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radox of ParadoxⅡ-몸身, 부조리한 몸身

강래오展 / KANGRAEO / 姜來旿 / painting   2017_0921 ▶ 2017_1213

강래오_The Paradox of Paradox#7_ 파괴된 도시를 위한 기념비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112cm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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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후원 / 서울문화재단

2017_0921 ▶ 2017_0930 관람시간 / 11:00am~06:00pm

트렁크갤러리 TRUNK GALLERY 서울 종로구 북촌로5길 66(소격동 128-3번지) Tel. +82.(0)2.3210.1233 www.trunkgallery.com

2017_1124 ▶ 2017_1213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아트팩토리 ART FACTORY 서울 종로구 효자로7길 5(통의동 7-13번지) Tel. +82.(0)2.736.1054 www.artfactory4u.com

몸은 생명력이 끊임없이 생성되는 장場으로서 감각적 경험이 펼쳐지는 삶 속에서 매 순간 생성 변화를 끝없이 시도하는 활동체이다. 인간은 몸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세계 내에 자신을 다양하게 표출한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사회적, 역사적, 문화적 현실 속의 구성원으로서 삶의 의미를 창출하고, 새로운 지평을 여는 창조자인 것은 바로 몸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일찍이 몸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몸의 의미를 깊이 다룬 철학자가 니체이다. 니체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성이라고 부르는 '작은 이성'으로서의 정신은 '큰 이성'으로서의 몸에 속한다고 말한다. 즉 정신은 몸을 매개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큰 이성으로서의 몸이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에 들어서서 어떠한 성격으로, 형태로, 기계로 변화해가고 있는 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번 전시 작업의 주된 계획이요, 목적이라 할 수 있다.

강래오_The Paradox of Paradox#8_ 신냉전시대를 위한 서설序說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45×112cm_2015
강래오_The Paradox of Paradox#12_죽음의 푸가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5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을 통해 "약속할 수 있는 동물을 양육한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인간들에 관해 제기했던 바로 저 패러독스한 과제 자체가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니체는 지금까지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들어 왔던 모든 수단들이 근본적으로 비도덕적이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인간이 사회의 도구적 수단으로 전락하여 자기 가치를 상실하고, 황폐화된 정신사의 틈새에서 자기 읽기에 실패한 인간 상실의 모습으로 출현하고 있음을 비판한다. 작가는 이 시대에 인간의 몸이 처한 주소를 살펴보며 니체의 '몸 읽기'를 토대로 작업의 중심을 세우고, 인간의 몸-욕망과 자본의 연관관계를, 그리고 현시대에 발생하고 있는 전쟁과 폭력적 상황을 고찰하는 면에서 니체의 해석과 진단에 기대었다. 또한 들뢰즈가 말한 '통제사회'를 통해 인간-몸을 구속하는 억압의 기재를 파악하고, 인간의 몸-욕망이 어떻게 통제되고 이용되고 있는 지를 살펴보며 이를 작업 전반의 배경으로 삼았다.

강래오_The Paradox of Paradox#14_무사유적 자본주의의 몸몸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2×145cm_2015
강래오_The Paradox of Paradox#17_나 없는 나의 생... 죄도 없고 비극도 없다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0×162cm_2015

현시대는 일상적 삶의 모든 영역에 경제의 논리가 침투하여 우리의 사고와 행동이 알게 모르게 자본의 욕망에 의해 포획된 시대라 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의 몸-욕망은 긍정적인 생산-욕망의 방향으로 흘러갈 수 없으며, 오히려 자본의 마수에 의해 욕망의 흐름이 차단되어 재영토화되고, 편집증적이고 파시즘적인 통제사회 속에서 철저히 이용되고 소진될 뿐이다. 그리하여 큰 이성이라는 몸은 오히려 작은 이성인 정신 속으로 도피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욕망이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재생산에 기여하고 있음을 간과한 채 몸-정신을 마비시키는 문화를 소비하고, 자신들에게 달콤한 안전을 보장하는 자본의 등 위에서 기생한다. 몸은 눈을 잃고 얼굴을 버린 채 자본의 전체주의화에 충성하는 자발적 예속인의 모습으로, 오늘의 평안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서도 그럼에도 충복이 되기를 자처하는 모습으로 현시대의 거울이 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이 '잘 산다'는 의미에 대해 더 늦기 전에 되짚어 봐야 할 시점에 서있다. 부조리한 몸을 지닌 채, 생산적인 욕망의 흐름을 차단 당하고 자본의 오이디푸스 세계 안에서 안전(?)하게 사는 것이 '잘 산다'인가?

강래오_The Paradox of Paradox#18_내리는 죽음을 위한 시_ 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17×91cm_2016

신자유주의의 불명예라 할 수 있는 '9.11'에 대한 조치로써 미국이 행한 전쟁무역을 우린 목격하였다. 여전히 전쟁무역에 깔린 배경과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전 세계적으로 테러의 몸살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테러와의 전쟁은 오히려 끝없는 어둠의 자식들을 잉태하는 결과만 양산했을 뿐, 무수히 죽어간 억울한 죽음들의 이름을 찾아 줄 명분조차 없게 만들었다. 과연 지구상에 평화의 봄은 올 수 있을 것인가? 지금과 같은 신자유주의의 풍요로운 물질적 세례로 온몸을 적신 우리에게 그럴 힘의 의지가 있는 지 작가는 궁금하다. 그렇다고 현실을 개탄하는 부정적인 암울의 세계로 그림자를 길게 늘일 수는 없다. 작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몸에서 희망을 보고 싶다. 나라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보여준 '촛불혁명'을 경험했듯이, 소수의 부를 위해 다수가 희생되는 참혹한 현실을 막을 수 있는 힘이 인간-몸에는 흘러넘침을 보고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을 해야 할 것인가? 이 시대가 예술인들에게 바라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 강래오

Vol.20170922f | 강래오展 / KANGRAEO / 姜來旿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