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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025_수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동덕아트갤러리 DONGDUK ART GALLERY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B1 A실 Tel. +82.(0)2.732.6458 www.gallerydongduk.com
청아한 가을 하늘이 더 높아 보이는 10월. 먹의 향기로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이길원 작가님의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이길원 작가는 먹의 다양한 변화와 함축된 표현으로 자신만의 미적 언어로 작품을 하시는 한국화 원로 작가이십니다. 오랫동안 후학들을 지도하시다 얼마 전 정년을 맞이하신 후 새로운 작품을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이번 전시 작품은 요사이 흔히 볼 수 없는 먹을 이용한 비구상 작품으로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어 즐겁게 관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이승철
이길원-화면 내·외부의 경계에서 이루어진 사건 ● 작가는 커다란 장지에 가로, 세로 2.5cm의 칸을 연필 선으로 빼곡히 그려 넣었다. 흡사 원고지나 바둑판, 비문의 칸들을 연상시키는 작은 사각형/격자들로 가득 채워진 화면이 만들어졌으면 그 위에 약간의 두께를 지닌 종이를 잘라 일정한 면적을 막은 후 장지 화면과 그 위를 덮은 종이가 맞닿은 선의 경계에 걸쳐 진한 먹을 머금은 평필을 위에서 아래로, 수직의 방향성을 지닌 체 때린다. 표면에서 약간 부상한 높이에서 붓을 눌러 치는 행위를 무수히 반복하면서 점진적이고 부분적으로 화면을 채워나간다. 깡묵(농묵보다 더 진한 먹)을 사용해 농담의 변화를 주지 않고 고도의 집중력과 무한한 끈기를 요하는 장시간의 수작업 방식 아래, 한정된 규칙성 내에서 절제된 행위를 반복하여 제작하고 있다. ● 모필을 세워서 찍듯이 내려치는 일은 힘의 완급조절, 속도와 강도, 거리와 시간, 중력의 법칙 등이 관여하고 그 조건에 의해 주변(종이로 덮여진 부분을 제외한 바닥면)으로 튕겨나간 먹물이 다양한 선/얼룩을 남긴다. 작가는 매순간 자신의 감정에 따라 때로는 강하게, 약하게 찍는다. 이때 화면과 화면 외부의 경계에서 이루어진 행위가 그림이 되는데 그것은 화면의 내부도, 그 바깥도 아닌 둘의 접점에서 이루어진 사건의 결과이다. 그로인해 장지에는 어떤 식으로든 얹혀진, 교차하고 튕겨진 먹의 여러 풍성한 표정들이 흑백의 대비 속에 자글자글하게 얽혀있다. 손이 아닌 다른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우연적인 효과가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 이처럼 몸짓이 주체화되는 장소로서의 평면을 보여주는 이길원의 회화는 분명 자기로부터 출발하지만 자기 이외의 것과 우연적인 것, 미지의 것이 마구 얽힌다. 이른바 미지성이 숨 쉬는 화면, 아직 규정지어지지 않은 타자성을 허용하는 장소로서의 화면이 된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구성의 결과가 아니라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행위의 정직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미 선험적으로 완성된 생각을 화면 위에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는 일에서 항상 새로운 만남을 영위해 가는 그림이고 일회성과 반복성에서 이루어지는 작업이자 그 과정에서 일어난 모든 것을 포용하고 그 시간에 철저하게 순응하는 선에서 예측할 수 없는 결과물이 도출된다.
이 그림은 화면 전체를 계획적으로 구성 해나가는 게 아니라 특정 영역을 채워나가다 보니 결과적으로 의도하지 않은 효과들로 완성되는 형국이다. 작가의 의식에 의한 개입을 최소화하고 의도적인 만들기와 관념적인 창조를 최소화하는 방법인데 이는 작업의 과정 중에 작가의 계획된 의지와 의도로 일관하기 보다는 재료 자체의 속성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거나 우연적 요소가 발현될 여지를 허용하고 열어두는 배려에 힘입고 있다. 자신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최대한 줄이는 대신에, 우연성이 개입될 수 있는 공간을 최대한 열어놓는 것이고 그에 따라 작가는 전인적인 창작 주체가 되기보다는 그림이 그려지게끔 상황을 제안하고 유도하는, 그리고 그 상황이 남긴 흔적을 기록하는, 저장하는 역할로 다분히 제한된다. 그렇게 작가의 권위는 슬쩍 폐기되거나 의문에 부쳐지고 그 자리에 다분히 비개성적, 익명성, 무명성이 대신한다. 이는 작가로서의 의지를 최대한 배제하고서 이른바 자연의 질서가 저절로 화면에 들어앉기를 바라는 작업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리는 행위에서 무의미한 동작의 반복으로 이행하면서 순간 자아/주체를 지우고 비우고자 하는 것인데 작가는 이러한 자신의 작업을 일종의 '수행'과도 같은 작업이라고 말한다. 작업 행위 자체를 수양이나 수행의 도구로 보는 인식은 상당수 한국 작가들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처럼 예술적 창작을 정신적 수양과 동일시하는 것은 다분히 동양의 문인화 전통이란 유장한 역사에 기인한다. 그 저간에는 예술창작을 내면적 수양의 과정으로 여기는 특유의 미학이 자리하고 있다.
한편 작가는 자신의 반복적 신체 행위를 매개로 주어진 화면과 그리는 행위를 하나로 통합하고 먹과 종이를 일체화시키고 그려진 부분과 남겨진 부분을 대등한 차원으로 다룬다. 이때 먹이 칠해진 부분과 바탕 면/여백과의 이원적 구조는 극복되고 동등한 차원에서 자리한다. 검은 색 면과 여백이 단순히 메워져 있는 공간과 비어 있는 공간의 대비 관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양 자가 다 같이 동질의 공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다분히 인간과 자연/물을 분리시키지 않고 인간이 자연에 동화되어 스스로를 자연이 한 구성체로 보는 이른바 '물아일원론'을 연상시킨다. 재료가 작가의 의식과 반복적 신체 행위를 통해서 만나고 무한히 반복되는 행위가 거듭된 결과가 회화를 이루었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주객 일체, 물아일체의 초월적 체험이 구현되는 모종의 수련의 장이 되기도 한 것이다.
격자/그리드로 채워진 바탕 화면은 회화가 이루어지는 사각형 평면, 즉 회화의 존재론적 조건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고 그 주어진 화면 안에서, 제한된 삶의 영역, 특정 시공 안에서 삶을 살아내는, 작업을 해내야 하는 화가의 생의 조건 또한 암시한다. 격자는 일종의 현실세계이자 필연적인 그물망으로 직조된 틀인데 그 위에 붓을 치면 순간 우연적 세계가 펼쳐진다. 동시에 그것은 유년 시절 할머니가 직물을 짜던 길쌈에 대한 추억과 연관된다. 날틀과 걸틀을 교차시켜 실을 걸어 짜나가는 그 질서정연한, 반복적인 과정이 무의식 속에 남아 현재의 방법론으로 수렴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마도 작가는 할머니, 어머니가 지극 정성으로, 무념으로 수행한 길쌈의 노동을 복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작가는 중국 지안 시에 있는 광개토왕릉비의 희미해진 비면을 떠올리는 한편 조상들의 묘비에 박힌, 시공간을 초월해 떠다니는 선인의 말씀을 떠올렸다고 한다. 오랜 세월의 압력에 의해, 시간의 입김에 의해 지워지고 망실된 비석의 문자들은 가독성의 체계를 지니지 못하고 사라졌거나 희미한 흔적으로만 잔존해 더 이상 읽을 수 없는 흔적, 순수한 추상적 기호가 되었다. 그로인해 그것들은 풍부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죽은 이들의 떠도는 음성을, 미처 문자 꼴로 전하지 못하는 무수한 사연들을 꿈처럼 안겨주었을 것이다.
이길원의 작업은 대상에 복속된 회화와 관습적인 그리기로 부터의 이탈, 대상의 재현과 이미지로부터의 자유 즉 '탈일루젼'이라는 태도를 통해 결과적으로 추상으로 귀결되지만 이는 서구의 환원주의적 추상과는 다소 상이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좀 더 철저한 목적론적인 그리기의 지움, 의도된 주체의 비우기에 기반하며 가능한 그림을 애써 그리기보다 인간의 삶과 자연의 섭리를 우선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지 않으면서 그리는 상태인데 이는 결국 정의할 수 없고 규명할 수 없고 형상화할 수 없는 것을 그리려고/남기려는 무척이나 역설적인 시도이자 종국에는 그저 자연스러운, 우연적인 흔적만을 안겨주고자 하는 시도이다. 그것은 그림과 그림 아닌 것의 사이에서 파생한다. 모든 인위의 무용함을 지적하며 모종의 자연이 되고자 하는 '추상'이다. 물론 그 저간에는 유년시절 접한 할머니의 길쌈에 대한 기억과 비문에 대한 단상 등도 자리하고 있지만 일관되게 수묵을 통한 추상작업에 몰입해오고 있는 작가 작업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인위성을 밀어낸 자리에 우연성, 작위성이 아닌 무작위성, 그리고 불가피하게 남겨진 흔적으로 이루어진 지극히 자연스러운 그림에의 동경 같은 것이 그림의 핵심인 듯하다. 그리고 이는 지난 70년대 이후 한국현대미술, 추상미술의 주된 성격이자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보는데 이것과의 깊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와 동시에 그러한 성격이 바로 한국 전통문화의 핵심이고 의미 있는 지점이라 여기고 있으며 이는 또한 전통적인 동양화가 지닌 유의미한 지점이라는 인식 역시 자리하고 있다고 본다. 이길원의 작업이 그 연장선상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경지가 되고자 하고 종국에 스스로 자연이 되고자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 박영택
Vol.20171025d | 이길원展 / LEEKILWON / 李吉遠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