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이미지를 클릭하면 네오룩 아카이브 Vol.20170512a | 윤정미展으로 갑니다.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2017_0912 ▶ 2017_0930 2017_1010 ▶ 2017_1015 2017_1024 ▶ 2017_1129
주최,주관 / 인천광역시_인천문화재단_복합문화공간 트라이보울
관람시간 / 01:00pm~05:30pm / 월요일 휴관
복합문화공간 트라이보울 Tri-bowl 인천 광역시 연수구 인천타워대로250 (송도동 24-6) 3층 Tel. +(0)32.831.5066 / Tel. +(0)32-760-1096 www.tribowl.kr www.tribowl.me
윤정미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에 관한 비평적 메모 ● 하나. 2005년에 시작된 사진가 윤정미(JeongMee Yoon, 1969-)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The Pink & Blue Project)'는, 어린이들의 방을 방문해 그들이 소유한 핑크와 블루 등 특정 색상의 물건들을 과시적으로 배치하고 그 장관을 무대 삼아 물건들의 주인인 어린이들을 다소 냉정한 태도로 촬영하는 기획이었다. 1차적으론 어린이와 어린이의 특정 색상 소유물을 함께 촬영함으로써, 레디메이드 제품에 임베드된 성별 고정 관념을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 하나. 2007년 6월에 작성했던 글, "핑크와 블루의 성별 분리주의"를 재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1남1녀의 어머니인 작가의 경험에 따르면, 분리주의의 역학은 의외로 간단하다. 일단 어린이들의 옷이 남자는 청색, 여자는 분홍으로 나뉘어 있고, 나머지 액세서리는 자연스레 옷의 색상에 맞추게 된다는 것. 1) 여러 학자들은 이러한 색상의 분리주의가 1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시장에 등장했다고 주장하는데, 작가가 찾아낸 옛 신문 기사도 이를 뒷받침한다. 2) 1914년 미국의 『선데이 센티널』 3월 9일자 3)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권했던 것: "만약, 당신이 이 시대의 관습을 따르려면, 남아들에겐 분홍을, 여아들에겐 파랑을 사용하라." 청색의 헬로 키티나 바비 인형의 세계도 가능했다는 이야기일까?" 4) ● 하지만, 슬프게도 나의 글은 사실과 다른 주장들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의 저술가 클로디아 해먼드(Claudia Hammond)는 'BBC 퓨처(BBC Future)'에 기고한 글 "'핑크 VS 블루' 젠더 신화(The 'pink vs blue' gender myth)"에서, 과거에 핑크가 소년의 색이었고, 블루가 소녀의 색이었다는 주장 또한 역전된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밝힌 이탈리아 심리학자 마르코 델 쥐디체(Marco Del Giudice)의 2012년도 논문을 소개했다. 1800-2000년 사이에 출간된 미국과 영국의 500만권에 이르는 책자의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해도 단지 네 건의 짧은 잡지 인용에서만 핑크를 소년의 색으로 묘사하고 있더라는 것. 그리고, 그마저도 조판 오류로 뵌다고 한다. 아무튼, 마르코 델 쥐디체의 논문 "핑크-블루 코딩의 20세기 역전: 과학적 도시 전설?(The Twentieth Century Reversal of Pink-Blue Gender Coding: A Scientific Urban Legend?)"을 보면, 반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5)
하나. 윤정미는 2009년, 4년 전 촬영에 응했던 어린이들을 재방문해 추적 작업을 실시했다. 그 결과는 '핑크 & 블루 프로젝트 II'로 명명됐다. 자연 1차 작업은 '핑크 & 블루 프로젝트 I'으로 불리게 됐다. ● 하나. 2015년, 작가는 십 년 만에 다시 한 번 추적 작업에 나섰다. 어린이였던 모델들은 성장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성장의 단계에 따라, 사진의 주인공들은, 소유물과 자신을 관계 맺는 방식에 미묘한 변화를 취하거나, 혹은 그러한 해독을 적절히 거부하는 입장을 표하기도 한다. 3차 작업은 '핑크 & 블루 프로젝트 III'로 불린다. ● 하나. 그간 많은 평자들은 윤정미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레디메이드 제품에 구현된 성별 스테레오타입으로서의 색채를 추적하고 기록하는 작업으로 독해해왔다. 하지만 그러한 담론은, 프로젝트의 표피에 초점을 맞춘 문화비평적 어프로치의 산물이었고, 대체로 글을 위한 글이 되기 십상이었다. ● 하나. 윤정미가 '핑크 & 블루 프로젝트'로 제작한 사진들을 곰곰이 들여다보면, 다른 차원의 모습이 나타난다. 문제는 그렇게 독해하기 시작하면, 책임지기 어려운 문제들을 다루지 않을 수 없게 되므로, 다수의 평자들은 대체로 갈림길에서 평탄한 쪽을 택해왔던 셈. ● 하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모델과 모델의 소유물들만은 아니다. 관객이 마주하게 되는 것은 특정한 형식이다. 사진의 어떤 현대적 전통을 자산 삼아 재창안한 미적 미디엄으로서의 사진 형식 말이다. 꾸준한 르포르타주식 취재와 그를 유형학적 기록으로 정리해낸 양태에서, 전후 다큐멘터리 사진이 추구했던 리얼리티에 대한 강박과, 그를 대치하고자 했던 다큐먼트 사진의 미학과, 그 이후 대두한 소위 유형학적 사진의 추동 등에 대한 작가의 대응을 읽어낼 수 있다.
하나. 현대미술로서의 사진 작업을 전개하려면, 사진가-작가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어떤 식으로든 재창안하지 않을 수 없다. 하면, 윤정미의 2005년판 재창안은, 어느 시점까지 유효할 것인가. 베른트 베허와 힐라 베허 부부의 제자들이 하나둘 당대적 유효성을 상실하고, 역사 연구의 영역에서 고찰되기 시작한 상황에서,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의 미적 형식은 어느 시점까지 고수되는 것이 좋을까? 만약 총체적 재배열을 시도해 미적 형식 자체의 업데이트를 시도할 수 있다면, 그러한 구조 변경은, 언제 이뤄지는 것이 좋을까? ● 하나. '핑크 & 블루 프로젝트'는 본디, '공간-사람-공간(Space-Man-Space)'(2000-2004) 연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공간-사람-공간' 연작은, 사물과 인간의 관계맺음이 어떻게 인격(personality or character)의 확장으로서의 시공을 형성하고 있는지 기록하는 작업이었다. 하면, 윤정미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에서 모델들은 자신의 소유물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개성이나 기질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을까? ● 하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에서 모델들은 특정한 색조의 소유물로 저 자신 혹은 제 삶의 어떤 측면을 노출했다. 하지만, 특정한 색조의 소유물을 배치하고 공간을 연출하는 방식을 관리-감독하는 주체는 사진가다. '핑크 & 블루 프로젝트'에서 더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실은 작가 본인의 성향일 수도 있다. ● 하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에서 미성년 모델들은 묘한 긴장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사적 영역의 일면을 노출한다는 상황 자체에서 긴장감을 느끼는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추정되는 경우도 뵌다. 사진 너머에 존재하는 보호자(대개 부모)의 의지나 욕망 혹은 시선이, 사진가의 그것과 뒤섞이며 묘한 감정적 지지체 역할을 하게 된 상황에서, 모델은 그에 반응하는 미성년 주체의 자아를 부지불식간에 표현하게 되는 것. '핑크 & 블루 프로젝트 II'와 '핑크 & 블루 프로젝트 III'을 통해 우리는, 점차 성숙해지는 모델이 상황에 대한 자각의 정도를 높여가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에서 모델들이 자신의 소유물을 가감 없이 노출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역시 순진한 독해가 될 것이다. 누구나 자기 연출의 과정에서 일종의 자기 검열을 시도하기 마련이다. 2002년 예일대학교의 법대 교수인 켄지 요시노는, "소수자의 정체성을 부정한 채 정상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주류의 정체성으로 가장하는 것이 '패싱(passing)'이고, 그와 달리 정체성을 인정은 하지만, 전면적으로 드러나지는 않도록 가리는 것이 '커버링(covering)'이다"라는 간단한 전제를 앞세워, 커버링이 소수자의 시민적 권리를 옭죄는 기제라는 주장을 비판 담론으로서 전개한 바 있다. 6) 그의 이론엔 모순이 있지만,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의 미성년 모델들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다. 약자로서의 미성년자들은 보호자가 구축해놓은 규율을 의식하며 자기 자신에게 커버링을 적용하기 마련. 이렇게 해석하면, 큰 질문이 튀어나온다. ● 커버링에 의해 가려지는 "참된 자아"란 무엇이고, 커버링이 불러일으키는 정치적 은폐의 효과는 무엇일까? 켄지 요시노는 이에 답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만큼 머리가 좋은 인물이므로, "내가 전념하는 바는, 진실성이 무엇이냐에 대한 고정된 사고방식이라기보다, 진실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서의 자율성에 있다(My ultimate commitment is to autonomy as a means of achieving authenticity, rather than to fixed conception of what authenticity might be.)"고 말함으로써 전략적 자율성의 공간으로 안전하게 도망쳤던 바 있었다. 7) 즉, 그의 논리엔 '정치적으로 올바른 자아 표출'이라는 전제가 깔려있었고, 그를 합리화하는 가치는 자율성의 신화였던 것. 이를 인물 사진에 적용해보면 어떨까. 사진의 피사체가 된 모델들에게, 진실성을 획득하는 수단으로서의 자율성이 부과될 수 있을까? 정치적으로 올바른 재현이나 다큐멘테이션은 존재하는가? 따라서, 윤정미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를 분석할 때, '조작적 재현에 의한 포스트-리얼리티'에 관한 관습적인 질문은 피하기 어렵다. 이러한 재현 방식엔 윤리적 문제가 없을까?
하나. 그런데, '공간-사람-공간' 연작에도 뿌리가 있다. 바로 '동물원(Zoo)'(1998-1999) 연작이다. '동물원' 연작에서 핵심이 되는 프린트들은, 좁은 공간에 갇혀서 사는 동물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어설프게 자연을 의태하는 감옥 같은 공간에서, 짐승들은 시공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다.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쪽은 시공이다. 만약 '공간-사람-공간' 연작이, 가장된 '동물원' 연작이었다면 어떨까? 만약, '핑크 & 블루 프로젝트'가, 가장된 '동물원' 연작으로서의 '공간-사람-공간' 연작에 속한다면 어떨까? '핑크 & 블루 프로젝트'를 '동물원' 연작으로서 독해하지 못하도록 유도하는 기제는 여러 가지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요인은, 보호자의 통제 아래 놓인 미성년자-인간을 자유를 박탈당한 동물원의 동물에 비유하는 일이, 어떤 금기로 느껴지기 때문일 터. ● 하나.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사진가가 자신의 딸을 먼저 모델로 삼아 작업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모성을 바탕으로 하는 애정이 전제돼 있을 것이라고 유추한다. 하지만, 대다수의 전문적 사진가에게 피사체는, 피사체가 사진가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론 유형학적 고찰의 대상이 되는 객체일 따름이다. (비고: 촬영을 통해 대상화되지 않는 피사체는 없다. 능동적으로/주체적으로 뵈는 피사체는 연출과 선택의 결과일 따름.) 만약에, 이러한 작업을 여성이 아닌 남성 작가가 진행했다고 가정해보자. 관객들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 하나. 윤정미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는, 일견 현대인의 성장기와 함께 하는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에 구현된, 성별화한 색상의 체계를 추적하는 것 같다. 하지만, 사진으로 색상을 적확히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방의 조건과 광원의 상태에 따라서, 개별 사진 데이터들은 상이한 핑크톤과 블루톤을 띠기 마련이고, 또한 어떠한 프린트 방식을 취했느냐에 따라 귀결되는 색조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유형학적 사진의 어법을 취해온 대다수의 사진가들이 자신의 연작에 특정한 톤을 부여해 일관성을 구현해왔듯이, 윤정미도 사진 프린트의 색조에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일괄 조절해왔다. (다만, 작가는 최소한의 색조 재조절을 시도할 뿐으로, 그 외론 거의 수정을 가하지 않는다. 예컨대, 『내셔널지오그래픽』지의 2017년 1월호에 게재된 기사 "Pink and Blue: Coloring Inside the Lines of Gender"의 경우, 잡지사 데스크는, 포토샵을 통한 조작 사진이 아니라는 점을 사전에 검증하기도 했다.) '핑크 & 블루 프로젝트'를 흑백 프린트로 전시하는 장면을 상상해보라. 의미망이 크게 달라지겠는가?
하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의 축적을 통해 작가와 관객은 공히 어떤 변화의 궤적과 패턴을 읽을 수 있게 됐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특정 색상의 물건들을 의도적으로 피함으로써 자의식을 표출하기 시작하는 변화의 패턴이다. 여아들은 사춘기에 보라색/청색조의 물건을 취해, 유아적으로 간주될 수도 있는 분홍색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드러내곤 한다. 하면, 그렇게 드러나는 개성은 개성적인 것인가? 성차에 주목해 과잉 독해를 시도하면, 미취학 아동기의 남아 모델이 남근의 기호학적 등가물쯤 되는 오브제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는 경향을 드러내고, 미취학 아동기의 여아 모델이 자신의 분신이나 자아의 연장으로서의 소품군을 통해 일종의 사회적 사물계를 제시하려는 경향을 드러낸다는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본인 소유의 소품군을 늘어놓은 상황에서 어떤 남아는 노획물 앞에선 선 사냥꾼처럼 뵈기도 하고, 어떤 여아는 조화로운 숲속의 백설공주처럼 뵈기도 한다. 물론, 그런 성차를 드러내지 않는 모델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 하나. 2007년 6월의 나는 이렇게 썼더랬다: "화면 속의 어린이들은 자신이 소유한 물건들과 특별한 감정적 관계를 드러낸다. 예를 들어, 남자 아이들 가운데 수퍼맨 망토를 두른 에단은 커서 씩씩한 이성애자 남자가 될 것이 너무나 분명해 뵈고, 카메라를 조심스런 눈길로 응시하며 손을 만지작거리는 지민이는 아주 섬세한 내면의 세계를 발전시킬 것이 거의 분명해 뵌다. 여자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연분홍빛 무도회용 드레스를 입은 테스는 '흑인 어린이 인형을 가진 백인 소녀'로, 자신만만한 여성의 자세를 취하는데 능숙하고 표정에서도 안정적인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누가 봐도, 다문화적 가치를 숭앙하면서도 다소 보수적인 아름다운 미국 여성으로 성장할 것 같다. (물론 이런 것은 죄다 근거 없는 추측에 불과하다.)"
하나. 보호자의 기대가 투사되는 대상으로서의 미성년 모델에 주목하면, 사진들로부터 보호자의 열망과 성향을 읽어낼 수도 있다. 예컨대, 「블루 프로젝트 I – 마이클과 마이클의 파란색 물건들」(2006)과 「블루 프로젝트 II – 마이클과 마이클의 스포츠 컬렉션」(2009)과 「블루 프로젝트 III – 마이클과 마이클이 좋아하는 것들」(2015)을 보면, 부모가 자녀의 성취를 연출하고 촉진하는 향방을 읽어낼 수 있다. 부모의 기대에 부합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기 위해 애쓰는 마이클의 모습과 그의 얼굴에서 나타나는 심리적 피로감은, 다소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성인기에 어떤 자아로 거듭날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인간은 외피로만은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한 존재. (자신만의 방을 갖지 못한 상태로 성장한 아이들의 얼굴 표정에선, 또 다른 종류의 피로감을 읽어낼 수도 있다.) ● 하나. 그간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의 축적을 통해 자명한 패턴이 제시돼 왔기 때문에, 오히려 예외적 작업들이 더 눈에 띄게 됐다. 빨강이나 노랑 등 특정색에 강한 애호를 그러내는 경우나, 성인이 분홍색 물건에 강한 집착을 드러내는 경우 등 말이다.
하나. 윤정미가 포샤 먼슨(Portia Munson, 1961-)을 자신의 방식으로 촬영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1994년 「핑크 프로젝트: 테이블(Pink Project: Table)」로 화제를 모았던 포샤 먼슨을, 본인의 방에 앉히고 핑크색 수집물을 배치해놓으면 어떤 의미망이 성립하게 될까? ● 하나. 「핑크 프로젝트 II – 아그네스 방 안의 아그네스」(2015)는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의 종착점을 예고한다. 연출을 거부하고 사진 촬영에 응한 모델의 모습에서, 다시 어떤 패턴을 읽을 수 있지만, 유형학적 연출의 전제가 사라짐으로써 마라톤에 가까운 연작은 이내 결산 이후를 내다보게 된다. (...) 성인기를 맞는 아그네스의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핑크 프로젝트 I - 아그네스와 아그네스의 핑크 & 파란색 물건들」(2009)을 다시 보지 않을 수 없다. 2009년의 기록에서 일단 눈에 띠는 것은, 청색조의 물건들을 통해 드러내는 자의식이다. 하지만 정말로 눈에 와 박히는 것은, 당시 북미의 소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해나 몬태나(Hannah Montana) 관련 굿즈와 해당 캐릭터를 연기하던 시절(2006-2011)의 마일리 사이러스를 담은 포스터이기도 하다. 역할 모델이라는 거푸집을 통한 미성숙 자아의 조형은, 대중문화를 통해 끝없이 갱신되는 패턴이 됐지만, 과연 어느 정도 효과적일까? ● 하나. '핑크 & 블루 프로젝트'의 종결 이후, 작가는 어떤 작업 이후의 작업을 모색할 수 있을 터. 중년/노년을 맞은 모델이 미술관을 찾아 자신의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의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면을 그려본다. 어느 비평가는 '사진 속에서 어린이들은 행복해 뵌다'고 했다. 정말로 그들은 행복했을까? /// 추신) 어떤 사람들은 소유한 물건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부모로부터 그렇게 교육받은 경우도 흔하다. 반면, 어느 비엔나의 부유층 여성은, 의상실에서 옷을 맞춘 뒤 반드시 옷본을 손에 넣어 직접 파기하곤 했다. 동일한 의상이 제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름다운 유로트래시' 가운데 한 명으로 뵐 따름이었다.
그러면, 레디메이드 물건으로 개성을 표출하려는 시도는 효과가 없을까? 믹스앤매치와 매시업을 통해, 차이를 확보하는 것은 어디까지 유효할까? 레디메이드 물건과 소비자-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드러났던 한계 지점은, 2010년대 후반의 현재, 한정판과 콜라보레이션 아이템들, 그리고 그를 수집하는 수집 열풍을 통해 갱신되고 있다. 소위 리셀러 시대가 근미래에 정점을 찍고 붕괴하게 되면, 그 다음은 어디일까? ●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표현하지 않기 위해 가급적 개성이 없는 물건을 구매한다. 나오토 후카사와는 동료 재스퍼 모리슨과 함께, 개성을 추구하지 않는 음전한 양태로 기능에 충실하고자 하는 버내큘러 디자인 오브제를 수집하고, 그를 모방해 새로이 굿디자인 문법을 갱신하고자 애를 썼지만, 결과는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8) ● 남다른 자아를 지닌 몇몇 미술가들은, 버내큘러의 문법을 위장막 삼아 자신의 '개성적 패턴'이 개성 없게 드러나고 마는 낭패를, 미연에 방지하기도 했다/한다. 청소년기가 될 때까지 별다른 저항 없이 분홍색/청색 물건을 소비하는 이를 섣불리 '해피 키드'로 얕잡아봐선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때때로 미성년자의 속내는, 성인의 그것보다도 종잡기 어렵다. ■ 임근준
* 각주 1) Geun-jun Lim, "Gender Segregation in Pink and Blue", Hankook Daily News, June 22 2006 2) 색상의 분리주의가 1차 대전 이후에 나타났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대표적 글 가운데 하나가 진 맥라티(Jeanne Maglaty)의 기사 "소녀들은 언제부터 분홍색을 입게 됐을까?(When Did Girls Start Wearing Pink?)"다. www.smithsonianmag.com/arts-culture/when-did-girls-start-wearing-pink-1370097 3) The Sunday Sentinal, March 9, 1914 4) 미국학자인 조 파올레티(Jo B. Paoletti) 교수도, 저서 『핑크와 블루: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를 분간해내는 미국(Pink and Blue: Telling the Girls From the Boys in America)』에서, 핑크가 소년의 색으로 블루가 소녀의 색으로 소개된 옛 기사를 찾아 소개하고, "1860년대에 이미 핑크-블루 젠더 코딩이 있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1950년대까지 미국의 대부분 지역에서 지배적이지는 않았고, 또 한 세대가 바뀌기 전까지 보편적이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Jo B. Paoletti, "Pink and Blue: Telling the Girls From the Boys in America", Bloomington: Indiana University Press, 2012, p.89. 5) Claudia Hammond, "The 'pink vs blue' gender myth", BBC Future, 18 November 2014, www.bbc.com/future/story/20141117-the-pink-vs-blue-gender-myth) (주석: Del Giudice, Marco. (2012). The Twentieth Century Reversal of Pink-Blue Gender Coding: A Scientific Urban Legend?. Archives of sexual behavior. 41. 10.1007/s10508-012-0002-z. 6) Yoshino, Kenji, "Covering" (2002). Faculty Scholarship Series. 4382 digitalcommons.law.yale.edu/fss_papers/4382 7) Yoshino, Kenji, "Covering: The Hidden Assault on Our Civil Rights", New York: Random House, 2006, p.190 8) 후카사와 나오토와 재스퍼 모리슨의 도록/단행본, 『슈퍼노멀』(2007)을 참조할 것. Naoto Fukasawa & Jasper Morrison, "Super Normal: Sensations of the Ordinary", Baden: LARS MüLLER PUBLISHERS, 2007
'핑크 & 블루 I' (2005 – ) 시리즈는 여자 어린이는 핑크, 남자 어린이는 블루로 고정되는 젠더의 사회적 색채 관념에 따라 생산된 분홍색과 파란색 물건들을 소유하고 있는 어린이들과 그들의 물건들을 촬영한 것이다. 이번에 처음 선보이는 '핑크 & 블루 III' 시리즈는 2005년 당시 촬영한 어린이들을 4년 만에 다시 찾아가 촬영한 핑크 & 블루 II 와, 첫 촬영후 10년이 지난 2015년에 또다시 같은 모델들을 찾아가 촬영한 것이다. ● '핑크 & 블루 I'은 젠더에 따라 사회적으로 만연하게 퍼져있는 어린이들의 컬러코드를 보여주었다면, '핑크 & 블루 III'는 한 어린이의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3장의 사진 속에서, 성숙해 가고 변화하는 모델들의 모습들, 그들 소유의 변화된 물건들은 그들의 또 다른 한 모습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현대사회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 윤정미
Vol.20170917g | 윤정미展 / YOONJEONGMEE / 尹丁美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