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1027_금요일_04:00pm
참여 작가 1부 / 이상에서 현실로 김민주_김신혜_김천일_서은애 임남진_정재호_조용백_허진_홍성민 2부 / 감각과 내면의 세계 강호성_구본아_김선두_김윤재 김정욱_나형민_백진숙_복부희 이피_장예슬_정태관_하루.K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무안군오승우미술관 MUAN SEUNGWOO OH MUSEUM OF ART 전남 무안군 삼양읍 초의길 7 Tel. +82.(0)61.450.5481~3 museum.muan.go.kr
조선 후기 근대화가 시작되었을 무렵부터 지금까지 백여 년 동안 우리미술을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던 '서화' 혹은 '서화미술', '동양화', '조선화' 그리고 '한국화'로의 변천사 속에는 근대 서구자본의 유입과 일제 식민지, 그리고 정치적 변혁으로 얼룩진 현대 역사가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서화에서 서화미술로의 이행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했던 근대 서구문화의 유입과정을 담고 있다. 서구와 다른 사상표현과 매체를 통념적으로 지칭하는 '동양화'는 실은 일제 식민지시기에 처음으로 등장했으며, 일본의 동북아에 대한 제국주의적 통치 전략의 정치적 의도를 담고 있다. 그리고 조선화는 해방 후 동양화라고 부를 수 없는 우리미술을 지칭했던 용어이며 한국화는 지필묵을 매체로 하면서도 중국의 화이적(華夷的) 태도와 일제의 식민주의에 대한 반성과 함께 단절되어버린 우리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욕망과 그 지난한 노력이 숨어 있다. ●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세우려했던 전통이란 무엇인가? 누가 이야기 했듯이 한국화의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일지 모른다. 현대 서양미술사의 발전은 기존의 규범을 흔들어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는 아방가르드 운동으로 점철해왔다고 볼 수 있다. 아방가르드 작가는 시대와 사회의 변화를 작품에 담기 위해 항상 새로운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왔다. 전통에 도전하고 사회의 일반적인 통념들과 갈등을 야기했으며,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동료작가들 작품의 경향을 변화시키고 후대의 작가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므로 서양 미술사에서 전통은 항상 새롭게 세워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미술사는 서양미술사와 결이 다르다. 우리에게 전통은 결코 고루한 것이 아니라 험난한 역사의 파고를 넘는 동안 잃어버렸던 국가와 개인의 정체성을 찾는 근거이며 왜곡되어 있는 것들을 속에서 진실을 밝혀야할 책무가 지워져 있는 어떤 무겁고 버거운 것이었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 전통이란 새로움을 발견하는 근거라기보다 터전을 상실해버린 국가와 개인에게 새겨진 일종의 트라우마이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기 위해 마침내 찾아야할 그 무엇이었다. ● 하지만 잦은 외세의 침입과 단절의 역사를 지닌 역사 속에서 우리가 욕망하는 그 전통은 결코 명쾌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것은 항상 모호하고 왜곡되어 있으며 그리하여 우리가 애타게 찾지만 그것을 움켜쥔 순간 그 의미는 달라져버린다. ● 가장 나중에 부상하였지만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 '한국화'라는 용어는 그동안 지칭되어왔던 다른 명칭들에서 지적되었던 문제들을 자각하며 등장했으나 그를 뛰어넘기는커녕 오히려 현대미술이 지니고 있는 문제들이 가중되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2007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1953년부터 2007년까지 현대 한국화의 전개과정을 살펴 본 『한국화 1953-2007 전』은 '한국화'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 '추상의 유입과 실험', '전통산수의 재인식과 현대적 변용', '서구 모더니즘에서 한국적 모더니즘으로-추상의 주체적 발전 단계', '채색의 맥', '한국화의 시야를 넘어서'의 다섯 단계로 구성된 이 전시는 그 기획의 의도를 국가나 특정 장르의 개념으로서 '동양화・서양화', 혹은 '한국화'가 아닌 '한국의 회화'로서 다양한 접근과 연구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 전시에 망라되어 있는 소주제는 분명히 현대 한국화 전통과 그 변용에 대한 흐름에 나름대로 그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미술사로서 한국화 전통의 존재와 그 의미를 인정하면서도 또 한편으로 그러한 경계를 허물고 한국회화의 넓은 구조 속에서 바라보기를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화에 대한 일면 상반되고 모순되어 보이는 이러한 태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한국화라는 용어에 담겨 있는 여러 문제들 이면에 존재하는 우리의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이러한 이중적인 욕망을 이해하는 일이 한국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서 쓰였던 '국화'나 일본의 '일본화'와 구별되는 '한국화'의 명칭에는 제국주의의 지배를 받은 근대 식민지의 고통과 상처의 트라우마, 그리고 이를 탈피하여 우리의 전통과 함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해 남겨야할 것들과 도려내야할 것들을 골라내야하는 강박관념이 내재되어 있다. 이러한 상처와 강박의 무의식은 어쨌든 외세의 침입으로 인한 끊임없는 역사의 단절 속에서 어렵게 전개해온 우리 미술사이지만 '회화' 혹은 '수묵채색화'라는 통념으로 분류하기에는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함을 밝혀내었다. 예를 들면, 우리의 역사에 몸담지 않았다면 쉽게 알아차릴 수 없는 고구려 벽화(壁畫), 불화, 산수화(山水畵), 문인화(文人畵), 풍속화(風俗畵), 궁중장식화 및 기록화, 단청, 민화 등에서 나타나는 전통적인 도상과 기호들, 그리고 한국적인 감성과 미적 관점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한국화'라는 용어에는 한국미술사를 이루는 우리의 전통과 궁극적으로 이를 만들어내는 정체성의 문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전통을 만들기 위해 배척하면서 타자화시켰던 것들의 문제에도 직면해 있다. 우리의 정체성 정치는 바로 민족주의를 의미하는데, 이는 어쩔 수 없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스스로 잘라내면서 간과해버렸던 -타자-에 대한 반성의 국면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또한 우리가 세우려고 하는 정체성의 프레임은 자아와 타자의 시선, 그리고 시선들 사이 주름 속에 내재된 수많은 빛깔의 욕망들을 결코 담아낼 수 없으며 오히려 억압된 것들을 양산 시킨다. ● 결국 백여 년 동안 우리미술을 지칭하는 용어의 변화 속에는 한국의 미술사를 세우기 위한 수직적 욕망과 수평을 향하는 자아의 개인적 욕망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 서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미술의 역사와 당대의 다원적인 담론, 그리고 개인적인 욕망의 국면들을 이해한다면 요즘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한국화의 흐름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 근래에 산수화, 문인화, 풍속화, 민화와 같은 전통적인 요소를 사회와 개인의 현실을 표출하기 위한 하나의 시각기호로 풀고 있는 2000년대 이후 한국화의 다양한 흐름은 이러한 갈등의 국면에서 세워지고 있는 새로운 전통으로 보여진다. 이들은 한국미술의 역사와 우리 정체성의 근거를 세워야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지 않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그로부터 소외되었던 타자들에 자신을 투사시키며 전통적인 의미를 뒤집고 있다. ● 예를 들면, 이 새로운 한국화의 흐름은 홍성민의 그림에서처럼 무너져가는 왕조에 대한 군자의 절개로 표현했던 사군자 중의 하나인 '대나무'를 권력의 변혁을 추구하는 민중의 정신으로 변화 시킨다. 또한 사대부가 벽에 걸어놓고 서권기, 문자향과 같은 인문학적 세계를 순식간에 불러들여 와유하며 거닐기를 상상했던 산수도는 하루. K와 김민주의 작품에서처럼 뒤틀려 대중이 먹는 음식, 혹은 놀이를 즐기는 욕망의 공간으로 변한다. 김신혜의 「관폭도」는 한발 더 나아가 하찮은 일회용 음료수병의 광고 이미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거대한 관념산수를 재현해보임으로써 이상향의 산수 이미지가 전략적으로 기호화되어 소비되고 있는 현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그뿐인가? 여성작가 서은애는 문인화 전통에서 강조되고 있는 조선후기 지식인의 사의적 의미 속에서 남성중심의 젠더적 편견을 도출해낸다. ● 또 다른 흐름의 하나로 시대의 지성과 윤리에 대한 담론의 장이었던 전통적 회화공간을 좀 더 개인적 욕망과 내밀한 감각을 재현하는 사적 공간으로 확장하고 있는 현상을 들 수 있다. 이피작가의 「한숨」, 「화」에서 우리의 몸으로부터 찰나적으로 분출되는 감각들은 바로 화려한 금분의 유려한 선과 채색기법으로 그려진 불화-의 기법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불교 제단화에 봉헌된 찰나와 우주적인 영원의 시간들이 지극히 개인적인 일상의 시간들로 변용되었다. 김윤재의 입체적 산수는 전통산수도에서 인간-점과 같이 작게 표현된-이 소요하는 거대한 우주적 자연으로 표현되었던 것과 전혀 다르게 인간의 감각기관을 통한 기억으로부터 형성되어 가지처럼 뻗어 나오고 있다. 당대의 사상과 이념을 나누었던 사유의 공간에서 개인의 기억을 기록하는 하나의 매체로 변화한 것이다. ● 김정욱의 제목이 없는 독특한 작품도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그녀는 터럭하나도 놓치지 않는다는 '전신사조'(傳神寫照)의 전통초상화 기법을, 여성의 초상화ㅡ한편으로는 수많은 상처의 흔적과 생채기를 또 한편으로는 이집트적 응시의 눈, 이빨을 함께 그려 넣은ㅡ로 재현함으로써 무수한 가학과 피학의 길항적인 여성 내면의 역사를 기록해내고 있다. ● 이러한 새로운 한국화의 흐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이들이 서양화와 동양화의 이원적 흐름에서 벗어나 동시대 회화의 공통적인 담론을 담아내기에 이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 그렇다면 『한국화 1953-2007 전』에서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한국화를 보는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회화를 보는 새로운 관점은 결국 화가들이 특정한 시대의 작가들이 당대의 사회현상과 개인적 자아를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고 표상화해 내는가를 알아차릴 수 있을 때 비로소 형성될 수 있다. 만일 그러한 흐름이 어떤 양상을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다면 우리는 이제 '한국화'를 우리 미술의 역사를 세우기 위해 전통을 계승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또는 트라우마를 넘어 당대의 여러 현상들을 표현해내고 있는 한국 회화에 존재하는 양식 중의 한 분야로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 이번 기획전은 2000년 이후 한국회화에서 일고 있는 이러한 새로운 흐름을 '한국화를 넘어ㅡ 리얼리티와 감각'이라는 주제로 기획해 보았다. 이 주제에서 넘어(beyond)는 하나의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을 강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끝나지 않은 한국화를 둘러싼 담론과 그 다의적 해석, 그리고 한국의 회화로서 확장된 영역으로 향하는 가능성 등을 살펴보는 하나의 작은 시도가 될 것이다. ■ 박현화
김민주 ● 일상의 세계와 상상의 세계를 혼합하여 현실 공간 속으로 이상적 자연을 가져와 보기도 하고, 깊다 못해 까마득한 연못에서 그물이나 물바가지를 허우적거려 보기도 하고, 물고기를 잡지 않고 물고기와 하나가 되는 어부와 나무를 베어내지 않고 나무와 하나가 되는 나무꾼이 되어보기도 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 역할들이 경계를 허물과 뒤섞이며 구분이 모호해지는 지점을 통해 일탈과 상상의 유희를 찾아보고자 하였다.
김신혜 ● 근대화, 산업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삶의 환경은 급격하게 변했고, 거대한 도시 속에 살게 된 사람들의 생활패턴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제한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자연은 특별히 시간을 내어 찾아 가야하는 곳이 되었다. 동시대 사람들은 꽃이나 산, 바다와 같은 자연을 직접 경험하기 보다는 도시에 넘쳐나는 시각 이미지, 사고 팔리는 상품들을 통하여 더 많이 접하는 듯 하다. 작업실에 앉아 그 간 수집해 놓은 병들만으로도 전국의 산을 유람하고, 알프스나 히말라야도 다녀올 수 있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자연을 순수하고 아름다운 자연, 그 상태로 받아들이지 만은 않는다. 감각적인 컬러에 미끈하게 빠진 병, 그 안에 담긴 이미지와 함께 '수 만년 전의 산맥에서 형성된', '미네랄이 풍부한', '천연' 광천수 와 같은 문구를 보면 어떤 거대한 전략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이는 숨가쁜 도시와 맞물려 작동하는 현대의 소비문화와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자연의 이미지는 생산되고 소비된다. 그리고 금세 버려진다. 사람들은 물리적 제약 속에서, 어쩌면 전략적으로 가공된 자연의 이미지를 접하면서도 막연하게나마 그 것이 '깨끗하고', '좋은', 어떤 '멋진 것' 이라는 느낌을 공유하고 있는 듯 하다.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정신수양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굳이 이야기 필요도 없이, 자연은 과거나 현재에나 여전히 동경의 대상인 듯 하다.
김천일-목포소묘I ● 유달산 산자락에 정겹게 모여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과거의 초가집들이 새마을 운동 이후에 슬레이트지붕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신축 또는 개축 중인 동네입니다. 변화의 중간 중간에 당대의 모습을 증언한다는 심정으로 그렸는데 2003년 당시 목포의 초상입니다. 목포소묘Ⅱ ● 유달산에서 조망하면 원도심과 삼학도 대불공단 삼호조선소등이 차례 차례 내려다 보이는데 우연의 일치겠지만 유달산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점전 현대화, 산업화되어 간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근현대도시인 목포의 한 단면입니다. 위 2점은 2003년 열린 제3회 심천국제수묵화비엔날레에 출품되었던 작품입니다.
서은애 ● 서은애는 전통적인 재료를 사용하고 옛 그림을 차용하면서도, 전통과 현대 사이에 놓여 있는 심연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나들어 왔다. 전통적인 산수화를 배경으로 그 안에 (조금은 희화화된) 자화상을 삽입하여, 옛 사람들의 유토피아 속에서 자신이 노니는 서은애의 초기작들은 동양화단의 해묵은 논쟁들을 유쾌하게 일소하였다. 그러나 서은애의 의도는 오히려 과거 사람들이 그림으로부터 얻고자 했던 본래의 목적으로 깊이 들어가고자 하는 것으로, 이 지점이 그의 작품에 탄탄한 내용과 풍요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부여했다. - 이윤희 청주시립미술관 학예팀장, 『그림없는 미술관』展 2017, 평론 글 중에서
임남진 ● 임남진은 감로탱화의 기법으로 책가도의 형식을 차용하여 작업실, 화구, 술잔, 라면, 컴퓨터 등 작가의 생활을 드러내는 물건을 통해 자신의 풍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담는다. 위와 같은 현대 한국화가들의 작업을 볼 때, 형이상학적인 한국화의 전통사상으로부터 개인의 내면과 주변의 삶을 소재로 현실적인 삶의 시선으로 방향이 옮겨 간 듯 보이기도 한다. - 살롱 드 에이치 갤러리 『三景別曲 삼경별곡』展 서문 중에서
정재호 ● 작품속에 등장하는 원형 건물은 1960년대 건립되었던 동립산업에 있었던 한 부속건물을 그린 것이다. 동립산업은 제분공장을 갖추고 있었는데 이 시설로 1960년대 건빵산업을 하여 크게 성공했으나 이후 제일제당에 합병되고 만다. 동립산업 건물은 현재에도 제일제당 영등포공장 건물로 남아있다. 나는 '동립(東立)'을 '冬立'으로 뜻을 바꿨는데 이는 60년대의 한국의 가난한 현실속에서 하얀 밀가루가 가졌던 재건의 의미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용백-목포항_그날의 추억 ● 1897년 개항한 목포항은 목포가 항구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코드이다. 한반도 서남부 끄트머리에 자리한 목포항은 다도해의 모항이자 일제 때는 수탈의 본거지이기도 했다. 따라서 부두 노동 등 치열한 삶이 전개되는 중심 현장이며, 목포 경제를 움직이는 기반이기도 했다. 날마다 수많은 배가 들고 나는 육지와 바다의 삶을 연결해주는 터미널이기도 하고, 바다로 어로작업을 나갔던 배들이 돌아와 정박하며 휴식을 취하는 모성의 공간이기도 하다. ● 취산은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동안 목포항을 지켜보며 살아왔으며, 그 기억을 바탕으로 항구의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화폭에 담아왔다. 먹과 실크스크린을 통해 항구와 바다의 이중성을 추상적으로 대비시키고 태풍을 피해 발이 묶여 있는 선박을 통해 바다의 무서운 힘을 표현하였다. 때로는 모든 것을 포근히 감싸 안은 모성으로서 항구의 모습과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서 항구의 모습을 대비시키기도 하였다. 변두리서곡 ● 취산은 도시 변두리의 풍경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수묵과 실크스크린을 접목시켰다. 먼저 바탕에 수묵으로 스케치를 하고 그 위에 실크스크린을 이용하여 실제 모습을 섬세하게 나타냈다. 또한 진한 수묵 그림자를 통해 가난과 불안정한 심리도 드러냈다. ● 따라서 변두리를 화폭에 담은 취산의 초기작품들은 주변의 경계는 불분명하지만 달동네의 풍경들을 비교적 집중적으로 부각시킴으로써 리얼리티를 살리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즉 거기에 사는 사람들의 현실과 애환을 추상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특징을 보여준다.
허진 ● 이번 작품의 제작의도는 인간과 자연이 서로 화합하는 순환적 자연생태관을 지키고자 하는 친환경론을 제시하는데 있다. 동물학적 생태지도를 연상케하는 이 작품은 주제와 색채를 효과적으로 어울리게 하고 동시에 의도적이지 않은 우연성의 이질감을 구사하여 화면에 나오는 울림과 묵직함을 강조한다. 이 연작 작품은 역동적 야생동물의 묘사를 통해 자본문명에 젖은 기계적 삶에 예속된 현대의 삶을 탈피하여 자연 본성에 가까운 자유로운 세계로 인도하고자 한다. 현실의 부조리적 구조라는 제한적 어법으로 가득한 현대사회에서 내재된 모순과 질곡은 현생인류에게 일탈적 출구와 파격적 환기를 찾고자 하게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질적인 형상들을 다각적으로 조합하고 결합하는 조형어법을 화면에 나타나게 하며 전체적으로 독특한 서사의 화음을 울리게 한다. 이러한 서사성은 인류역사가 자연과 문명의 상호긴장적 그물망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생태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재해석하는 작업인 것이다.
홍성민-아시아의 숲_만화방창(萬化方暢) ● 작품의 중심부는 땅과 하늘을 잇는 대나무 형상이다. 곧고 푸른 대나무줄기의 동공은 대나무의 마디이자 비어있는 공간의 대나무로 민화(民畵)의 다시점 표현이면서 아픈 역사의 상흔의 표현이다. 오른편에는 진흙탕 속에서 피어난 연꽃과 왼편에는 해와 구름, 송학과 물을 위와 아래에 배치했다. 인간의 소망과 탐욕, 자연과 문명의 충돌에서 성찰적 바램으로 제작 되었다. 대나무 – 숲으로부터 ● (중략)…민중미술의 대표적인 수묵화 작가인 홍성민의 「대나무 - 숲으로 부터」, 「숲-행진(行進)1,2」, 「아시아의 숲」연작시리즈는 고전적 수묵의 형식을 차용하되 그 역시 전통적인 수묵화의 울타리 밖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서 보이는 주된 형상은 대나무이다. 하지만 그는 대나무에 머무르지 않고 대나무 형상에서 우리사회의 현상들을 풀어내고 있다. 어느 블랙홀로 빨려가는, 혹은 서로 대립하는 거대한 사람의 군중이자 촛불을 생각하며 또는 대나무 마디에서 별자리를 보며 천체와 지상의 모습을 대나무에 이입한다. 이것은 곧 대나무를 빌어서 우주 삼라만상 속 그 어떤 하챦은 것에도 존재의 소중함을 읽어내는 그의 시선이다. 나아가 각각의 모든 인간 역시 그와 같은 섭리를 지닌 귀중한 존재임을 말하고자 한다. 동양철학과 전통적 수묵을 현대적 미의식으로 끌어내는 그의 조형언어는 새로운 전통의 현대수묵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 김병현 『…ing After the Box』 전, 평론 글 중에서
강호성 ● 「격고」는 북을 치고 있는 나의 자화상이다. 서낭당에 걸린 오색의 천으로 가득한 '북'은 나의 소망이 담긴 소재이며 여러 가지 답답함을 북을 치는 행위를 통해 해소하려고 한다. ● 「carnival」은 우리 시대를 축제의 한 가운데로 가정한 후, 어릿광대의 모습을 한 인물의 슬픈 뒷모습을 그렸다. 이 인물은 나 자신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우리시대의 각자 자리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모든 이들의 무거운 뒷모습이다. 우리 시대의 인물들은 다양한 이유로 힘든 삶을 살고 있다. 이들을 격려하기 위한 도구로 나는 '동화'를 선택했다. 친근하게 다가가는 동화의 서사는 교훈적일 뿐만아니라 순수를 자극하여 우리의 삶을 긍정적으로 변화하게 만든다. ● 「길채비」는 동화로의 여행을 떠나는 시작점을 알리는 작품이며, 그림 속의 아이가 치는 북소리를 통해 현실세계와 동화세계를 넘나들게 된다.
구본아 ●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모둠의 '시간' 성별과 나이, 부(富)의 차이 없이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삶을 지배하는 것이 시간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시간'을 대립을 통해 우리 삶속에서 깨우치게 하고 싶었다. 수많은 세월 속에 방치되어 버린 '폐허'를 통해 우리에게 시간에 대한 순응적인 것이 아닌 능동적이고 도전적인 관점을 표현하려 한다. 낡고 스러져가는 어둡고 칙칙한 폐허속에서 피어나는 자연, 폐허로 스러져 가는 과거의 흔적과 삶이 눈부신 현재의 시간의 대립으로 나는 우리에게 시간을 순차적인 것으로가 아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는 모둠의 신비로운 시간대를 경험하게 되었다. ● 나는 낡은 벽속에서 지치고 고된 붕괴를 보는 것이 아닌 미완을 본다, 미완은 언젠가 완성을 기대하는 미래의 시점인 것이다. 즉 과거 속에 안주하는 시간의 관점이 아닌 미래를 향하는 능동적인 시각이다.폐허를 통해 미완성과 붕괴라는 반대되는 이중성을 표현하며 알생동안 미완과 붕괴의 과정을 거치는 인간의 모습과 같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 벽이라는 物을 화두로 삼아 내가 말하려 하는 물은 단순한 사물이나 물성으로서의 물이 아닌 유기적 생명체들의 연장선이다. 무생물마저도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 속에 놓여짐으로서 사유의 매개가 되기도 하고, 어떠한 선택과 의지 상황의 계기가 되기는 한다. 이러한 물의 속성을 이제 벽의 형상을 통해 보여준다. 내가 만드는 폐허는 역시 유기적인 物이며 호흡이 있는 詩속의 형상이다.
김선두 ● 우리는 길을 통해 어디론가 떠나고 돌아온다. 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준다. 기능적인 직선 길에 비해 곡선 길은 사람의 왕래와 소통의 필요에 의해 자연스럽게 난 길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굴곡을 따라 같이 흐르며 생성된 길이다. 과속을 허용하지 않는 곡선 길에는 만보 산책의 여유가 흐른다. 그 길에서 우리는 향긋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만나고 꽃향기에 한눈을 팔고 새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가 있다. 하여 사람다운 길은 곡선이다. 「느린 풍경」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보다 밀도 있는 삶이란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사는 직선적인 것이 아니라 가끔은 삶의 여백으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곡선 같은 것이다.
김윤재 ● 어린 시절 유난히 산에 오르시길 좋아 하시던 아버지와 자주 오르던 호암산의 기억을 조금씩 도려내고 있었다. 길을 걷다보면 과거에 눈만 돌리면 항상 옆에 있었던 아름다운 산들이 높은 콘크리트 사이로 작은 미소의 조각을 내비칠 뿐이다. ● 잊었던 그 미소는 수색대원이란 보직을 받고 출입이 극도로 제안된 비무장지대(D.M.Z.)를 2년여 누비며 마주한다. 정지된 시간을 머금은 그 공간에서 잊고 있었던 과거의 기억들이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것들은 무릉도원이고 그 기억을 고스란히 머릿속으로 음미하며 전역이라는 도심의 생활로 돌아 왔다. ● 대학생활 그때의 기억을 되새기며 어쩌면 그곳을 만들고자 상상하였다. 우연히 찾아간 간송미술관의 작품들은 과거의 시공간이 집결해 있었다. 그곳의 작품을 구연한다면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들이 만들어 질것이라 상상하게 되었다. 겸재정선의 산수화를 연구하고 그 공간의 감성을 조각으로 구현하려고 노력하였다. ●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을 기본으로 머리 위에 과거의 그리운 공간인 산수화를 조각하였다. 그것은 우리가 도달할 수 없는 과거의 공간이고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즐거운 상상일 것이다. ● 산수화의 공간은 멈춰 있지만 상상하게 만드는 사각의 소용돌이다. 그곳을 상상하고 끌어내 조각으로 구현한다는 것은 과거의 시간을 되돌리는 것이다. 잠자는 미라를 깨우는 신비로운 시간 여행이라고 생각 한다. 우리는 지금을 살아간다. 우리가 느끼는 공간과 과거의 공간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상상한다. 그곳이 우리가 꿈꾸는 미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한다.
김정욱 ● 우리나라 말에서 얼굴이라는 말은 원래 얼(영혼)이 드나드는 굴(통로)이라는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얼굴을 통해서 그 사람의 본질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관념이 담겨 있다. 그녀는 자신의 작품을 단 두 줄로 사태를 압축하면서도 우주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본 전통시 '하이쿠'와 비교한다. "나는 단 한 줄로 무한한 파장을 가지고 퍼져 나가는 것들을 사랑한다. 내가 그리는 그림은 모든 사람들의 역사이면서 개인들의 역사이다." 그림 속 얼굴은 특정한 주제에 따른 상황 설정이라기보다 전체적인 삶에 관한 것이다. 작품의 제목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다. 김정욱에게는 얼굴에 그려진 상처의 흔적이 바로 역사이다. 상처는 흔적을 남긴다. ● 김정욱이 기꺼이 상처 그리기를 선택한 데에는 조선 시대 초상화에 담겨 있는 의식과 기법이 큰 영향을 끼쳤다. 조선 시대의 초상화는 그림을 보고 당시 앓았던 피부병까지 분석할 수 있을 정도로 직설적이고 상세하게 인물을 묘사하고 있다. 명암법에 기초하며, 대리석의 매끈한 질감으로 미화된 서양의 초상화 전통과는 다른 냉정한 직시가 그녀를 매혹시켰다. 동양화를 전공한 현대 화가로서 김정욱은 전통에 자신을 덧붙이는 동시에 작품은 전통에서 뜯어낸다. 즉, 전통적인 흑백수묵화를 고집하지만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하는 대신 인형 같은 형상을 취함으로써 전통적인 초상화에서 보이는 사실주의적 엄격성과는 거리를 취한다. ● 김정욱에게서 상처 그리기는 개인의 초상적인 특징을 드러내는 지표가 아니라 일종의 신체 훼손의 방법이 된다. 인물의 다른 부분이 비사실적일수록 화면의 거친 상처들은 오히려 생생하게 부각된다. 김정욱의 신체 훼손은 역겨움을 유발할 정도의 훼손에까지 이르지는 않는다. 그것은 제니 사빌(1970년생의 대표적인 영국의 젊은 화가)의 훼손된 시체 그림처럼 상처의 한가운데에 있는 얼굴도 아니며, 상처 유발자의 규명이 가능한 얼굴도 아니다. 김정욱의 얼굴은 상처가 흔적을 남기고 지나간 이미 '이루어진 얼굴'이고 따라서 '역사가 된 얼굴'이다.-이진숙 (평론가), 『김정욱, 상처의 역사』 중에서 발췌
나형민 ● 나형민의 작품은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지평이 펼쳐져 있다. 그 지평선에는 오래된 건물이 서있기도 하고 초록색 풀숲이 펼쳐져 있기도 하다. 지평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는 무언가 저 지평 너머에 지금의 현실을 초월할 수 있는 기대로 가득 찬 다른 세계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유토피아'라 명하기도 하고 히말라야 산맥 속에서 그토록 찾고자 하였던 '샹그릴라'이자 '천국'이라 이름 붙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지평에 다다르게 되면 또 다른 지평이 펼쳐져 있고 결국, 자신은 여전히 현실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지평은 그 너머 무언가 희망과 설렘의 몽실몽실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항상 지평에 도달하여 좌절된 이상, 추락한 꿈을 목도하면서도 결국 또 다른 뭉게구름 가득한 지평을 바라보면 저 너머 어딘가에 있을 희망과 소망을 향한 진격에, 진격의 삶을 경주한다. 현대인들이 직면한 그 치열한 경쟁과 경주의 끝은 무엇일까? 보여지는 지평선은 기대하는 소망에 전혀 부응하지 않는 공허한 지평일 수도 있고, 아름다운 날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이 충만한 지평일 수도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지평선에 펼쳐진 풍경이 아니라 지평 너머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사유의 시간을 제시하는데 의의가 있다.
백진숙 ● 제목의 poison은 모회사에서 판매중인 향수의 이름이다. '연금술'과 관련한 다양한 도상을 보고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병 안에 내가 사유해본 삶의 연금술, 그 제련 과정을 담아 보았다.
복부희-무한 · 포옹_느낌은 고요하나 의식의 흐름은 살아있다 ● 나의 작업의 근원은 이렇게 시작된다. 비 가시적인 것을 느끼게 해주는 오래된 믿음. 그러나 스스로는 좀처럼 그 실체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세상 모든 것이 품고 있는 내재된 고유한 성질(힘). 본질이다. 기억 속의 감각적 이미지를 감성적 회화로 현현(顯現)시키고자 하는 것, 유한한 인간의 삶의 깊이를 시간의 흐름 속에서 채득하고 끌어안는 것이다. 볼 수 있는 자는 시간을 초월한 현재를 본다 ● 대기의 변화에 따른 조형감, 선과 색이 내면에서 변화하며 보여 지는 이 모든 것들이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지지만 모습을 달리할 뿐 근원은 같다. 유동적인 선과 신비한 색 , 감정의 덩어리를 최소한의 언어로 형상화함으로써 비가시적 존재에 대한 가시화에 더욱 다가가기 위함이며 추상회화의 정신성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 더불어 이러한 정체성의 탐구과정은 회화의 본질에 대한 추구와 추상화된 정신성의 시각적 표출을 위한 드로잉을 통해 보여 지며 직관적 경험이 작품제작의 아이디어로써 또는 독립된 작품으로써 기능 하도록 하며 여전히 진행형이다. ● 특히 현대 드로잉은 동양의 정신세계와도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고 본다. 주어진 화면에서 무한한 공간으로 받아들이며 채움과 비움을 통해 즉흥성을 중시하고 손과 정신의 작용을 역동적으로 표현 가능함은 동양의 기운생동(氣韻生動)과 일필휘지(一筆揮之)의 화법으로의 승화작용이 더욱 그러하다. 이는 현대미술에 있어 동양화와 서양화의 장르의 구분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다양한 매재의 사용을 통한 기법의 발달과 더불어 개념과 정신성을 중시하는 경향 때문인 듯하다. - 작가노트 중에서
이피 ● 내 그림은 순간을 붙잡은 영원이다. 나는 내 시간의 한 찰나를 붙잡아 그림 속의 영원으로 형상화한다. 나의 이러한 생각은 회화의 본연의 의미를 더 세밀하게, 그러나 확장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서양의 종교화나 동양의 불교화는 신적인 존재의 한 순간을 영원 속에 채집한 그림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동서양의 그림들의 순간을 더 나노적인 시간으로 잘게 나누어, 한 찰나를 더욱 잘게 쪼갠 영상을 회화화하고자 했다. 말하자면 나는 내게서 뜨거운 감정이 일어나던 순간, 차분하게 마음이 정돈되던 두 순간을 포획했다. 그리고 그 두 순간을 형상화했다. 이 그림은 그 둘 중에 차분한 순간을 그린 것이다. 나는 내 생의 한 순간에 영원성을 부여해 주기 위해 전래되어온 불화의 기법을 사용하고, 불화의 안료를 썼다. 내가 감정을 표출하는 순간은 마치 풍선이 터지면서 공기 중에 질소가 퍼져나갈 때처럼 어떤 작은 폭발이 일어난다. 그 폭발 속에는 나의 방과 나의 창 밖에서 보이는 아파트들, 나의 몸의 여러 부분들, 내 주위의 인물들이 상호 조응하며, 분리하며 환하게 크게 퍼져 나간다. 내게서 일어나는 어떤 작은 분출도 나의 외부와 조응하지 않는 것이 없다. 나는 한 순간의 분출을 형상화하여 커다랗게, 마치 동서양의 종교화처럼 미술의 재단에 봉헌했다.
장예슬 ● 유년 시절 아버지와 함께 수석을 줍곤 했었다. / 작가가 된 후에야 수석에서도 대자연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다. / 흐르고 번지는 먹의 움직임이 그것에도 담겨 있었던 것이다. / 수석을 바라보면 그 속에서의 풍경과 움직임이 마치 아득한 우주와도 같은 느낌을 주며 그것은 수묵을 통해 나만의 우주로 재현되어 오는 것이다.
정태관 ● 남도지방은 서정적이면서도 맛깔 나는 투박한 자연경관을 지니고 있다. 유년 시절 한 점 구름 없는 날이면 마을 주변의 뒷동산에 올라 머나 먼 방마산을 등에 업을 땐, 자연 속으로 안주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의 낭만감 마저 느껴진다. 고향의 어릴 적 뒷동산에서 다양한 색들의 조화인 황토로 조각물을 만들며 물놀이 하던 추억의 연상감으로 내 작품 색은 황토적 색채를 추구한다. 그리고 남도의 포근하고 부드러운 황토향기와 사람, 동물, 새들의 하모니의 색채대비는 자연 사상을 바탕으로 한 음양의 대지에서 인간과 자연의 숨소리의 조형적 의식을 추구하고 있다.
하루.K ● 본인은 삶에 근간을 둔 아름다움을 발견하거나 기존의 형식에서 새로움을 찾는데 관심이 있다. 음식과 산수를 그리는 '맛있는 산수' 는 본인의 이와 같은 관심에서 시작되었다. 음식은 인간의 속성과 욕망을 드러내는 형이하학적 소재이다. 생물이 살기 위한 최소의 요소인 동시에 지역의 문화, 인간의 욕망을 포함하고 있다. 반면 산수화는 삶의 기본 욕구가 충족된 이후 나타나는 형이상학적 형식이다. 산수는 인간의 이상향을 표현함으로 미적 의미를 내포한다. 작업은 기존 산수화가 지니고 있는 이상향에 대한 생각을 현실 속 소재의 차용을 통해 재해석한다. 이는 화면에서 음식 속 산수 혹은 산수 속 음식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현실의 상징인 음식과 이상의 상징인 산수를 화면에 다양하게 구성하고 이를 통해 현실과 이상의 관계를 비유적으로 나타낸다. 이상적인 삶의 모습이 정신과 육체의 균형 속에 있다면, 정신과 육체의 균형을 찾아가는 삶의 과정을 음식과 산수의 미적 조화를 작품에서 만들어 가는 과정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현실적 소재의 차용과 산수화의 변주는 기존의 산수화가 가지고 있는 이상을 현실에 내려놓고 삶 속에서 이상을 찾아가는 계기를 제공한다. - 작가노트 중에서
한국화와 현대회화, 어설픈 병치와 조화의 역사 - 한국화의 새로운 방향을 위하여 ● 오늘날 우리가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미술'은 그 역사가 백여 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 이전 우리에게 천여 년 지속되어 친숙했던 '서화(書畵)'가 있었지만, 근대화라는 새로운 환경에서 타의적으로 서양 파인아트(fine art)의 번역어인 미술(美術)에 흡수될 수밖에 없었다. 먼저 그림과 글씨가 분리되면서 서화는 해체되었고, 화(畵)는 '미술' 안에 들어가 서양화와 대치되는 동양화로 자리를 잡았다. 동양화가 '동양'이 갖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그림자 때문에 주체적 의미의 한국화로 전환되었지만, 그것은 여전히 전통적인 서화와의 단절과 함께 서구적인 미술 안에서 일어났다. 한국화는 서양화와 같이 서양현대미술의 전위적 운동과 맥을 같이하면서 전개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 돌이켜보면 한국화가 '미술' 속에서 움직여왔던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우리에겐 백여 년의 서구의 역사보다 더 장구하게 지속된 전통과, 그로부터 기인하는 서화의 개념과 형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통은 오늘날 긍정이든 부정이든 저항할 수 없는 굴레다. 우리는 전통에 완전히 잠겨있을 수도 벗어날 수도 없다. 한국화 역시 현대미술에서 긍정과 부정의 양쪽을 시계추처럼 반복하여 왔다 갔다 하였는데, 그 특징은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나타난다. ● 그것은 전통의 가치만을 강조하려는 것, 전통과 서구화의 장점을 서로 조화하여 발전시키려는 것, 그리고 완전히 서구화하여 전위적인 미술로 나아갈려는 것이다. 어떤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한국화라는 범주에 넣는 것을 강하게 부정한다. 자신의 작품은 어디까지나 현대회화이지 한국화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 이들의 회화는 전통적인 지필묵의 영역을 넘어 다양한 현대적 매체를 구사하기 때문에 굳이 한국화라는 범주에 한정되어 볼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이러한 극단적인 입장과 대치하는 다른 입장이 한국화가 전통의 가치를 발견하여 이것만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해서, 그것은 오로지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이 아니며, 또한 그것은 미술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영역을 벗어나려는 것은 더욱이 아니다. 그렇다면 세 가지 경향이라 하더라도 오늘날 한국화의 범주에 속하는 작품은 전통적인 지필묵의 매체를 사용하면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하는 일련의 현대회화라고 할 수 있겠다. ● 현대한국화에서 전통을 대하는 태도는 다양하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변천되어 축적된 내용 위에 새로운 해석의 시도가 덧붙여지면서 계속 일어나고 있다. 전통은 일본 강점기 때에는 현실 이면으로 잠긴 민족 주체성의 확립과 계승이라는 의미에서 다루어졌고, 해방 이후는 세계미술에서 민족적 가치의 발양으로서 대두되었다. 이들의 전통에 대한 것은 때로는 무겁고 강박적이고 현실과 괴리된 추상적인 구호에 머물기도 하였고, 때로는 맹목적인 자신감으로 현실문제로 넘나들어 공허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현대미술에서 전통회화의 존재와 그 위상을 위한 몸부림이었기 때문에 언제나 진지하고 절실하였다. ● 오늘날 이러한 진지한 태도를 계승한 이들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시대가 바뀐 현대의 삶을 지필묵의 전통적인 매체와 시각으로써 충분히 담아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들의 작품은 무엇보다 과거의 이상적 세계로서의 산수화에서 이 현실인 도시로 옮겨왔다. 산수화를 그렸다할지라도 그것은 자연 산수가 아니라 도시산수이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도시 환경으로서의 자연을 직시하고 그리는 것이다. 또한 도시산수가 아니더라도 그들은 이 도시적 삶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의 변화를 수묵으로 표현한다. ● 무엇보다 전통을 대하는 태도에서 주목할 만한 변화는 최근 디지털문화에 젖은 젊은 세대의 일어난 시도이다. 이들 세대 화가들은 무엇보다 선배들이 짊어진 전통의 굴레로부터 자유롭다. 그들은 전통에 대한 빚이 없어 선배들이 했던 것처럼 전통에 들어가 그 존재와 의미를 묻지 않는다. 그들에게 전통 유산은 주변에 떠도는 정보이며 복제된 허구적 이미지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그들이 전통을 다루는 것도 자유롭고 유희적이면서 장난기가 넘쳐난다. 그들은 전통을 하나의 유동하는 상으로 다루면서, 전통의 상(像)을 본질에서 탈락시켜 다양한 맥락 속에서 합성하고 의미화 하는 것이다. ●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서도 반전은 시도된다. 그들은 주로 이미지의 연상과 합성을 작업으로 하되, 전통이 갖는 고정관념을 타파시키고 희화시킨다. 가령 일상에 널려진 산업사회의 폐기물의 상표 속 이미지에서 전통의 산수를 연상시키고 이를 통해 산수화가 갖는 허구성과 일상의 의미를 폭로하는 것이다. 물론 '폭로'라고 하지만 그 작품은 우리에게 무겁다기보다 감각적으로 경쾌하게 다가온다. 또 하나는 일상 너머의 선경(仙境)과 같은 전통적 이상 산수를 우리 주변의 일상, 의식주 중 '식(食)'으로 끌어온다. 여기서는 이상 산수가 식탁 위의 음식과 같이 미각으로 제공된다. 이들 세대의 작품들은 이상이 일상으로 이성이 감각으로 전환되어,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상으로 부유하게 만들었지만, 역설적으로 전통과 현실의 문제를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 그런데 이들의 회화는 엄밀하게 말해서 한국화라 하기 부담스럽다. 설령 지필묵이라는 전통적인 매체를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현대의 많은 상 중 하나를 전통적인 지필묵으로 다루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그것을 한국화라기보다 그냥 현대의 삶을 그리는 현대회화이다. 이것은 한국화를 흐르는 물골을 터서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가는 것이 아닐까? ● 현대한국화에는 이렇게 다양한 내용이 혼재한다. 오늘날은 서양의 근대가 부정된 포스트근대의 시대이며, 그로부터 잉태되어 전통의 서화를 해체시켰던 미술[fine art]도 부정되고 있다. 또한 우리 사회는 다문명사회에 접어들어 새로운 문명의 잉태를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미술'의 영역에서 지필묵을 사용해왔던 한국화는 오늘날 다양화된 삶을 표현하는 데 여전히 유효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으로 발전할 것인가? 근대의 부정의 시대에서 근대에 의해 부정되었던 우리의 전통은 어떤 위상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전통적인 지필묵은 포스트근대에서 어떤 긍정적인 매체로 새롭게 부상할 수 있을 것인가? 심지어 그것은 여전히 한국화로서 불릴 수 있을 것인가? ● 이러한 문제에 봉착한 오늘날 한국화는 어떤 모습일까? 이러한 질문 설정이 이번 무안군오승우미술관에서 기획한 「한국화를 넘어–리얼리티와 감각(reality and sens)의 세계」에서 갖는 의미일 것이다. 세대를 넘어 한국화의 영역에서 가장 활발하게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초빙하여 1부 '이상에서 현실로', 2부 '감각과 내면의 세계'로 꾸몄다. 이번 전시가 해답을 갖고 한 전시라기보다 해답을 함께 찾아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것이니, 공은 작가들과 우리 관람객들에게로 던져졌다. "한국화를 넘어"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 조송식
Vol.20171021c | 한국화를 넘어-리얼리티와 감각의 세계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