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첩된 간극

윤동희展 / YOONDONGHEE / 尹棟禧 / installation   2017_1031 ▶ 2018_0408 / 월요일 휴관

윤동희_붉은 시간_붉은색 전구_1분에 8회전모터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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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9:00am~06:00pm / 월요일 휴관

향촌문화관 HYANGCHON CULTURAL CENTER 대구시 중구 중앙대로 449(향촌동 9-1번지) 기획전시실 Tel. +82.(0)53.661.2331 hyangchon.jung.daegu.kr

피부, 은폐, 가시화 ●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겹들에 대해 작가는 시간의 피부를 떠올렸다. 실현해야 할 시대적 가치들을 향한 시간은 우리의 뒤에서 과거를 향해 돌아선 시간에 의해 대체된다. 이것은 형태들의 변형으로 가시화되며, 중첩되어 구조된 오랜 건축의 파사드들 속에서 발견되는 장면들이다. 원래 파사드는 건물의 정면으로 그 건물을 체험하는 사람들의 몸 움직임은 물론 건물에 대한 태도까지도 결정하도록 일조한다는 건축의 사회구조적 문화사의 한 단면으로 다뤄진다. 근현대 건축물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북성로(대구 중구)에서 일제 강점기 때부터 경제 호황기,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간을 두고 파사드 위에 파사드, 또 그 위에 파사드를 중첩해놓은 희안한 증거물들은 발견하기 어렵지 않다. 시간의 때가 고스란히 간직된 허름한 건물의 외피를 가리는 도구적이고 기능적인 겹들을, 그 기능을 충분히 추정하고도 남을 만큼 노골적이다. 파사드는 건물에 단순히 종속되어 있기보다 그 표면만을 보고 건물의 쓰임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지각적 경험을, 직간접적으로 영향미치는 외부 환경 사이에서 적극적으로 작용해야만 하는 역할을, 즉 '소통'을 이 건물의 얼굴이 있어야 할 궁극목적으로 삼는다. 물론 작가는 파사드 구조 자체에 대한 탐구에만 몰입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시대를 상징하는 각각의 겹들과 형태가 작가에게 투척하는 질문을 수용하고, 건물의 뒤편이 보내는 은폐된 메시지를 포착하는데 집중한다. 또한 건물과 함께 시간성을 직접적으로 닿게 하는 표면과 메시지들에 대해 특유의 냉소적인 감성으로 풀어놓은-언제나 그랬듯- 해석들이 과거의 작업들과 비교하며 보기에도 대단히 흥미롭다. 그가 예술을 예술로서 식별하는 가시성과 담론성이 늘 자신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기에, 그렇기에 시각예술 안에서 주제에 대한 접근방식과 리서치-정치 및 역사, 사회적 비극과 실천에 대한 고민들-를 특유의 감성과 비판적 관점으로 이끌어가는 각 지점들이 공허하지 않았음을 지켜봐왔다. ● 온갖 욕망들이 충돌하는 근현대사 속에서 그 비극이 파사드에 닿는 지점과 바로 기념되지 못한 삶(일상)의 장면들을 애도하듯 자본과 역사에 대한 폐부를 찌르는, 장면들이 펼쳐지는 장소는 과거 한 세기 동안 은행 건물로 쓰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에서 총 5개의 섹션을 통해, 자신의 주제와 장소적 해석을 적절히 결합한다. 작가적 고민을 위한 리서치들을 시발점으로 담은 입구에서부터, 장소적 특성과 비판적 문맥들을 결합한 작품들, 또한 파사드의 피부와 시간성이 결합되어 흐르는 영상작업 등 그리고 가야할 바를 놓친 욕망의 향방을 보여주는 설치작업 등이 소개된다. 반복적으로 서로를 가리는 형태들이, 중첩된 파사드-애초 '소통'의 기능을 갖는다 할지라도-는 결국 소통되지 못한 시대 혹은 세태를 가리킨다. 현재까지도 종속되어 버린, 괴물같은 개발사회의 비극이다. 서로 진득한 덩어리들은 그렇기에 은폐된 구조와 대체됨의 형식에 의하여 '간극'으로 자리하고 있음을 이 표현은 무엇보다 적절하다. ■ 최윤정

윤동희_그려진 겹_실크에 드로잉_270×65cm_2017

파사드, 기억, 겹 ● 향촌동과 북성로 일대의 일본식 적산가옥 위에 덧입혀진 직각의 파사드를 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던 적이 있다. 현대식 건물처럼 보이도록 파사드를 덧입힌 것은 한 때의 건축적 유행으로 만들어진 결과일 수 있겠지만, 그 광경을 보던 내내 머릿속에 머물던 의문이 있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이 부끄러웠을까?' ● 식민지 시절의 아픈 기억 위에 가짜로 덧입혀진, 현대식과 서양식이 혼합된 파사드는 우리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떠올리게끔 만들었다. 그것이 가까운 과거의 우리 모습이었고 지금까지의 우리 모습이다. 그 욕망은 보편성과 타당성을 얻기 위해 거짓을 말했다. 마치 덧입혀진 파사드처럼. 또 지금까지 이어지는 새로운 욕망은 이 모든 기억들을 말소시키기라도 할 것처럼 현재의 기술을 빌려 여전히 수직의 공간들을 포위해가고 있다.

윤동희_그려진 겹_실크에 드로잉_270×65cm_2017

북성로에 존재하는 일본식 목조건물위에 덧대어진 타일건물(파사드)을 보고 이 작업을 떠올리게 되었다. 성벽이 헐리고 북성로가 생길 때 일본식 목조건물이 들어왔다.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고 시대가 몇 번이나 바뀌었지만 건물의 시간은 세상의 시간보다 느렸다. 급변하는 시대만큼 깊이 없는 유행을 따라, 현대적으로 보이기 위해 새로운 파사드들이 건물위에 덧입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과거의 현상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두 겹의 파사드 위에 지금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파사드를 덧입히기로 했다.

윤동희_밀려난 기억_계수기에 사진, 2채널 비디오_가변설치_2017
윤동희_밀려난 기억_계수기에 사진, 2채널 비디오_가변설치_2017

북성로에 존재하고 있는 건물들을 스틸이미지로 촬영하여 지폐크기로 잘라 순간순간들을 나열하여 빠르게 보여 지는 것을 촬영하여 영상으로 보여준다. 건축물은 사람들의 중요한 자산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의해 급변하는 사회의 밀려나는 시간들을 중첩된 스틸이미지를 통해 말하고 싶다.

윤동희_파사드의 피부_프로젝션 맵핑, 구조에 영상, 사운드_00:04:13_2017

도시 안에는 수많은 파사드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작업을 통해 도시 안에 숨어있는 파사드들을 드러내고자 했다. 파사드라는 단어에서 도시의 표피 또는 껍질이라는 아이디어를 구상했고 그 도시의 표면을 관찰 하면서 상처 나고 파이고 갈라지며 새로 생성된 표면들이 '마치 사람의 피부와도 같다.'고 생각하였다. 일상적으로 마주하는 삶의 파사드를 조합하고 시간별로 배열하여 마치 피부가 갈라지고 벗겨지듯 균열과 함께 깨지면서, 껍질이 떨어져 나오도록 표현하고 도시의 표피를 통해 기념되지 못했던 일상의 역사를 드러낸다. ■ 윤동희

Vol.20171031g | 윤동희展 / YOONDONGHEE / 尹棟禧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