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 이야기

유기호展 / YOOKEEHO / 劉起豪 / painting   2017_0914 ▶ 2017_0929

유기호_발바닥공원바둑두는어른들_목탄_40×30cm

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은행나루갤러리 서울 도봉구 시루봉로98

그림 그리기와 글 읽기에 대한 목마름: 유기호 작가의 방학동에서의 작은 시작을 축하하며 ● 혹 기대하실지 모르지만, 이 글은 여기 전시된 작품들이 얼마나 "좋은" 그림인가를 현대미술 전문가의 권위를 빌어 "보증"해 주기 위함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그림을 어떻게 즐기고 접근하면 좋은지 도움을 주고자 하는 의미에서 쓴 관객들을 향한 작은 안내글이라 보시면 될 듯하다. 필자는 현직 캐나다 토론토 소재 미술대 재직중인 현대미술사 교수이다. 작가와는 90년대 젊은 시절 함께 미술대학에서 미술과 사회에 대한 깊이 있던 고민을 나누었던 인연이 있고, 졸업 후 작가가 예기치 못한 병마와 싸우는 모습과, 이후 그림 그리기에 대한 미련을 가슴 한켠에 두고, 모교 홍대 앞에서 전통 주점을 운영하며 생활 전선에 뛰어든 부침의 개인사를 외국으로 떠난 이후에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지켜본 바 있다.

유기호_지하철풍경1_종이에 먹_40×27cm
유기호_지하철풍경2_종이에 먹_40×27cm
유기호_지하철풍경3_종이에 먹_40×27cm
유기호_지하철풍경4_목탄_40×30cm
유기호_지하철풍경5_목탄_40×30cm
유기호_지하철풍경6_목탄_40×30cm

실제 여기 전시된 작품들은 미술 비평이 굳이 필요 없는 그림이다. 작가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주제, 즉 작가가 현재 거주중이고 작업중인 방학동 주변의 일상 풍경, 즉 골목, 공원 바둑 두는 노인들, 때론 방학동 주변 역사적 문화적 주요 장소('연산군 묘 담장과 소나무'), 자주 이용하는 지하철 1호선 내 사람들의 풍경. 혹은, 화제가 됐었었던 한 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등의 소설을,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등의 수필집을 읽고 난 후의 연상들, 그리고 방학동에서 작가로 시작을 가능하게 해 준 작업실, 자화상등을, 친숙한 재료인 먹과 목탄을 사용하여 친숙한 사실주의 화법으로 그려내었다. 작가의 생기 가득한 필력은10-20년 전에도 감탄했던 바, 그가 선택한 대상-동네와 이웃들-을 바라보는 따뜻한 감수성과 애정과 잘 어우러져 또한 더 없이 그림보기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여기 전시된 유기호의 드로잉들은 가장 전통적인 의미의 사실주의 화법, 즉 대상의 재현에 충실하다. 미술가들이 발견해낸 "사실주의"이란 참으로 다양하여, 작가와 같이 대상에 대한 애정어린 시선을 투영하여 그대로 재현하는 방법 뿐 아니라, 비관적 시선으로 현실 이면에 어두움을 강조할 수도 있고, 재현적 방법을 구사하나 그리는 대상의 삶과 경험적 본질과는 무관하게 작가의 전문가적 조형 탐구니 하는 것의 구실로 삼을 경우도 있다. 어찌됬던 이런 사실주의 화법은 국내 최고 미대에서 미술수업 받았으나, 개인사적 이유로 지속적이고, 직업적, 전문가적 미술 방법적 탐구가 오랫동안 단절된 상태에서, 작가가 본인의 그림그리기의 즐거움과 주변인들과 그림을 통한 소통의 즐거움을 회복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선택한 최선의 방식인듯 보인다. 즉 급변해온 미술사 트렌드와 나날이 어려워지는 개념적 현대 미술(일반인들에게 종종 "이것도 예술인가?" 라는 의문을 자아내는)이 아니기에 오히려 정직하고 사실적인 그의 표현들은 신선하기도 하고, 관객에게는 본능적 보기의 즐거움을 충족 시킨다. 실제로 그가 선택한 재료 중, 목탄은 거침과 동시에 단조로우나 풍부한 표현 가능성을 지녀 대상의 묘사를 넘어 작가의 노동과 대상에 향한 애정어린 감수성을 드러내기 참으로 적합한 재료가 되고있다. 실제 남아공의 유명한 현대 미술가 윌리암 켄트리지William Kentridge는 손쉽게 복제 가능한 디지털 이미지가 난무하는 시대에 긴 노동이 요구되는 직접 손으로 그려낸 목탄화를 기반으로 자신이 사랑한 남아공의 풍경과 그 질곡의 기억을 평면 드로잉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해내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동시에 세계 평론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또 다른 재료인 먹은 수성이기에 가능한 유려하고 빠른 필치의 획들로 실제 크고 작은 움직임으로 가득찬 우리 일상의 모습, 혹은 소설 속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 기복과 상태를 나타내는데 더할 나위 없는 표현 효과를 내고 있다.

유기호_방학동골목길1_종이에 먹_40×27cm
유기호_방학동골목길2_종이에 먹_27×20cm
유기호_어떻게되었는지너는모른다_종이에 먹_27×20cm
유기호_난아침식탁에서무심코_종이에 먹_27×20cm
유기호_아내는움켜쥔손을폈다_종이에 먹_27×20cm

실제 유기호의 그림 그리기는 80년대 우리나라 미술계의 한 획을 그었던 사실주의 미술운동 (민중 미술)의 맥락과 닿아 있다. 당시 많은 젊은 작가들이 경도되어 있었던 관념화된 사실주의는 사라지고, 작가는 이제 그림 그리기에 대한 즐거움과 주변을 항한 애정을 가득 담은 시선을 그림을 가득 채웠다. 작가로서의 재출발을 의미하는 방학동 어머니 집의 옥탑에 위치한 "작업실"을 이번 여름에 방문했을 때, 이 번 전시된 작품들의 일부를 함께 보면서 작가가 들려준 그간 오랜 동안 떠나 있었던 이 동네와, 가족, 공간에 대한 각종 소회를 함께 들었다면 이 그림들 하나하나의 의미를 더 잘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를 위해 수록된 작가와의 대화를 부디 참고 하시길 바란다.) 이번 글을 쓰기 위해 그림들을 일괄해 보면 갑자기 떠오른것은 평생 제주를 사랑하여 그곳에 살며 풍광을 사진으로 담았던 "제주 작가" 김영갑의 이미지 였다. 그의 생전 작업실를 개조한 두모악 갤러리라는 곳은 제주에 가면 누구나 반드시 방문해야 할 곳 중에 하나가 되었다. 방학동에서 살고 그의 아름다움과 그 곳의 이야기를 그리는 작가, 거창한 미술사 책에 굳이 등장하지 않았도 지역민들에게 평생 사랑받는 "방학동 작가"라는 타이틀을 탐내 볼만하다. 세계화와 지역 정체성 찾기가 동시에 절실해진지 오래, 작가들의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이런 진정성을 담은 이야기 그림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큰 의미가 있다. ■ 박소양

유기호_몽고반점_종이에먹_27×20cm
유기호_물구나무서기_종이에먹_27×20cm
유기호_채식주의자아내가냉장고앞에_종이에먹_27×20cm

작가와의 문답 질의자 : 박소양( 현대미술이론 ), 작가 :  유기호, 일시 :2017년 9월 4일 1. 방학동 주변 풍경을 (골목, 바둑두는 노인분들, 공원 풍경등) 선택한 이유는?  어렸을 때 나고 자란 동네이지만 오랫동안 떠나 있었고, 그런데 최근 돌아온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주는 것"같았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 무엇을 그릴 것인가? 는 작업의 시작입니다. '나'라는  화두를 던지고 나를 돌아보고 내 주위를 보려고 했습니다.'공원의 바둑 두는 노인들'은 산책길에 마주한  풍경인데, 그날은 저 어르신들의 삶이 궁금해 지더군요 ,아마 모두들 소설 속의 주인공 이었을 게 분명 합니다. 책 한권으론 모자랄 정도의 엄청난 이야기의  주인공인거지요. 그분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을 겁니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 6.25전쟁도 치루고 고도의 경제발전을 일궈내어 지금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든 주역들 입니다. 지금은 공원 한 켠에서 옹기종기모여 바둑 두며  시간을 보내고 계시지만  모두가 삶을 치열하게 살아오신 고난의 주인공 이십니다 .한참을 보고 있으니 돌아가신 아버님이 그리워 졌습니다. 저분들이 방학동이고 방학동이 저분들의 역사였습니다. 관심은 사랑을 낳고 사랑은 표현해야 하는 겁니다.

2.방학동 주변 역사적 문화적 주요 장소 (예: 연산군 묘  담장과 소나무) 스케치는 본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 오랫동안 살아온 동네인데 이제 서야 아름답게  보이다니.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무관심하게 살았구나!,산책길에 들른 연산군 묘는 항상 거기 있었는데, 그 소중함 과 아름다움을 이제껏 보지 못했구나! 참 묘하더군요 이렇게 같은 사물을 다른 눈으로 보다니 말입니다. 그날 행복했어요 아름다움을 볼 줄아는 심미안이 생기듯 말 입니다.묘지에 가면 묘한 감정이 듭니다. 묘지 의 주인들은 화려하게 혹은 비참하게 살다가 일백년도 살지 못하고 다시 땅속으로 돌아가는구나, 나 또한 조만간 흙으로 돌아갈 걸 생각하면 인생이 참 짧다고 느낍니다. 남은 여생 도 이제 얼마 없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무엇이 중한지 생각하게 되지 요 ,긴 세월 묘지 옆을 지키는 소나무를 보면서 상념에 잠겨 봅니다.

3. 주변에 흔히 보는 지하철 풍경 (사람 풍경 )을 먹과 목탄으로 여러점 그렸는데,  이 풍경을 그림의 소재로  선택한 이유는? : 방학동으로 이사 온 후론 지하철 1호선을 많이 이용 합니다, 오며가며 많은 풍경들을 봅니다 .  지하철은 사람들 군상으로 넘쳐 납니다. 사람들의 다양한 삶으로 넘쳐납니다. 나 또한 그 군상 속에 한사람 ,그 속 에서 나의 존재의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나이를 조금 먹으며 겸손해 지더군요, 세상의 모든 것은 오로지 나를 위해 존재 한다는 생각은 사라지고 지하철 1호선에 함께 탄 모든 이들이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두가 자신과 이세상의 주인공 이라 생각합니다. 그런 만큼 많은 삶의 이야기들이 지하철 1호선엔 넘쳐흐릅니다. 그 삶의 한순간을 포착하여 군상으로 표현 하였습니다.

4. 생전 아버지가 쓰시던 옥탑방을 자신의 작업실로 꾸몄는데, 오랫동안 그리워 했던, 지금 작업공간이 된, 그 공간에 대한 특별한 소회가 있는지. : 작지만 아늑한 공간입니다. 오랫동안 비워져 창고처럼 사용하던 곳을 정리해서 만든 공간인데 .아버님께서 생전에 옥상에  화단 (예전 물 저장탱크를 반으로 절단해서 만듦) 을 멋지게 만들어 놓아서 아버님의 손길이 느껴져 그런지 더욱 포근한 곳 입니다. 지금은 옥상화단에서 고추를 심고, 수확해서 햇볕에 말리는 중입니다 .나만의 작업공간이 있다는 것은 세계를 가진 것에 비견합니다. 무엇이든 상상 할 수 있고 표현 할 수 있고 만들 수 있습니다.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을 담아 놓을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입니다.

5.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 주의자" (5점) 와 "소년이 온다" 등을 읽고 난 후 주로  붓 펜을 이용한 스케치를 많이 했는데. 이 장면들을 특별히 선택한 이유는. 특히 다소 충격적일 수 있는 자해, 폭력적 상상을 통해 갈등을 겪고 있는 여성 주인공의 심리적 상태가 드러나는.. ) : '채식주의자' 속 여자주인공은 자기 삶의 방식을 폭력과 회유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방식대로 존재의 의미를 찾아가는 진정 아름다운(주관적인) 여인의 모습이었습니다.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읽는 동안 작가의 묘사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듯 선명 했습니다. 처음 받은 인상을 놓치기 싫어서 재빨리  인상적인 꿈을 되새기듯  드로잉 했습니다. 글로 묘사된  장면을  드로잉으로 형상화 하면서 또 다른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작가의 소설은 글로 표현된 회화라고 생각 했습니다.글들이 모여 그림을 그린거지요 ,이런 감동을 드로잉 하기는 너무 쉬웠습니다. 설계도에 따라 집을  짓는 듯 쉬웠습니다. 작가의 묘사력에 흥분되어 떠오른 머릿속에 그려진 형상을 그림으로 표현한 겁니다.

6. 그리고 채식주의자 관련 드로잉은 거리 일상 풍경 스케치와 달리, 안정된 필치보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비정형적 필치가 두드러진다.  혹 소설에서 다루는 주제와 관련한 이유가 있는지, 즉, 주인공의 심리상태, 혹은 대상에 대한 본인의 느낌, 혹은  새로운 보기 효과를 고려한 것인지? : 앞서 말한 것처럼  빠른 필치의 드로잉은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 다' '몽고반점'의 첫 인상을 머릿속에서  정제되고 여과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속도감 있는 드로잉으로 그 순간의 감동을 표현고자 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여러 번 장면을 곱씹을수록 자신의 기억과 섞이어 올곧은  원작의 감동을 해 하게 됩니다. 감동의 순간을 있는 그대로 머리를 뺀 마음이 움직이는 데로 손이 따라가서 표현하는 방식 입니다.

7. "방학동에서 새로운 시작"은 일종의 관념의 자화상이다. 자신의 모습과  겹쳐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  하단의 손의 묘사가 인상적인데  의미를 설명해줄 수  있는지.  예들 들어,  사람들은 누구인지 그리고 이 "손"은 생활인의 손인가, 작가의 손인가? : 내 마음의 자화상 맞습니다. 작가의손 입니다. 손의 의미는 새롭게 시작된 그림그리기에 대한 마음가짐, 나를 표현 해주는 최종의 말초신경이자 도구인  손에 대한 감사, 겹쳐진 얼굴은 떨어져 지내는 아내에 대한  그리움 , 여성의 뒷모습과 가슴은 방학동이 주는 편안함 ,안락함의 표현입니다. 모성애를 느낀다고 할까요.   방학동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는 작가의 내적 자화상을 드로잉 했습니다. 작가에게 손은 중요 합니다. 내 몸에서 작품이 떨어져 나오는 출구이니까요  그렇게 소중한 손을 한동안 몹시 괴롭혔습니다. 건강상의 이유로 주사바늘로 혹사 시킨 겁니다. 지금은 본래의 모습을 찾았지만 ... 새벽에 검도를 합니다. 호구를 착용하고 상대방과 대련을 하는 동안 내손은 여러 번 상대방의 칼에 맞아 멍들어 아파합니다. 하지만 즐겁습니다 건강을 되찾고 운동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손은 작품을 탄생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몸 끝의  작가생명의 근원입니다.

8. 20년 만에 본격적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게 된 감회는 어떤지? :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날 다신 놓지 말아 요" 이선희의 노래 '인연'에 나오는 노랫말인데 제 마음을 잘 표현해 주는 듯합니다. 오랫동안 작업을 하지 못하는 내내 연인을 그리워하듯 작업에 대한 그리움이 컷 습니다. 먼 길 돌아 이제 다시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 합니다. 이제 다시는 작업을 놓지 않을 겁니다. 멀어져 있던 만큼 마음이 절실하기 때문입니다.

9. 그림 그리기도 일종의 기술,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노동(주점을 운영할 때완 다른) 인데 즐거운 점 그리고 어려운 점은? : 아침에 일찍 일어납니다. 주점을 하는 내내 밤 낮 을 거꾸로 살면서 몸도 마음도 힘들었는데   요즘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니 머리도 맑고 몸도 가볍고 ,즐겁기는 말로 표현이 안 됩니다 ,작업을 하는 내내 무아지경에 빠집니다. 아무 생각 없이 오로지 작업에 몰두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 이지요. 어려운 점은 오랫동안 그림그리기와 멀리 있던 터라 무엇을 ,어떻게 , 잘 그릴 것에 대한 고민 이지요 생각하고 고민하고 공부하는 습관이 몸에 베이지 않은 어려움이 있지 요, 그림그리기도 중노동이라 습관화 하지 않으면 쉽지 않아서 ...아직은 즐거움에 비해 어려움은 미미합니다.

Vol.20170914l | 유기호展 / YOOKEEHO / 劉起豪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