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 우리

김윰展 / KIMYUM / painting   2017_0926 ▶ 2017_1001 / 월요일 휴관

김윰_네명_한지에 먹_116×96cm_2015
김윰 페이스북_www.facebook.com/ume0428

초대일시 / 2017_0927_수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7: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팔레 드 서울 gallery palais de seoul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10길 30 (통의동 6번지) 이룸빌딩 1,2층 Tel. +82.(0)2.730.7707 palaisdeseoul.com blog.naver.com/palaisdes

종이인형은 어렸을 적에 많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다. 인형을 마냥 예쁘다고 생각하며 온갖 종류의 옷을 입혔다 벗기기를 반복했었고 그 인형을 가지고 만화 속 여주인공이나 TV 속 예쁜 언니들의 대사와 행동, 또는 소꿉놀이처럼 가족의 모습을 재연하기도 했었다.

김윰_그냥 그렇게_한지에 먹_145×97cm_2016

하지만 성인이 되어 다시 접한 종이인형의 모습은 과거와 달리 부자연스럽고 기괴하며 어그러져 보였다. 이는 인형의 재현방식 때문이었다. 얌전히 모은 두 손, 하얗고 깨끗한 속옷, 볼을 붉히며 억지 미소를 짓고 있는 표정, 하나같이 자신과 닮은 인형, 또는 아가 인형을 안고 있는 모습, 성별에 따라 함께 그려진 물체가 다른 모습 등을 말하는데, 이런 인형의 재현방식은 나를 옮아 맸던 기준들이 었다.

김윰_양말과 장난감_한지에 먹_52×37cm_2015

나를 옮아 매는 기준이라는 것은 어렸을 적부터 접해온 매체나 교육을 통해 자리 잡은 것으로 종종 내 행동과 경험을 '틀렸다'와 같은 단어로 비난하게 했다. 이처럼 나에게 자리 잡은 기준과 실제의 경험이 다른 것을 나는 '어긋남'이라고 말한다. 이런 '어긋남'은 내 안에 자리 잡은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했고, 그 기준을 나를 가두는 울타리라고 생각했다. 울타리에서 살아가는 한정된 삶은 누군가가 정해 놓은 공간 속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가축의 모습과 다르지 않아 보였다. 비록 가축이 사는 공간처럼 실질적인 울타리는 없지만 나를 객관화 시키는 명사들(성별, 국가, 연령, 학벌, 외모, 역할) 안에 담긴 사회적인 규범은 울타리 속 가축처럼 나를 그 안에 종속시켰다.

김윰_수도없는_한지에 먹_37×52cm_2016

우리(pen)라는 단어는 나를 가두는 울타리(기준)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내가 포함된 일정한 집단인 우리(we)와도 이상하리만치 비슷하게 느껴졌다. 우리(we)라는 공간 안에 존재하는 우리(pen)와 우리(pen)로부터 형성된 우리(we)는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듯했다.

김윰_단발머리_한지에 먹_65×53cm_2015

나의 모습과 더불어 어떤 인물이 투사되는 종이인형을 가지고 다양하게 배치하고 재조합하며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며 인형의 모습과 인형들이 이룬 집단의 형태, 그리고 그림자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다른 인형에게 드리우는 모습 등을 포착했다. 이는 나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 김윰

Vol.20170926b | 김윰展 / KIMYUM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