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h, Bone, Colour

김성윤展 / KIMSUNGYOON / 金晟潤 / painting   2017_0908 ▶ 2017_1021 / 월요일 휴관

김성윤_Untitled(Ara macao)_리넨에 유채_72.7×53cm_2017

초대일시 / 2017_0908_금요일_05:00pm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 퍼플 gallery PURPLE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수레로 457-1(월문리 317-21번지) Tel. +82.(0)31.521.7425 www.gallerypurple.co.kr

마이메리, 쉬민케, 올드홀랜드, 윌리엄스버그. 전문가용 유화 물감을 제작하는 회사 중 대표격인 이들 브랜드들은 마치 추상표현주의 작가들의 서명과 같은 기법에 상응하듯 자신들의 DNA를 색 샘플에 기입한다. 인명이 브랜드처럼 작동하는 것과는 정확히 반대로, 이 브랜드들을 의인화하여 매력적인 형상의 출현을 욕망하는 주체로 바라 본다면 샘플의 표면에서 관절의 움직임을 쫓으며 어떤 환영을 볼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색 샘플은 안료를 용매에 희석시키거나 흰색과 혼합할 경우 색이 변화하는 정도를 소비자에게 제공해주는 실용적인 정보이다(이때의 형상은 기계적인 제스쳐로 색들을 반복 채색하는 노동자의 무의식에 가까운 행위 일 것이다). 그러나 인쇄 되었거나 픽셀로 구현된 '코발트 블루'에서 진짜 '코발트 블루'를 볼 수는 없다는 점에서 이 정보의 신뢰성은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샘플이미지의 색과 형상을 그대로 옮겨내는 단순한 작업은 회화의 다양한 양상을 드러내보이는 일이 될거라 생각했다. 우선 그것은 재료를 단순한 하나의 사실로(코발트 블루를 코발트 블루로) 나타나게 하며, 완전히 같은 형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점에서 회화의 고유성을 증명한다. 치밀하게 계획된 이러한 형상은 추상표현주의의 제스처가 압축된 형태로 보였는데, 이는 추상 또한 구상적인 이미지처럼 이미-만들어진 이미지이자 재현 가능한 것으로 취급하게 하였다.

김성윤_Untitled_리넨에 유채_135×180.5cm(45.5×45.5cm×11)_2017

한편으로 이 추상 이미지의 출처를 떠올려 볼 때 그것은 상품의 이미지로서 구매를 유도하는 것이다(여기에서 형상은 색이 더욱 매력적인 상품의 한 요소로 드러나도록 보조한다). 그래서 작은 크기의 캔버스 보드를 지지체로 삼고 아크릴 선반에 진열하여 상품으로서의 '색'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고자 했다. 작품화된 것으로만 색을 경험하는 미술 소비자에게 색은 매혹적인 작품을 이루는 한 요소로 제 모습을 드러내지만 미술 생산자(소비자)에게 색은 상품으로 먼저 다가온다. 세잔과 고흐가 물감 제조를 겸한 화상이었던 탕기 영감에게 물감 값을 치르는 대신에 그림을 그려주거나 외상으로 물감을 받았다는 낭만적인 일화는 색과 그림이 등가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에게 색과 그림이 우정을 나누는 매개체였다면, 현대의 미술용품점에서 색은 세계 각지에서 수입해온 브랜드의 로고와 이미지에 둘러싸여 말끔하게 윤색된 채 상품으로만 존재한다(물론 여기서 '상품(색)'을 '작품'으로 바꾸어도 그 뜻이 크게 변하진 않을 것이다).

김성윤_Red, Yellow, Blue_캔버스 보드에 유채_25×300cm(25×25cm×4)_2017
김성윤_Earth Pigments_캔버스 보드에 유채_25×300cm(25×25cm×12)_2017

클레멘트 그린버그는 "인상주의 화가들은 마네를 본받아 그림에 밑칠을 하거나 겉칠 하는 일을 포기함으로써, 사용된 색깔들은 병이나 튜브에서 나온 실제의 물감이 칠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의심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어떤 회화는 안료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숨기기 위해, 또 어떤 회화는 안료의 사용을 투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애쓴다는 점에서 그의 말은 적절해보이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든 회화는 안료로 가득 채워져 있고 누구나 그것이 안료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윈저앤뉴튼의 색 샘플은 그의 말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인다(코발트 블루로 채워진 면과 코발트 블루가 담겨져 있는 튜브가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물감으로 채워진 배경에 드리워진 물감 튜브의 그림자는 안료로 채워진 면과 튜브를 하나의 장면으로 봉합하고 있는 듯 하다. 그렇지만 튜브의 몸체를 비추는 빛이 물감으로 채워진 면에는 드러나 있지 않다는 것을 보면 이질적인 세 가지가 병치되어있다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물감 튜브와 그림자, 안료. 여기서 그림자는 제품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포토샵으로 만든 가상의 것이다 . 포토샵의 그림자 효과는 이미지-대상의 입체감이 아니라 평면적인 레이어의 가장자리 형태를 따라 산출 되어진다. 그러므로 그림자는 물감 튜브가 평면적인 이미지라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튜브를 비추는 빛과 무관하다는 점에서, 배경으로 인지되는 면을 배경이 아닌 레이어로 취급하도록 한다. 이 세 개의 레이어를 그림으로 옮겨내는 과정에서는 셋이 맺는 관계에 중점을 두었다. 우선 튜브가 지시하는 코발트 블루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모니터가 구현한 색을 따라 물감을 섞어 채색 했다. 여기서 코발트 블루는 진짜 코발트 블루가 아닌 화면 속 코발트 블루의 재현인 셈이다(당연히 모니터가 구현한 색과도 완벽히 일치하진 않을 것이다). 포토 리얼리즘을 따라 정교하게 그린 튜브와 달리 그림자는 안료-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않게, 마르기를 기다린 후 건조하고 거칠게 표현했다. 여기에서 물감과 안료는 서로를 투명하게 지시하지 않고, 그림자는 포토리얼리즘의 환영에 균열을 일으켜 배경과 형상을 따로 떼어놓는다. 배경과 형상, 그림자는 이음새 없는 화면을 이루는 대신 각각의 독립된 레이어로 서로를 드러냄으로써 포토리얼리즘과 추상이라는 이질적 형식을 한데 묶는다.

김성윤_Earth and Bone_리넨에 유채_145.5×178.8cm(145.5×89.4cm×2)_2017
김성윤_Untitled(Holstein)_리넨에 유채_91×116.8cm_2017

이번 전시의 가장 큰 동력 중 하나는 주로 사용하는 물감을 쉬민케에서 윌리엄스버그로 바꾼 것이었다. 매끈하고 점성이 강한 쉬민케의 물감과는 달리 거친 질감이 특징인 윌리엄스버그의 '이탈리안-프렌치 얼스 피그먼트' 계열의 색은 안료의 원재료가 흙이라는 사실을 촉감으로 일깨워주었다. 파레트에서 얼스피그먼트 계열의 물감을 떠내어 캔버스에 바를 때면, 붓 끝으로 전해지는 거친 질감이 오랜시간 서양회화에서 나타났던(흙으로 이루어졌을) 수많은 신체와 얼굴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얼굴과 신체는 흙의 이미지인 셈이고, 흙(물감)에는 이미 여러 형상과 오랜시간 축척된 기억이 깃들어져 있고, 동물(주로 소)의 뼈를 태워 만드는 아이보리 블랙의 푸석푸석한 질감에는 죽음의 이미지가 깃들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칠해진 모든 안료는(그것이 텅 비어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 숱한 이미지, 의미들이 단지 한정되지 않은 채 가득 차 있는 셈이다. 이따금 색은 감상적인 기억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 나에게 있어 모더니즘은 색을 숭배하는 오래 전 신화 속 공간으로, 빨강, 노랑, 파랑은 그러한 영광을 애도하는 멜랑콜리한 색으로 느껴진다. 그러한 점에서 금강앵무Ara macao는 그 신화 속 어딘가에 거주하는 상상 속 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놀랍게도(물론 당연하게도) 빨강, 노랑, 파랑이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김성윤_White, White, White_리넨에 유채_193.9×390.9cm(193.9×130.3cm×3)_2017
김성윤_Drawing for Staedtler_아르슈 종이에 UV 프린트, 흑연_36×26cm_2017

다시 한번 그린버그로 돌아가보면, 그는 평면적인 것에 반하는 환영적, 조각적 특징을 배제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다비드와 앵그르의 그림이 반조각적, 평면적이라고 말하며 그 요인을 그들의 색채에서 찾는다(앵그르는 마치 그에 조응하듯, 그림은 모두 회색의 변조이므로, 단색화임을 강조한다). 미술의 역사에서 물질(색, 평면)과 환영(혹은 이미지)은 언제나 대립 구도를 이루었다. 그렇지만 대립은 언제나 함께 발생했고 거기에는 둘 중 하나가 아닌 양자를 오가는 운동이 있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안료는 꽤나 복잡한 물질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연 상태의 물질인 동시에 상품이며, 그 자체로 어떤 형상과 이미지, 기억들을 내재하고 있으며, 언제나 또 다른 단계를 상상하게 한다. ■ 김성윤

Vol.20170913g | 김성윤展 / KIMSUNGYOON / 金晟潤 / painting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