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lysium

윤두진展 / YOONDUJIN / 尹斗珍 / sculpture   2017_1020 ▶ 2017_1103 / 일요일 휴관

윤두진_Elysium_플라스틱 패널 조각_134×21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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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1020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02:00pm~06:00pm / 일요일 휴관

아터테인 스테이지 ARTERTAIN stage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717-14번지 Tel. +82.(0)2.6160.8445 www.artertain.com

전사의 탄생, 엘리시온! 신화는 다시 시작된다. ● 신화는 인류의 삶과 역사와 섞이면서 빠르게 종교적 스토리텔링으로 이어져 왔다. 우리의 경우 무속신앙과 조상을 숭배하는 유교적 기반으로 이어졌으며, 서구의 경우는 말할 나위 없이 기독교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신화는 신 그리고 신격화된 인간의 이야기들이 혼재되어 있다. 대부분 신화에 나오는 인간 주인공들은 애초에 신격화되어 태어났거나 신과 인간 사이에 태어난 신의 자식들이다. 신격화되어 태어난 주인공들은 영웅이 되어 결국 나라를 세우거나 엄청난 영웅적 스토리를 가지고 신탁된다. 물론, 신의 자식들이야 말 그대로 금수저인 경우니 이들은 처음부터 신의 대접을 받고 자란다. 물론, 신의 자식들 역시 어린 시절 많은 시련을 겪고 그들의 금수저를 찾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여하튼, 이렇게 신화는 신과 신이 된 인간들의 이야기를 매우 인간적인 관점에서 그리고 있다. 따라서 신화에는 수없이 많은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지만 반대로 인간의 욕망이 그대로 신격화 되어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처음부터 신화는 권선징악이라고 하는 종교적 결과는 없었다. 신화가 종교와 결탁되면서 선과 악이 갈리고 천국과 지옥이라는 상벌의 개념이 고착되었다. ● 엘리시온은 그 상벌 중 최고의 상이다. 신탁이 된 영웅들, 일생을 선행으로 일삼은 자들에게 주어지는 사후 혹은 살아서 가는 지상 최고의 낙원이 바로 엘리시온이다. 이 엘리시온은 신들의 전쟁에서 승리한 신족 중 하데스가 다스리는 하계의 낙원이라고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곳에는 눈도, 추위도 없고 그 어떤 비참한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 극락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음 생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엘리시온 들판 골짜기에 흐르는 레테의 강물을 마시고 다시 환생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그 물을 마시면 전생의 기억은 모두 다 사라진다. 오직 행복한 일만 있어야 할 엘리시온이다. 윤두진 작가의 가디언 신화가 만들어지기 까지는 그곳 엘리시온에는 전사가 필요 없었다.

윤두진_Elysium_플라스틱 패널 조각_156×130cm_2017

인간의 육체와 그 육체가 지니는 환상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해 왔던 윤두진의 입체 작업은 육체성의 변형과 확장을 위해 작업 방식을 부조화 했다. 그의 부조는 자연스럽게 어떤 이야기의 한 순간을 표현하는 듯, 이야기가 담겨지기 시작했다. 상상력을 요구하는 회화적 감상 구도와는 살짝 다른 어느 정도 이야기 라인은 충분히 살려 상상력이 동원될 수 있는 감상 구도가 그의 부조 작업의 가장 큰 특징이다. 물론, 그 이야기 라인에 살을 붙이는 입체 작업도 항상 병행된다. 그리고 그의 작업은 신들이 만들어 논 엘리시온을 배경으로 새로운 신화를 만든다. ● 윤두진 작가의 가디언은 인간의 육체적 혹은 정신적 자기 방어를 위해 가장 이상적으로 진화된 육체적 변형이다. 그의 가디언들은 다양한 스토리들을 지니면서 스스로의 모습들을 변형하고 진화시킨다. 또한, 가장 완벽한 인간의 육체로 혹은 최상의 자기 방어를 위한 전사의 모습으로 탄생한 가디언들은 엘리시온에 축적된 선한 영혼들이 형상화된 모습이기도 하다. 그들이 무엇을 지키고자 탄생했고, 다시 지상으로 환생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윤두진 작가의 이야기를 더 들어 보아야겠지만 우선, 그들은 선한 영혼으로부터 꽃이 피는 것처럼 엘리시온에서 탄생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우리가 흔히 알듯이 우리의 선한 영혼을 지켜 누구나 다 엘리시온으로 입성할 수 있도록 가이드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영혼은 선과 악 모두에 반응하고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인데.. 악한 영혼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럼 이건 또다시 권선징악으로 흐르는 종교화된 신화와 같이 너무나 진부해 질 것 같다. 윤두진의 엘리시온 신화는 그렇게 흐를 것 같지는 않지만 상상력이 너무나 딸리는 요즘 같아서는 이 정도의 이야기밖에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을 통해 윤두진의 엘리시온 신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는 수밖에.

윤두진_Elysium_합성수지, 조각, 주조_183×115cm_2017

윤두진 작가는 먼저 자신의 가디언들이 탄생하고 자라고 활동하는 공간을 먼저 상상했다. 이른바 엘리시온이 그곳이다. 그리고 이미 어느 정도 변형과 진화를 마친 가디언들의 역할과 모습들을 정리해 놓았다. 그들의 모습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존재하는 듯 하다. 진부하게 모든 것을 선으로만 잣대를 들이대지는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일 수도 있겠다. 인간의 삶 전체를 놓고 봤을 때 결국 인간 본성에서 흘러나오는 욕망을 어떤 식으로 표출하고 다스려 나가는가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한다면, 가디언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들 또한, 인간의 선한 영혼이 형상화 된 것이지만, 그 선한 영혼은 악을 다스렸기에 선한 것이지 악 자체가 소멸될 수 는 없었을 것이다. 욕망은 다스리는 것이지 없앨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욕망을 없앤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인간 본성 자체를 없애는 것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다. 어찌되었든, 선의 발현으로 악은 잠시 가려져 있다는 것으로 엘리시온에서 탄생한 가디언은 그들의 과한 힘이 각성될 때 즉, 그들의 육체가 전사화 되는 시점에 분명 악의 힘 역시 각성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의 갖춰진 완성체의 모습에서 살펴 볼 수 있다. ● 따라서 윤두진의 엘리시온 신화는 선과 악이 동시에 공존하는 가디언들의 변형과 진화 그리고 악의 각성과 해소 등에 대한 이야기를 큰 틀로 만들게 되지 않을까. 또한, 우리의 역사를 통틀어 이기면 선이고 지면 악이었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이야기로 펼쳐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옮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판단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사고 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거대한 종교적, 도덕적, 윤리적 잣대에 의해 판단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타당 하다는 것이 과연 어디까지 우리의 도덕성을 지켜줄 수 있을까. 이 보편타당과 상식 그리고 윤리가 쌓여서 만들어진 것이 법이고 그 법을 집행하는 기구가 국가라면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자유와 정의를 위해 싸울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전쟁 따위는 말할 필요도 없이 국가가 보호하고 있는 인류에게는 말도 안 되는 것이다. 어쩌면 윤두진의 가디언, 엘리시온 신화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법과 국가를 넘어 인간 그 자체가 지니고 있는 도덕적 정화 능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정화능력에 대한 믿음을 극대화 하는 것. 그렇게 엘리시온의 가디언은, 그리고 우리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는 전사는 탄생되는 것이다. ■ 임대식

Vol.20171020k | 윤두진展 / YOONDUJIN / 尹斗珍 / sculpture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