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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정희영 퍼포머 / 강기석_김승록_주혜영 공간연출 / 정진욱 디자인 / 아트스트 촬영 / 이미지줌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캠퍼스 정문 서울 성북구 화랑로32길 146-37
서울혁신파크 예술동 SEOUL INNOVATION PARK 서울 은평구 통일로 684(녹번동 5-29번지) Tel. +82.(0)2.6365.6809
1. 창작자가 작업에서 자신이 아닌 자를 다룰 땐 위험하다. 더군다나 강기석의 경우 작업에서 작가가 직접 그들이 되려는 듯 행동하는데, 되려는 자가 사회적 약자일 때, 그 작업은 취약한 위치에 놓인다. ● 작가가 작업에서 진실하게 자신이 아닌 자를 다룰 수 있는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 작업을 컴퓨터에 틀어놓고 11년 그의 첫 개인전을 상상한다. 영상작업에 등장하는 강기석은 절름발이, 장님 등 다른 대상의 몸짓이나 언어를 흉내 낸다. 간절하고 애달픈 마음으로 그들을 연기하려 노력한다면 차라리 그 시도를 이해하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아닌 자를 어설프게 따라하면서 관람자의 불쾌 역치를 건드린다. ● 사실 이 불편한 일련의 작업들은 무겁고 지지한 대의가 아니라 과거 학교를 통학하는 길에 떠오른 사소한 고민에서 시작한다. 그는 다른 분들에겐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데 유독 가래떡 파는 할머니와 동냥꾼에겐 그러지 못한 경험에서, 행하려 했으나 행하지 못한 내적 이유를 찾고자 한다. 그리고 그 탐색의 과정에 작업이 놓인다. ● 11년 한 영상작업에서 그는 테이프로 만든 사각의 공간을 따라 옷을 벗으며 편치 않게 절뚝인다. 절름발이를 흉내내는 장면은 울리는 벨소리에 전화기로 성큼 걸어가는 장면으로 전환한다. 작업에 다른 대상을 모사한 신체와 그 상황을 벗어난 신체가 병치한다. 그의 무거운 작업엔 작은 가벼움이 숨어있다. 그리고 이 지점이 모여 그가 보편의 영역으로 당겨가려는 대상이 '폭력이 가해진 대상을 떠올리면 내면이 복잡해지는 자'임을 밝힌다. 그는 직접적으로 타자를 논하지 않는다. 시각적 불편함을 자극하는 작업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관객이 작가가 모사한 대상을 연상하도록 할 뿐이다. ● 작가의 도발은 더 과감하게 행해진다. 동일한 해에 제작한 다른 영상작업에서 작가는 살생을 감행한다. 파리를 조각내고 핀으로 살생하는 영상을 보면, 그가 건드리는 윤리적 금기는 뜨거운 것을 넘어 따갑다. 강기석은 왜 이런 작업을 지속하는가. 작가는 "보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을 위반한" 작업을 수행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전시란 "경쟁에 이기기 위해 위험한 상황을 연출하고, 그 상황을 회피하는 사람이 겁쟁이가 되는 단순한 게임"이기에, 작업엔 언제나 꼴보기 싫은 장면이 저질러진 상태다. 일상에서 보는 것은 기본적인 행위다. 근데 그 쉬운 일이 강기석의 전시장에서 짐이 된다. ● 11년 개인전 『수취인부재: 나는 타인의 고통에 노출돼 있다』展와 16년 기획전 『공감 오류: 기꺼운 만남』展에서 나타난 작업적 변주는 두 눈에 무거운 짐을 더 얹는다. 11년 직접 살생을 행한 경험과 다른 대상을 체화한 경험은 네 개의 영상작업에서 별개로 나타나는데, 16년 작업에서 이 두 경험이 딱 만났다. 영상에서 작가가 개입한 부분만을 언급하자면, 작가는 죽은 염소를 박제하고 그 염소를 각목에 고정시킨 채 함께 산책한다. 작가는 염소의 의사와 상관없이 박제를 감행한 '가해자'인 동시에 염소가 마치 살아난 듯 그 걸음을 '복기하려는 자'다. '폭력을 가하는 자'와 '폭력이 가해진 대상을 떠올리면 내면이 복잡해지는 자'가 한 작업에서 만나고 충돌한다. 작업 속 작가는 순수하고 우아한 자가 아니라, 순진하고 잔혹한 자다. 그는 성자가 아니라 죄인이길 자처한다. ● 작업 속 가해자를 마주하는 난 복잡하다. 다른 대상을 가학한 장면을 연상시키면서, 그들을 보호하려는 관객의 심리를 이용한다. 하지만, 그의 가해자적 내면은 내 안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기에, 급박한 감정적 동요는 인정하기 싫은 내 안의 과녁을 그가 명중시키면서 폭발한다. 용납할 수 있을 만큼 불편할 땐 작업을 관음할 수 있지만, 그 정도를 넘어서면 분해서 화가 난다. 만드는 자도 보는 자도 도망갈 곳은 없다. 나는 때론 숨을 고르고 가끔 눈을 감는다. 보는 것이 수치스러워 외면하면, 그 행위는 더 큰 수치심으로 찾아온다. 하지만, 얼굴을 붉힌 자만이 새로운 모험을 할 동력을 얻는다. 앞서 수치심을 자각한 작가는 변화를 모색하며 나아간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관객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 2. 17년 강기석 개인전 『순진하고 잔혹하게』展가 열렸다. 16년 강기석의 퍼포먼스가 전시 오픈을 알리기 위한 이벤트였다면, 지금은 퍼포먼스가 개인전의 전부이다. 이번 전시는 개인작업전이다. 부족한 설명에 작가의 예전 작업노트 「치킨 레이스」를 덧붙인다. "이 전시를 기획하고 행하는 바는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일도 아니요, 안타까운 일에 대한 동정을 표하는 것도 아니요, 비난을 가하는 일도 아니다. 다만, 전시로 변형된 형태를 따라 침묵과 욕망, 금기와 위반이 부딪치는 상황을 구성하는 잔혹극을 만들 따름이다." 그렇다. 이 전시는 그가 지금껏 걸어 온 작업적 여정을 닮아있다. '퍼포먼스'로 순진하게 행하는 강기석의 잔혹'극' 『순진하고 잔혹하게』展 1막 1장이 열린다.
그의 퍼포먼스 극을 기다리며 토마스 틸런의 시를 떠올린다. ● 순순히 어두운 밤을 받아들이지 마오 / 노인들이여 저무는 하루에 소리치고 저항하시오 / 분노하고 분노하시오 죽어가는 빛에 대해 ● 작가의 관심은 모두가 경험하는 상대적 약자인 '노인'으로 옮겨갔다. 수개월 동안 공원의 노인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반복적 행동을 관찰해 온 작가는 노인의 앞에서 금기를 행한다. 세 명의 퍼포머는 노인들이 사용하는 스쿠터를 이용하여 즉흥적으로 논다. 노인들이 앉아 쉬고 있는 야외(한국예술종합학교 정문)의 공원에서 우연적 상황을 수행했다면, 이후 실내(혁신파크 예술동)에선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을 감각할 때 충동하는 내면을 선보이는 자리다. 다가오는 퍼포먼스를 심상하기 위한 전시공간으로 혁신파크 예술동을 활용하기 위해, 퍼포먼스 준비과정을 관객에게 공개한다. 퍼포먼스를 위해 공간에서 설치가 이루어지는 상황을 프리뷰-퍼포먼스 형태로 선보이고, 완성된 설치공간을 마지막 퍼포먼스 전까지만 개방한다. 강기석은 이번 개인전에서 정리된 논의들의 그 모든 경계를 엉클어버리려 시도한다. ● 작가에겐 수치심을, 관객에겐 불편함을, 반감을 가진 자에겐 의혹을 제기한다하더라도, 그는 어쩔 수 없다. 그의 내면을 찾기 위한 이 모험을 지속할 수밖에. 강기석은 자신의 현실과 내면을 품은 작업으로 다른 사람을 끊임없이 두드리려는 자이다. 그 역설이 효과적으로 드러날 때, 작업은 펄떡인다. 강기석이 실패를 극복하기 위하여 반복적으로 시도하는 것은 한국화, 영상, 퍼포먼스로 옮겨가는 매체의 변화다. 서툰 매체사용법은 종종 총을 쥔 채 몸으로 싸우는 듯 보여지지만, 괜찮다. 작업에서 "돈키호테적 몸짓"을 반복해 온 그에겐 어색한 사용법이 가장 잘 어울린다. 시각을 통해 관객의 감정을 도발하는 작가 강기석은 감각하며 나아가는 돈키호테다. 그렇기에 그는 의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욕망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 판단은 그를 실패에 가까운 성공으로 이끌 것이며, 내려놓은 판단은 그는 성공에 가까운 실패에 도달할 것이다. 예술은, 적어도 내가 아닌 자를 다룰 때만큼은, 실패가 희망이다. ● 그의 작업을 통해 알을 깨부수고 나온 자가 있다면, 그자는 분명 끝까지 마주한 자다. 다가오는 그의 퍼포먼스를 마음을 잡고 기다린다. 강기석의 퍼포먼스를 마주해야 할 이유가 내겐 분명하므로. 이는 저물어가는 내면에 소리치고 저항하길 당신에게 제안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 정희영
퍼포먼스 안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 본래 저는 스스로 제 몸을 찍은 비디오 작품을 하곤 했습니다. 비디오 안에서 저는 어떤 은유적이거나 상징적인 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합니다. 그리고 미술을 전공하면서 배워왔던 기법들을 통해 그런 행동들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그것이 스스로를 합당하게 여기려는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지언정 예술이라는 장르 안에서 통용 가능한 보편적 자아의 여정으로 여겼습니다. ● 그런 반면, 작품 밖에서의 저는 예술이라는 것을 위해 고민하기보다 작품 안에서 어떻게 보일 것이지를 생각합니다. 비디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들은 비디오 작품 안에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어떤 의상을 입거나, 오브제를 준비하고 카메라의 샷을 누르기 위해 다가오거나 하는 것들입니다. 저는 그런 작품 밖에서의 제 모습을 분리하는 과정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기만하는 느낌일까요? ● 혹자는 예술가인 나와 생활인으로서의 나를 동기화하거나, 오히려 분리하는 것이 좋은 태도일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저는 자신 안에서 분열되는 자아의 거리감을 조절하는 것이 작품에서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순간에도 저는 항상 스스로를 선택하는 과정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 이번 전시는 제가 작품을 촬영하고 만드는 과정에서 느꼈던 고민들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퍼포먼스 현장이라는 것, 신체를 통해 어떤 현상이나 타인을 은유하는 것들입니다. 『순진하고 잔혹하게』展는 이런 과정 자체가 질문으로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노인을 바라보며 죽음에 대해 생각해봤던 장소에서, 동물실험을 했던 서울혁신파크 예술동(전前 질병관리본부 폐수처리장)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는 저의 유약함에 대한 잔혹한 시도입니다. ■ 강기석
퍼포먼스 1회 / 2017_1026_목요일_03:30pm 한국예술종합학교 석관동 캠퍼스 정문
퍼포먼스 2회 / 2017_1105_일요일_06:00pm 서울혁신파크 예술동
퍼포먼스 3회 + 작가와의 대화 / 2017_1110_금요일 퍼포먼스_06:00pm 작가와의 대화(강기석×양효실)_07:00pm 서울혁신파크 예술동
퍼포먼스 공간 개방 / 2017_1106~9_10:00am~06:00pm 서울혁신파크 예술동
Vol.20171026j | 강기석展 / KANGKISEOK / 康基錫 / perform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