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ebris of Time 시간의 잔해

장인희展 / JANGINHEE / 張仁姬 / installation   2017_0909 ▶ 2017_1008 / 월,화요일,추석연휴 휴관

장인희_Blindspot 17051_미러 PET 필름, 접시에 아크릴채색_지름 85cm_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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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01:00pm~06:00pm / 주말_12:00pm~05:00pm / 월,화요일,추석연휴 휴관

한미 갤러리 서울 Hanmi Gallery Seoul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34길 30 Tel. 070.8680.3107 www.hanmigallery.co.uk

우리의 삶의 대부분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일상적이어서 망각되는 순간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 하는 순간들은 단지 기억되지 못할뿐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로 모든 순간들은 뭉쳐서 시간을 구현하고 '지금이순간'의 형태와 성질을 결정 짓는다. '결정적 순간'이라 여겨지는 강렬한 기억들은 셀 수 없이 많은 일상적 순간 더미 표면에 우연히 위치한 하나의 순간인 것이다. 모든 순간은 평면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혼재하는 입체적 시간 덩어리이기에 어떠한 순간도 개별로는 존재하지 못한다. ● 압도적인 양을 가지는 순간들과 그들이 이루어 내는 시간은 유기체의 세포와 생명의 관계와 같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유일무이한이유는 그들이 모두 다른 순간들의 합과 관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즉 전체는 부분들의 합보다 크다. 비슷해 보이나 모두 다른 순간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삶의 무한한 가능성과 다양성을 구현시킨다. 삶은 순간들의 동적 평형상태이다. 시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단지 변화할 뿐이다. ■ 장인희

장인희_Spots 003_미러 PET 필름, 접시에 아크릴채색_지름 28~86cm_가변설치_2017
장인희_Recollection170101_미러 PET 필름, 접시에 아크릴채색_120×120×10cm_2017

장인희 작가만큼 시간의 수수께끼와 순간의 역설을 정면으로 직시해 온 작가도 드물다. 얼핏 보면 그녀의 모자이크와 설치 작업은 시간의 문제와 별 관계가 없는 것 같다. 그녀의 재료 선택과 가공 기법은 상당히 체계적이며 노련해 보인다. 일말의 틈새나 우연을 허용하지 않을 듯하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작업에서 어떤 변화나 생성의 움직임 같은 것을 감지하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모든 요소들과 관계들이 제자리에 잘 배치되어 있고, 군더더기 없는 조화로움에 도달한 느낌이다. ● 그러나 작가의 독특한 제작 과정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면, 그 작업이 완결된 구조가 아니라, 어떤 내재적인 틈새와 균열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이 틈새와 균열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시간에 귀속된 여러 역설들에 직접적으로 닿아있다. 즉 그것은 주관적 열림과 객관적 흐름의 간극, 무한 분할과 연속성의 역설, 동질성과 이질성의 공존, 시간성과 영원성의 접촉 등의 차이와 대립을 조형적으로 고려한 결과이다. 작업의 전반부는 전체를 작은 부분들로 해체하는 과정이다. 작가는 커다란 「미러 PET 필름」을 오려서 수많은 작은 형상들을 만들어낸다. 물 흐르듯 곡선 윤곽을 지닌 인물 형상들은 서로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크기와 모습이 제각각이다. 오리는 일이 진척될수록 형상은 점점 작아지고, 마지막에는 형상이 되지 못한 잔여 부분들이 남는다. 결국 거울 필름 전체는 닮았지만 서로 다른 인물 형상들과 잔여물들로 해체된다.

장인희_Equilibrium 1001_미러 PET 필름, 접시에 아크릴채색_지름 118cm_2017
장인희_Equilibrium 1001_미러 PET 필름, 접시에 아크릴채색_지름 118cm_2017_부분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이 전반부 단계가 작업의 진정한 시작은 아니다. 시작의 기원은 훨씬 더 깊다. 보이지는 않지만, 전반부 단계의 아래에는 작가의 오랜 고민과 선택의 역사가 놓여있다. 그것은 삶의 시간이란 무엇이며, 이를 어떤 재료와 조형적 행위를 통해 표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시간의 존재, 내 몸이 체험한 시간의 리듬, 이 리듬을 저 멀리서 감싸고 있는 순환의 시간을 어떻게 감각적 매체를 통해 표현할 수 있을까?' 작가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10여년전 현재의 재료와 오리기 방식을 찾아냈고 그 이후 끊임없이 형태, 구도, 색채, 조명, 설치 등에서 다양한 표현 방식을 실험해왔다. ● 따라서 작가가 시작하는 분할 행위는 시간의 전체 덩어리에 틈새를 내고, 시간의 역설을 가시화하려는 미적 선택으로 해석해야 한다. 닮은 듯 다른 인물 형상들은 시간을 이루고 있는 다양한 부분들이라 할 수 있으며, 이들 사이에서 드러나는 '가족유사성'은 그 이질성과 동질성의 공존을 표현하고 있다. 또한 잔여물을 남긴 것은 사라진 전체에 대한 흔적이기도 하고, 또한 분할과 연속성의 역설에 대한 상징이기도 한다. 분할된 조각 형상들을 다시 결합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전체를 복원시킬 수 없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측면은, 오리는 과정에 일정 정도 '즉흥성'과 '우연성'이 내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작가는 오리기의 방향, 구도, 결과를 상당히 구체적으로 예상하고 있다. 작가가 말한 대로, 전체의 해체가 진전될수록 의식적인 조절은 보다 더 정교해진다. 그럼에도 작가가 만들어지게 될 개별 형상들을 완벽하게 계산하고 통제하지는 못한다. 시간의 단편들이 그런 것처럼, 인물 형상들은 기계적인 제작물이 될 수 없다.

장인희_Equilibrium 1002_미러 PET 필름, 접시에 아크릴채색_지름 118cm_2017
장인희_Equilibrium 1002_미러 PET 필름, 접시에 아크릴채색_지름 118cm_2017_부분

작업의 후반부는 무수한 인물 형상들을 서로 견주어보면서 재배치하고 조합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도 전반부 못지않게 지난한 과정이다. 작가는 인물 형상들 사이에서 출몰하는 유사성과 짜임관계에 예민하게 주목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까지 틈새와 균열을 용인해야 할지 계속 반성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분명한 것은 후반 작업에도 즉흥성과 우연성이 상당한 정도로 개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별 형상들의 자리가 전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개입의 정도가 전반부보다 오히려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장인희_Pastmoment 17003_미러 PET 필름, 패널에 아크릴채색_60×60cm_2017

한 걸음, 한 걸음 인내의 조합과정을 통과한 형상들은 마침내 하나의 원형 내지 정방형의 전체를 이루게 된다. 혹은 설치작업의 경우에는 수평/수직으로 공간을 펼치고, 공간에 무늬와 리듬을 새겨 넣는 동적 조각이 된다. 장인희 작가가 최종적으로 도달한 이러한 입체적인 형태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필자는 이를 '시간의 리듬과 순간의 역설'을 구제하려는 조형적 구성이라 부르고 싶다. 왜냐하면 최종적 형태는 부분들의 유사성과 차이, 동질성과 이질성, 독립성과 연결성, 분화와 통합의 가능성을 고루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내용적으로 쉴러가 '미적 정조(Stimmung)'라 부른 살아있는 잠재성의 상태와 다르지 않다. 그것은 삶의 모든 감각과 형식, 감정과 사유, 협화음과 불협화음을 긍정적으로 품고 있는 살아있는 삶의 형상이라 할 수 있다. ● 이렇게 해서 작가의 작업은 시간의 수수께끼 속으로 들어가, 그 내적 리듬과 역설을 모자이크적 구성으로 모방하고, 궁극적으로는 살아있는 삶의 충만한 내용을 긍정하는 데로 귀결된다. 이제 작업의 다른 감각적 특징들도 보다 선명하게 다가온다. 필름 전체를 작은 분신의 형상들로 해체하는 것은 시간의 미세한 편린에게도 생명의 가능성을 부여하려는 배려이며, 거울의 반사 효과를 가진 재료를 선택한 것은 삶의 모든 순간이 근본적으로 외부 세계와 타자들에 의존하고 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살아있는 삶의 순간은 구체적이며 개방적이다. 닫힌 필연성과 열린 가능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감각적 다의성과 의미의 모호성도 피할 수 없다. 장인희 작가의 작업은 이 모든 측면들을 긍정하고 구제하려는 조형적 노력이다. ■ 하선규

Vol.20170917b | 장인희展 / JANGINHEE / 張仁姬 / installation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