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다.

박지윤展 / PARKJIYOON / 朴祉玧 / painting   2017_1010 ▶ 2017_1020 / 일,공휴일 휴관

박지윤_어릿광대-0423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6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일,공휴일 휴관

구올담 갤러리 KOOALLDAM GALLERY 인천시 부평구 경원대로 1418(부평동 185-1번지) Tel. +82.(0)32.528.6030 www.kooalldam.com

우주공간에 나 혼자 있다면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만일 그곳에 나 아닌 타인과 함께 있다면, 비로소 나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시선이라는 부담 스러운 조건안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 자신이 살아있음을 발견한다. ■ 박지윤

박지윤_어릿광대-16_49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6
박지윤_시선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38cm_2016

페르소나(Persona)란 고대 그리스 가면극에서 배우들이 썼다가 벗었다하는 가면을 말한다. 이후 라틴어로 사람(person)/성격(personality)의 어원이 되고, 지금은 심리학 용어가 되었다. 심리학자 카를 융에 의하면 페르소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도덕, 질서, 의무 등에 따른 것이라 하며, 자신의 본성을 감추거나 다스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 페르소나는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 사회교육 등으로 형성되고, 강화된다고 카를 융은 역설한다.

박지윤_지구인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65.1cm_2017

보통 피에로, 어릿광대는 하나의 가면이면서 페르소나와 같이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모습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얼굴은 웃고 있지만 그 뒤로 감쳐진 진심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릿광대를 그리는 박지윤은 가면의 모습이 아닌 솔직한 내면의 모습, 자신의 심경을 담아내고 있다. 피에로가 가지고 있는 특징만 이야기하면 가면과 같은 대상으로 그 내면을 알 수 없어야 하는데 실상, 박지윤의 피에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녀의 피에로는 다양한 이미지가 있으며, 여러 개의 성격을 내포한 페르소나로 전개되어진다. 그건 자신의 모습이자 다양한 상태의 묘사일 수도 있겠고, 동시에 자신을 감춘 모습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양면성은 어느 정도는 명확하게 드러났으나 최근에는 점점 더 추상적으로 묘사되어 피에로(자화상)의 모습은 사라지고, 추상화로 표현되어지고 있다.

박지윤_응시-0616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38cm_2016

어릿광대 혹은 피에로의 얼굴을 한 박지윤, 그녀의 피에로들은 빨간색, 노란색 등 다양한 색으로 분장을 하고 있으나 그 가면 너머로 피에로의 숨겨진 모습이 엿보인다. 작가는 피에로의 분장을 뒤로하고 가려진 그녀의 다양한 모습을 묘사하면서 동시에 타인의 모습을 찾아간다. 이렇듯 그녀의 다양한 피에로는 그녀가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페르소나와 본성이 묘하게 섞인 자화상이 된다. 본인을 드러냈다가 감출 수 있는 가면은 사실 한국에선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서양의 교육보다도 더 윤리적인 것을 강조했던 유교가 있으며, 이를 풍자라도 하듯 하회탈, 양반탈, 각시탈 등이 있었다. 스스로 이 사회에 길들여지고, 가식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면서 자신의 모습을 피에로에서 찾아낸 작가는 화폭에 감정을 드러낸다. 때론 피에로의 눈빛으로, 약간은 추상화된 격정의 색채로 표현한다.

박지윤_어릿광대-13_32_Oil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6

아직은 어린 나이의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색으로만 화면을 자유롭게 채워나가는 작가의 필력과 대담성에 놀라게 된다. 이러한 표현 방법은 영국 화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화풍을 떠올리게 하는데 특징 없는 단색의 배경 위에 추상적인 형상으로 대담성과 강렬함을 닮고 있다. 그리고 최근 선보인 타인의 모습들과 풍경들은 조금은 지나치게 추상화되어 이미지 너머의 이야기가 덜 전달되지만 이는 작업과정의 일부란 생각이다. 그것은 작업 초기 본인에게 내재되어있던 절박함과 당시의 심경을 담아내는데 집중했던 반면,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지 않은가 유추해본다. 이렇듯 점점 드러나는 작가의 추상적 표현 방법이 추상화를 위한 묘사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많이 그리는 것이 창작을 하는 작가들에게 선행되어야 하지만 많이 느끼고 그 느낌을 제대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혹독하고 힘든 일인지 알기에 작가를 다그치고 싶지는 않다. 단, 박지윤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 감수성이 절대 미흡한 것이 아니기에 진정성을 가지고 꾸준히 창작에 매진해주길 바란다. ■ 강효연

박지윤_응시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6
박지윤_어릿광대-1206_캔버스에 유채_38×38cm_2016

나는 여행 중 우연히 피에로를 보게 되었다. 시선을 빼앗겨 한참을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다. 입은 웃고 있고, 눈은 울고 있으며, 속은 알 수가 없었다. 감정을 드러내는 듯 마는 듯 분장 뒤로 숨어버리는 모습이 마치 나를 닮아 있었다. 나는 공동체에 속해 살아가면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숨길 때가 많다. 사람들은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다고들 이야기 한다. 그럴 때면 우리 사회 현실 속에서 나를 점점 잃어가고 의식과 몸은 공동체 속 사람들의 손에 얼룩져 가는 기분이 든다.

박지윤_어릿광대-기억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90.9×65.1cm_2016

이런 삶은 모순적이며 항상 와 있지만 낯설기만 하다. 공동체 속 사람들의 얼굴은 어디가 진짜인지 피에로의 얼굴만큼이나 헷갈린다. 감정의 경계는 어떤 모습이 자신인지 자각하기 힘들다. 즐겁지 않아도 즐거운 척, 기쁘지 않아도 기쁜 척, 우스꽝스러우면서 화려한 듯한 피에로는 그렇게 분장 뒤로 자신을 숨기고 쇼를 한다. 그런 모습이 우리의 삶과 닮아 있지 않을까?

박지윤_어릿광대-0620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38×38cm_2016

이러한 물음은 자기정체성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고, 나는 인간의 몸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감출 수 없는 내면의 지도이며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얼굴을 작품으로 다루었다. 인간은 오래 전부터 신화와 가면, 철학, 정신분석, 미학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의 얼굴을 연구하였다. 현대에 와서는 현대적인 해체 어디까지가 완성인지 모르는 '성형'을 통해 우리는 얼굴에 칼을 대는 것이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진정 인간의 완성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 탐구를 하며, 무의식적 욕망 얼굴을 작품으로 다루었다. ■ 박지윤

Vol.20171010g | 박지윤展 / PARKJIYOON / 朴祉玧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