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올해의 중견작가전 2017 The Leading Artists of This Year

장두일_백미혜_이도_이태형_장용근展   2017_0907 ▶ 2017_1008 / 월요일 휴관

장두일_일편일각 0098_캔버스에 혼합재료_162×130×5cm_2017

초대일시 / 2017_0907_목요일_06:00pm

관람시간 / 10:00am~08:00pm / 월요일 휴관

대구문화예술회관 DAEGU ARTS CENTER 대구시 달서구 공원순환로 201 Tel. +82.(0)53.606.6114 artcenter.daegu.go.kr

『2017 올해의 중견작가전』은 지역미술계의 중심축을 담당하는 40~60대 중견작가들을 초대해 전시를 열어주어 그간의 작품 활동을 조명하고, 앞으로의 작품 활동에 전환점을 제공하려는 취지로 마련되었다. 전시에 초대된 작가는 장두일, 백미혜, 이도, 이태형, 장용근이다. 장두일은 유년의 기억과 원형적인 기억을 표현한 '땅에서 놀기', '시간의 집적' 시리즈를 보여준다. 백미혜는 '푸른 방 속에 붉은 방'을 주제로 자신의 삶과 아버지의 흔적을 그리드가 중첩된 설치작품으로 녹여낸다. 이도는 소소한 일상을 포착해 감추어진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는 '청바지' 시리즈를 선보인다. 이태형은 평범한 이들의 삶과 소망을 다룬 민화에서 모티브를 따온 모란꽃 부조 작품과 인물시리즈를 보여준다. 장용근은 소비주의에 빠진 도시의 모습을 보여주는 '도시채집'시리즈와 집창촌 여성의 삶을 객관적 거리에서 조명한 '보이지 않는 노동' 시리즈를 출품한다. ■ 대구문화예술회관

장두일_일편일각 0222_캔버스에 혼합재료_182×227×3cm_2017

땅에서 놀기와 시간의 집적. 장두일의 회화를 지지하는 두 축으로서 서로 다르면서 하나로 통한다. 먼저 통하는 것으로 치자면 「땅에서 놀기」 시리즈가 유년의 기억을, 그리고 「시간의 집적」 시리즈가 한국적 미의식과 같은 원형적 기억을 각각 발굴하고 캐내는 것에 그 주제의식이 맞춰져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차이점으로 치자면 「땅에서 놀기」 시리즈가 그리기에 바탕을 둔 회화적 프로세스에 방점이 찍히는 반면, 「시간의 집적」 시리즈가 만들고 구축하기를 통한 입체와 설치경향을 예시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형식적으로 구별되면서 내용적으로 서로 통하는 경우로 볼 수 있겠고, 형식의 차이를 넘어서 하나의 주제를 지향하는 서로 상보적인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작가의 그림은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평범한 일상? 그러나 그건 알고 보면 어른들의 마음속에 유토피아로 자리한 유년의 기억을 되불러온 것이다. 그렇게 현재 위로 호출된 유년의 기억은 이중적인데, 어른들이 상실한 것들을 주지시키면서 동시에 아련한 추억에 빠지게 만든다. 그 위에 그림을 그리면 땅바닥이 그대로 스케치북이 되고, 그 위에 글씨를 쓰면 그대로 공책이 되는 변신과 마술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다. 일상보다는 사실은 이상세계를 표현한 것이란 점에서 작가의 그림은 민화적인 세계 관념을 공유하고 있다. 알다시피 존재와 존재가 서로의 경계를 넘어(때론 종의 경계마저 넘어서는) 화합하고 조화를 이루는 세계는 일상보다는 이상세계에 가깝다. 존재와 존재가 어떤 차별도 없이 똑같은 비중의 의미를 부여받는 것도 민화적인 세계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이다. 민화적 세계관은 말하자면 이상세계의 원형적 표현으로 봐야하고, 작가는 그 원형적 체질을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작가의 그림은 일상의 얼굴을 한 이상세계의 표현으로 보인다. (중략) ● 시간의 집적. 도자기와 옹기와 기와 파편은 생활 오브제지만 거기에는 한국적인 미의식, 한국적인 미의식의 원형질이 스며있다. 생활 오브제이면서 동시에 미학적 오브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가하면 삶이며 존재의 흔적,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시간 오브제이기도 하다. 작가는 도자기와 옹기와 기와 파편을 이용한 일련의 입체작업에서 「땅에서 놀기」를 주제화한 평면작업에서의 유년의 기억보다 더 근본적인 기억, 집단무의식 그리고 어쩌면 유전형질로 아로새겨진 기억, 원형적 기억에 주목한다. 여기서 일종의 만든 오브제 혹은 제작된 오브제로 명명할 만한 파편 하나하나는 모나드, 단자, 단위원소에 해당하고, 따라서 작가의 작업은 그 단위원소를 어떻게 배열하고 배치하는가에 따라서 다양한 형태를 재구성해낼 수 있는 일종의 모듈구조로 볼 수 있다. 원칙적으로 오랜 벽면이나 담장이나 창문 같은 재현적인 경우는 물론이거니와 탈 혹은 비재현적이고 추상적인 경우도 표현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집적(아상블라주) 대신 화면 여기저기에 드문드문 파편들을 배치하면서 여백이 강조되고, 바람과 호흡과 공기와 같은 비가시적 실체가 암시되고, 긴장감과 역학 같은 화면 자체에서 작용하는 조형원리가 실험된다. ■ 고충환

백미혜_Grid Poetic-시인의 방_라인 테이프, 오브제, 채색_150×150cm_2016
백미혜_Grid Poetic-아버지의 명태_라인 테이프, 채색_40×31cm_2017

점, 선, 면은 조형의 최소 단위이면서도 언어로서 표상하고 함축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암시하고 투영할 수 있는 직관의 도구이기도 하다. 특히 선은 점이 움직여나간 흔적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본질을 내포하고 있다. 점이 정적인 것이라면, 선은 움직임의 흔적으로서 일단 동적인 기운을 함축하고 있고, 주변의 공간을 가로질러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따라 차갑고(수평선) 따뜻하고(수직선), 무한한 움직임(대각선)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직선이야말로 차갑고 따뜻하고 무한한 움직임의 가능성을 지닌 가장 간결한 형태라고 할 만하다. 최근들어 작가는 이같은 직선의 묘미에 심취하여 일상 삶의 이마쥬와 사념들을 기하학적인 선의 반복과 중첩, 충돌과 습합, 긴장과 이완 등의 언어로 투영해오고 있다. ● 그녀의 작업에서 그리드의 선들은 날줄 씨줄로 얽히고 만나며 끊어지는 삶의 현장을 유비적으로 암시하기도 한다. 이를테면 만날 듯 만나지지 않는 선들과 결국 직선이 해체되는 흐린 선들의 교차 등은 우리네 삶의 인연이나 길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시집의 글자들을 오려붙인 위에 테이핑작업을 함으로써 또다른 의미의 층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시인으로도 활동해온 작가는 이 번 전시에서도 본인의 시집을 오려 붙인 바탕 위에 그리드 테이핑을 한 작품을 선보이며, 또한 한 시인의 시집과 함께 기억할만한 일상의 오브제를 사용하여 입체적인 그리드 작품을 보여주기도 한다. ● 희망을 상징하는 푸른색은 그 안에 우울함과 슬픔의 음률도 함축하고 있다. 시집을 해체하여 모종의 언어들이 방에 부유하고 있고, 서고와 탁자와 물컵, 사다리 등의 일상 기물들도 테이핑 처리되어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그 속의 한 공간에 사방 3여 미터의 붉은 방이 있다. 역시 벽은 붉은 색으로 칠해지고 그 안에는 붉은색 계열의 그리드 테이핑 작품들이 설치된다. 작가의 부친 백태호 선생님의 생전 작품들인 붉은색 마른 명태 시리즈를 인쇄하여 오브제로 사용하고 있는데, 본래 특유의 강렬한 붉은색을 많이 썼던 부친의 작품 위에 붉은색 테이핑을 더함으로써 이 방의 의미가 더욱 부각된다. 일반적으로 붉은색은 생명의 에너지와 열정을 상징하지만, 여기서도 색감정은 또 다른 층위로 다가온다. 늘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사랑, 그리고 연민과 아픔까지 끌어안고 유작들을 지켜온 딸로서, 작가는 그동안 가슴에 깊이 품고 있던 헌사를 시 대신 올리고 있는 듯하다. 테이핑으로 작품의 이미지를 가리고 있지만 일반 오브제와는 달리 하늘을 향해 지펴 오르는 듯한 붉은 마른 명태 그림들은 오히려 더욱 드러냄과 주목을 유도한다. ● 이번 전시공간에는 약 3미터 높이의 접이식 알루미늄 사다리와 서고, 책상, 볼펜, 의자, 조명등, 찻잔과 노트 등의 기물들이 푸른색 라인테이프로 처리되어 설치된다. 그리드는 다분히 공간의 중성화를 꾀하고 있지만, 공간의 변용과 확장, 그리고 사물들의 '탈물질성'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무어라 규정할 수 없는 또 다른 문맥이 발생한다. ● 실은 모든 오브제들이 한 작가의 예술의도에 의해 포섭, 선택되는 한, 그 사물들은 '물성'을 넘어 이미 어떤 이념과 정신성을 담지하는 맥락 속에 놓이게 된다. 어찌 보면 아주 사적인 기물들과 공간이 테이핑되어 전시공간에 놓임으로써, 은밀한 개인적 삶의 이면을 공론화하고 소통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일 수도 있다. 감추기와 드러내기의 변증법적 관계의 역학은 여기서도 작동한다. (후략) ■ 장미진

이도_Jeans 17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260×140cm_2017
이도_Jeans 17w_캔버스에 아크릴채색_135×100cm_2017

(전략) 화가 이도(이동철)이 이러한 모더니즘 이후 더욱 가속화된 미술과 사회의 단절 현상을 간과하지 않고 '일상의 신화'에 주목하게 된 것은 감수성이 예민한 화가다운 지극히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는 자신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오는 사소하고 일상적이며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파헤친다. 사건과 사물들과의 대화는 늘 작품 소재를 결정하는 과정에 지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 소재들은 궁극적으로 작품이 특별하고 보편성을 획득하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 존재와 자연의 순환과정이 고스란히 읽혀지는 화가의 근작은 몇 가지 특징이 눈에 들어온다. 먼저 스케일로부터의 해방이다. 손바닥 만 한 크기의 캔버스로부터, 그냥 그대로 벽화라고 해도 무방할 1천호 이상 되는 대작에 이르기까지 그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아주 거리낌 없이 해낸다. 사이즈에 대한 구애를 받지 않고 할 말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표현이 자유로워 졌다는 뜻이다. 그 다음은 아주 유기적인 표현 내용이다. 형상과 비형상, 표현과 추상, 극사실, 구성주의적인 요소를 포함해서 그동안 시기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수평적으로 진행되었던 작업 형식들이 이제 현재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한꺼번에 수직적으로 통합되었다. 가히 종합주의라고 명명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형식과 내용이 웅장한 세계가 열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활용하는 질료의 자율성 획득이다. 근작에 이르면 엄청난 두께로 마티에르를 강화시킨 작업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그리고자 하는 이미지는 물감 자체의 물질성에 압도되어 기존의 그림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마치 젖은 대지 위를 막 지나간 사나운 들짐승의 흔적처럼 격렬한 생동감이 강화되었다. ● 최근 이동철 화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욕망(appetite)이다. 현대사회는 욕망의 범람과 억압이 숨 가쁘게 교차한다. 그는 성(性)이 전제될 때 인간은 더욱 적극적이 되고 도전과 열정의 에너지도 증폭된다고 믿는다. 따라서 욕망이야말로 창작을 활성화시키는 힘이라고 확신한다. 그런 점에서 그의 작업은 인간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욕망을 잃어가는 두려움을 지워내는 과정이며, 나태한 삶에 대한 부정의 정신으로부터 출발해서 크고, 넓고, 깊은 무한긍정의 회화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이기도 하다. ■ 이영철

이태형_신모란도-그대에게_혼합재료_76.5×88.5cm_2017
이태형_인물-안중근_혼합재료_146.5×121cm_2017

작가는 구체적인 현실로부터 시선을 돌려 다소 심상적인 이미지의 표현으로 옮겨간 작품들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형식상 특징을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해보면 대상의 단순화와 이상화다. 주로 정물화 장르에 집중하고 있으면서 배경의 공간 묘사와 사물의 구체적인 디테일 재현은 줄이고 그 대신 이상적인 형태로 윤곽선이 강조된 그림을 그렸다. 독특하게도 화면 전반에 갈색이나 황토색계열로 색채 기조를 한정할 경우가 많았고 명확한 형태의 사물들을 이런 색조를 통해 통합시키며 구성의 단순화를 꾀했다. ● 1990년대 초 작가는 그동안 전개시켜오던 구상적 화면의 합리적인 비례나 공간을 해체하여 급격한 평면 모드를 시도했다. 당시 그림에서 프리미티브적인 요소와 자유로운 상상력, 로맨틱한 서정에 빠져든 그는 자연과 인간, 세계의 조화로운 어울림을 꿈꾸는 내용으로 가득 찬 화면 구성을 시도한다. 이처럼 회화적 방법의 실험을 전개하는 동안에도 작가는 그림에서 이야기를 완전히 제거시킨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심리적인 주관을 짙게 반영시키던 초기 자연주의적 풍경에서부터 조각적인 그림에서까지도 항상 삶의 현실을 주시하는 시선을 숨기지 않았다. ● 「新모란도」 시리즈는 민화의 현대적 해석에 해당한다. 부귀의 상징이라고 하는 모란을 중심으로 소담하고 화려한 꽃과 가지들을 화병 가득 담아 탁자 위에 올려놓은 그림에는 벌 나비를 함께 그려 민화의 화조도를 연상시킨다. 모란이 있는 이런 화조화를 통해 모든 생명의 조화로운 관계를 꿈꾼다. 화면의 공간 구도에 있어서 전통적인 역원근법을 채택하고 있는 점도 그림 속 탁자의 비례에서 분명하게 드러낸다. 시선의 방향이 관람자 쪽으로 전개되는 이 같은 형식과 작품에 붙은 '당신에게'란 부제가 마치 상대를 향해 환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다. ● 최근 제작되고 있는 역사 속 인물 초상들이 그 예인데 작품들의 형식은 기존 부조 조각 그림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현실인식과 역사의식으로 작품의 주제가 확장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 더욱 차별화된 입체적인 그림의 완성으로 작가의 양식변화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할 작품들은 이야기의 내용과 범위를 자화상을 포함해 인물 탐구로 확대한 첫 시도로서 주제의 지평을 넓혀간 것 같다. ■ 김영동

장용근_Stairway_잉크젯 프린트_150×100cm_2014
장용근_보이지 않는 노동_잉크젯 프린트_100×67cm_2015

(전략) 작가는 자신의 행위를 '도시채집'이라는 말로 구체화한다. 주목할 점은, 이 일련의 작업이 대구의 집단 트라우마를 발생시킨 대형사고(대구지하철화재사고, 2003)의 애도로서 거리에 걸려있던 현수막을 바라보며 시작했다는 점이다. 당시의 작업은 추모 현수막 사진들을 잘라내어 집적화한 전면화(allover) 작업인데, 이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작업의 두 가지 특성이 이 작업에서부터 분명하게 나타난다. 그 하나는 관객에게 실재했던 그때-거기의 무언가를 바라보게 한다는 점(사진의 존재론적 속성)이다. 다른 하나는, 사진 이미지가 가리키는 어떠한 행위(추모의 시각화)로 인해, 관객이 일상에서 간과하던 양상을 사건화 하도록 유도한다는 점이다. 작업의 관객은 현전하는 사진 이미지를 통해 도시 곳곳에 내걸렸던 과잉적인 추모의 시각화를 마주하면서, 탈-장소적이고 기호화된 도시적 삶의 행위의 본질을 감지하는 사건적인 경험을 하게 된다. ● 바꿔 말하면 도시의 구조적 체계를 파편적으로 비추는 조각난 반사상으로 기능하게 된다. 관객은 영상으로 편집된 작업 속에서 일상을 에워싸는 무수한 자극적인 색채의 간판들과, 판촉용 메시지 배너들로 구성된 운동-이미지와 그 사이를 걸어가거나 상품을 구입하는 사람들의 운동-이미지를 본다. 또한 낱낱의 감시카메라가 집적된 사진 이미지와 마트의 매대가 집적된 「슈퍼마켓」 사진 이미지를 본다. 이때 관객이 과잉되고 반복적으로 구축된 운동-이미지와 사진 이미지를 통해 점차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도시의 외양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자신의 시간이다. 즉 현대 도시공간에서의 삶을 에워싸는 구조적인 체계인 소비지상주의의 내부에서 소비상품과 자신의 소비행위 사이의 관계성을 감지하게 되는 것이다. ● 이처럼 관객에게 의미화 되는 도시공간의 내면은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 명명된 작업과 중첩되면서 보다 구체화 된다. 이 작업은 관객으로 하여금 가벽을 이용한 좁은 통로의 끝에서 사진 이미지를 마주하도록 설치되는데, 이때 관객이 마주하는 성매매 장소의 텅 빈 방은 일상으로부터 유리된 이질적인 장소라기보다는 도시의 친숙한 방 안 풍경과 다르지 않다. 사실 도시의 일부로 실체함에도 불구하고, 성매매의 장소가 일상의 이질적 공간으로 여겨지는 것은 도시에 대한 상상적 이미지의 바깥으로 상정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용근의 사진 이미지를 통해 드러나는 방 안의 풍경과 홍등가를 둘러싼 소비의 체계는 그 자체로서 도시공간의 내면을 가리킨다. ■ 정훈

Vol.20170909j | 2017 올해의 중견작가展

2025/01/01-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