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버스

인공지능,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자율주행 ...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 꿈꿨던 상상들이 이제 곧 일상이 된다. 과거의 산업혁명과는 달리 선언적 개념으로 등장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우려, 그리고 그 대비를 위해 전 세계가 바쁘고 초조해 보인다. 짧은 시간 동안 압축 성장을 겪은 대한민국은 더욱 불안하다.

강운_물 위를 긋다_34×26cm_2016

미래사회에 대한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상황 속에서 인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에서 전시 '완행버스'는 출발하였다. 인과율(因果律, Causality)에 의한 정확한 계산과 효율적 결과의 산출이 아닌, 인간의 감성과 직관에 의한 판단과 선택의 가치에 대해 질문하고자 한다.

곽인식_Work 84B_130×97cm_1984_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완행버스는 '빠르지 않은 속도로 운행하면서 승객이 원하는 곳마다 서는 버스'를 말한다. 시간표대로 운행하며 정해진 정류소에서 정차하는 시스템과 비교하면, 완행버스는 예측불가능하며 비효율적인 운행방식이다. 그러나 완행버스는 인.간.중.심.적이다.

김재성_질서에 관한 어법-미륵보살반가사유상_117×91cm_2011

인간은 어떠한 행동과 결정을 실행함에 있어 개개인마다 다양한 동기나 신념, 가치가 작용한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과 결정은 예측불가능하다. 인간의 자유의지는 사람마다 제 각각임은 물론이고, 같은 사람의 판단도 상황에 따라, 순간의 감정에 따라 규정지을 수 없는 수많은 다양한 작용에 의해 변할 수 있는 세계이다.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 미스테리한 힘, 그 예측불가능한 힘을 바르게 기르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이라 할 수 있다.

문승근_The Infinite Poem_27.5x435cm_1975_광주시립미술관 하정웅컬렉션

이정록_nabi 112_150×200cm_20147

"완행버스"의 비유를 통해 인간만이 지닌 고유성을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 보여주고자 한다. 인간미로 표출되는 인간의 '감성' 그리고 인간의 감각과 통찰의 발현으로서 '직관'이다. 또한 이번 전시는 하정웅컬렉션 작가인 전화황, 박병희, 곽인식, 손아유, 문승근의 작품과 강운, 김재성, 서영기, 유승우, 윤남웅, 이정록, 이진경, 정선, 정송규, 한희원의 작품을 함께 선보인다.

정송규_생명의 소리_200×240cm_2014

한희원_K도시의 풍경_150×260cm_2016

이제 미래사회에서는 노동은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들은 보다 인간답게 사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다양성, 즉 가치의 다양성을 키워 '인간의 기계화'를 경계해야 한다. 인간 스스로의 조절과 통제, 그리고 선택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한다. 현시대, 혹은 미래사회에서 인류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한 박자 쉬며 사유해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 김희랑

Vol.20170929d | 완행버스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