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1012_목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공휴일 휴관
갤러리 아트사이드 GALLERY ARTSIDE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6길 15(통의동 33번지) Tel. +82.(0)2.725.1020 www.artside.org
대립적 이미지의 차용을 통한 초선형적(超線形的) 시공간의 탄생 : 한만영의 작품세계 ● 전혀 무관한 일상의 사물들을 모아본다. 과거와 현재를 결합시켰다. 낯설다. 동양과 서양의 이질적인 정서가 교차하면서 현실도 이상도 아닌 낯선 세계에서 현실의 주위를 맴돌고 있다. (작가 노트에서) ● 들어가며 한만영 작가는 기성이미지 차용의 귀재다. 고대 그리스로마시대 유물에서부터 르네상스의 걸작품, 18-19세기 대가들의 유명작품, 그리고 고구려 고분벽화, 토우, 불상, 조선시대 진경산수화, 풍속화, 인물화, 민화, 청화백자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의 미술품들을 현재로 소환한다. 그리고 이들을 현대적 이미지나 오브제들(인기스타 사진, 대중잡지, 광고, 기계부속품 등)과 결합시킨다. 작가는 거의 반세기 가까운 기간 동안 "공간의 기원" 혹은 "시간의 복제"라는 명제 하에 평면적, 입체적 방식을 넘나들면서 기성이미지를 차용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1) 미술사가 송미숙은 일찍이 한만영을 "상상력과 지성을 겸비한 패러디 작가"라고 평가하였고,2) 이후 여러 평론가들은 한만영의 작품세계를 '패러디', '알레고리', '초텍스트성,' '차연(Differance)' 등의 현대적 담론들로 해석해왔다.3) 이 글에서는 이러한 논의들 및 작가와의 인터뷰를 토대로,4) 한만영의 최근 작품들 중심으로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나타나는 차용의 양상과 그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 한만영은 1972년에 미술대학을 졸업하고 지금까지 꾸준히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중요한 기획전에 초대되기도 했지만 주로 개인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는 작가다. 그룹을 결성하고 그룹전을 통해 작품을 발표했던 동시대 다른 작가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그래서인지 그를 한국현대미술의 흐름에서 특정 미술사조 안에 위치시키기가 쉽지 않다. 1970-80년대에 주류를 이루던 단색조 회화나 극사실 회화의 모더니즘 계열은 물론 현실참여를 중시하는 민중미술의 계열과도 일정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한만영은 이런 흐름들로부터 일정 정도 벗어나 확고한 미의식과 철학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개척하여 독자적인 미술세계를 형성해 왔다.
한만영의 작품은 기성이미지를 차용하는 방식에서 실제 오브제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원본을 손으로 직접 재현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일면 극사실주의적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 경우에도 그의 작업은 1970-80년대 한국화단을 풍미했던 극사실 회화와는 차이가 있다. 벽, 벽돌, 낡은 소파, 철길, 공사장 입간판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물을 직접 관찰하여 극사실적으로 재현한 동시대 극사실주의 작가들과 달리, 한만영은 이런 유(類)의 일상성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기성이미지를 차용할 때도 원본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는 자신만의 논리에 따라 단순화, 파편화했기 때문에 작품 전체적으로 일상성과는 거리가 있다. ● 또 일상적 오브제가 등장하지만 전혀 다른 요소들과 병치되거나 결합됨으로써 초현실주의적 느낌을 자아낸다. 이런 작품들은 르네 마그리트(René Magritte, 1898-1967)의 작품을 연상시키는가 하면, 괘종시계 부품이나 시계추, 모래시계, 깨진 석고상, 실패, 자 등 과거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오브제들이 결합되면서 쿠르트 슈비터스(Kurt Schwitters, 1887-1948)의 메르츠(Merz)나 조셉 코넬(Joseph Cornell, 1903-1972)의 상자 구조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들의 작품은 한만영의 미술세계를 형성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러나 한만영의 궁극적인 관심은 오브제를 통해 기억을 환기시키거나 상상력을 증폭시키는 데 머물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의 작품에서는 고전적인 명화나 현대 오브제들이 한 화면에서 자유롭게 결합됨으로써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독특한 상상의 공간을 창출한다. ● 한마디로, 한만영의 기본적인 창작방법론은 대조적인 요소들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다. 기성이미지들이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서로 대조되는 요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다. 예를 들어, 고전적인 명화는 교통신호 표시나 대중잡지의 사진이미지와 병치된다. 또 캔버스의 평면이 박스 같은 입체물과 병치되기도 한다. 이외에도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회화(평면)와 조각(입체), 구상과 추상, 성(聖)과 속(俗), 현실과 비현실, 허구와 실재 등과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이 한 작품에서 결합되는데, 이는 관람자를 낯설게 만들고 상상을 자극하고 나아가 새로운 세계로 이끈다. 한만영의 작품에서 보이는 '병치'는 단순히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대립적 요소들의 이분법적인 병치가 아니라 관람자의 경험과 상상을 작품에 끌어들여 이분법적 틀을 초월하도록 하려는 적극적 방법론인 것이다.
대립적 이미지를 통한 초(超)이분법적 문제제기 ● 사진 복제품이나 실제 오브제를 작품에 도입하거나 데페이즈망 기법으로 시선을 자극하는 것은 미술사의 흐름에서 볼 때 새로운 것은 아니다. 한만영의 경우, 사진이나 복제품을 그대로 가져오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사진이나 기계적 복제 방식을 도입하기보다는 작가의 감정이 직접 전달될 수 있게끔 손으로 옮겨 그리거나 오브제를 직접 제작하기도 한다. 이때 작가는 원본을 사진처럼 베끼기도 하지만 부분적으로 생략하거나 윤곽선으로만 처리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화면 속에서 새로운 이미지로 탈바꿈시킨다. 그러나 원본이 지닌 핵심적인 특징은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에 관람자는 한눈에 원본을 알아차릴 수 있다. 특히 그가 즐겨 차용하는 이미지는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같은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된 명화들이 많다. 한국의 전통미술을 차용하는 경우에도 고구려 고분벽화, 토우, 반가사유상, 진경산수화, 풍속화, 미인도, 민화 등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작품들이다. 여기에 작은 기계부속품에서부터 전화기, 텔레비전 같은 일상적인 오브제들을 결합하는데, 작가는 자신이 즐겨 사용하는 오브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 오브제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였지만 지금도 변함이 없다. 일상의 기능으로부터 쓸모없는 천덕꾸러기 물건으로 전락한 전자회로판이나 시계부품과 같이 조형적 가치가 두드러진 오브제일 수도 있고, 낯선 여행지에서 구입한 인간의 삶과 토속적인 향수가 물씬 풍기는 기념품과 같은 오브제라든가, 꿈과 이상과 무한의 상징성을 증폭시켜주는 깃털과 같은 미래 지향적 이미지가 강한 오브제 등등이 나의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것들이다.5) ● 그렇다면 이러한 차용의 방법론에는 어떤 고민이 담겨 있을까. 이는 우리의 고정관념이나 지식체계 내지는 '안다'는 것에 대한 물음과 관련이 깊다. 한만영의 '지(知)'에 대한 질문은 1970년대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창작의 근원이자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철학자가 아니라 미술가이니만큼 이 하나의 물음을 시기마다 다른 조형적 요소를 통해 새롭게 변형하고 있다. 그가 조형의 근간으로 삼고 있는 기성이미지는 고전적 요소에 작품 제작 당시의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상황이 내포된 현대적 요소와 병치됨으로써 제작 당시의 시대성을 띠게 된다. 물론 과거와 현대가 직설적으로 표현되지는 않는다. 두 요소가 결합되는 방식은 표면적으로 대조 혹은 대비이지만, 이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한만영의 언급을 보자. ● 나는 그림에서는 어디까지나 합리적 지반 위에 서 있는 형상이 있는가 하면 쉬르리얼리즘의 비합리적 충동이 분명히 공존한다. 아니, 이 두 가지는 나 스스로가 내포하는 모순의 결정적인 표출이란 점에서 나 스스로도 미학적 저항의 근거를 갖는다. 그러나 나는 이 두 가지의 요소가 나의 그림 속에서 서로 양의성을 갖고 대립되고 모순되면서 통합되거나 초극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것은 아무래도 나의 회화가 原本的으로 나에게 강요하는 질문인 것 같다.6)
한만영이 사용하는 조형방식을 좀더 살펴보자. 예를 들어, 1983년의 「시간의 복제」에서는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1910)의 「잠자는 집시」(1897)를 차용했는데, 원작에 있는 집시 이미지는 그대로 재현하였지만 사자 대신 달 탐사 장면을 그려 넣음으로써 원시적 풍경과 현대적 풍경을 대비시켰다. 이러한 대비는 최근 작품 「시간의 복제 - K Beauty」(2017)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신고전주의 작가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의 「마드무아젤 리비에르」(1806)에서 초상주인공 리비에르의 이미지를 정밀하게 재현한 작품인데, 이 인물의 배경을 삭제하고 그 대신에 휴대폰 부속품들을 화면 위에 흩뿌려 부착해 놓았다. 신고전주의 시대의 시간과 감성의 메타포로서 리비에르의 초상화를 차용하고 그 위에 핸드폰 부속품을 덧붙여 오늘날 IT산업의 선두주자인 한국의 시간성과 공간성을 환기시키고 있다. 즉, 차용된 고전적 이미지에 현재라는 시간성과 한국이라는 장소성을 담지한 작품이라고 하겠다. ● 한편, 시공간을 초월한 듯한 작품 속에 작품 제작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이 내포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84년 작품 「시간의 복제」는 백사장이 있는 푸른 바다와 나지막한 수평선, 그리고 흰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이 넓게 펼쳐져 있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장면이다. 여기에 영롱한 물방울이 맺힌 깃털이 하늘에 기대어져 있어,7) 영화 『트루먼 쇼』의 마지막 장면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작가는 수평선 좌측 끝에 "BOAT PEOPLE"이라는 글자를 아주 작게 써놓았는데,8) 이는 환상적일만큼 평온해 보이는 바다에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음을 환기시키고 있다. 실제로 이 작품을 제작하던 당시 베트남의 난민들이 '보트피플'이 되어 표류하고 있었다. 글자의 크기가 아주 작기 때문에 작가가 보트피플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적극적으로 이슈화하려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이 작품은 피터 브뤼겔(Pieter Brueghel, 1525-1569)의 「추락하는 이카루스가 있는 풍경」(1555-1558)을 연상시킨다. 16세기에 브뤼겔은 익사 직전의 이카루스가 필사적으로 발버둥치는 데도 누구 하나 이를 눈여겨보지 않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였다. 낚시꾼은 바로 코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낚시에 여념이 없고, 농부는 태연히 밭을 갈고, 여행객은 항해를 계속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한만영은 직접적이고 강경한 어투로 인간의 이기심을 비판하거나 현실 상황을 강변하고 있지는 않지만 보트피플과 연관된 여러 연상 작용들을 촉발시킨다.
1985년경부터 한만영의 관심은 서양에서 한국으로 이동해갔다. 이는, 한국미술사에서 1970년대가 국제적인 미술의 흐름에 큰 관심을 보인 시기였다면, 1980년대는 한국의 전통과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던 시기였다는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만영은 당대의 인기배우인 황신혜의 이미지를 차용하는가 하면, 고구려 고분벽화, 진경산수화, 풍속화, 민화, 토우, 불상 등을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에 도입했다. ●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만영은 소재적 측면뿐만 아니라 조형적으로도 이분법적인 대비의 방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즉, 화면을 좌우 혹은 상하로 나누거나 구상과 추상을 한 작품에 병치한 것이다. 예를 들어, 1992년 작품 「시간의 복제 - 사계절」을 보면, 화면을 좌우로 나눠 좌측 화면은 거친 붓질로 채우고 그 위에 조선시대 회화 중 「연사모종(煙寺暮鍾)」의 일부를 선묘로 그려 넣었다. 멀리 중첩된 산이 보이고 그 아래로 사찰이 표현되어 있어 "안개에 싸인 산속 사찰에서 들리는 저녁 종소리"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하겠다. 반면 그 우측 화면은 안개로 덮인 하늘로 볼 수도 있지만 실상 거의 아무 것도 표현되지 않은 화면으로, 단색조의 평면 추상 회화를 연상시킨다. ●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추상화(抽象化)의 경향이 심화되어간다. 화면의 좌우 · 상하가 대비적으로 표현되고, 이미지는 더욱 간략화된다. 예를 들어, 2002년 작품 「시간의 복제 - 금강산」을 보면, 화면을 압도하는 푸른색은 하늘인지 바다인지를 구분하기 어려운데, 이 푸른색을 배경으로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의 금강산 그림을 몇 개의 선으로 간결하게 표현하고 여기에 푸른색 철사를 병치시켜 놓았다. 또 2005년 작품 「시간의 복제 - Still Life」는 노란 바탕에 석류가 담긴 과일 그릇이 그려진 민화를 선묘로 그린 작품인데, 우측 화면에는 유백색이 모노크롬 화면처럼 깔끔하게 칠해져 있으며 그 위에 푸른색 철사가 부착되어 있다. 한만영 작품에서 철사는 실제 오브제인 동시에 입체적이면서도 선적인 요소이자 추상적인 요소로, 기성이미지를 재현한 회화적 선과는 대조되는 조형요소이다. 이와 같은 이분법적인 구성과 배치는 한만영 작품에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중요한 조형요소라고 하겠다.
'불이(不二)'의 실험 : 양단(兩端)을 깨기 ● 한만영의 작품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이분법적인 틀은 다양한 방법에 의해서 깨지고 만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재료인 거울이 바로 그러한 역할을 하는 소재다. 그는 일찍이 나무 상자를 제작하고 그 내부에 거울을 설치한 후 사진이나 오브제를 넣는 작업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캔버스 표면에 거울을 부착한 작품을 제작하기도 한다. 일반 평면거울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필름미러를 부착하여 시각적인 유연성을 보이기도 한다. 한만영이 거울을 즐겨 사용하는 이유는 거울의 반사로 인해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이분법적 틀로 구성된 작품에서 바로 그 이분법적인 경계를 허무는 것이 다름 아닌 거울이다. 이와 동시에 거울에는 관람자의 모습이 반사되기 때문에 관람자가 작품 속에 포함되며, 따라서 관람자가 존재할 때만 비로소 거울이 제기능을 하면서 작품 안에서 의미를 띠게 된다. ● 한만영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재료와 기법에 도전하는 작가다. 근래에는 동서고금의 유명한 회화작품을 선택해서 배경은 생략하고 인물 형상만을 실루엣으로 처리한 소위 '철제 오브제 회화'를 제작한다. 예를 들어 「시간의 복제 - 샤갈」(2014)은 샤갈(Marc Chagall, 1887-1985)의 대표작 「에펠탑의 신랑신부」(1939)를 차용한 작품인데, 신랑신부는 수탉을 타고 날고 있고, 천사도 이들의 결혼을 축하하려는 듯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신부 옆에 자리하고 있다. 한만영은 샤갈의 원작에서 배경의 복잡한 요소들을 모두 생략하고 보랏빛이 스며든 하늘색을 배경으로 커다란 수탉을 타고 있는 신랑신부만을 표현했다. 보랏빛이 감도는 하늘색은 샤갈의 그림 못지않게 환상적인 세계로 관람자를 이끌어간다. ● '철제 오브제 회화'는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 흥미롭게도 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해서 제작한 작품이다. 작품의 이미지를 윤곽선으로 처리하고 그 사이 공간을 다양한 색면으로 채워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레이저로 이미지 형상을 커팅하고 자동차용 도료로 도포해서 제작했기 때문에 깔끔하고 모던한 느낌을 주며, 특히 매끄러운 윤곽선의 은색은 메탈 소재의 느낌을 강조하고 사이버 감각을 선사한다.9) 요컨대, '철제 오브제 회화'는 과거의 흔적인 명화를 현대문명의 상징인 철과 과학기술로 재현한 것으로, 과거와 현재, 아날로그와 디지털, 원본과 복제, 평면과 입체를 통합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 또한 이러한 색면을 끼워 넣는 작업에서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형상의 색면이 모두 채워져 있지 않고 부분적으로 채워지거나 비워져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에서 채움과 비움에 정해진 규칙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의 직관과 감각으로 채울 것인지 비워둘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한만영의 작품에서는 '채움과 비움'이라는 대립적 개념이 상보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채움은 비움과 더불어 조화를 이룰 수 있을 때 더욱 가치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만영은 이분법적인 틀을 깨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생성과 소멸, 생과 사와 같이 정반대의 개념으로 생각할 수 있는 요소들을 도입하여 이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의 서쪽 페디먼트를 장식했던 이리스(Iris)10) 환조 작품을 부조로 제작한 작품이 있다. 한만영은 머리와 팔다리가 심하게 훼손되어 몸통만 남아있는 이 고대조각상을 신중하게 부조로 재현하는 작업을 했다. 파손된 조각상에는 시간의 흔적이 보이지만, 작가가 전달하려는 것은 소멸의 파토스가 아니다. 생성이 있으면 소멸이 따르게 마련이고, 따라서 생성과 소멸, 생과 사는 대립적 개념이라기보다는 서로 분리 불가능한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고대 로마의 신전 기둥을 제작하기도 했다. 얼핏 보면, 고대 로마시대의 무너진 신전의 한 귀퉁이를 가져와 시간과 세월의 흔적을 표현한 듯하다. 그러나 기둥 사이에 거울이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작품이 놓이는 장소에 따라 현재적인 이미지가 화면에 병치된다. 전시장에서는 관람자의 모습이 비춰질 수 있으며, 자연의 풍경이 비춰질 수 있는 공간에 작품이 놓인다면 자연의 모습이 투영될 수 있다. 소멸의 메타포와 같은 폐허가 된 신전의 잔해에서 우리는 소멸과 허무를 느끼지만, 동시에 그 사이에 부착된 거울에 끊임없이 새로운 이미지가 생성되는 상황을 경험하게 되면서 생성과 소멸은 양극단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생성은 곧 소멸의 시작이며, 소멸은 또 다른 생성을 예기(豫期)한다. ● 이는 한만영이 오랫동안 숙고해온 화두인 불교의 '불이(不二)' 개념과도 상통한다. 원효가 부정해야 할 허망한 세속(俗)과 실현해야 할 진리(眞)의 세계를 '둘이 아닌' 관계로 보았듯이,11) 한만영은 생과 사, 생성과 소멸을 분리 불가능한 것으로, 즉 '둘이 아닌' 관계로 여기고 있다. '불이' 개념은 한만영의 작품 전반에 내재된 미학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이 보다 분명히 드러난 작품은 1992년작 「시간의 복제 - 반야」이다. 이 작품은 캔버스에 회화적인 표현과 함께 실제 오브제를 결합시켜 평면과 입체를 대비시켜 병치하는 방법이 사용되었으며, 배경 화면은 짧은 필획으로 채워져 있는 추상 회화인데 여기에 보살상이 오브제로 병치되어 있다. 그리고 보살상은 박스 속의 여성이미지와 대비된다. 여기에서 특히 간과할 수 없는 요소는 보살상이다. 작가는 실크로드 여행 중에 보살상 한 점을 손에 넣게 된다. 이 보살상은 미완성 상태였는데, 작가는 이 미완성된 보살상에서 자신이 오랫동안 화두로 삼았던 '불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즉 미완성의 보살상에는 과거와 미래, 생성과 소멸의 순환이 함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만영은 "여기서 과거는 내가 보살상을 발견하기 이전까지 목공이 작업한 과정을 말하는 것이며, 현재 그 보살상을 발견한 것을 말합니다. 미래는 완성 과정이죠. 이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이어져 있고 순환됩니다. 이러한 현상을 통찰하고 음미하는 것을 관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고 밝힌 바 있다.12) 생성과 소멸, 시작과 끝은 한없이 되풀이될 뿐이고 모든 시간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 한만영은 생성과 소멸의 문제뿐만 아니라 평면과 입체, 과거와 현재 등 형식적·내용적 측면에서 이분법적 틀로 해석될 수 있는 작업을 지속해오고 있다. 그러나 명화를 차용하여 '知'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고자 했듯이, 그의 관심은 이분법적 틀을 사용해 바로 그 틀을 깨뜨리는 데 있다. 30년 넘게 작품의 명제로 삼고 있는 '시간의 복제'는 조형적인 이분법을 넘어서 보다 복잡한 서사를 구축하려는 작가의 실험정신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서정(敍情) 가득한 초월의 세계로 ● 한만영은 최근 청화백자를 집중적으로 제작하고 있다. 조선의 18-19세기 청화백자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을 선별하여 MDF로13) 도자기 형상을 저부조로 만들고 표면에 문양을 그린 후, 이를 캔버스에 부착하여 제작한 대형 청화백자 작품이다.14) 앞서 언급한 대로, 한만영은 이미지뿐만 아니라 재료 탐색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는 듯하다. 평면성을 어느 정도 유지함으로써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재료와 오브제를 도입하여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MDF는 평면과 입체 작업이 가능하게 하는 재료로, 부조로 깎은 후에 채색을 하게 되면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인 이중적 표현이 가능하다. 이전에는 하드보드지에 비천상, 반가사유상, 사모트라케의 니케 등을 꼼꼼하게 조각하여 부조 작업을 한 적이 있는데, 근래에는 앞서 언급한 고대 그리스로마의 유물들을 비롯해서 MDF로 좀더 안정된 작품을 제작한다. ● 현대 작가들 중 전통 도자기에 관심을 가진 작가가 한만영뿐인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는 김환기(金煥基, 1913-1974)를 들 수 있다. 김환기의 달항아리에 대한 사랑은 모두가 주지하는 대로다. 달항아리 같은 백자는 조선의 선비정신과 연관지어 해석되면서 한국 근현대작가들이 특히 애호하던 도자기류다. 김환기는 미국으로 건너가 완전 추상회화를 그리기 이전까지 달항아리를 비롯한 백자 모티프를 반복적으로 그렸다. 조선백자에 대한 사랑은 김환기 외에도 도상봉(都相鳳, 1902-1977)이나 손응성(孫應星, 1916-1979) 같은 구상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간취된다. ● 이들과 달리, 한만영은 순수백자보다도 청화백자에 매료되었다. 청화백자는 진경산수, 풍속화와 함께 18세기 영정조의 문예부흥기에 꽃을 피웠다. 작가는 청화백자의 청색에 매료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의 청화백자에서 볼 수 있는 절제되고 안정된 청색의 발색과 성긴 붓질은 중국 청화백자의 짙은 발색과 기면전체를 덮는 문양에서 풍기는 화사함과는 다른 순수함이 있어 조선인의 미감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문양에 있어 산수는 물론 매화, 대나무, 난초, 국화 등을 그린 간일한 붓질로 표현한 것이 조선 청화백자만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만영은 이러한 조선의 청화백자의 미적 특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한만영의 청화백자 작품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도자기의 기형을 저부조로 제작한다. 그리고 도자기의 바탕색을 칠한 후에 오리지널 청화백자의 청색에 가장 가까운 청색으로 화공이 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리듯 붓으로 그림을 그린다. 여기서 한만영은 극사실 작가들과는 다른 방식을 택한다. 예를 들어, 고영훈은 세필을 사용해 도자기의 기형뿐만 아니라 문양까지도 극사실적으로 옮겨 그린다. 순백의 표면 질감과 문양을 정밀하게 재현하여 일루전을 만드는 것이다. 이와 달리, 한만영은 세필로 원본의 문양을 극사실적으로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청화백자의 화공이 붓으로 도자기에 그린 것과 같은 회화적인 터치로 문양을 그려 넣는다. 그 결과 원본의 이미지를 닮았지만, 단순한 닮음에 그치지 않고 보다 대담하고 자유분방한 필치가 살아 있게 된다. 이런 식으로 원본의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라 저부조로 된 '한만영의 청화백자' 작품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저부조의 청화백자는 하늘색으로 곱게 채색된 화면의 한 중간에 고정되어 시공을 초월하여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이처럼 한만영의 작품에서 일상적 사물은 기성이미지를 차용한 것이지만 작가의 다양한 기법의 표현을 거치면서 신비에 찬 새로운 세계로 고양된다. ● 한만영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소재인 하늘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 종종 흰 구름이 떠 있기도 한 한만영의 하늘은 1972년 작품 「무제」에서부터 중요한 조형요소로 등장한 이래 모든 시기의 작품에 등장하고 있다. 그의 하늘은 단박에 칠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5회 이상 반복적으로 덧칠한 것으로, 그 결과 오묘하게 깊은 느낌을 자아내며 현실적인 오브제와 대비되는 초월성을 극대화한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는 푸른색을 두고 정신적 울림을 주는 색이라고 언급한 바 있는데, 최근 한 연구자의 조사에 따르면 푸른색에 대한 선호는 인종이나 지역을 초월하여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라고 한다.15) 특정 색에 대한 선호는 사물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이 푸른색을 가장 선호하게 된 이유는 푸른 하늘, 그리고 맑은 물일수록 푸른색을 띠는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즉 푸른색에 대한 선호는 사물에 대한 긍정적 경험의 축적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다. 그렇다면, '한만영의 청화백자' 작품들에 매료되는 이유 역시 한국인의 고유한 미감과 더불어 청색에 대한 긍정적인 경험이 축적된 결과라 할 것이다.
나오며 ● 한만영의 작품에는 기성이미지(동서양의 명화, 마릴린 먼로, 황신혜 같은 대중 스타, 광고이미지 등)의 재현과 변형이 혼재한다. 그의 작업은 두 개의 대립적 이미지, 즉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 고전적 명화와 대중매체, 입체와 평면, 원본과 복제 같은 이질적 사물과 시간을 병치하여 충돌시킴으로써 작품에 긴장감과 활기를 불어넣고 새로운 효과를 창출한다. 그러나 기성이미지를 핍진하게 재현했다 하더라도 그의 작품을 극사실 회화로 분류할 수 없는 이유는 한만영의 사실묘사가 의도하는 지점이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 한만영의 관심은 현실을 객관화하거나 '인식'시키려는 데 있지 않다. 작가는 자신의 의도에 따라 일부를 생략하거나 단순화시키는가 하면, 사물의 파편적인 요소를 몽타주나 콜라주 기법으로 뒤섞어 갈등과 충돌을 야기시키고, 이로써 이미지를 기성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이 낯설게 만들어버린다. 이렇듯 서로 대비되는 사물로 갈등구조를 만들고 과거와 현재의 이질적인 시간을 한 화면에 조합하는 방법은 기존의 현실적 관계를 깨트리고 새로운 창조적 관계를 맺어준다는 점에서 초선형적(supralinearity)이라고 할 수 있다. 단선적인 시간의 흐름을 와해시키고 사물의 합리적 관계를 박탈해버림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창출하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관객은 각자의 경험과 감성에 따라 내용을 재구성하여 상상하게 되고, 이로써 관람자의 인식을 중층화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만영은 '차용'이라는 다소 뻔한 방식을 뻔하지 않게 사용함으로써, 세상은 단선적이지 않으며 중층적이라는 것, 대립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실은 서로를 함축하고 있다는 사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 김이순
1) 한만영은 작품에 '간(間)'이라는 제목을 붙이기도 했지만 대부분 '공간의 기원'과 '시간의 복제'라는 제목을 붙였다. '공간의 기원'에서는 화면 안에 사각 틀을 설정하고 그 안에 인물(주로 명화 속의 여성이미지)을 배치하고 있는데, 인물은 무배경 속에 안개에 휩싸인 듯이 그려져 있어 공간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다. 1983년부터 지금까지 '시간의 복제'라는 명제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 표현이 다양하여 '시간의 복제'라는 제목의 작품들이 지닌 조형적 특징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사실상 '공간의 기원'이나 '시간의 복제'라는 명제의 작품들 간에 조형적 차이점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물론 '시간의 복제'라는 명제의 작품들에서는 시간과 관계있는 오브제들, 즉 시계 부속품이나 모래시계 등이 등장하여 관람자에게 시간의 문제를 환기시키는 듯하지만, 이 두 제목 사이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어떠한 명백한 구분을 둔 것 같지는 않다. '공간의 기원'을 추적하기 불가능한 것처럼 '시간의 복제' 역시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명제는 모두 고정관념이나 지식체계로 인식하고 파악하기에 불가능한 영역임을 암시할 뿐이다. 2) 송미숙, 「오늘의 작가연구, 한만영 –시간과 공간의 패러디」, 『계간미술』(1987, 봄), pp. 154-169. 3) 오광수, 「공간과 시간의 고고학 – 한만영의 작품세계」; 송미숙, 「'시간의 복제' - 상상을 통한 시간의 유희」; 김홍희, 「시간과 공간을 '리메이크'하는 초텍스트적 알레고리」; 서성록, 「'차용'의 의미 공간, 회화의 지평확장」; 임창섭, 「시간과 공간을 유희하는 한명영의 회화」; 진휘연, 「경계와 장르를 넘어서는 자유의 시간」 등이 있다. 4) 한만영 작가와의 필자 인터뷰(2017년 7월 12일; 8월 24일). 5) 『Man-Young Han 한만영』 ART VIVANT(시공사, 1994), 쪽 표시 없음. 6) 한만영, 「1980년대 한국현대미술의 상황」, 『공간』(1980. 9), p. 65. 7) 깃털은 한만영이 즐겨 사용하는 모티프이다. 그는 깃털을 극사실적으로 그려 넣기도 하고 때로는 실제 오브제로 화면에 직접 붙이기도 하는데, 새의 깃털은 인간의 날고 싶은 욕망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다. 8) 앵그르의 「발팽송의 목욕하는 여인」(1808) 이미지와 시계 부속품을 병치시킨 「시간의 복제」(1985)에도 멀리 수평선 위에 "BOAT PEOPLE"이라는 글자가 작게 씌어져 있다. 9) 한만영은 1990년대부터 이미 은색을 즐겨 사용해왔다. 「시간의 복제 - Human」(1997)에서처럼 박스 오브제의 내부를 완전히 은색으로 칠하거나 「시간의 복제 - Primitive」(1999)에서처럼 책 오브제를 은색으로 도포하기도 했는데, 이는 사이버 감각을 나타내기 위한 조형적 요소다. 10) 이리스는 신들의 전령으로 무지개처럼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 파르테논의 서쪽 페디먼트를 장식했던 조각상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머리와 팔다리는 파손되고 몸통만 남아 있는 이 조각상은 고대 그리스 고전기의 대표작이다. 11) 원효의 '불이(不二)' 사상에 대해서는 박태원, 「원효의 불이(不二) 사상 – 둘이 아닌 존재 지평과 실천」, 『철학논총』, 46집(2006.10), pp. 153-173 참조. 12) 안소연-한만영 인터뷰, 「무한한 공간의 층이 느껴지는 감각적 회화」, 『미술문화』(2004. 5), pp. 36-39. 13) MDF(medium density fiberboard)는 톱밥과 접착제를 섞어 열과 압력으로 가공한 것인데. 종이처럼 나뭇결이 없으며 매우 단단한 판재로, 표면이 깔끔하고 밀도가 높아서 섬세한 작업하기에 좋은 재료다. 14) 한만영이 선택한 조선 청화백자는 다음과 같다. 「백자청화 산수문 화병」(18세기, 32.5cm, 삼성미술관 리움); 「백자양각 매국문 병」(19세기, 높이 31.0cm, 이대박물관 소장); 「백자청화 화조문 팔각통형 병」(18세기, 보물 1066호, 18.9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백자청화 난죽문 각병」(18세기, 27.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자청화 매죽문 각병」(18세기, 35.0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백자청화 매조문 편병」(18세기, 14.9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백자 금강산형 향로」(19세기, 22.2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5) Abigail Cain, "Why Blue Is Everyone's Favorite Color," ARTSY Magazine, August 31, 2017. Abigail Cain에 따르면, 100개국의 3만 명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색을 조사한 결과 국가와 인종을 초월하여 푸른색이 단연 1위를 차지했다.
Vol.20171012h | 한만영展 / HANMANYOUNG / ???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