형상의 모방행위 차원에서 벗어난 그의 시선은 한편으로 절제와 냉정함이 수반된 작업태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새로운 것을 쫓기보다는 자신의 내부로부터 발현되는 현상에 따라 작업해 나아가는 일상의 과정일 것이다.
최진호 작가의 대표작인 '해치상'과 '물확'에서는 개성 있는 '한국의 화강석'이 지닌 에너지, 시각적인 활력과 함께 한국적 정감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시비와 선악을 판단한다고 알려진 상상의 신수(神獸)인 '해치'를 조형적으로 재해석하는 연구를 오랫동안 해왔다. 수반(水盤)이라고도 불리는 '물확'과 현대적인 해치상의 조합은 건축과 디자인 영역과 친밀함을 형성하면서 친근하게 다가온다. 이들은 자연 상태의 바위나 연못의 축소판같이 보이기도 하는데, 재료를 지나치게 다듬는 행위를 자제한 면에서 한국 전통 석조건축에서 덤벙주초[-柱礎]와 같은 자연미가 엿보인다. 이렇듯 과거의 문화적 전통과 맞닿아 있는 해치상은 잊혀진 한국미와 함께 조각의 원형을 떠오르게 한다. ● 현재에 소환되는 기억의 풍경들 인간은 한계성을 지닌 객체에 불과하지만 이에 반해 생명은 영속적이다. '일상'은 그 영속성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구체성을 바라볼 수 있다. 사람들은 현재를 이해하기 위해, 다른 한편으로 잊혀진 감성을 이끌어내기 위해 때때로 과거를 소환한다. 이곳 '충정각'은 단순한 전시장이 아니다. 100여 년 동안 이곳을 거쳐 간 무수한 사람들의 기억과 그들의 '시간의 지층'이 켜켜이 살아있는 '현장(site)'이다. 충정각 주변 일대에는 오랜 시간을 간직한 건물들이 적지 않게 위치하고 있으며 함께 지리적, 역사적인 문화지형도를 그려가고 있다. 이번 『시간의 지층과 기억의 풍경』展은 시간성과 장소성이 혼융된 문화사적 의의가 '예술과 일상' 그리고 '문화향수'의 경계와 만나는 지점이 될 것이다. ■ 김수진
Vol.20171104k | 시간의 지층과 기억의 풍경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