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와의 대화 / 2017_1014_토요일_05:00pm
관람시간 / 24시간 관람가능 / 일요일 휴관 작가에게 번호키를 받아 관람가능합니다.
스페이스 람 Space RAM 서울 서초구 양재동 7-2번지 B1
전시 Here, There, and Everywhere 를 소개하며 ● 이 전시의 떡잎은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무엇인가?'란 질문으로부터였다. 아니, 그러한 대단한 명제로부터 한 걸음을 내디뎠다기보다, 두 아이의 엄마인 예술가(이민경)가 곧 두 아이의 아빠(송영욱)가 될 예술가와 '만약에 이렇다면......'으로 시작한 개인적이고 소소한 바램의 발현_우리는 신세한탄이라고도 하는 이야기,(으)로부터 파생되었다고 하는 게 옳겠다.
시인 심보선은 유토피아의 몰락이라는 글을 통해 유토피아는 어원상 현실에 없는(ou) 장소(topos), 지금 여기 너머의 어떤 곳을 뜻하며, 현재의 모순과 부조리를 추월하고 해결하는 이상적인 세계를 지시한다고 명명한다. 그가 서술하는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곧 현재에 대한 비판이자 극복의 기도이기도 하다. (심보선, 유토피아의 몰락, 인문예술잡지 F 22, 2016, 10쪽) 그러나 유토피아의 아이러니는 어원 자체에 함의된 두 가지 의미 즉, '좋은'과 '없는'의 충돌에서 온다. ● 이러한 충돌은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소리 낼 때, 내가 끊임없이 갈망하는, 나조차도 알 수 없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했으며, 좌절된 꿈과 내가 돌봐야 할 나의 아이들,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웠던, 혹은 자유롭다 믿었던 짧은 순간의 과거, 혹은 삶을 끝낸 후 내가 믿고 있는 신으로부터 약속받은 땅을 상기하게 했다.
현실은 숨쉬는 속도로 돌아간다. 빡빡하다는 단어를 입에 올릴 수 있을까, 모두가 그렇게 치열하게 산다. 그렇기에 '지금'을 부정하고 싶지 않다. 아니 도리어 현실에 뿌리를 내리고 싶다. 매일 대면하고 있는 나쁜 꿈과 싸우고, 주저앉길 원하는 내면의 목소리를 잠재우고 말이다. 엎드려 기도하다 자꾸 잠이 든다는 나에게 잠들지 않고 기도하기 위해 눈을 뜨고 걸으면서 기도한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눈을 감고, 무형의, 어두운, 거대한 어둠같은 대상을 그리며 하는 기도와 겨울과 봄 사이 차가운 마룻바닥을 맨발로 걸으며 현실의 공간을 바라보며 눈을 뜬 채 하는 기도. 우리는 현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관계 맺으며 어떻게 나아가고자 하는지 스스로 묻게 된다. ● 전시의 제목은 비틀즈의 'Here, There, and Everywhere'에서 가져왔다. 다소 감상적일지라도 음악과 그림과 사진과 텍스트와 설치를 함께 즐겨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거기에 없다. 우리는 여기에서 각자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나 있다. (2017년 9월) ■ 이민경
시간의 축적 ● 3월: 두 아이의 엄마인 친구 작가가 같이 작품전을 해보자고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유토피아가 뭘까? 라고 이야기를 한다. / 4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질문한다. 대학원 시절 첫 외부 개인전에서 한 작품의 제목이 "Where am I going?" 이였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너무나 다른 상황에 존재하고 많은 변화를 지나 '지금'에 있다. 지금 나에게 유토피아는 나 혼자만의 유토피아는 아니다. 현재의 유토피아는 누군가와 함께 가야 하거나 누군가를 그곳에 보내고 싶다는 열망 가득한 나로 변해 있는 것 같다. / 7월: 사람은 변한다, 아니 변해야 한다. 감히 내가 나를 작가라 말하고 싶지만 세상이 과연 날 어떻게 불러줄지에 대해서 고민도 한다. 전시를 하기로 한 미술관을 다녀왔다. 너무 맑은 하늘, 정리된 정원, 가슴 설레는 꽃 길, 견고한 돌담 벽, 각진 코너, 완벽한 조화가 조금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오늘 전시 공간을 돌아 보며 설레는 감정을 조금은 조절 할 수가 없다. / 8월: 이런, 새벽 잠을 깼다. 120일된 둘째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을 했다. 그리고 3살 3개월 딸아이의 머리를 만지고 다시 잠을 청해 본다. 20대, 30대를 지나 40대인 내가 하는 일은 그때는 상상도 못한 일들이다. / 9월: 빌어 먹을. 뉴스에서 조금 특별함(장애)을 가진 아이의 엄마는 오늘 무릎을 꿇어야 했고, 모두가 생각하는 유토피아는 각자의 머리 속에 있을 뿐이었다. ■ 송영욱
개인의 서사(indivisual narration)에 대해 ● 한 인간의 정체성을 공간에 투영하여 해석해오다 인간이 보편적으로 공간을 해석하는 방식과 남겨진 공간을 사진과 설치로 담는 작업을 해왔다. 사적인 일상에 작은 드라마들이 줄을 잇자, 더 이상 외부의 장소들을 채집하고 서술하는 작업들이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나의 내면으로, 일견 소란스럽지만 사실은 고적한 개인의 일상으로 침잠하니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로잉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나오는 대로 풀어내고, 텍스트로 정리하고 그 모든 것이 시작되기 전 플래시처럼 떠올랐던 이미지들을 사진으로 재현해보았다. 개인의 서사는 힘이 있다 믿는다. 그것을 경험하고 나오는 공감이든, 상황에 혹은 스토리에 대한 동감이든 진솔하다면 다른 이의 마을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믿는다. 그래서 그 믿음대로 개인의 서사 안에 있는 어둠과 빛, 그것들이 공존하는 시간들을 담길 시도한 다. ■ 이민경
Vol.20170930h | Here, There, and Everywhere-송영욱_이민경 2인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