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미술로서의 기억과 상상

New Art as Memory and Imagination展   2017_1017 ▶ 2017_1130 / 월요일 휴관

이명환_입는 수족관_가변크기_2011 이명환_모바일 의자&침대_가변크기_2012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참여작가 김정희 KIM JEONG-HEE_이건용 LEE KUN-YONG 이명환 LEE MYUNG-HWAN_우노 가즈유키 UNO KAZUYUKI 유숩 하드조셉조비치 JUSUF HADZIFEJZOVIC_창신 CANG XIN

주최,주관 / 쉐마미술관_동아세아현대미술작가회 후원 / 한국문화예술위원회_충북지역개발회

관람시간 / 09:30am~06:00pm / 월요일 휴관

쉐마미술관 SCHEMA ART MUSEUM 충북 청주시 청원구 내수로 241 Tel. +82.(0)43.221.3269 schemaart.net

예술창작 행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가 자신의 기억과 상상일 것이다. 예술가에게는 무엇보다 예술적 상상력이 풍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예술가라면 늘 새로운 세계를 응시하고, 그 속에서 새롭고, 독창적이고, 무엇인가 풍부하고, 강렬함을 발견하고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이것을 예술가의 상상력이라 말한다. 예술가들에게 지나간 시간들과 흔적들은 작가의 예술을 배양시키고 탄생시키는 보고이고 그의 인생의 아카이브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작가의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고 그의 미래의 꿈은 상상 속에서 싹트는 것이다. 기억이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고, 이에 반해 상상이란 미래를 꿈꾸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미술과 중세의 미술은 신화와 종교적 테마에 구속되어 있기 때문에 자유스럽지 못했다. 고전주의 미학은 재현의 기능은 발달되었을지언정 표현력이 너무 견고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러웠다. 그에 비해 낭만주의 미술은 예술의 자율성을 강화시켜가면서 순수한 기호를 만들어내었다. 그러나 결국 순수미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아방가르드 미술을 만들어낸다. 아방가르드는 순수미술을 거부하는 '반(anti) 예술'이다. 구석기시대 동굴벽화 이후 근대미술까지 이어져오던 '재현'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뀌게 된 것이다. 그것은 넓은 의미의 창작행위, 예술행위의 근본개념까지도 변했음을 말한다. ● "인간의 넓은 의미의 예술행위는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이제까지 존재하던) 언어로서는 묘사할 수 없는 경험들을 은유를 사용해 나타난다. (물론 그러한 은유는 언젠가는 하나의 실재의 표현으로 고착돼, 일종의 습관적 개념으로 수용되겠지만), 이러한 예술행위란(noticing을 통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개념의 틀을 재조정해 그 습관화된 개념의 틀을 새로운 것으로 대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것이다. 말하자면 이러한 예술행위야말로, 인간의 세계관 가치관을 계속 새롭게 만드는 가장 창조적인 인간행위라는 뜻이다."(홍가이, 현대예술은 사기다, 도서출판 소피아, 2017, pp.264-5) ● 그림이라는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이라도 눈으로 볼 수 있게 다시 나타내주는 그야말로 '재현'의 예술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재현미술의 지닌 순수미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구석기시대의 동굴벽화부터 지속되어 오던 재현의 원리를 완전히 거부하게 된다. 사실 그림은 언어와 문자가 발달되기 이전에 탄생되었기 때문에 구석기 시대 동굴벽화는 근·현대 인간들이 생각하는 재현의 가치와는 전혀 다를 것이다. 오히려 원시미술은 현대미술이 모방과 조작의 반복과 연속으로 떨어져버릴 때 개성적 창조가 결여되는 것을 막고 예술적 창조활동을 촉진시키는 인류의 위대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하겠다. ● 인간에게서 가치란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척도이며, 주관적 의지를 만족시키는 객관적 단위이기도 하다. 예술이 사실보다 가치의 세계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사실은 단순한 실재의 기술임에 비해 예술은 사실의 세계를 초월하는 상상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이후 현대미술은 미술이 지닌 모순을 제거하고 새로운 의미를 지닌 새로운 가치의 예술을 만들기 위한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재현의 거부는 20세기 그 이전부터 계속되었지만, 20세기 초, 순수미술을 거부하는 아방가르드는 재현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아방가르드는 순수 미술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현대미술의 또 다른 노력이다."(조주연, 현대미술 강의, 글항아리, 2017,p.11) 진정한 예술이란 무엇인가? 현대미술은 무엇인가? 수많은 질문 속에서 현대미술은 계속해서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어느새 포스트모더니즘과 더불어 모더니즘의 순수한 기호는 아방가르드의 담론적 기호로 대체되었으며, 이후 지금의 미술은 예술적 '작품'이 아니라 논쟁적 '텍스트'로 해체되었음을 볼 수 있다. 피카소는 전통적인 타블로 형식을 파기하여 회화와 조각이라는 틀을 깼고, 뒤샹은 '레디메이드'를 다른 사물로 인식하게 하여 새로운 물질로 탄생되어진 'Object' 아트를 탄생시켰다. 재스퍼 존스는 회화(Art)와 실체(Life) 사이의 구별을 모호하게 함으로써 회화와 동시에 실재하는'물(物)'이라는 이중적 특징을 갖게 한 것이다. 즉 회화가 물(物)인 동시에 이미지로 표상된 것이다. 이렇게 현대미술에서 '물'이란 자연 대상의 의미를 넘어 지각하고 사고하는 인간의 주체에 대립하는 객체로 규정하게 된다. ● 예술의 가치란 새로운 변화와 창조적 행위에서만이 인정받을 수 있다. 침팬지와 인간은 그들의 진화의 역사 중 대략 99.5%의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도킨스의 학설처럼 인간에게만 창조적 유전자가 계속 진화하고 있다. 0.5%의 차이가 지구상의 생태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0.5%의 창조적 인자가 새로운 과학과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과학적 사고 보다 예술적 사고가 더 창조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남성용 소변기를 만든 과학자보다 변기를 "샘"이라는 개념미술을 탄생시킨 뒤샹의 창조적 가치가 더 특수한 인간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진정한 예술은 역사, 과학을 뛰어 넘는 그 시대의 인간의 가치라는 창조적 유전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하겠다.(김재관, 새로운 창조자, 쉐마아트포럼 강의노트, 2009, p.4.) ● 이번 쉐마미술관의 기획전 "새로운 미술로서의 기억과 상상"은 유럽의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작가 유숩(Jusuf Handzifejzovic), 중국 작가 창신(CangXin), 일본 작가 우노 가즈유키(Uno Kazuyki) 그리고 한국작가로 이건용, 김정희, 이명환 등 모두 6명의 작가가 초대되었다. 이들 여섯 명의 작가들은 명실 공히 아방가르드의 후예들이다. 이들은 일찍부터 회화가 지닌 모순을 새로운 재료와 방식과 언어로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을 만들려 한 작가들이다.

유숩 하드조셉조비치_SHOP OF EMPTINESS_아크릴채색_가변크기, 설치_2017
유숩 하드조셉조비치_SHOP OF EMPTINESS_아크릴채색_가변크기, 설치_2017
유숩 하드조셉조비치_SHOP OF EMPTINESS_아크릴채색_가변크기, 설치_2017
유숩 하드조셉조비치_SHOP OF EMPTINESS_아크릴채색_가변크기, 설치_2017

보스니아 작가 유숩은 유럽 화단에서 일찍이 널리 알려진 매우 유명한 작가이다. 그의 작품은 우리 주변의 모든 문화가 그의 손을 거쳐 새로운 예술로 탈바꿈해버린다. 똑 같은 사물이 시간과 위치의 변화에 의해 지위가 바뀌게 된다. 그는 사물의 고유성과 성질을 절대적으로 존중하면서 그것이 예술의 위치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마술사 같은 예술가이다. 그의 예술은 뒤샹의 작품처럼 특수한 인간의 가치를 지닌 창조적 가치를 만들고 있다. 유숩은 자신의 작품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 "포장용 골판지위에 작업하는 나의 작품은 예술적 그림이 아니다. 나는 생산자로부터 소비자에게로 운송되기 위해 상품들이 머물렀던 장소인 포장용 판지의 여러 곳들을 색으로 표시한다. 나는 이 작품 시리즈를 '드라이프린트컬러링이나 마킹하기, 도드라진 표장(標章), 또는 엠티니스 샵의 계곡들'이라 부른다. 나는 손님을 기다리는 동안 엠티니스 샵Shop of Emptiness에서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골판지 안의 오목한 곳을 색으로 채운다. 나는 폐품이나 골판지위의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곳들을 물감으로 표시하고 색을 칠한다. 나의 작품은 내가 위에서 말한 것 외에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담고 있지 않다. 나는 뭔가를 보여주고, 말하고, 소통하는 것에 대한 아무런 욕심이 없다. 나는 다만 이 대수롭지 않은 행위를 알리려고 버려져서 가치 없는 포장용골판지를 찾아 그 위에 실행해 나가는 것뿐이다. 판지상자 위는 운송 중에 상품의 흔적이 생기는데, 그곳이 색으로 채워진다. 그 상자에는 나의 '개입intervention'만 있을 뿐 그것은 더 이상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그것은 의미가 없다. 그것은 거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지며 미적인 요소들은 가능한 한 최대한 피한다." ● 이 말은 자신의 작품이 비(non) 회화, 반(anti) 회화라는 의미에 대한 설명일 것이다. 결국 "모든 것은 비어 있는 데에서 시작한다."는 그의 지론과 "모든 상품이 생산되면 자리를 이동한다."는 단순한 이치를 작품으로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유숩은 현대미술의 대표적 양식인 '개념미술'의 특징을 구현하는 대표적 유형의 작가이다.

창신_Hidden consciousness series XI 043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80×80cm_2015
창신_새로운 미술로서의 기억과 상상 New Art as Memory and Imagination展_쉐마미술관_2017

중국 작가 창신은 내가 아는 한, 중국 작가들 중에서 최고의 작가 몇 사람 중에 한 사람으로 생각한다. 그의 예술은 퍼포먼스, 입체, 설치, 드로잉, 사진 등 예술의 경계가 없이 뛰어난 역량을 보이고 있다. 내가 그를 만난 것은 약 7년 전인 2010년, 쉐마미술관에서 기획한 한국, 중국, 일본 3 개국 국제전 "새로운 중심과 미래" 전시회에 출품할 중국작가를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 즈음에 중국 교포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되었고 그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게 되면서 그의 예술세계를 관찰할 수 있었다. 그의 스튜디오는 보통 작가들의 스튜디오가 아니었다. 규모가 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작품의 형식도 오브제, 설치, 드로잉 그리고 자신의 퍼포먼스 장면의 대형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그의 작품은 매우 철학적이다. 좀 더 구체적인 표현하자면 범 우주적이라 말하고 싶다. 그의 작품은 물리학자들이 말하는 "부정적인 공간", "암흑 물질"이 우주의 주요한 부분을 구성한다는 이론에 근거하고 있어 보인다. 창신은 그것을 "어둠의 의식"이라 말하며, 그 어둠의 의식과 같이 인간의 신체의 정신과 신체의 육체가 분리할 수 없는 것처럼 소우주의 구성요소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모든 곳의 공허한 우주의 의식과 정신을 생각합니다. 영원한, 그리고 신체의 정신과 의식을 구성하는 신체의 육체가 식별 할 수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을 '어두운 인식'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가 생각하기에 '암흑 의식'은 소우주 에너지이며, 그 구성 요소는 미세하고 유기적 인 생명 에너지 구성입니다." ● 이 말은 그는 암흑 의식의 개념에 대한 은유적으로 표현이며,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어두움 삶'은 '조각'으로, '어둠의 의식'은 '프로필렌'으로 그린 '그림'으로, '제로 상태'는 '카본(carbon)'으로 시각적 사고의 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우주의 암흑세계, Dark Life, 성장과 쇠퇴, 에너지의 순환, 의식과 정신 등에 대하여 깊이 고뇌하면서 그의 작품을 만들고 있다. 이처럼 그의 예술의 범우주적 세계를 생각하는 철학을 담고 있다.

우노 가즈유키_Landscape of Appearances 1_Washi(rice paper), 혼합재료_54×98cm_2016
우노 가즈유키_Landscape of Appearances 2_Washi(rice paper), 혼합재료_35×152cm_2016
우노 가즈유키_Landscape of Appearances 3_Washi(rice paper), 혼합재료_120×208cm_2016
우노 가즈유키_Landscape of Vestiges_Washi(rice paper), 혼합재료_151×208cm_2017

일본작가 우노 가즈유키는 일본 작가로서 보기 드문 엘리트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의 컨셉은 "세계를 상태로서 포착하자"이다. 세계는 '상태'가 '해석'으로서 존재되어진다고 말한다. 우노 작가는 의미의 연결과 단절이 반복해서 조작되는 것으로부터 해석의 세계로, 우리들은 보다 더 고정적인 것과 깨어진 것에 의해 가치를 있게 한다. 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그것은 발견되어지기도 하고 발견되어지지 않기도 한다 할지라도, 비록 내가 그것을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고, 생각하는 것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도 된다고 말한다. 그렇다. 그것은 우리들이 생각한 것을 고정시키거나 또는 그것들과 관계되어진 것의 본질에서 기인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스스로의 상태를 포함한 그 자체라 할 것이다. 세상은 관계성의 방법을 탐내기 위한 해석에 의해 그 스스로 기술되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관계항의 구조로 고정되지도 않지만 관계성 사이의 관계성으로 존재되기도 한다. 이렇게 각각 하나의 부분으로, 수많은 관계성이 담보된 유동성을 지닌 '상태'의 접속에서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노력하게 된다. 이러한 것이 그의 작품의 논조라 할 수 있다. ● 우리들이 눈을 향하는 방향에 따르는 것은 사물의 계층적 구조성에 있는 것은 아니고 관계라는 것의 관계성의 구조, 상태라는 것에 있어서의 그 상태로 나타나는 메카니즘(mechanism)을 말한다. 그것은 '상태'에 있어서 나타나는 세계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보아왔던 풍경의 흔적을 통해서 상상한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기억의 누적을 상상해서 표현한 것이다. 그의 그림의 조형적 언어는 구조적인 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겹쳐진 변형의 결과로 보여 지고 있는데 지구의 지축의 기울기 23.4°로 만들어졌다. 수평, 수직들이 흐트러져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 선들은 빈번히 발생되는 일본의 지진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들 - 중심이 흔들리고 해체되어지는 현상들처럼 또는 불안한 정신적 현상처럼 매우 불규칙하고 불안하게 표현되어 있다. 결국 그의 그림은 지진이라는 자연의 현상과 자신의 작품의 일루전을 일치시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용_신체드로잉 76-1-2017_아크릴, 페니어판_171×244cm_2017 이건용_신체드로잉 76-1_사진_각 20.2×30.5cm_1976
이건용_신체드로잉 76-2-1990_아크릴, 페니어판_244×122cm_1990 이건용_신체드로잉 76-2_사진_각 27.7×35cm_1976
이건용_작가의 오줌_2009~2011 이건용_머리카락_2009~14
이건용_달팽이 걸음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00×150cm_2017
이건용_새로운 미술로서의 기억과 상상 New Art as Memory and Imagination展_쉐마미술관_2017

한국작가 이건용은 50년이 넘는 작가 활동 기간 중에서 대부분을 엉뚱한? 생각과 작업을 해 온 작가이다. 여기서 엉뚱함이라 함은 그의 예술이 평범하지 않다 또는 다른 작가들과 생각이 전혀 다르다는 말일 수도 있다. 그의 예술은 이미 70년대, 지금으로부터 거의 반세기전에 AG와 ST라는 그룹을 통해서 전위예술과 이벤트라고 불리였던 행위예술에 뛰어들어 한국 행위예술을 선도적으로 이끈 예술가이다. 그는 그의 몸(신체)가 그의 예술의 가장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한 작가이다. 붓과 나이프 보다 자신의 몸과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한계와 경계들을 자신의 회화의 "상태,state"로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 자신의 몸에서 배설되어진 '오줌'이나 떨어져나간 머리카락 같은 '털'들도 설치미술의 'state'로 위치된다. 특히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그의 퍼포먼스(결과는 회화적 흔적으로 남지만‥)로 이번 전시회에서도 선보이는 "달팽이 걸음(Snail's Gallop)"은 행위자(작가 자신)가 앉아서 발바닥으로 움직여 전진하면서 자신의 앞에 오른팔로 좌우로 선을 반복하며 그어 나가면 일정시간 진행한 것만큼 행위자의 뒤로 선들에 의한 흔적이 만들어짐과 동시에 두 개의 발바닥이 지우면서 지나간 흔적도 함께 남게 되는 행위이다. 참으로 독보적인 퍼포먼스이다. ● 이건용의 「달팽이 걸음」 이벤트‧로지컬(Event-Logical)은 오늘 날과 같이 가공의 속도가 전 지구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환경에서 생태적 인체의 느린 속도를 현장적(的)으로 경험케 하는 행위이며 가장 초보적인 「긋기」와 「지우기」의 현상을 동어반복(同語反覆)적으로 보여줌으로써 현대 회화의 본질을 궁구하게 한다. 예술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발상과 그 발상을 작품으로 전환시키는 과정과 결과물에 대한 평가이다. 이번에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 - 「작가의 오줌」 「작가의 머리카락」 「Method of Drawing」 시리즈, 「달팽이 걸음」 2017, 10,17 - 은 모두 그의 행위로 만들어진 결과물들이다.

김정희_Thing-D-021_종이에 펜, 스크레칭_112×76cm_2017
김정희_Thing-IN002_재활용 박스, 플라스틱 시트, 나무_200×123×196cm_2017
김정희_새로운 미술로서의 기억과 상상 New Art as Memory and Imagination展_쉐마미술관_2017

한국작가 김정희는 젊은 작가 시절부터 호기심이 많은 작가였다. 성격은 올곧지만 매우 섬세한 성격이기도 하다. 그리고 실험정신이 강하기도 한 작가이다. 이러한 성격을 바탕으로 그의 예술은 성장되어 왔다. 묘사력도 뛰어나지만 물성(物性)에 대한 감성도 매우 뛰어난 작가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미술을 하는 행위도 이러한 유목생활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생각도 그러하고 표현방법도 그러하다. 평면이나 공간에 적당한 위치를 찾아 흔적을 표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몸은 나이를 먹었으나 마음은 아직도 새로운 것을 찾아 부유하는 상태인 나의 삶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삶이 인간으로 태어났기에 무엇인가 자신의 자취, 흔적을 남기려는 부질없는 욕심의 어리석은 마음과 혼재되어 있다. 어찌 보면 이런 어리석음이 지금까지 작가라는 이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 동력이라는 생각도 하게 한다. 늘 새로운 시각을 찾아 정리하려하고, 이것이 진리라고 생각하나 또 다른 것을 찾아 헤매는 삶의 연속이다. 이것을 시각화하려 한다." ● 김정희 작가는 자기 작품의 소재를 자신의 주변, 이웃에서 찾고 있다. 한 때 그의 작품의 소재가 '그릇'이었다. 포장지로 흔하게 쓰이는 '골판지'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송곳으로 스크렛치하여 표현한 것이다. 대부분의 소재들이 그릇이었는데, 그의 말처럼 그릇을 그린 것이 아니라 흔적을 그렸다고 말하듯이 행위와 상처와 인식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출품된 "Thing in002"도 역시 골판지라는 물성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요즘 가장 흔하게 접하는 택배용 박스를 그대로 조립하여 집(house)을 만들었다. 현대인의 문화적 속성의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보인다. 그의 회화는 단순히 캔버스에 그리는 그림에서 현재의 문화적 현상을 관찰하고 현재를 상징할 수 있는 매체들을 그의 생각의 전달하는 수단으로 전환하고 있어 보인다. '상식적인 것'으로부터 '탈 상식적인 것'으로 이동하고 있어 보인다. ● 한국작가 이명환은 이번 전시회에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나의 작품 「Mobile Chaise」는 늘 신체적 활동을 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소제한성의 한계점을 극복하며 멀티공간에서 용이한 untitled에 제안하는 작품이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의 의자는 철학적·사회적, 물질적, 심리적 등으로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심리적 개념으로서의 의자는 '자리'라는 속뜻을 담고 있으며 이는 "권력"을 상징하기도 하는 다양한 얼굴을 가진 뜻으로 또는 개인적인 삶의 자리와도 연계된다." 이 말은 의자가 지닌 의미를 수사학적으로 잘 해석한 것 같다. 그런 이유로 그에 작품 "그녀에게 의자를"이라는 타이틀은 '세계 여성의 날 100주년' 기념 슬로건으로 채택되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된 바가 있다. 미술사에서 많은 예술가들이 의자에 필(feel)이 꽂힌 것도 의자가 갖고 있는 본질이 인류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흐의 "역 원근 적 의자', 워홀의 "의자", 죄인을 다스린 "전기의자" 등등 이렇게 미술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 받는 작품들도 의자가 많은 뜻을 함축 하는 있다는 것도 맥락에서 접근한 것으로 볼 수 있겠다. 많은 예술가들이 의자에 필이 꽂힌 것도 의자가 갖는 철학적·사회적, 물질적, 심리적 의미 때문이었다고 한다. 네 개의 다리의자는 모더니즘 예술의 흐름에 따라 네모난 상자의자, 세 다리, 두 다리, 한 다리의자라는 여러 형태로 변화해왔다. 또한 그의 '퍼포먼스'의 화두는 이러한 의자의 본질에 있다. 즉 의자는 일을 하기 위한 도구이자 권력의 아이콘이지만 복잡한 현대인의 짜증나는 도시에서 횡단보도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 동안 또는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 의자 또는 침대로 변용할 수 있다는 의미의 'performance'이다. ● 이번 4개국 현대미술 초대전은 서두에서 밝힌 바 있듯이 청주지역미술의 영역을 국제화시키고자 하는 목적과 현대미술의 정확한 현장을 제공함으로써 지역 미술인들에게도 가장 창의적이고 새로운 예술의 표본사례를 선보이게 하고자 한다. 그리고 상상력이 풍부하게 발현시킬 수 있는 체험예술교육의 현장이기도 하다. 이것은 쉐마미술관이 지향(指向)하는 목표이고 추구하는 정신이라 하겠다. ■ 김재관

Vol.20171017i | 새로운 미술로서의 기억과 상상 New Art as Memory and Imagination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