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1101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30pm
공아트스페이스 GONG ART SPACE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62-5 5,6층 Tel. +82.(0)2.735.9938 www.gongartspace.com
11월1일(수)부터 11월 7일(화)까지 인사동의 공아트스페이스에서 90세의 나이에도 꾸준히 작품활동을 이어가고 계신 원로 화백 이경순선생님과 단국대학교 서양화과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조기주작가의 『이경순·조기주 모녀전: 연속, 그러나 불연속』展이 열릴 예정입니다. ● 이번 모녀전에서는 특별히 이경순화백의 70년이 넘는 작품활동 기간을 회고하며, 이 화백의 주요 작품 30여 점과 전시를 준비하며 찾아낸 50~60년대 작품을 함께 선보입니다. 평생을 꽃, 특히 장미를 그리며 대표적인 원로 화가로 활동해 온 이경순화백이 명성에 안주하지 않고, 예술에 대한 열정과 성실한 삶의 태도로 조화시켜 온 대표작들을 집중하여 조명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1953년 제2회 국전을 시작으로 연 16회의 입선과 4번의 특선 수상 등 젊은 시절부터 화단의 인정을 받으며, 여성 서양화가로는 유일하게 1977년 국전 추천작가, 1982년 국전 초대작가를 역임한 이경순화백은 1946년 가을, 이화여자대학교 미대에 입학해 1950년 5월 서양화전공으로 졸업한, 대한민국에서 정규 교육을 받으신 1세대 국내파 화가입니다. 또,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대구로 피난을 가 있으면서도 헛간에서 작품 활동에 열정을 쏟아 부은 집념의 화가이기도 합니다. 생존한 1세대 국내파 화가가 이제는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붓을 놓지 않은 이 화백의 열정과 집념은 더욱 높이 평가됩니다. ● 또한 딸 조기주작가는 새로 제작한 시멘트 재료로 만든 8점과 25점의 드로잉 등 30여점의 작품을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입니다. 단국대 교수로 재직하며 지금까지 29회의 개인전을 가진 그녀는 70년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차점에서 작품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모더니즘의 개념을 내세우는 조기주작가는 해외 유학파 여성 작가의 입장에서 남성중심적 사회에서의 역할과 적응을 고민하며 폭넓은 작품활동을 해왔습니다. 원으로 상징되는 우주, 생명의 순환, 탄생의 신비와 같은 관념적인 이미지와 함께 2008년부터는, 가치가 없어 버려진 것들을 화면 위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재탄생시키는 「The Stains of Life」연작을 선보이며 작가만의 연금술을 보여왔습니다. 특히 2014년부터는, 벽에서 떼어낸 듯 거친 시멘트 화면 위에 페인팅을 펼치며 조기주식 '그리기 전투'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조기주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흑연, 구리, 쇳가루, 녹청, 금박 같은 현대문명사회의 상징이자 부산물인 재료들을 자유롭게 활용하여 새로운 예술 지평을 제시합니다. ● 이번 전시를 통해, 어머니에게서 딸로 이어지는 70년의 작품세계가 한국근대미술에 작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기 바랍니다. 아울러 이 전시는 구순(九旬)을 맞은 어머니께 드리는 딸의 선물인 한편, 60년 이상을 함께 하여온 어머니와 딸이 그 동안 주고받은 예술에의 열정들을 여러분께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되었습니다. 1994년 『창』이라는 제목으로 가졌던 첫 번째 모녀전, 2015년 이경순화백의 미수(米壽)기념으로 진행하였던 두번째 모녀전 이후 서울에서 가지는 세 번째 모녀전에 많이 관심을 부탁드리며, 부디 자리하시어 감상해 주시기 바랍니다. ■ 공아트스페이스
연속, 그러나 불연속: 『이경순․조기주 모녀전』에 관한 단상 ● 2017년 『이경순․조기주 모녀전(母女展)』을 알리는 포스터에는 두 사람의 얼굴이 등장한다. 한 사람은 어른이고 다른 사람은 아이인데 이러한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둘은 퍽 닮아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모녀지간'이다. 하나는 이경순(1928~ )이 1965년에 제작한 「자화상」이고 다른 하나는 1960년에 제작한 「기주」다. 이 때의 기주란 물론 그녀의 딸인 '조기주'를 가리킨다.
그런데 어머니는 자기 딸을 그리면서 무엇을 보았을까? 딸의 얼굴은 어머니의 얼굴과 매우 닮았으면서도 똑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녀는 자기 딸을 그리면서 한편으로 그 얼굴이 자신의 얼굴과 아주 닮았다는 점에 매료됐을 것이고 다른 한편으로 그 얼굴이 자신과는 다르게 생겼다는 점에 끌렸을 것이다. 이 화가는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매 시기 자기 딸을 그렸는데-이 그림들은 한국현대미술사에서 어머니/화가가 자기 딸을 그린 아주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거기서 딸은 늘 같은 모습이면서도 다른 모습이다. 어쩌면 어머니에게 딸은 '나'이며 동시에 '타자'가 아니었을까? 어머니의 입장에서 딸은 "나의 자식은 나의 분신"이라는 일상적 표현이 말해주듯 먼 장래에도 세상을 살아갈 "또 다른 나"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또 다른 나"는 주지하다시피 내가 결코 지배할 수 없는, 나의 힘을 행사할 수 없는, 나의 힘에 대해 낯선 존재, '타자'이다. 곧 어머니에게 딸은 '나'이지만 또한 '나와는 다른 존재'이다. 따라서 이경순의 「기주」 연작과 더불어 우리는 초월의 문제를 숙고할 수 있다. 초월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내가 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지만 내가 사라지면 초월 자체가 가능하지 않기에 레비나스(E. Levinas)가 말했듯 초월은 "여전히 나이되 또 다른 이로 변화함transubstantiation"을 조건으로 삼는다. 같은 이유에서 레비나스는 아이를 낳는 일, 곧 출산(出産)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출산을 통해 "나는 여전히 나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나의 존재 및 내가 구성한 세계와 다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얼굴과 동일하지만 다른 얼굴"을 담은 「기주」 연작에는 출산(초월)의 함의가 깃들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기주」 연작이 함축하는 "같은 것이지만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은 이경순의 다른 작품들에서 매우 폭넓게 나타난다. 이를테면 이 화가의 「장미」 연작은 굳건한 선과 형태를 지닌 장미꽃들이 빛과 색채로 만개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장미」연작은 변함없이 유지되는 것(동일성)과 계속 변하는 것(차이)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에 관한 회화이다. 그런가하면 박영택이 '관계의 미학'으로 설명한 1990년대 이후의 작업에서 이경순은 3차원 입체감을 최대한 억누른 평면적인 화면 안에 창(窓) 안쪽의 공간과 창 바깥쪽의 공간을 아울렀다. 이로써 '나의 공간(실내)'과 '타자의 공간(실외)'은 불가피하게 '하나'가 됐지만 그럼에도 화면 안에서 그 각각의 고유성은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이 작품들의 독특한 매력이다.
이제 딸의 이야기를 시작할 차례다. 조기주는 어머니의 그늘에서 작업을 시작했으나-그녀는 어머니의 모교인 이화여대를 졸업했다-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회화를 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가에게는 '분리'에 대한 욕구가 매우 두드러진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딸과 어머니 사이에는 강고한 연대의 끈이 존재하며 딸은 그 연대의 끈을 한 번도 놓은 적이 없다. 그리고 다시 조기주의 전작들을 차근차근 살펴보면 이 작가의 작업 전반에는 어머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초월에 대한 관심이 매우 두드러진다. 게다가 조기주의 작업들에서 초월의 문제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리고 본격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1991년 개인전 도록에 실린 「물질과 정신성」에서 조기주는 살아있는 물질을 발견하는 회화의 연금술을 강조하며 "그런 연금술적 변질(transmutation)을 통해 물질은 초월적 존재양태가 되고 구제되어 영원불멸성을 얻는다"고 강조했다. 물질이로되 물질과는 다른 것(다른 존재양태)이 되게끔 하는 회화야말로 조기주 회화의 지속적인 탐구과제였다. 이러한 탐구는 자기동일성-우주, 순환, 알, 생명, 자궁-의 상징에 해당하는 원(圓), 좀 더 정확히는 "운동을 머금고 있는 원"(이경성)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처음 자기 작업을 시작한 이후 조기주는 지속적으로 원을 그려왔으나 그 원은 단 한 번도 같은 원이었던 적이 없다. 캔버스 평면에 그려진 원은 물론이거니와 2004년부터 매체로 사용한 인공진주, 1999년 이래의 영상작업에 등장한 입, 눈, 귀와 같은 구멍들, 2014년 애니메이션필름 등장한 원을 그리는 손동작, 그리고 2014년부터의 시멘트 작업에 등장하는 원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원들은 차이의 선(線)을 그리며 생명의 출산(出産)을 거듭해왔다. 계절이 돌고 돌아 또다시 가을이 찾아왔으나 그 가을은 지나간 가을과 같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지나간 가을과 퍽 닮았으나 지나간 가을은 아닌 것이다. "연속, 그러나 불연속" 이것은 조기주가 2006년 제작한 영화의 제목이다.
지금 내 앞에 둥근 시멘트 위에 꼬물꼬물 달라붙어 있는 얼룩들이 있다. 시멘트를 비집고 올라온 철사들이 그리는 날카로운 직각 그리드도 보인다. 그것들이 한데 어울려 자아내는 동세는 꽤 놀랍지 않은가. 그 변함없는 둥근 것들, 그 차가운 시멘트들이 숨을 쉬며 꿈틀대는 것만 같다. 거기서 나는 아주 오래 전에 자기 어머니의 그림들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관찰하고 있는 어린 딸을 그려본다. 이 아이는 어머니가 그린 수많은 장미와 야생화들의 작은 차이들을 식별하고 그 차이가 내포하는 감정 선(線)을 헤아릴 줄 아는 아이였을 게다. 이 아이가 훗날 화가가 되어 염원하게 될 "최고조에 달한 자유"란 그러니까 오래 전에 이미 주어져 있던 건 아니었을까? ■ 홍지석
이경순 조기주 모녀전을 열며 ● 나의 어머니 이경순은 1928년 충북 영동에서 태어나 옥천에서 자라다, 외할아버지의 만주교역사업으로 함경북도 웅기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셨다. 이후 해방과 함께 서울로 오게 된 어머니는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46년 가을, 이화여대 미술대를 입학해 1950년 5월 서양화전공으로 졸업하셨다. 그러니 어머니는 대한민국에서 정규교육을 받으신 1세대 국내파 화가이시다. 그리고 어머니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한 달도 못되었을 때 한국전쟁이 발발했다. 1·4 후퇴 때 대구로 피난을 가셨고, 그곳에서도 화가로서의 열정은 계속되어, 헛간을 개조해 작업실을 만들어 그림을 그리셨다고 한다. 그 후 1952년 봄, 당시 공군 장교이던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다. ● 어머니는 서울이 수복된 이후, 1953년 제2회 국전을 시작으로 1976년까지 거의 해마다 작품을 출품하셨다. 그리고 1977년에는 특선 4회에 입선 16회라는 업적으로 추천작가가, 1982년에는 초대작가가 된 국전 출신 작가이시다. 또한 1956년 동생 조기욱을 낳은 후 대학원에 진학하여 1962년 석사학위를 받으셨다. 이런 나의 어머니 이경순 화백은 아마도 1세대 국내파 화가 중 생존하여 지금까지도 붓을 놓지 않은 거의 유일한 화가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편, 본인은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교차점에 존재했던 한국여성작가이다. ● 1975년도에 대학에 입학하여, 79년 졸업을 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82년 귀국한 본인의 미술수학 과정은 지금 생각하면 평범하다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결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우리전후 베이비붐 세대가 겪어온 전환기의 진통과 경쟁이 있었다. 그 과정들과 함께, 해외 유학파 여성 작가로써 모더니즘 개념을 내세우던 본인은 남성중심적 사회에서의 역할과 적응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본인 역시,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등의 고난 속에서도 작품활동을 이어온 어머니의 열정과 성실함을 이어 받은 덕분에 지금까지도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이번 전시는 구순을 맞은 어머니께 드리는 딸의 선물인 한편, 60년 이상을 함께 하여온 어머니와 딸이 그동안 주고받은 예술에의 열정들을 여러분께 소개하는 자리로 마련하였다. 이 전시를 통해 한국근대미술에 작게나마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바람이다. (2017. 9. 25.) ■ 조기주
Vol.20171102h | 연속, 그러나 불연속-이경순_조기주 모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