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909_토요일_06:00pm
후원 / 서울문화재단
관람시간 / 12: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갤러리175 Gallery175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87번지 안국빌딩 B1 Tel. +82.(0)2.720.9282 blog.naver.com/175gallery
이번 개인전 『익명의 풍경』에 전시된 작품들은 지난 3년간의 일련의 회화 실험들을 토대로 하여 그린 그림들이다. 그 그림들을 설명하기에 앞서 먼저 지난 3년간에 하였던 회화 실험들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려고 한다. ● 「조각적 풍경」 2013은 작가가 경험하였던 사건을 심리적이고 추상적인 공간에 투영해 보려고 하였던 그림들이다. 비물질적인 성질을 지닌 연기를 물성을 가진 가상의 형체로 형상화하였던, 일종의 아이러니를 연출한 작업이었다. ● 「조각적 풍경」 이후로 작가는 가상의 세계를 구축해서 작업하는 방식을 보류하고, 눈앞의 현실 세계로 시선을 돌렸다. 2014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나는 작업할 공간을 찾아서 서울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작업실 생활을 했다. 사당동, 정자동, 면목동, 화랑대, 연희동 등 서울 곳곳을 전전하는 가운데, 도시 공간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도시 풍경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도시 공간과 사람의 관계를 어떻게 다루고 또 어떤 방식으로 그려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했다. 첫 시도로 작가가 자주 만나는 소년을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소년b」 2014 연작은 소년의 성격, 표정, 몸짓 등의 신체적 구조를 관찰해서 소년의 사회적 위치와 소년이 자주 머무는 공간의 관계를 표현하였던 그림들이다. ● 「소년b」 시리즈 작업을 마무리할 즈음, 작가는 홍제천 부근에 있는 재건축지역으로 작업실을 옮겼다. 이 시기 그렸던 그림들이 「익명의 밤」 2015, 「익명의 풍경」 2016이다. 재개발 예정인 건물을 임시 거처 겸 작업실로 삼고 그 주변 공간을 그렸는데, 그곳은 작가가 유년시절을 보냈던 공간이기도 하다. 내부인이면서 외부인이었던 작가는 중간자 위치에서 황폐한 재개발 공간의 낮과 밤의 풍경을 그렸다. 낮의 황폐한 풍경의 모습을 유채의 물성을 이용해서 거친 붓질로 표현했다. 녹슬고 부식된 사물의 외형과 거친 붓질의 질감의 유사함을 강조하려 했다. 밤 풍경은 어둠이 갖는 의미를 강조해서 그렸다. 어두운 색감으로 사물의 부정성을 가리려 했고 또 어둠이 촉발하는 정서를 표현하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호크니가 강조한 '순수한 어둠'을 표현하는 것과 보아케의 어두운 배경 표현, 크리스 오필리에의 「블루데빌」을 참조했다.
이번 개인전 『익명의 풍경』에 전시하는 그림들의 전반적인 배경은 작업실 주변의 홍제천 풍경이다. 그 그림들은 성격상 두 갈래로 구분할 수 있다. 한 갈래는 일종의 자화상 성격을 띠는 「변장술」 2017이다. 풍경 속에 있는 돌이나 식물 등의 사물을 흉내 내고 있는 청년의 행위는 동시대 청년들의 불안정한 삶을 비유한 것이다. 2년간 작업실과 집을 오가는 통로가 됐던 홍제천 풍경은 청년 작가가 가지는 불안한 상념을 투영하는 매개체가 된다. 「돌이 된 남자」, 「밤이 된 남자」에 등장하는 청년은 돌이나 그림자로 변장을 해서 어쭙잖게 몸을 숨긴다. 일종의 자기 정체성을 숨기려는 위장술이다.
다른 또 하나의 갈래인 「회색지대」 연작은 풍경을 사실적인 관점으로 그린 그림들이다. 어떤 형태의 변형 없이 풍경의 한 장면에 대한 느낌을 포착해서 사실적인 기법으로 표현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작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는 낯선 사람이다. 그들은 수직적으로 펼쳐진 시멘트 고가 아래에서 수평적으로 펼쳐지는 일몰을 향해 나아간다. 도시 공간의 배경이 되는 일몰과 눈 풍경은 공간의 한시적인 요소이지만 공간의 성격을 바꿔버리는 마법 같은 역할을 한다. 그 공간에 회색의 옷을 입힘으로써 일상과는 다른 모습을 드러내게 한다.
「회색지대」는 공간과 그 공간에 속해 있는 사람의 의미를 형상화한 그림들이다. 그런 점에서 「회색지대」는 「소년b」 시리즈와 같은 맥락을 가진다. 차이가 있다면, 「소년b」 시리즈에서의 인물은 모두 작가와 어떤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지만, 「회색지대」에서의 인물은 작가와 아무 관련 없는 행인들이다. 행인들을 저만치 거리를 두고 그렸다. 따라서 대상과 작가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감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거리감도 있다. 이런 시도는 풍경에 작가의 심리적 상태를 투영해서 대상을 변형시켰던 「변장술」과 성격이 다르다.
「회색지대」는 또한 일몰 풍경이 촉발하는 정서를 포착해서 그린 그림들이기도 하다. 나선형으로 기울어가는 석양과 그 빛을 반사하는 눈의 질감은 우리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을 주는 시공간을 보여 준다. 이 지역이 어디이며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어느 지역에서든, 어느 누구든지 느낄 수 있는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 그럼으로써 현실 공간의 부정적인 면을 가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일몰 풍경은 현실 도피적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작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퇴행적 행위에 대해 고민했고, 그러면서도 퇴행적인 작업을 지속하였다. 지난 몇 년간의 회화 실험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퇴행적 행위가 바로 회화가 생존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그러므로 「회색지대」는 작가가 시도하는 회화실험의 한 전환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최한결
Vol.20170910b | 최한결展 / CHOIHANKYUL / 崔한결 / painting.dra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