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정원 .자갈마당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개관展   2017_1018 ▶ 2018_0318 / 월요일 휴관

기억정원 .자갈마당展_.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_2017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구림_김승영_김영진_정혜련 배종헌_이기칠_이명미_임창민

관람시간 / 10:00am~05:00pm / 월요일 휴관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대구시 중구 북성로3길 68-5 Tel. +82.(0)53.421-0037 www.djdrcf.or.kr/space01.htm

'.(닷)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는 오랜 시간 지속되어온 성매매 집결지역(속칭 '자갈마당')의 중심부에 예술을 통한 변화의 기대를 실험하는 시작점(.)이라는 상징을 담고 있다. 또 사회, 경제, 문화적 변화를 거쳐 '성장成長'이라는 지속적인 기대를 받아온 도시가 봉착한 머뭇거림에 대하여 또 다른 '변화'의 가능성을 고안하려는 미술적 장치이다. ● 이 곳, 자갈마당은 100년 이상의 삶과 흔적과 기억이 축적된 공간이다. 1909년 공창으로서 최초 영업을 시작하였고, 해방 이후에도 6.25전쟁 기간 연합군의 위안소로, 1960년대부터 2004년 '성매매방지법'이 제정되던 시기까지 특별한 관리구역으로 존재해왔다. 현재까지 자갈마당에는 가난과 생존, 정치와 경제, 여성 인권, 지역 개발 등 복잡한 삶의 문제들이 얽혀있는 상태에서, 바로 옆 옛 전매청 자리에 1,200여 호에 이르는 주상복합아파트의 입주와 입주민들의 자갈마당 폐쇄 요구라는 새로운 상황을 맞고 있다. 우리는 이 곳 '자갈마당'을 어떻게 기억하고 변화시켜야할지를 질문하는, 100년의 삶이 담긴 장소를 깨끗이 지워버리기 전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창조적 기억의 정원으로서 '.자갈마당'을 기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 이 공간의 개관전시 '기억정원 .자갈마당'은 원치 않는 문화적 유산을 어떻게 미래를 위한 기대감으로 전환시킬 것인가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되었으며, 특정 장소의 일상을 대상으로 낯선 지각을 만들어내는 뜻밖의 개입intervention을 통하여 지역과 도시 전체의 변화를 배양하려는 동시대 예술가들의 상상력과 창조적 기억에 특히 주목한다. 이는 폐업한 과거 성매매 업소 공간에 전시장소로 개입하는 물리적인 문제와 복잡한 사회적 이해관계가 얽힌 현실 환경들에 대하여 예술가의 시간이 어떻게 개입하고, 그 기억 속에서 자기내면과 외부세계의 합일에 의한 예술가 각자의 주관이 어떠한 작업 설계로 시각화되느냐에 관한 것이다. '자갈마당'이라는 특수한 장소의 선택적 공간에 대한 대응은 흰 캔버스 혹은 빈 공간을 마주한 예술가의 생각과 기억, 신체행위, 그 결과적 흔적에 비유할만하다. 이렇게 이번 전시는 참여 예술가 8명의 기억과 그 행위에 대한 우리의 기억들을 다시 채취한 미래의 '기억정원記憶庭園'이라할 수 있다. ● 황폐한 땅이나 척박한 도시 어디에나 뿌리를 내리며 점차 주변을 감싸 안고 치유하는 식물 본연의 특별한 능력은 변화와 생명에 관한 자연의 경외로 해석될 수 있고, 이 전시는 그 식물의 능력을 차용한다. 식물을 닮은 예술의 기억들을 채집하고 우리 앞에 조심스럽게 펼쳐 보이면서, 도시 한가운데에서 숲이 이어진 산맥의 태도를 담은 정원을 떠올리는 것, '기억정원'은 거대한 산맥을 도심의 폐쇄된 건물 안으로 이끌어 오면서 이곳 장소의 특정성을 다시 창조적으로 기억하며, 결국 우리 본연의 자신을 만나는 기대를 담아낸다. 거대한 산맥과 같은 참여 예술가의 기억정원 설계는 다음과 같다.

김구림_음과 양_영상_00:09:30_2012
김구림_문명, 여자, 돈_영상_00:22:10_1969~2016

김구림의 기억정원 설계 ● 1층의 안쪽 전시실에서 상영되는 '1/24초의 의미(1969)', '문명, 여자, 돈(1969~2016)', '음과 양(2012)'등 3편의 비디오 영상은 1969년을 기점으로 파격적인 실험예술을 선보이며 한국아방가르드 미술의 전위로서 파장을 일으킨 김구림의 기억정원 설계이다. 작가의 설계는 예술이 반영해왔던 사회적 현실에 주목한다. 한국 최초의 전위적인 실험영화 '1/24초의 의미'는 1969년 당시의 현실을 겹치고 직조한 것이다. 16mm 필름으로 사운드 없이 촬영한 10분 분량의 이 영화는 속도감 있게 달리는 차에서 본 고가도로 난간과 스쳐지나가는 도시 풍경을 비롯한 파편적인 서사와 하품하는 남자, 샤워 장면 등 기계처럼 살아가는 현대인의 일상을 통하여, 해방 이후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전쟁 다음의 가난이라는 현실에서부터 1960년대 산업사회의 '도시화' 현상을 투영하고 있다. 그리고 '문명, 여자, 돈' 역시, 생계가 어려웠던 1960년대 한국 사회상을 반영하는 작가의 현실인식과 실험적 태도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1969년에 8mm 필름으로 촬영을 시작했으나, 전신 누드장면 때문인지 촬영 도중에 주연 여배우가 사라지면서 중단되어 일부 필름으로만 소개되다가 2016년에 새로 촬영하여 완성하였다. 내용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상경한 시골 아가씨가 허름한 단칸방에서 취직을 기다리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다가 정신착란精神錯亂적 환상에 사로잡히는 안타까운 이야기이며,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동안의 사건으로 구성하고 있다. 또 죽음과 탄생, 생성과 소멸, 희로애락喜怒哀樂, 선과 악, 자연과 문명, 종교, 삶 등 인생의 여러 모습이 음과 양의 조화로부터 비롯된다는 메시지를 담은 '음과 양'은 인류의 숨 가쁜 삶의 흔적을 여러 장면의 파편적 영상으로 겹쳐 당대의 시대상을 반영한 비디오 작업이다. 이번 출품작들은 현실 인식에 연계되는 작가의 주관적인 기억과 상상력이 실험미술의 근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설계이다.

김승영_슬픔_청동, 유리_가변크기_2017
김승영_자화상_단채널 영상_00:16:01_1999

김승영의 기억정원 설계 ● 2층 안쪽의 복도에 설치된 '슬픔'과 그 우측 전시실에서 상영되는 싱글채널 비디오 '자화상'은 김승영의 기억정원 설계이다. 작업노트에 의하면, 작가는 자신에게는 소중하게 느꼈던 공간이 다른 이에게는 지워질 대상으로 여겨지는 현실에 슬픔을 느끼며,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사람들의 시각이 얼마나 다른지를 실감하고 이러한 상황들을 창조적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현장성 있는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의 하나로 작가가 제시한 '슬픔'은 어둡고 긴 좁은 복도의 막다른 공간에 반가사유상을 설치하고 그 앞을 쇼룸처럼 유리로 막아놓은 작업이다. 천장에는 원래 이 장소에서 사용하던 세 개의 붉거나 노란 조명등이 켜져 있고, 뿌옇게 흐려놓은 유리 너머에는 반가사유상의 뒤편 창문을 통해서 외부의 빛이 역광으로 비춰지고 있어서 대상이 자세하게 보이지 않지만, 이곳 현장성 때문인지 부처의 자세에 의한 것인지 미묘한 슬픔을 관객에게 전한다. 작가의 '슬픔'은 해탈과 초월을 상징하는 반가사유상의 자세와 우측 손의 모양을 고뇌하는 듯한 슬픈 몸짓으로 변형한 것이며, 이곳 현장의 과거 내력을 기억하는 관객뿐만 아니라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감정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슬픔에 관하여 우리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제안한다. 비디오로 상영하는 작가의 다른 설계 '자화상'은 벽에 붙여놓았던 자신의 커다란 전신 이미지 사진이 떨어질 때마다 작가가 등장해서 다시 붙이는 장면이 반복되는 상황을 설정하고 있으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좌절과 도전의 끝없는 반복에 관한 인간의 운명을 떠올리게 한다. 이 영상은 현실에서의 좌절과 슬픔의 기억에 관하여 사색하는 명상적 분위기와 새로운 변화의 시도에 대한 기대 혹은 안타까움을 함께 자아낸다.

김영진_자갈마당에 자갈이 없다_사진, 돌_가변크기_2017
김영진_untitled 2017_패브릭 벌룬, 조명_500×300×300cm_2017

김영진의 기억정원 설계 ● 우리는 1층과 2층에서 1970년대 실험정신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김영진의 장소 특정적인 작업 설계를 만날 수 있다. 1층 입구에는 2층으로 뚫린 천장 구멍을 통과해 위에서 아래로 꽂아 박힌 거대한 버섯 형태의 천 풍선이 서서히 부풀어 오르기와 쭈그러들기를 반복하며 변화무쌍한 레이저 빛그림과 함께 매달려 있다. 그리고 2층의 우측 긴 벽면에는 꽉 찬 자갈을 바탕으로 '자갈마당에 자갈이 없다'라는 글씨를 비워낸 11m 길이의 커다란 사진이미지와 바닥에 흩어놓은 실제의 자갈들, 그리고 자갈을 옮겨와 쓴 바닥 글자가 보인다. 아마도 작가는 '자갈마당'에 대하여, 1906년 대구읍성 철거에서 나온 자갈로 예전에 습지였던 도원동 일대를 메웠다거나 이곳 여성들의 야반도주夜半逃走를 감시하기 위해 자갈을 깔았다는 유래를 비롯한 이곳 현장의 기억들을 호출하며 조형하고 동시에 그 조형을 흩어버리며 비워내려 한다. 또 조금 떨어진 창가에는 물이 담긴 동그란 고리 형태의 투명어항 속에 붉은색 금붕어가 헤엄치고 그 바닥에는 흰색 자갈이 깔려있는 장면을 설정하여, 없어진 자갈의 소재와 쳇바퀴 돌듯 살아가는 인간의 숙명에 대한 작가의 해학을 엿보게 한다. 껍질을 벗긴 고양이의 사체(1974), 바람기둥 풍선(1977), 비디오아트(1978) 등 1970년대의 시대성 있는 실험미술의 실천으로 기억되는 작가는 이번 전시의 작가 노트에 "나도 잡가. 니도 작가. 자갈마당을 돌면 자갈이 보입니다. 자기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혹시 못 찾으면 길 건너 어항 집에도 자갈을 팝니다."라고 적고, 또 "오래 전 친구가 군대 갈 때 쌈짓돈 모아 총각딱지 떼 주러 여기를..., 50년이 지난 후 훤한 대낮에 이 마당에..., 인생은 주머니에 손 넣고 어슬렁거리며 한 바퀴 도는 거야. ...중략... 이왕 뚫어 둔 구멍에 2층에서 1층으로 바람을 한번 처박아 보낸다. ...생략" 등 은유적 시어詩語를 남기며, 무엇이든 시각적인 측면에서만 보기보다는 본질을 알 수 있도록 보다 깊게 마음으로 보는 실험미술의 기억정원을 제안한다.

배종헌_누운방_현장에 있던 오브제들과 그 공간, 혼합재료_330×240×246cm_2017
배종헌_夜생화_현장에 남겨진 벽, 유리에 아크릴채색, 영상설치_16×16×3cm×15, 가변설치_2017

배종헌의 기억정원 설계 ● 개인의 삶과 사회적 현상들을 연결 지으며 '타자되기'와 '기록'이라는 방식으로 동시대 미술의 장소특정성을 실천하는 배종헌의 기억정원 설계는 유물 발굴의 현장을 떠올리게 한다. 1층 입구의 우측 벽면에는 이곳 현장공사 당시의 원래 위치에 깨진 그대로 남겨져있던 직사각형 벽면 거울을 발굴한 작업 '매일의 전쟁터에서 상처 입은 우리들을 위한 성스러운 기도'가 보인다. 이 작업은 의견이 서로 달라서 분열된 우리 사회, 더 나아가 전지구적 상호갈등의 모습을 담고 있는 듯한데,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의 상처에 대한 위로와 치유를 암시하는 듯 조심스럽게 깨진 거울 조각마다 다른 화려한 색상의 물감을 칠해놓았다. 그 좌측 벽면에는 역시 현장의 그 위치에 남겨져 있던 유리타일 형식의 장식용 여인누드 이미지를 반투명 비닐로 덮어 가리고 그 옆에 투명 유리그릇 속에는 그 이미지를 모티브로 작게 옮겨 그린 '도원동 비너스'가 있다. 조금 더 들어가 좌측의 안쪽 전시실은 벽면의 마감 자재를 뜯어내고 노출된 콘크리트 구조물을 배경으로 깨지기 쉬운 지름 16cm 크기의 유리그릇 속에 그린 꽃그림 15점이 흩어져 설치되어 있고, 그 아래 구석의 브라운관 모니터에는 15점의 꽃그림들이 예전에는 어느 여성의 특수한 삶의 터전이었던 이곳 현장의 벽지와 커튼, 문, 가구의 장식 등에서 비롯되었음을 기록한 비디오가 함께 상영되는 '夜생화'를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좌측에는 원래 그 방에 있던 가구들이 옆으로 뉘어있고 천장에 있던 조명등과 화재 감지기가 옆 벽면으로 옮겨져 있어서 마치 방 전체를 옆으로 회전시켜놓은 것 같아서 관객이 서있지만 누워서 천장을 보는듯한 '누운방'이 있다. 정면에 보이는 이 천장은 벽지의 꽃 그림 문양이 핀이 나간 것처럼, 혹은 흔들리는 듯 덧그려져 있다. '누운방'은 남성이 아닌 이 방의 주인이었을 여성이 바라보는 시각을 제시하며 사회적 타자로서의 그 여성의 상황을 생각해볼 것을 제안한다. 철거공사 이전부터 작업구상과 수집, 기록을 위해 자주 현장을 방문했던 작가의 설계는 현장성과 그 현장의 창조적 기억을 치밀하게 반영하고 있다.

이기칠_바흐의 골드베르크변주곡 연습_영상_00:15:11_2015 이기칠_공간연습_나무_78×60×120cm_2015

이기칠의 기억정원 설계 ● 그동안 치밀하고 논리적인 성향의 조각을 발표해온 이기칠의 설계는 2층의 어두운 전시실 안에 비디오영상과 조각을 설치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연습'에 대한 이해를 도모해온 작가의 기억을 호출하는 이번 설계는 길이방향으로 이어 연결해놓은 4개의 책상 위에 24×12×12cm와 18×18×18cm 크기 MDF판재 모듈을 이용해 순수 공간 다루기를 연습했던 '공간연습' 8점을 질서정연하게 배치한 설치작업과 연결된 책상의 끝부분과 맞닿은 정면 벽면에 상영되는 비디오영상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습'의 상영을 통하여 구현된다. 작가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갈등을 극복해가는 우리의 현실 삶에 대하여 '실제'의 적응을 강화하는 방법으로서 '연습'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미술 분야에는 전문가이지만 음악에는 비전문가인 작가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것을 목표로 피아노 연주의 기초부터 배우며 연습을 거듭하였고, 총 32곡 중 4곡을 연습한 후, 작가 자신이 연주하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여 이곳 현장에 전시하는 것이다. 또한 '공간연습'은 그동안 전시를 통하여 발표해온 조각, '작업', '작업실', '거주' 연작에서 주제의 상징성을 제외하고, 예술적 고려로부터 자유로운 순수한 공간 다루기로서의 '연습'을 행한 작업이다. 우리는 연습을 진행할 때 반복과 훈련 그리고 변경과 수정을 경험함으로써 실제의 현실에서도 비슷한 문제와 오류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이곳 현장성을 대면한 작가에게 '연습'은 작품의 완성이나 작품 그 자체가 아니라 작품의 제작 과정에서 작가와 작품 사이에 형성되는 유기적이고 역동적인 관계를 창조적인 노력을 들여 기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명미_Office_벽, 마네킹에 아크릴채색_250×263×176cm_2017
이명미_Girl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59×71cm_2017

이명미의 기억정원 설계 ● 2층의 우측 편에는 화려한 색상이 눈에 띄는 3개의 작은 방이 나란히 이어진다. 이 방들은 강렬한 원색과 즉흥적인 드로잉을 통하여 희화, 놀이 혹은 은유적 작업으로 기억되는 이명미의 기억정원 설계이다. 첫 번째 방의 설계는 흰 벽면과 바닥공간을 캔버스 바탕으로 삼아 원색의 붓질과 낙서가 천진난만天眞爛漫하고 자유롭게 보이는 상황이다. 반신의 여성마네킹이 첫눈에 들어오는 설정인데, 넥타이를 매고 핑크빛 색을 걸친 짧은 머리의 노랑색 마네킹이 눈물을 흘리는 상황을 중심으로, 벽에는 얼굴이 뭉개진 남자를 그린 작은 캔버스 그림이 붙어있고 왕관과 구름 드로잉 등이 사방 벽면에 그려져 있는 상태이다. 일과 꿈, 욕망, 역할, 존재감을 상징하는 듯한 'Chair' 문자가 일터를 상징하는 'Office' 문자와 함께 관객의 상상을 안타까움으로 이끌기도 한다. 두 번째 방의 벽에는 어둡고 짙은 파랑색을 배경으로 고급스러운 황금색 액자 틀에 끼워진 두 점의 인물화가 걸려있다. 의복의 단추를 채운 꽃다운 여성을 그린 작은 그림 'Lady'와 욕망이 가득한 눈을 신사 같다며 희화화한 동물 모습의 남성을 그린 'Gentlemanlike' 그림이 남성의 욕망에 의해 가리어진 방주인 여성의 무거움을 은유하고 있다. 세 번째 핑크빛 방은 여성이라면 누구나 그런 시절이 있었을법한 단발의 풋풋하고 앳된 소녀를 그린 그림, 'Girl'이 전통적인 황금색 액자와 함께 고풍스러운 근대적 미술관 같은 분위기가 느껴지도록 설치되어있다. 작가는 이곳 자갈마당이라는 장소와 현실 상황을 'Office'와 '인간'의 문제로 설정하고, 전통적인 인물화의 심리적 기억을 제시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 회복을 제안하고 있다.

임창민_into a time frame Train_Spain_피그먼트 프린트, LED 모니터_110×165cm_2017
임창민_into a time frame 9_피그먼트 프린트, LED 모니터_90×55cm_2014

임창민의 기억정원 설계 ● 지금은 폐업을 했기에 이전과 전혀 다른 용도로 전시를 하는 이곳이 과거에 성매매 업소였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특징적인 공간이 '유리방'이다. 바깥의 길가에서도 내부의 붉은 조명아래 서있는 여성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이 유리방에 임창민은 움직이는 시詩적 공간을 호출하는 3개의 LED모니터 작업으로 기억정원을 설계하였다. 빠르게 움직이는 기차의 객실내부에서 바깥 풍경을 보는 상황의 이미지를 담은 'into a time frame_train in Spain', 오래된 문의 창을 통해서 산 속의 설경을 바라보는 상황 이미지 'into a time frame_9', 단순하게 보이는 창고의 출입구 너머로 파도가 있는 넓고 시원한 바다가 펼쳐지는 상황을 보여주는 'into a time frame_Teshima' 등이 작가의 설계이다. 임창민은 자신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창문이 있는 조용한 실내를 촬영한 정지사진 이미지와 하늘, 바다, 산, 폭포 등 아름다운 자연풍경을 담은 동영상을 한 화면에 물리적으로 합성하여 창조적 기억이 담긴 새로운 리얼리티로 통합해 낸다. 자아가 머무는 내면세계를 은유하는 실내 풍경과 외부 현실세계의 움직임이 지속되는 바깥 풍경이라는 분리된 이원성을 넘어서 자신의 삶에서 통일성을 기억해내고 자기의 영혼을 찾아가도록 하는 배려는 이 작업의 매력일 것이다. 이 설계는 상상력을 통한 외부와 내부의 진정한 통합이라는 창조적 기억을 통하여 지금, 여기의 본질적인 머물기를 시도한다.

정혜련_예상의 경계_광확산 PC, LED_가변크기_2017
정혜련_예상의 경계_광확산 PC, LED_가변크기_2017

정혜련의 기억정원 설계 ● 사회적 매개체로서 예술 혹은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하여 주목하는 정혜련의 기억정원 설계는 어느 장소이든 오랫동안 그곳 현장을 살아온 사용자가 닦아온 길과 지형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드로잉의 형태를 상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과거에 성매매가 이루어졌던 방을 그대로 보존한 이곳 3층의 실내 복도를 따라 금호강 물줄기를 닮은 광확산 폴리카보네이트의 LED 불빛이 흐르고, 그 불빛이 다시 바깥 난간으로 이어지고 건물 밖으로 돌출해나가면서 더 굵게 솟아 둥글게 휘감겨지는 물줄기 형태의 설치작업 '예상의 경계 A line of projection'는 예술을 통한 이 지역의 변화를 상징하듯 강렬한 움직임과 흐름을 시각화하고 있다. 변화의 가능성과 강렬한 생명력을 의미하는 붉은빛의 물줄기는 심장의 박동처럼 점멸을 반복하거나 물이 빠르게 흐르듯 움직이고, 흰빛의 물줄기는 파도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며 살아있는 유기체의 변화에 대한 열정과 지속성을 은유하는 듯 반복하며 움직인다. 이 설계는 작가가 창조적으로 기억하고 상상하는 '세계'의 풍경을 장소 특정적으로 구체화하여 선으로 그려내고, 이를 입체화하는 신체행위의 경험으로서 '드로잉 조각'이다. 작가는 물질 혹은 상황의 생성과 변화, 세계구축에 관한 개체간의 자율적이고 연속적인 상호작용에 대하여 주목하고 있으며, 외부세계와 비가시적인 내면세계를 통합하는 세계의 동작원리로서 유기체적 '생명감'을 시각적으로 조형화하는 일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 ● 8개의 거대한 산맥과 같은 설계가 현실적으로 이곳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에 구현된 이후에 이어지는 상상은 이렇다. 1. 콘크리트 건물로 둘러싸여 정체된 도시의 중심지역, 이곳에 깊은 숨을 내쉴 수 있는 정원으로서, 치유의 예술 공간이 될 수 있을까? 2. 이 '기억정원'이 원시와 현대, 자연과 도시문명, 음과 양이 결속하여 하나의 살아있는 예술적 유기체로서 지속할 수 있을까? 3. 탐사하듯 거닐듯, 건물 내부의 공간 곳곳에서 참여 예술가의 태도와 신체행위를 발견하고, 이를 미래의 어느 순간에 다시 기억할 수 있을까? 4. 변화의 기대로서 '기억정원'이 확산되어, 동네주민들이 참여하는 '정원'에 관한 과정 프로젝트로 나아갈 수 있을까? 5. 결국에는 동네와 지역이 서서히 치유되고 변화, 성장, 기록, 보존의 과정을 개방적으로 시각화하는 미술적 장치가 될 수 있을까? 등이다. ● 지난 시대의 삶을 창조적으로 기억하고 서로 교감하려는 이 전시는 우리 자신의 내재적인 반성과 성찰을 근간으로 자신의 변화와 성장에 대한 기대를 상정하고 있다. ■ 정종구

기억정원 .자갈마당展_.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_2017

장소에 축적된 시공간의 레이어들 ● 내가 누구인지를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내용을 나의 정체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매번 달라진다. 그러므로 정체성이라는 것은 고정된 실체이거나 단일한 항목이 아니다. 정체성은 다분히 주관적인 대상이며 유동적인 개념이다. 그러한 정체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바로 장소다. 내가 어디에 주로 있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어디로 이동하는지는 나에 대해 말해주는 중요한 단서다. 장소는 역사적, 문화적, 물리적 속성을 가진 실체이며, 그것이 인식되는 다양한 시각들이 공존하는 토대다. ● 근대 이전, 전통사회에서 장소는 주어진 물리적 구조의 불변성을 전제로 했다. 풍수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공간 인식에서 산이나 언덕, 강과 같은 요소들은 물리적으로 정해진 것들이었고, 그 구조의 전제 하에서 인식과 교감의 방법론들을 중시해왔던 것이다. 특정한 목적에 의해 인위적으로 조성되는 장소들 또한 오롯이 현실적 수요에 의해 만들어지기보다, 그 의미에 부합하는 지리적 특징들을 활용하는 방법이 대부분이었다. ● 일본을 통해 한반도에 급격하게 유입된 근대는 오랜기간 전통사회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인식에 많은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러한 충격들 중 하나가 바로 물리적 구조를 극복한 장소의 조성이었을 것이다. 일제의 강점에 의해 강제로 유입된 근대를 대표하는 상징은 이전에 본 적이 없었던 스케일의 육중한 건물들과 철도, 항만 등의 대형 기반시설들이었다. 물리적인 규모의 차원을 넘어 더 깊은 충격을 준 것은 조성된 장소에 의해 완전히 달라지는 삶의 패턴이었다. 농경문화를 중심으로 구축된 자연적 삶의 장소를 벗어나 인위적으로 지정된 장소로 이동해서 삶의 대부분을 보내고 그 장소가 지정하는 육체적, 정신적 요소들을 철저하게 육화해야 했던 부자연적 삶이 주는 스트레스는 때로 죽음에 이르게 할 정도였다. 이렇게 근대는 충격적인 방식으로 장소를 조성하고 사람들을 몰아 넣었다. ● 일제가 한반도에서 시행한 식민정책에 의해 조성된 다양한 장소 중에서도 전국에 걸쳐 대대적으로 조성된 대표적인 장소가 바로 신사와 유곽일 것이다. 이 두 장소들은 식민지의 전통적 삶의 패턴을 근본적으로 개조하려는 정치적 욕망의 실현을 위한 대표적인 장치들이 작동하는 곳이다. 그중에서도 유곽은 특히 남성의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장소로서 남근적 분위기가 팽배한 근대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장소이기도 하다. 결국 오늘날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우는 유곽의 역사는 근대의 착종과 시점을 같이한다는 것, 그리고 한반도 주요 도시에 산재한 대형 유곽의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대구의 자갈마당이라는 사실은 이번 전시에 접근하기 위해 미리 알고 있어야 할 사실일 것이다.

김승영_설치장면 / 김영진_설치장면

근대의 제국주의적 욕망이 착륙하여 조성된 이 자갈마당에 다양한 유형의 권력들이 왔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10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종사자와 그들을 활용하는 남성 위주의 업주로 이루어진 구조는 변한 것이 없으나 그 단순한 구조 위에 군림하는 절대 권력의 유형은 일제에서 미군으로, 독재 정권에서 민간 자본으로 변화해왔다. (성매매 집결지의 역사적 흐름은 신진영의 논문 『성매매 집결지의 장소성에 대한 여성주의적 연구』에 잘 기술되어 있다. 본 서문은 신진영의 연구결과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이 모든 것들 위에 올라선 거대 자본의 착륙이 시작되는 시점에 와 있다. 또 한 번의 거대한 전환을 목전에 둔 이 시점에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가 문을 연 것이다. ● 이번 전시가 마련된 .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의 개막 주체는 도심재생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다. 이는 동시대를 둘러싼 여러 힘의 축과 현실사회적 기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즉 전시가 열리는 이 시점은 자갈마당이 조성된 이래 그것을 관할해 온 권력의 유형이 정치에서 자본으로 변화한 시대이고, 그것이 요구하는 것이 유지에서 제거로 변화하는 상황에 와 있다. 다시 말하면 적극적으로 뒤를 봐주다가 이제 개발차익을 위해 내쫓으려 하는 양극단적 수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시점에 마련된 이 전시공간은 정치와 자본이 수요로 하는 극단적 기능의 구현을 일단 멈추고 시공간을 둘러싼 사유의 층위들을 공유하고 소통해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낸다. 장소를 둘러싼 현실정치적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대부분의 주체들의 환영을 받기 어려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동시에 구도심의 낙후와 재생의 과정을 먼저 겪었던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도시를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선택한 방법론이기도 하다. ● 개관전으로 마련된 『기억정원 .자갈마당』展은 이러한 시공간의 중첩된 레이어들을 전시의 모티브로 활용했다. 문제는 이 중첩된 레이어들의 층위가 너무 복잡한 것이어서 명료한 키워드로 해석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래서도 안된다는 점이다. 지난 100여년의 역사의 배면에 쌓인 습기가 짙게 배어있는 이 장소를 놓고 누구든 쉽게 말을 내어놓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전시는 큐레이터의 선명한 기획의도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보다, 여러 작가들 앞에 대상을 툭 던져놓고 작가들의 다양한 해석을 받아서 모아놓은 형식을 택했다. 작가들은 그 직전까지 성매매 장소로 쓰였던 상태로부터 대상을 관찰하기 시작해서 일정한 개보수과정과, 그 주변의 상황까지 수차례에 걸쳐 관찰할 수 있게 배려되었다.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장소에 대한 시각들을 새로운 작품들을 통해 자유롭게 제시했다. 그러므로 이 전시는 큐레이터와 참여작가들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이러한 조건을 감안할 때, 이 전시의 본질적인 의미는 개별 작가들이 장소를 인식하고 각자의 사유들을 펼쳐놓은 다양한 유형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배종헌_설치장면 / 이기칠_설치장면

주지하듯 장소는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다. 작가 개인의 장소적 이력이 작품의 주제와 형식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장소를 인식하는 태도의 유형은 동시대 미술 담론의 중요한 영역을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작가들이 제시하는 장소들은 눈앞에 펼쳐진 물리적 특징에 대한 반응이기도 하고, 그것이 인지되어 재구성된 인식의 영역들에 대한 표현이기도 하다. ● 이번 전시에서 작가들이 제시한 시선들은 자갈마당이라는 장소에 담긴 복잡한 성격들을 조심스럽게 언급한다. 근대가 장소의 자연적이고 물리적 토대를 거부하고 인위적으로 장소를 조성한 역사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인 자갈마당은 그것이 위치한 물리적 특징이나 역사적 토대와는 무관하게 조성된 장소다. 이곳의 특징은 오로지 성욕을 충족시키고 싶은 본능을 가진 남성들의 의지와, 그들로부터 댓가를 받아내기 위한 장치로 구성된 구조라는 점인데, 그러한 측면에서 이곳은 '장소'라기보다 100여년의 시간이 내려앉은 거대한 '공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곳이다. 외부의 기억을 차단하고 순간적 판타지를 제공하기 위해 축조된 건물의 구조는 장소에서 생산된 현실적 연관성들을 차단하고 공간적 속성을 강화하는 여러 장치들을 갖고 있다. 많은 작가들은 바로 이러한 '장소에 내재한 공간적 특징'에 주목하고 있다. ● 배종헌의 작품은 그러한 속성을 잘 드러낸다. 배종헌은 마치 외부의 세계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되어 새로운 차원으로 진입한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는 장치들의 표면에 주목하고, 거기에 자신의 사유를 덧입혔다. 그의 작품 「누운 방」은 성매매라는 행위의 특징상 대부분의 시간동안 누워있게 되는 여성들의 시선을 설치로 치환한 것이다. 누워서 본 여성의 시각에 들어온 전복된 방의 구조를 물리적으로 재현한 그의 작품은 장소의 특징과의 접촉을 차단당한 채, 장소가 지향하는 공간적 특징을 구현해야 하는 종사자들의 시선을 환기시키고 있다. ● 한편 김승영의 작품 「반가사유상」은 장소의 구성과 유지의 현실적 측면에 몰입한 나머지 간과하기 쉬운 감정적 측면을 환기시킨다. 비단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기록된 것들을 통하지 않더라도 집창촌에 흘러들어온 여성들의 삶을 주조적으로 지배하는 감정은 슬픔이다. (신진영의 논문을 비롯해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기록한 대부분의 자료들은 그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을 말해준다.) 종사자들은 대부분 가부장적 가정구조에서 태생적인 약자들로 살다가 거부할 수 없었던 현실의 구조적 모순에 의해 밀려들어온 사람들이고 혹독한 학대의 과정을 감내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감내하는 감정의 무게는 인간의 실존적 측면과 접속되는 것들로서, 자갈마당의 장소의 담론을 초월하는 것이며, 역사와 현실을 운운하며 외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김승영은 그러한 측면에서 슬픔을 주된 감정으로 하는 자신의 작품 「반가사유상」을 뿌옇게 처리된 반투명막 뒤에 위치시키고 천정에 붉은 백열등을 밝혀놓았다. 배종헌이 장소의 물리적, 인식적 속성을 주재료로 장소특정성이 강한 작품을 선보인 반면 김승영은 자신의 이전 작품을 다른 맥락에 위치시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고 볼 수 있겠다.

이명미_설치장면 / 정혜련_설치장면 / 임창민_설치장면

전시장의 내외부 공간을 관통하는 정혜련의 조명 드로잉 작품 「예상의 경계」는 작가의 이전 작품유형을 현장의 특성에 맞춰 응용하여 제작한 사례다. 많은 부분이 변경된 1,2층 공간에 비해 원래의 모습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3층 공간의 복도를 가로지르는 정혜련의 입체 드로잉은 건물 밖으로 나아가 외관 전면부로 연결되어, 새롭게 전시장으로 구성된 건물의 정체성을 환기시킨다. 인근을 흐르는 금호강의 물줄기 라인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정혜련의 드로잉 라인은 장소를 인식하는 물리적 한계를 넘어 중첩된 시공간 영역으로 사유를 확장하게 한다. ● 위에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도 김구림, 김영진, 이기칠, 이명미, 임창민 등 참여작가들의 작품들은 모두 장소의 심리적 가치와 특징을 조명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들은 기능을 변화시켜 새롭게 조성된 공간에서 대상을 인식하고 사유하는 과정을 통해 장소를 새로운 방식으로 점유했고, 결과적으로 장소의 새로운 정의를 제시했다. ● 시간과 공간은 하나의 장소로 수렴된다. 장소를 둘러싼 기억과 역사는 장소의 속성을 구축하며 그것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장소에 수렴된 중첩된 시간과 공간에 대한 인식은 그 장소를 이해하는 본질적 요소다. 이번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이 공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사유의 근간이 바로 그러한 측면에 있다. 이들은 장소를 대하는 우리들의 시선을 보다 복합적이고 유연한 상태로 대체할 것을 권고한다. ● 오늘날 자갈마당을 둘러싼 현실적 논의들은 모두 장소의 현실적 활용에 국한되어 있다. 물론 그 현실적 요구들은 절박하거나 강력하다. 그러나 그것은 장소와 시간에 투영된 집단 기억의 작은 편린조차도 수용하지 못한다. 장소가 점하고 있는 대지는 특정 소유주의 것일지 몰라도, 그것에 내려앉아있는 100여년의 시간과 그것이 상징하고 있는 역사와 기억은 특정인의 소유가 아닌 공공재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므로 그것은 기억되어야 하고 기록되어야 한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그러한 현실사회의 표면적 사고에 층위를 더하는 역할을 했다. 물론 작품은 특정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호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별적인 작품들이 환기시키는 사유는 궁극적으로 현실사회의 견고한 수요를 재고해야 하는 이유들을 제시한다. 이 전시는 자갈마당이 이제부터 그 사유의 모티브로 존재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 고원석

Vol.20171017j | 기억정원 .자갈마당-.자갈마당 아트스페이스 개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