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7:00am~09:00pm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 HOAM FACULTY HOUSE 서울 관악구 낙성대동 239-1번지 Tel. +82.(0)2.880.0300 www.hoam.ac.kr
그 사이를 거닐다. 꽃. 풀. 꿈 ● 꽃은 한국화나 서양화를 망라하고 화가들의 작품 소재로서 인기가 많다. 그 이유는 자연 속에서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대상으로서 꽃이 가장 무난하고 누구에게나 시각적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풀은 꽃, 나무와 함께 산야를 이루는 가장 흔한 식물로서 특히 들풀은 강한 생명력을 상징하고 있어 예술적 소재로서 관심을 끄는 대상의 하나다.
이순애 작가가 걸어 온 예술세계는 들꽃과 들풀 즉 야생화를 소재로 한 한국화다. 그의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첫 개인전(1993년) 시기에는 주로 '생명'을 주제로 척박한 환경에서도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가는 야생화를 의도된 낯선 공간에 배치한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눈 덮인 대지에서 버티며 살아가는 생명체(나무)를 리얼하게 그린 작품은 당시 작가가 추구했던 자연관을 엿보게 한다. 그 이후 세 번 째 개인전(1998)에서는 전통 화조도(花鳥圖) 구도를 차용하여 바위틈에서 당당히 뿌리 내린 고사리, 취나물 등 연약한 풀들을 수묵과 채색화 기법을 혼용하여 이전 작품에서 지향했던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을 담아내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으로 전통을 양분 삼은 것이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전통 채색화 기법을 바탕으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과 꽃을 소재로 자연의 생명력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그의 작품에 큰 변화를 가져온 시기는 2008년을 전후한 시기라고 여겨지는데, 그 이전과 이후의 작품이 뚜렷이 구분된다. 물론 이전의 야생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그대로 이어지지만 대상 재현에 충실했던 초기작품과는 달리 뒤로 갈수록 원근감이나 입체감을 최소화하고 대신 그 속에 내재한 정신성에 무게를 두었다. 예를 들어 작품 「꿈꾸듯 거닐다, 천에 채색, 2008년」 은 화면 속 먼 배경을 몽환적인 산 풍경을 수묵기법으로 처리하고 가까운 거리의 야생화와 들판은 단색에 가깝게 처리했다. 야생화라는 그 대상의 생명력에 몰두하던 작가의 시선이 차츰 작가의 내면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러한 변화는 최근 작품으로 올수록 더욱 심화되어 야생화의 생명력을 작가 자신의 내적 생명력으로 대체시켜 나갔다. 일부 작품에서는 사군자의 사의적(寫意的) 표현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대상의 외형보다는 작가 자신의 정신적 관련성을 투영시켰다. 더 큰 변화는 단일 색으로 칠해진 각진 평면도형을 야생화그림과 원경의 배경 사이에 배치하여, 공간 구조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한 화면에 구상과 비구상이 동거하는 형태가 되었다. 작품 「거닐다, 천에 채색, 2017년」을 살펴보자. 옅은 연두색이 칠해진 바탕에 풀잎들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전면에 꽃과 열매가 달린 들꽃 「까마중」을 그린 작품이다. 열매만 상대적으로 눈에 잘 띌 뿐, 흰색 꽃과 옅은 녹색으로 칠해진 잎사귀와 뒤 배경에 그려진 풀잎들의 그림자는 옅은 색채로 눈에 잘 띄지가 않는다.
그 배경과 꽃의 중간지점을 가로질러 까마중 열매보다 더 진한 짙은 보라색의 평면 도형이 기억자(ㄱ) 꼴로 놓여있다. 안과 바깥의 경계를 지시하는 창이거나 또는 탁자처럼 비스듬히 놓여있지만 그건 단지 짙은 보라색 도형 뿐이다. 이러한 화면 구성은 분명 낯설다. 작가는 이와 비슷한 형식의 그림을 지난 십여 년간 지속적으로 그려왔다. 낯선 침입자(?)인 색칠해진 평면 도형을 작가가 어떤 의도로 야생화의 들판에 그려 넣은 걸까. 낯선 조합으로 다소 불편하기까지 한 이 구도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기존의 틀에 박힌 미술에 대한 반항일까 아니면 작가가 찾아낸 미지의 세계일까. 작가의 의도는 어디에 있던지 내 나름대로 읽어보려고 한다.
온통 회색 빛의 시멘트 건물에 둘러 쌓인 도시의 삶을 상상해 보라. 그 안에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들꽃과 들풀을 만나려면 일상에서 특별한 시간을 내야만 가능하다.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러다가 꽃집에 가서야 비로소 꽃을 볼 수 있는 시대가 올지 모른다. 꽃이나 풀의 입장에서 봐도 그들의 삶의 터전이 하나 둘 씩 사라져 가고 있지 않은가. 작가는 인위적인 것들에 포위되어 삶의 터전이 위협받고 있는 야생화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아니었을까. 다른 한편으로 서구 모더니즘의 역사에서 이젤 페인팅, 즉 구상회화를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한 비구상 중심의 서구 현대미술에 포위 당한 한국 미술, 특히 한국화의 현 상황에 대한 미학적 타협을 도모하려는 의도에서 내 놓은 작품이 아니었을까.
작가는 이번 전시를 '거닐다'로 이름 붙였다. 개별 작품들도 작품명이 '거닐다'다. 여기에 대해 작가는 "바라만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속에 들어가 거닐고 즐기는 것을 함의(含意)하는 의미에서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편을 떠 올렸다" 라고 말했다. 작가의 작품 방향과 의도가 보여지는 부분이며 이를 보다 심층적으로 보기 위해 위에서 언급한 소요유(逍遙遊)가 던지는 메시지를 들여다 보자. 소요유(逍遙遊)는 도가(道家)의 대표적 사상가인 장자(莊子)의 사상을 들어내는 핵심 키워드로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일컫는 말이다. 소요유(逍遙遊)편 첫 장에서 붕(鵬)이라는 새를 통해서 구속되지 않은 이 절대자유를 은유하는 내용이 나온다. 북극 바다에 사는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곤(鲲)이라는 물고기가 변해서 붕(鵬)이라는 새가 되는데, 이 붕새가 날개를 펴면 하늘 한쪽을 덮은 구름으로 착각할 정도로 컸고, 하늘의 못(天池)을 향해 떠나간다고 나온다. 상상 속에서도 가늠하기 힘든 크기의 새는 상상력의 무한성을 암시하거나 궁극적으로 한계 없음에 비유한 것이다. 절대 자유를 지향하는 장자사상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 작가 이순애가 지향하고자 했고, 작품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야생화로 대변되는 자연의 무한한 생명력을 넘어서 그 안에서 유유자적하며 즐기는 아름다움에 있다고 본다. 다만 그의 작품의 내재적 충동은 그러할지라도 실제 작품으로 와서는 과제가 남아있다. 의미의 생산에 앞서 비주얼-랭귀지(visual language)의 중요성이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해본다. 작품 안에 작동하는 형식의 부재가 가벼운 깃털로 머물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 송인상
Vol.20171002f | 이순애展 / LEESOONAE / 李順愛 / pain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