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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921_목요일_05:00pm
작가와의 대화 / 2017_0921_목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수요일_10:00am~09:00pm / 일,월요일 휴관
OCI 미술관 OCI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45-14(수송동 46-15번지) Tel. +82.(0)2.734.0440 www.ocimuseum.org
공간에 새긴 양립불가능성에 관한 가능성 ● 1. 루이지 루솔로(Luigi Russolo)가 미래주의 선언문 『소음의 미술(The Art of Noise)』(1913)을 통해 현대미술에서의 소리를 언급하기 시작한 이후 '소리'는 세상에 '반응'하는 예술가의 또 다른 표현방식으로, 3차원 공간 내에서 반사와 흡수, 진동을 일으키며 새로운 시각적 파동을 선사하는 특별한 수단으로 존재해왔다. 19세기의 낭만파 이래 소리를 예술 축으로 하는 이들의 작업은 기본적으로 기존 음계에 의해 구축된 음악을 해체하거나 탈 범주화하는 것이었고, 예술적 도그마(dogma)로부터 이탈한 학제 간, 장르 간 교종이라는 깊고 긴 터널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20세기 초중반 이후 자연발생적인 소리마저 하나의 예술재료-음악적 요소로 삼는 과감한 시도 등은 청각적 환희와 대각성상에 놓인 그 어떤 것까지 건드리곤 했다. 1) ● 소리, 화장하여 '음악'을 말하면 빼놓을 수 없는 작가 중에는 이요나가 있다. 작금의 작업과는 차이가 두드러지지만 2012년 오클랜드 테투히미술관에서 열린 'Composition' 전을 기준으로 한 그의 작업 역시 태동은 음악이다. 첼리스트가 꿈이었던 작가의 초기작엔 음악적 차용을 담보하는 구체적 지시성이 묻어난다. 다만 소리와 연계된 여타의 작업들이 어떤 물체에 에너지를 가했을 때 발생하는 파동을 직접적으로 다룬다면, 이요나는 예술적 도구로서의 음악적 요소가 어떤 식으로 인지될 수 있는지에 멈추지 않고 좀 더 공간과의 융합에 근접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2) 그것은 바로 시청각적 여운을 넘어선 시지각적 재구성에 의한 타자의 발견이며, 공간까지 아우르는 변화무쌍한 상상력을 덧댄 미적 가치의 공명이다. 예를 들면 앞서 언급한 'Composition' 3) 은 첼로(cello)라는 사물로 작화(作畵)의 기원을 불러오고, 스틸로 건축된 공간의 규모와 특성을 전시장 고유의 특질로 치환한 작업이다. 여기서 덩그러니 놓인 첼로라는 오브제(Ready-made)가 생성하는 여백은 다층적이다. 작가의 정체성을 지시하는 것일 수도 있고 사연 있는 히스토리를 나타내는 상징일 수도 있다. ● 그러나 이 오브제는 공간에 들어선 순간 시각화-지각화 되면서 일견 '관찰하는 음악'이자 '보기의 음악', '물질과 공간을 잇는 묵언과 다언' 사이에 머물게 된다. 어찌 보면 청각으로부터의 은유가 시각의 결에 맞닿는 숙시(熟視)이기도 하다. 그리고 신체의 오브제, 공간예술로서 퍼포먼스부터 시작한 존 케이지(John Cage)처럼 미술은 본래 오브제적인 것임을 가리키기도 한다.
2. 첼로가 등장하는 'Composition'과 불과 1년 남짓한 간극임에도 현(絃)의 역할이 공간을 분절시키는 역할로 전이된 이요나의 작품 「Tangential Structures」(2013)는 「Line works」(2012)나 「Line on display」(2016)처럼 연주되고 재생될 만큼 활동적이거나 극적이진 않으나(이들 작품은 하나의 기호공간에 가하는 불확정적이고 즉각적인 분할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소리를 공간 속에서 보다 진화시킨 작업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잡지, 화분, 옷걸이, 가방, 옷, 양철통 등의 온갖 다양한 사물들이 철선에 매달린 이 작품은 기존의 현이 조형요소로 적극적으로 쓰임된 것이면서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조직-작곡(Composition)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까지 포박한다. 4) ● 그러나 「Tangential Structures」는 무엇보다 반응된 공간이 상황으로 치환된 것이라는 데 방점이 있다. 그건 기본적으로 청각의 영역이 '이미지'로 옮겨진 서술이며, 「Line works」나 「Line on display」에서 유추되듯 조형(造形)이라는 궁극을 향해 시공을 포박한 비물질성이 물리적 주변 환경과 어떻게 조우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으로도 해석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은 관객이 마음껏 만질 수 있고 향을 맡거나 맛볼 수 있도록 한 관객 참여형 작품 5) 이기도 하다. 음악적 요소로부터 출발한 작가의 작품은 마음 깊은 곳에 똬리 튼 내면의식과 외부와의 소통, 작가가 제시한 오브제로부터 빚어지는 주체와 타자 간 상호성의 문제를 거론한다. 삶과 예술 혹은 한국과 뉴질랜드라는 같은 듯 다른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스며든 시공간을 넘나드는 탈영역화는 궁극적으로 현존성에 관한 자문을 비롯해 '시각을 관통하는 청각과 청각을 통한 이미지'라는 예술을 배양해 왔음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이요나의 작품들에선 음악적이거나 공간적-시각적인 '작곡'이 일상을 무대로 포획되고 전개되어 온 반면, 일상 속에서 시각예술로 다시 소환-연주된다는 것에 흥미로움이 있다. 6) 시공을 가르고 나누며 그 내부에서 생성과 소멸-소환작용을 일으킨 채 재생음과 무음 사이에서 충돌하고 호흡하는, 그러면서도 음악과 시각이라는 각각의 고유한 성질을 비틂으로서 공간 내 보이지 않는 파동을 일으키는 상황은 일종의 감각의 배반을 일깨우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된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최근 뉴질랜드 오클랜드 'Te Tuhi Centre for the Arts'에서 선보인 「In Transit(Arrival)」(2017)이다. 2016년 대안공간 루프와 난지창작스튜디오(In Transit(Intro))에서의 작품을 연장하는 이 작품은 매우 큰 규모로, 전시실에 들어선 순간 관람객은 이미 작품 내부에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관람객은 작품의 일부가 된다. 상호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선 「Tangential Structures」와 맞닿는다. 하지만 스테인리스스틸로 제작된 이 구조물은 단순한 설치 작업이라기 보단 스테인리스스틸 파이프의 기능적인 측면에 주목해 인간 삶의 거처와 이동(In transit), 메워지길 기다리는 공간을 묻는 건축물에 가깝다. 7) 서울 지하철역, 뉴욕 지하철로 진입 할 때 마주하는 개찰구를 응용한 듯 보이는 이 거대한 금속 구조물은 전시장의 크기와 형태, 공간의 평활도와 수직 및 수평의 지점까지 고려된, 매우 치밀하게 계획된 것으로, 공간과 공간을 묶고 개별적인 반응과 상황을 '공유의 무대'로 소환한다. ● 때문에 「In Transit(Arrival)」은 익숙한 듯 낯선 차원의 공간을 형성하지만 그러므로 다분히 동시대성(Contemporaneity) 8) 을 함의한다. 왜냐하면 동시대성은 집단적 혹은 개별적으로 시대를 살아가는 데 있어 새로운 방식을 끊임없이 드러내는 문화적 상태로의 역사적 전환을 촉발하며, 세계화와 중첩된 채 서로에게 투자하고 간섭하며 필요에 따라 개별적인 양태를 띠기 때문이다. 더구나 'OCI미술관'에 소개될 작품을 포함한 이요나의 근작은 '동시대적(contemporary)'이라는 개념까지 포괄한다. 다름의 직접성인 이것은 시간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방식, 우리와 시간성을 고르게 함의하지만 동시에 각자 고유의 시간성을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들을 타인들과 지분하며 공존하는 다양한 방식을 가리킨다.
3. 이요나의 근작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명적 삶과 그 삶들의 조합, 그것은 공간성과 더불어 '공소(空所)'의 미(美)라는 원리, 시간성을 함께한다. 동시에 각자 고유의 시간성을 살아가는 현재의 시간으로 파편화된다.(공간은 크게 실제의 공간과 기호의 공간으로 구분되고, 실제의 공간과 기호의 공간은 모두 시간으로 측정되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파편화를 담보하는 것은 그의 손에 의해 선택되어진 여러 사물들, 다시 말해 옷걸이에서부터 전등, 버스 핸들, 거리 표지판, 의자, 장난감, 우산에 이르는 다양한 일상의 물체들이다. 이 사물들은 공간과 일상의 복제 장치이지만 시공의 변주와 맞물려 끊임없이 수다스런 소리-잡담-소음 속에선 결코 들리지 않을 침묵의 언어(카오스적 언어)를 애써 찾아내려는 것만큼이나 아이러니함을 내재한다. 그러면서 매일 듣게 되는 소리(음악)처럼 일상에 침투한 미술의 일상성을 의미하는 이요나 만의 언어로 귀납된다. 우린 그 속에서 언제나 이동-탈범주화 하는 동시대인들의 특성을 반영하는 이미지를 마주한다. ● 이요나의 작품들은 음악과 미술을 연계한 '대단히 체계적이나 즉흥적이고 임시적 공간'을 통해 공감각적 상황을 연출하고, 신체를 위시한 촉각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일상 속 예술의 심리성을 탐색한다. 이는 어쩌면 관객들의 인지와 사고, 개념에 혼란을 초래하는 작업들일 수 있음에도 그것을 통해 새로운 미적 가치를 일깨우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비록 누구에게나 인식 가능할 만큼 이해가 원활한 것도 아니고, 취합의 구조 역시 음악에서의 음계나 이치를 따지기도 어렵지만 미학자 유은순의 서술처럼 "물리적, 심리적 제약을 작품에 그대로 끌어들여 자연스럽게 삶의 일상성이 미술에 침투하게 둔다. 그리고 목적과 동선에 따라 효율적으로 최적화된 기존의 건축적 설계에 반하도록, 즉 끊임없이 길을 잃고 헤매도록 공간을 설계한다. 이를 통해 삶의 일상성을 깨트리고, 관객에게 물리적, 심리적 해방감을 선사한다. 또한 공간특정적인 이요나의 설치는 비가시적이거나 숨겨진 공간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기존의 열린 공간을 구획 짓는다는 점에서 양가적 속성을 지닌다." 9) ●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공간 속에서 병렬-중첩되면 기존 시청각적 체계는 무너지고 새로운 영역이 만들어진다. 여기엔 얽기 설기 엮은 구조물의 안전성에 반하는 구분, 제지, 차단이라는 규칙적 용도의 의미까지 포함된다. 따라서 관객은 양립불가능성에 관한 가능성의 이미지를 훑으며, 특정 카테고리 내부로 스스로 귀속시켜온 각자의 신체-관념을 해체함과 더불어 새로운 질서마저 맛보게 된다. 그건 바로 우리네 삶에서 익히 마주하는 상치되고 대립하며 조화로운 성격을 지닌 자웅동체와 같은 의미론적 시스템과 결이 같다.
근래 이요나의 작업은 과거 대비 훨씬 넓은 확장성을 지닌다. 이번 'OCI미술관' 전시에 출품된 작품에서 알 수 있듯 공간을 한층 더 새롭게 구조화하는 방향에서 설정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뉴질랜드와 한국을 관통하는 내적 상황-내레이션을 담아내듯 문화적, 물리적 측면으로의 소통과 함께 장소 특정성과 무형의 시간성마저 넘어선다. 이는 시간, 공간, 관계성을 함유한 여러 종류의 공간을 지나가면서 경험하는 삶, 인지각적 관점에서의 서술이 우선되고 있다 해도 무리는 없다. 10) ● 그래서일까, 필자는 전시 이전 이 원고를 작성해야하는 탓에 그의 실제 설치작품을 볼 순 없었지만, 'Monochrome'을 주제로 한 작가가 보내온 다양한 자료를 통해 적어도 이요나의 공간 특정적 설치, 전치(轉置)되는 공간, 건축적인 설치작품을 통해 낯설지 않은 일상에서 접하는 익숙한 공간과 사물이 선사하는 낯선 경험을 목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머잖아 공간을 텃밭으로 수없이 변모하는 상황과 반응을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 홍경한
* 각주 1) 가시적이지 않은 세계를 시각화한다는 매력은 물론 작화적 관점에서의 기호성을 나타내는데도 소리는 꽤 유효했기에 그만큼 많은 작가들이 개념미술의 일부로 또는 미니멀리즘, 사운드아트, 다원주의의 한 경향으로 소리를 시각예술로 편입시켜 왔다. 2) 이를 다른 각도에서 해석하면 그의 작품들은 개념적으로 존재의 언어이면서 직감의 언어 아래 놓인다. 이때 소리와 침묵(발성으로부터 혹은 내적으로부터 모두 포괄하는)은 나란히 공존한다. 다만 주위 환경의 소리에 주의를 집중시키는 무음곡(無音曲)이 역사적 내러티브를 대리한다면 이요나는 소리를 되레 확장하는 초음곡(超音曲)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3) 이 작품은 건조한 공간에서 오브제의 물질성과 개인적 함의에 집중했다는 인상이 강하다. 반면 선으로 구획된 공간으로 인해 어딘가 모를 침묵의 시간까지 포괄한다는 것도 시선을 끄는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이 작업은 직조된 시각이자 발견된 청각으로 읽힌다. 4) 테 투히 아트센터 브루스 E. 필립스 수석 큐레이터는 2016년 루프 전시 서문에서 이요나의 작업에 일상적인 사물들이 처음으로 철재 구조물들에 끌어들이기 시작한 시점으로 뉴질랜드 웰링턴(Wellington)에 소재한 인조이(Enjoy) 갤러리에서의 전시 「Tangential Structures」(2013)를 꼽았다. 그리곤 뉴질랜드 더니든(Dunedin)에 소재한 블루 오이스터(Blue Oyster) 갤러리와 「Specific Objects 」(2014)를 전시했을 때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는 "이들 설치물들에서 가는 철재 막대(rod) 코일들이 갤러리 공간 전체에 걸쳐 감겨 있기도 하다가 풀어져 있기도 했는데 이는 루프와 테 투히에서 계획했던 곧고 긴 관 형태와는 대조적이었다."고 적시했다. 하지만 연보 측면에서 볼 때 유사한 이요나의 작업은 2011년도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5) 이요나의 이 작품에선 예술 주체의 양도현상을 비롯해 타자의 개입과 개방성을 엿볼 수 있다. 다양한 스토리가 내재된 각기 다른 군도의 공존적 집합을 불러들여 관계를 맺고 통합이 아닌 차이를 이어나가되, 시대를 '번역' 하는 역할까지 맡는다. 그렇게 하여 생성되는 작용은 아마 그 자체로 이전과 전혀 다른 미적 경험을 유도하고 관객들로 하여금 새로운 예술적 체험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일 것이다. 이를 구성주의로 단편화하는 것은 무리다. 6) 전시기획자 백곤의 말을 빌리자면 "음악을 통한 미술, 미술을 통한 음악이 아니라 음악이 일종의 도구라면 미술은 그것의 표현인 것이다.(중략) '표현에 대한 강렬한 믿음'이 그녀의 예술철학이자 작품의 의미를 넘어서는 초월성이기에 작품의 재료와 형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 하게 하는 원동력, 즉 공간과 음악적 요소, 시각과 관객인 사람의 관계를 통한 상호작용이 중요하며 이것이 바로 요나리 작품의 독특성인 것이다."로 대입할 수 있다. 7) 여기서 말하는 건축물의 의미는 어떤 사회공동체와 작가 간 상관성에 있어 1, 주거 공간 2, 소통의 너비 2, 미학적인 종합예술작품의 순으로 이어진다. 8) 이요나의 작품에서 동시대성은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이고 개별적이면서 타인과 공유되는 경험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지만 각각이 특징이 외면되지 않는다. 결국 「In Transit(Arrival)」에 녹아 있는 동시대성은 문명적 삶과 그 삶들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맥락과 상호 관련 속에서 미술을 바라보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9) 이는 일종의 경험적 상호작용과 유목적 상호작용의 예이다. 즉, 그의 작업은 현상학적으로 관객이 작품에 신체적으로 개입하는 경험적 상호작용부터 장소를 넘나드는 비물질적 상호작용까지 아우른다는 것이다. 이는 장소 자체의 이동성에 의존하는 오늘날의 문화현상을 대변하며 관계미학으로 설명될 수 있는 사회적 교차, 교류 등의 작품들에서부터 디지털 노마드 시대의 새로운 미학적 개념을 통한 본격적 상호작용을 가능케 한 모든 관계성을 포함한다. 10) 이요나 작품의 특징은 시간과 공간을 텍스트화하며 적극적으로 탈분야화 한다는 점이다. 미술, 음악, 건축 등의 장르나 전통적 구분에서 벗어나 자연스럽게 혼합하고 있을 뿐더러 설치, 미디어, 퍼포먼스 등, 수용 가능한 모든 방식을 최대한 활용해 혼합 감각적인 예술로 변화시킨다. 특히 그는 지리적, 문화적, 국가적 표상으로 경계를 구체화하고, 교차시키며 탈영토화, 위반, 초월, 탈주 등의 개념을 공존, 혼종과 같은 또 다른 개념으로 소환하거나 직조한다.
Vol.20170918k | 이요나展 / Yona Lee / 李要那 / mixed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