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하는 밤

최윤희展 / CHOIYOONHEE / 催允嬉 / painting   2017_1010 ▶ 2017_1020 / 월요일 휴관

최윤희_두 개의 나무(사진_임장활)_캔버스에 유채_162.2×260.6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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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희 인스타그램_@choiyoonheee

초대일시 / 2017_1010_화요일_06:00pm

관람시간 / 12:00p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쏟아지는 밤 ● 빠르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흘끗 본 가로등의 빛, 스쳐 지나간 가로수, 반짝이는 강물의 표면. 늘 무심하게 그리고 무감각하게 대했던 그 풍경들이 밤에는 참으로 낯설게만 보인다. 이상한 일이다. 한낮의 태양이 주는 쨍한 싱그러움을 만끽하다가도, 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에 금방 스며들어 그 분위기에 취하게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예술작품 안에서 밤은 상념의 공간이자 고독, 죽음으로 비유되어 왔다. 많은 화가들이 밤의 풍경을 화면에 담았고, 밤의 아름다움을 찬양하거나 그 어둠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며 두려워했다. 낮이 순차적인 시간의 공간이라면, 밤은 비이성적인 시간의 공간이다. 이곳에서 이성 밖에 놓인 또 다른 자아 그리고 다른 사물들을 발견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 최윤희의 첫 번째 개인전 『반짝하는 밤』展은 도시의 밤 풍경을 담아낸다. 여느 예술가들이 그랬듯 작가에게도 밤은 낮에는 몰랐던 혹은 보지 못했던 사물들과 풍경을 보게 만들고 기억하게 만드는 시간이다. 작가에게 있어 작업실 주변의 나무들, 간판들, 혹은 어스름한 가로등 불빛을 도시의 개체들이 화면의 주인공이 된다. 도시의 밤 풍경은 인공의 빛으로 만들어진 그림자를 통해 낮과는 다른 이미지를 획득하기 때문이다.

최윤희_밤의 강(사진_임장활)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7
최윤희_떨어지는 빛(사진_임장활)_캔버스에 유채_160.6×130.3cm_2017

검푸른 밤 ● 최윤희의 회화에 등장하는 색을 굳이 단어로 치환한다면, '검푸른'이 가장 근접할 것이다. 어스름한 밤에 물든 사물들을 그려내기에 짙은 푸른색 계열의 물감들이 캔버스의 표면을 덮고 있다. 푸른 물감 사이사이에 붉은색 계열의 물감이 겹쳐지면서 풍경은 역동적으로 느껴지는데, 이와 더불어 색이 다급하게 겹쳐진 터치들이 대부분 위에서 아래를 향해 있기 때문에 작지 않은 크기의 캔버스에 담긴 장면은 마치 쏟아질 듯 압도적이다. 특히 작가가 주목하는 것은 가로등과 자동차 헤드라이트 등 밤을 비추는 인위적인 빛을 통해 드러나는 자연과 인공물, 그 경계의 풍경이다. 「밤의 강」(2017)은 횡으로 이어지는 거친 붓의 움직임, 검푸른 물감의 흔적들, 작품의 제목 때문에 화면 속 장소가 강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작품 하단에는 노랑과 검정이 섞인 안전펜스를, 상단에는 멀리서 비치는 교각 또한 발견할 수 있다. 교각의 그림자, 강, 안전펜스의 배열은 인공과 자연이 교집합하는 풍경을 만들어낸다. ● 그러나 「반짝하는 밤」(2017)에서는 이 관계는 역전된다. 나무가 이룬 숲은 펜스와 건물을 가로막고 당당하게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거대한 존재는 심지어 인간이 만들어낸 대상들을 뒤덮고 솟아올라 가려는 생물처럼 느껴지며 때문에 위압적이기까지 하다. 「떨어지는 빛」(2017)은 사이에 모호한 경계를 만들어낸다. 풀숲인지, 나무인지 자연물에 가려져 있는 전신주는 그 형태를 알기 힘든데, 오히려 이 애매함 덕분에 전신주라는 인공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물들이 하나가 되어 풍경을 이룬다. ● 이렇게 사물의 형태가 무너지거나, 사물 사이의 경계가 드러나거나 사라지는 것은 화면 위로 흩어지고 겹쳐지는 붓질 그리고 물감 덩어리들의 운동성을 통해 조성된다. 이는 작가가 그려낸 풍경이 기억의 소산물임을 강조하는 동시에 보는 이로 하여금 대상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없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들이다. 흔히 밤에 보는 풍경이 그렇기도 하지만, 작가가 담아낸 풍경은 찰나의 기억을 통해 재해석된 풍경이기 때문이다.

최윤희_쌓여있는 껍데기(사진_임장활)_캔버스에 유채_91×116.8cm_2017
최윤희_반짝하는 밤(사진_임장활)_캔버스에 유채_260.6×324.4cm_2017

존재하지 않는 풍경 ● 독일의 인상주의 화가 막스 리버만(Max Liebermann)은 "그린다는 것은 제거하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리버만에게 있어 창작과정에서의'제거'란 재현에 대한 단순한 부정이 아니다. 그에게 재현은 원본을 있는 그대로 다시 보여주는 것이 아닌,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발생시킴을 의미한다.(G. Lukács, Die Eigenart des Ästhetischen, Lukács Werke BdⅡ, Luchterhand, 1963, S. 424: 이주영, 「재현의 관점에서 본 예술과 실재의 관계」, 『미학 예술학 연구』, 22권 0호, 2005, p.13에서 재인용; 이주영, 앞의 글, p.14.) ● 최윤희 또한 대상을 닮게 그리는 것에 대한 오랜 고민과 회의를 가지고 있었는데, 결국 대상의 객관적 재현을 거부하기로 한다. 습관처럼 자신이 고집하던 그리기 방식을 전복해보는 실험을 시작한 것이다. 때문에 작가는 자신이 본 풍경이나 사물을 사진으로 기록하지 않으며 설명을 위한 이야기를 만들거나 덧붙이지도 않는다. 대신 중요해진 것은 그 풍경을 마주했을 때의 감정과 그로 인한 순간적 인상이다. 이는 작가가 그 풍경을 기억하게 되는 동기가 되고, 풍경의 프레임을 만들어내며, 캔버스로 옮기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 이처럼 작가는 원본을 기록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여 풍경을 재해석한다. 또한, 이를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에서 작가는 형태를 기억하기보다 자신이 그 풍경의 어떤 부분에 어떤 인상을 받았었는지를 기억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둔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기에 왜곡될 확률이 높지만, 원본의 리얼리티(reality)가 아닌 작가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대상을 충실히 담아내는데 집중할 뿐이다. 「쌓여있는 껍데기」(2017)를 보자. 왼쪽 하단에 놓인 붉은 색의 형태가 눈에 띈다. 화면 전체의 분위기와 다소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그것은 무엇인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풍경 안에 그 물건이 있었고, 작가의 시야에 들어왔으며, 인상에 남았기에 그 사물은 회화 안에 존재해야 한다. ● 더불어 장소를 설명하는 장치들을 작품 안과 밖(제목)에서 생략시킴으로써 추상화된 화면 속 공간에 집중하게 만든다. 결국, 작가가 그리는 것은 자신의 기억과 인상에 의지한 철저하게 개인적이며 감각적인 풍경이다. 이는 기억의 재현을 통해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풍경으로 환원된다. ● 밤이라는 시공간을 겪으며 나타난 순간의 감정과 찰나의 시선, 거기서 파생된 풍경에 대한 인상이 최윤희의 풍경을 구성하는 큰 축들이라고 할 수 있다. 여전히 대상과 재현 그리고 감각의 관계는 작가에게 어려운 고민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감각에 의한 그리기를 위해 앞으로도 작가는 풍경을 통해 여러 회화적 실험을 진행할 것이라 짐작한다. 도시를 배회하고 감각하는 산책자로서의 작가가 담아낼 풍경이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기대하게 되는 이유이다. ■ 김미정

Vol.20171010e | 최윤희展 / CHOIYOONHEE / 催允嬉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