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개의 거울

정정엽展 / JUNGJUNGYEOB / 鄭貞葉 / painting   2017_0908 ▶ 2017_0928 / 월요일 휴관

정정엽_옆으로 흐르는 눈물_49개의 손거울 설치_200×270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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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일시 / 2017_0908_금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스페이스몸미술관 SPACEMOM MUSEUM OF ART 충북 청주시 흥덕구 서부로1205번길 183 제2,3전시장 Tel. +82.(0)43.236.6622 www.spacemom.org

정정엽은 달을 연상케 하는 작가다. 초승달처럼 작고 은은하게 세상을 바라본다. 그러다가 묵묵히 차오르면 그 안에 가득한 생명을 토해내듯 우리들에게 작가가 품은 생명을 선보인다. 이제까지 여성의 삶, 자연, 그리고 그 속에 꿈틀거리는 생명을 화폭에 담아 온 정정엽은 이번 전시에서 거울을 통해 생명을 비춘다. 여자에게 거울은 어떤 존재일까? 아침을 시작하며 거울을 보지 않는 여자는 드물다. 요즘 십대 소녀들의 가방 속에 책 한권은 없어도 큼지막한 손거울 하나쯤은 들어있다. 정정엽이 보여주는 거울은 세대를 초월한 여자이며 삶이며 작가 자신이다. 인류가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본 것은 물에 의해서였다. 자연이 만들어낸 수면 위에 빛이 반사되어 물체를 비추듯 인간은 이런 자연의 원리를 이용하여 인공적인 거울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 거울은 청동기시대 제작된 동경(銅鏡)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고대의 거울은 비춘다는 역할보다는 주술적인 의미가 강했으며 신분과 가문을 알리는 도구이기도 했을 만큼 영험하고 귀한 물건이었다. 사람들은 거울이 깨지는 꿈을 꾸거나 실제로 깨진 거울을 보는 것에 대해 다양한 길흉화복(吉凶禍福)의 의미를 부여했고 이를 믿었다.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거울은 근대기에 등장한 유리에 수은을 바른 형태로 대량생산되어 일반인들에게 보급되면서 비춘다는 기능적 의미가 주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능성이 강조된 현대적 거울에서조차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 개개인이 지닌 염원과 바람을 담은 어쩌면 또 다른 의미의 현대적 주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일례로 남녀가 이별한다는 의미에 깨진 거울이라는 뜻의 '파경(破鏡)'이라는 단어를 오늘날에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은 거울이 단순한 도구가 아닌 오랜 세월 우리 생활 속에서 공존하며 녹아내려 단단하게 켜켜이 자리한 생명을 지닌 존재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정엽_49개의 거울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7
정정엽_부엌을 위한 거울-바나나_캔버스에 거울_72.5×60.5cm_2017 정정엽_부엌을 위한 거울-호박잎_캔버스에 거울_72.5×60.5cm_2017
정정엽_49개의 거울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7

정정엽은 우리들의 모습을 비추는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현대적 거울에 진한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전하는 현대적 의미의 주술적 메시지를 담아서. 남성에 비해 거울과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온 여성들이 지닌 지난했던 역경과 고독의 세월. 그 안에 담긴 깊은 한숨과 때때로 한줄기 빛 같았던 웃음을 정정엽은 거울이라는 매체로 이끌어낸다. ● 49개의 거울을 스쳐간 수많은 사연들. 그 안에는 과연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까? 안방 한 가운데 놓여 져 고운 여인의 자태를 담아냈을 것 같은 화장대의 거울, 현관 앞에 놓여 외출하기 직전 서둘러 신발을 신고 마지막으로 옷매무새와 화장을 점검했을 것 같은 거울, 누군가의 개업식을 위한 선물로 사업의 번창을 기원하며 기념 문구를 새겨 넣은 거울 등.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며 억만 겹의 흔적을 남기고 갔을 거울에 정정엽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느낀 생생한 언어를 담아냈다. ● '딨', '닿', '믓', '춰' 등 뜻 모를 단어들과 연상된 사물의 그림들을 조합한 16개의 거울은 지금 이 순간 명확한 부표(浮標) 없이 떠도는 우리네 삶과 같다. 과연 우리들의 삶 속에서 명확한 의미를 지닌 단어처럼 확실하고 선명하게 구분되는 일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언제나 모호하고 불확실하며 애매한 불완전한 공간에서 살고 있다. 우리의 언어 속에는 사전에 등장하는 적확한 의미를 지닌 단어가 아닌 모호한 음성 언어들이 수없이 많이 존재하며 그에 담긴 뉘앙스는 형언할 수 없이 다양한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정정엽이 보여준 '딨', '닿', '믓', '춰' 등은 그렇게 모호한 우리 삶 속에서 명확한 말로 표현해 내기 힘든, 그렇지만 보다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소리이자 글이다.

정정엽_그날의 여행_거울에 채색, 오브제_44×14.5×5cm_2017

작가는 지난 오랜 세월 캔버스 안에 담아온 콩, 팥 등의 곡류와 시골 들녘에 심어졌을 흔하지만 소중한 옥수수, 파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소재를 모호한 의미의 단어들과 함께 거울 표면에 그려 넣었다. 이러한 작업은 이제는 낡고 유행에 뒤쳐져 폐기될 수도 있었을 낡은 거울들에 새생명을 불어넣었다. 거울 속에 담긴 생명들은 낯설지 않다. 정정엽의 거울 속에는 최신 유행의 패셔너블한 옷을 차려입고 한껏 멋을 낸 여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작가의 거울 속 여인은 어제도 오늘도 항상 우리 곁에 함께 했던 어머니의 냄새가 베인, 풍성하고 허름한 치마 그리고 헐렁하게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여인의 모습과 체취가 담겨있다. 구수한 된장냄새도 나고 매캐한 마늘냄새도 난다.

정정엽_49개의 거울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7
정정엽_49개의 거울展_스페이스몸미술관_2017
정정엽_닿_거울에 채색_101.5×40.5cm_2017 정정엽_느_거울에 채색_97×36cm_2017 정정엽_렁_거울에 채색_112×39cm_2017

정정엽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삶 보다 우리주변에 너무나 흔하게 자리하고 있어 때로는 지나쳐 버리기 쉬운 존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 거울 속에는 화려하고 예쁜 나비가 아닌 여름 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조금은 귀찮고 징그러운 존재일 수도 있는 나방과 벌레들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꽃과 나비 등 세상 속에서 예쁘고 밝은 면을 보고 싶어 한다. 어둡고 그늘에 가려진 부분은 외면되기 쉽다. 하지만 석가모니가 삶의 기쁨이 아닌 고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듯 정정엽은 삶의 보편적인 측면을 형성한 그늘 속에서 인생을 조망한다. 그것은 진실이라기보다는 현실이다. 작품 「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에서 작가는 자신의 작업실에서 수없이 마주친 일상 속 벌레들을 화장대 서랍 속에 고이 담아두었다. 대부분 여성들의 화장대 서랍 속에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 화장품과 화려한 각종 장신구들이 담겨있기 마련이거늘 정정엽의 화장대에는 풀냄새 나는 우리네 현실이 담겨있다. 나비가 아닌 나방을 화려한 장신구가 아닌 하루 종일 작업을 하면서 만난 일상 속 벌레들을 담아낸 정정엽의 작품에서 보통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접하는, 비록 주변부일지라도 대다수 사람들이 공기처럼 지니고 있는 소중한 삶과 생명을 보여준다. ● 정정엽의 49개의 거울에 비친 우리들 자신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 작가의 거울은 너무나 평범해서 일상 속에 묻혀버린 나 자신의 삶,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스쳐지나간 내 자신의 모습을 담담하고 진솔하게 비추어 줄 것이다. 이제 정정엽의 달은 만월(滿月)이 되었다. 빛을 가득 담은 풍성한 가을에 우리는 만월이 된 그의 작품세계와 마주한다. ■ 정창미

정정엽_모든 것을 기억하는 물(김혜순 시)_거울에 채색, 오브제, 서랍 5개_88×74.5×13cm_2017
정정엽_웅크린 구름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7 정정엽_먼 곳의 소식_캔버스에 유채_162×130cm_2017

–어떤 날 / 어디서 어떻게 누구의 얼굴들을 비추며 살았는지 모르는 / 49개의 거울이 나에게로 왔다. / 제각각 무심한 시간의 지문들만 가득하다. / 이 설레임의 정체는 무엇일까. / 편지를 쓸까. / 묘비명을 써줄까. / 말 못 할 언어들이 흘러 다닌다. / 거울은 왜 여자를 연상 시키는가. / 모욕을 삼킨 날들의 얼룩, / 옆으로 흐르던 눈물. / 혼자 웃는 웃음이 바람에 흩어진다./나는 어디에 있는가. / 거울 밖의 우물 속에 있는가? / 풀 섶에 기어가는 벌레의 걸음걸이일까? / 바다를 가로질러 구름 한 점에 있는가? / "나는 망신을 당한자이며 위대한 자로다" / 여신을 부르는 말이었다. / 춤이다. / 고독이다. / 유머 한줌 / 49개의 여자이야기. ■ 정정엽

Vol.20170917f | 정정엽展 / JUNGJUNGYEOB / 鄭貞葉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