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915_금요일_05:00pm
참여작가 곽상원_권혜경_김정은_민혜기 서민정_이주원_조민아_최희승_허산
비평워크숍 / 2017_0923_토요일_03: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금호미술관 KUMHO MUSEUM OF ART 서울 종로구 삼청로 18(사간동 78번지) B1,3층 Tel. +82.(0)2.720.5114 www.kumhomuseum.com
'자유'라는 가면을 쓴 오늘날의 사회는 우리에게 많은 선택권과 권한을 양도한 듯하지만, 선택을 가로막는 무수한 선택지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과잉 긍정의 시대는 우리에게 무력감과 피로감만 제공한다. 그리고 무미건조하게 반복되는 삶은 우리로 하여금 '일상'을 습관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우리가 자유롭게 유영하는 미디어와 소셜 네트워크는 목적 없는 항해의 길로 인도한다. 이처럼 우리의 삶은 재독 철학자 한병철이 언급한 호모 사케르처럼 "죽을 수 있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살 수 있기에는 너무 죽어 있는 것"이며, 산 정상 위로 바위를 계속해서 밀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보다 더 비극적이다. ● 2017년도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전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는 동시대에서 만연하게 나타나는 현상들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자신만의 언어를 구축해온 아홉 작가들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전시 제목인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는 영국의 문화평론가이자 소설가인 존 버거의 산문집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 Confabulation』의 제목이자, 이에 수록된 에세이 「망각에 저항하는 법 How to Resist a State of Forgetfulness」 속 한 문장에서 가져온 문구이다. 버거에 의하면 오늘날 세계는 끝없이 쏟아지는 정보의 물살 속에 있으며, 미디어가 조장하는 불안과 정치인들이 내던지는 공허한 담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이 세계는 우리로 하여금 망각의 상태에 빠져들도록 한다. 존 버거는 이처럼 공허하게 비어져가는 상태를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로 계속해서 메우고 저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표피적 언어들로 가득 찬 세계 안에서 "말로 옮길 수 없는 메시지"인 "자연적/본질적 외양들"을 읽어 내기 위해, 각자의 방식으로 주변을 관찰하고 탐구해온 아홉 작가들의 작품들을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들이 읽어내는 세상의 모습들은 각기 다르지만 보는 이에게 공감과 사유를 제공하며 표피적 언어에 가려졌던 "무엇(thing)", 다시 말해 가려진 진실에 한 발짝 더 다가서게 한다. ● 이번 전시에 참여한 아홉 작가들은 2016년 10월 금호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하여 약 1년 동안 고민과 실험을 거듭하며 작업을 이어왔다. 3층 바깥 전시장에는 동시대에서 현대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우화 속 동물들이나 인물들로 위트 있게 그려내는 조민아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며, 안쪽 전시장에는 공동체와의 관계 속에서 개인이 느끼는 소외와 억압을 풍경으로 그려낸 곽상원 작가, 일상의 사물을 재현과 투영의 대상으로 3차원적 회화에 담아낸 권혜경 작가, 익숙한 오브제들의 물리적 성질과 기능을 뒤틀어 내면의 감정을 표상하는 최희승 작가가 소개된다. 지하 1층 바깥 전시장은, 일상 공간과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는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과 코딩을 사용하여 새로운 조형적 언어를 만들어내는 민혜기 작가, 소통의 불가능성에서 오는 상실의 감정을 심상의 풍경으로 묘사하는 서민정 작가, 일상적인 공간을 균열 시키는 설치 작품으로 공간 이면에 감춰진 사회적∙문화적 맥락을 이끌어내는 허산 작가의 작품으로 구성되며, 안쪽 전시장엔 지도라는 공적 매체를 통해서 사적 시공간의 좌표를 형상화하는 김정은 작가, 영상과 설치 작업을 통해 실재하는 듯한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오늘날 정보가 지닌 진실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주원 작가의 작품이 함께 소개된다. 이처럼 공동체와 개인, 관계와 소통, 허구와 실재, 공감과 연대 등 세상을 가늠하기 위해 각자의 언어로 발화해온 아홉 작가들의 작품은 망각의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일 것이다. ● 소통을 하기 위해 우리가 처음 듣고 배우는 것은 언어이다. 이 언어는 몸짓 언어, 행동 언어, 공간 언어 등 모든 언어를 포함하고 있다. 발화되지만 발화되지 않은 것이기도 한 이 원형의 언어는 오늘날 예술에도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는 동시대를 살아가며 터득한 언어를 각자의 방식으로 번역하여 시각 예술로 표상한 아홉 작가들의 작품이 소개된다. 전시 기간 중 진행되는 비평워크숍은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전문가들을 초청하여 작품에 대한 비평과 코멘트를 함께 공유하는 자리이다. 비평워크숍을 통해 작가는 작업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고, 관람자는 동시대 미술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우리가 잠시 잊고 지냈던 각자의 모든 언어를 찾길 바란다. ■ 한누리
곽상원 작가는 공동체와의 관계에서 개인이 느끼는 감정적 모순과 그 간극을 관찰하여 풍경으로 그려낸다. 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폐건물과 뒤엉켜 자란 잡초, 그리고 마른 장작 등 회화 속 등장하는 대상들은 우리 주변에 항상 존재하지만 쉽게 외면당하거나 소외되는 존재들이다. 작가는 마치 망원경으로 관찰하듯 거리를 두고 상황이나 풍경을 바라보거나, 현미경으로 보듯 풍경 속에서 대상들을 살펴보기도 한다. 이러한 자유로운 시점의 변화는 작가가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닌 내면의 풍경으로서 담아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타버리고 남아 버린 앙금 불꽃」과 「배회」(2016), 「Dried Firewood」(2016) 등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그의 작품들 보이지 않는 어떤 목적지를 향해 끊임없이 배회하는 인간 존재의 공허를 담아내고 있다.
권혜경 작가는 일상의 사물들을 하나의 재현적 대상이자 투영의 대상으로 작업에 가져온다. 작가는 거주했거나 방문했던 장소들에서 발견되는 사물들을 수집하는데, 이 사물들은 당시 작가의 체험뿐만 아니라 기억이 축적된 중요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장면 Ⅱ」(2017)는 금호창작스튜디오 입주 기간 동안 스튜디오를 오가며 보았던 한 비료 창고에서 작가가 수집한 사물들을 재현한 회화 설치 작업이다. 사실적 재현과 표현주의적 제스처 사이에서 구축된 사물은 하나의 유닛 회화로 기능하기도 하며 전체적인 설치 작품으로서 완성되기도 한다. 권혜경 작가의 작품에서 보이는 이러한 가변성은 기존 회화의 틀을 뒤흔드는 새로운 회화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것과 동시에, 유학생활, 레지던시 등 오랜 시간 국가와 지역을 이동하면서 각 상황과 환경에서 적응해야 했던 작가의 축적된 기억을 대변한다.
김정은 작가에게 '지도'는 사회 시스템의 축소판이며, 세계와 우리의 관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매체이다. 이러한 지도를 통해서 작가는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나타나는 소통의 간극을 완화하고자 시도한다. 작가가 직접 다니며 기록한 지도는 개인의 기억과 몸으로 체감한 도시와 지역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객관적인 지표에 더해진 작가의 지리적 상상력은 동시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제스처로서 해석할 수 있다. 전시작 「self mapping: 공간의 기억_시간의 조각들(2016.05-2017.05)」(2017)은 보이지 않는 시간의 결을 입체화하여, 시간과 공간 그리고 경험이 모두 담긴 새로운 형태를 선보인다. 영상 작품 「self mapping: 색띠 맵핑(2017.07)」(2017)은 작가가 지나다녔던 서울을 기록한 지도이다. 이는 길의 흔적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움직임을 기록한 영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작가는 개인적인 경험과 시간을 객관적 지표의 지도로 공유함으로써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사회와 세계에 대해 사유할 수 있는 하나의 장을 만든다.
민혜기 작가는 새로운 조형적 언어로 디지털 기술과 기계 장치를 이용하여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일상적인 공간과 사물을 낯설게 혹은 새롭게 바라본다. 이처럼 작가는 우리 주변에 편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감각, 이미지, 관계 등을 물리적인 움직임으로 포착하여 새로운 상상을 유도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되는 「Fading_Time」 시리즈는 2014년부터 작가가 진행해 온 코드 작업이다. 작가는 코딩을 단순한 기능적∙방법적 수단이 아닌 파악할 수 없는 세계와 그 세계 속에서 잡아낸 순간을 실체화하는 하나의 표현 재료로서 사용한다. 공간 설치 작품 「보이지 않는」(2017)은 건조한 기계의 움직임을 통해 반복적이고 순환적인 삶의 단상을 재현한 작품이다. 경계가 없는 공간 속에서 앞뒤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상자는 우리와 닮아 있다. 상호 소통을 위한 텍스트로서 기능하는 코딩을 시각 예술 작품으로 끌어온 민혜기 작가는 기술이 지닌 미학적 잠재력을 실험한다.
서민정 작가는 소통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오는 소외와 절망의 감정을 심상적 풍경으로 표현한다. 2015년부터 시작한 수묵 채색화 작품 「먼 길」 시리즈는 그의 작업의 주된 주제인 소통의 불가능성을 '재개발'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인 지역 또는 버려진 채 그 기능을 상실해버린 장소를 통해 드러낸다. 그리고 황폐한 풍경 속 무력하게 존재하는 인간과 개의 모습은 불통의 상실감을 더 강조한다. '먼 길'은 현재 서 있는 지점과 향하고자 하는 지점 사이의 간극을 나타낸 '거리'를 의미하며,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주체의 '이동'을 담고 있다. 막막한 '먼 길' 앞에서 개별 주체가 느끼는 좌절과 불안은 화면을 가득 채운 붉은 수풀로 형상화되고, 그 수풀 속에서 길을 끊임없이 찾아 헤매는 존재들은 거듭되는 소통의 실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하는 미약하지만 낙관적인 작가의 태도가 담겨 있다. 이번 전시에는 「먼 길」 시리즈 작품 중에서 「흐린 낮」과 「가려진」, 「사요나라」 등이 선보인다.
이주원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정보와 그 정보 속에서 '진실'을 구별해야 하는 오늘날의 현상에 주목하여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진 영상과 함께 제시되는 증거물들(조형물, 페인팅 등)은 실제인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증폭제로서 역할을 한다. 유튜브와 같은 웹사이트에서 수집된 영상은 이주원 작가가 만들어 낸 이야기에 맞춰 자막이 덧씌워지면서 정보가 지니는 오독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네일라는 무엇인가?」(2015)는 '네일라'라는 가상 종교 단체에 대한 영상과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네일라'의 탄생 배경과 전문가들의 인터뷰를 담은 영상, 그리고 단체가 사용하는 숭배 조형물을 사실적인 정보로 제시함으로써 관람자에게 미디어가 전달하는 정보의 진실성과 수용자에 따른 오독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한다.
조민아 작가는 동시대 사회에서 현대인이 체감하는 사회적 문제들을 익명의 개인이나 우화 속 동물을 통해 보여준다. 회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알 수 없는 목적의 육체노동을 반복하는데, 그들의 표정에는 결과물에 대한 기대와 성취감보다는 무덤덤함이 자리 잡고 있다. 이처럼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개인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구조 안에서 노동을 지속하지만 반복되고 변화 없는 현재는 이들의 행위를 덧없게 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작품 「오늘의 기약」(2017)은 작가 특유의 유머와 상징들로 채워져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료처럼 사용되는 개인이 만들어내는 상황과 사건은 보는 이로 하여금 사회와 개인,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사유를 이끌어 낸다. 작가가 회화로 풀어낸 보편적인 삶의 모습은 관람자에게 개별의 삶을 환기시키며 더 깊은 공감과 연대를 제공한다.
최희승 작가는 익숙한 오브제들의 물리적 성질과 기능을 미묘하게 뒤트는 입체 작업으로 기억의 불완전성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과거의 시간은 기억을 통해 끊임없이 재현되고 변형되는데, 이러한 기억은 작가에게 현재와 미래의 자신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나 새롭게 형성되는 기억과 해석은 개인이 생각하는 자아와 정체성에 대한 의문을 가져오게 한다. 이러한 의문으로 조장되는 불안은 실존의 문제로 이어진다. 「무제」(2017)는 상점에서 흔히 사용되는 에어 간판의 형태에서 모티프를 얻었다. 부풀었다가 축소되기를 반복하는 에어 조형물은 유목민처럼 거주지를 옮기며 작업하는 작가의 삶을 표상한 작품이다. 작가가 안도감을 느끼는 집단인 '집'을 표상함과 동시에, 생성되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움직임을 통해서 개인이 직면하는 실존에 대한 불안감을 표현한다.
허산 작가는 일상적인 공간에 무너져 내린 벽 또는 금이 간 기둥 등을 설치하여 정적이던 공간에 작은 파열음을 제공한다. 이러한 상황 설정을 통해 전달되는 감각의 충격은 공간 이면에 가려졌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전시에 선보인 「Broken Pillar」(2016)은 어떤 충격에 의해 부분적으로 손상된 기둥을 설치한 작품이다. 전시장 천장을 견고히 받치고 있어야 할 기둥의 상흔은 공간 내에 불안감을 조성한다. 그러나 상흔 속에서 자리 잡은 예상치 못한 오브제는 묘한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공간과 어울리지 않는 오브제인 바이올린은 한 순간 전시장을 고고학적 발굴의 현장 또는 어떤 사건의 현장으로 전이시키고, 물리적 충격과 그 충격의 흔적들 그리고 오브제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해석과 복잡한 상황 전개는 공간을 낯설게 만든다. 이러한 낯설게 하는 방식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의문을 갖게 한다. ■ 금호미술관
□ 비평워크숍 - 일정: 2017년 9월 23일(토요일) 오후 3시-5시 30분 - 장소: 금호미술관 3층 세미나실 - 진행: 작가 3명의 프레젠테이션 후 비평가의 코멘트, 관람자 질의응답 - 참여비평가 곽영빈(영화학 박사, 미술비평가) / 작가_민혜기(설치), 이주원(영상, 설치), 최희승(설치) 주하영(문화예술학 박사, 성공회대학교 외래교수) / 작가_권혜경(회화, 설치), 김정은(설치), 서민정(회화) 황석권(월간미술 수석기자) / 작가_곽상원(회화), 조민아(회화), 허산(설치) - 참여방법 전문가, 미술 전공자 및 현대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 누구나 참여 가능 무료 (당일 선착순 50명 제한)
Vol.20170918d | 우리가 아는 모든 언어-2017 금호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