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도의 초대일시가 없습니다.
관람시간 / 11:00am~06:00pm / 월요일 휴관
공간 291 SPACE291 서울 종로구 백석동길 93(부암동 29-1번지) Tel. +82.(0)2.395.0291 space291.com
숨 쉬는 기억, 정현주의 사진 ● 모든 사물에는 노래가 잠들어 있고 / 그 사물들은 계속 꿈을 꾸고 있네 / 만일 그대가 주문을 외운다면 / 세상은 노래 부르기 시작할 것일세. -아이헨도르프, '마술지팡이' ● 한 작가의 개성이 어디에서 연원하는지 알려면 일상의 시·공간적 질료 가운데 '왜 이것을 선별하여 캐스팅했고, 그것들을 어떤 방식으로 보여 주는가'를 살피면 된다. 그곳엔 작가의 내면 에 작동하고 있는 문화적 코드와 작가의 고유한 체험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정현주는 신작 「breath」에서 오랜 시간이 퇴적된 그릇과 사물을 보여준다. 엄마의 시·공에서 어느 날 작가의 삶으로 들어온 용기(容器)들이다. 그릇은 원래 그 속의 비어 있는 공간을 사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고, 작가는 엄마를 그리면서 다시 사진으로 그릇을 빚었다. 엄마의 손길이 닿은 그릇에는 엄마의 삶이 담기며 역동적인 공간이 되고, 딸에 의해 비어 있음과 가득함의 긴장이 환한 빛으로 넘실대고 있다. 정현주가 필름으로 촬영한 이유도 그 빛을 불러 와 엄마의 삶이 담긴 그릇의 결을 섬세하고 정교하게 짜 맞추기 위한 것이다.
정현주가 찍은 사진 속의 그릇은 희미한 힘과 선명한 흐림으로 자신을 드러내면서 감추고, 텅 비어 있지만 무언가로 충만하다. 작고 사소해서 눈에 띄지 않았던 엄마의 사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젖은 눈이 카메라의 눈과 합체를 이루며 소멸하는 것들을 향하고 있다. 대형카메라의 특수한 움직임(movement)은 피사체가 기록 될 필름 면과 카메라의 렌즈 면을 어긋나게 할 수 있는데, 기억의 저장고인 그릇을 촬영하는 작가에게 유효한 형식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불안정하여 쉬이 삭제되거나 왜곡, 편집, 변형되기 일쑤이다. 또한 보이지 않는 기억은 유령처럼 현실을 지배하기도 하지만 망각의 강물로 휩쓸려가기에 기억의 처소를 찾기란 언제나 난제이다. 기억과 망각은 동형체로 서로를 원하고 서로의 빈자리를 메워 주는데, 망각은 기억을 전제하고, 기억 또한 망각이 없이는 그 자리가 묘연해지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무엇인가를 '기억한다'는 것은 역으로 기억의 부재를 낳기도 한다.
기억의 저장고인 사진으로 어떤 상황을 담고자 하는 이유도 기억의 마중물이 필요해서이고, 대형카메라의 무브먼트는 유동적인 기억을 각인시키는 데 각별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무브먼트의 방법에는 시프트(shift)와 라이즈(rise), 폴(fall) 그리고 틸트(tilt)와 스윙(swing)이 있다. 기억을 이동(shift)시키거나, 기억을 샘솟게(rise)하고, 떨어지는(fall) 기억은 붙잡고, 잠자고 있었던 기억을 흔들고(swing), 멀어지는 기억을 수직으로 세우는(tilt) 카메라의 움직임은 기억의 초점을 변환시킨다. 기억은 어느 지점에서 선명해지다가 멀어지기도 하고, 없던 기억이 살아나고, 큰 기억과 작은 기억들이 자리를 교차하거나, 누수 된 기억들이 어느 새 작가의 존재를 흔든다. 그리움과 사랑으로 젖은 기억들을 풀어낸 이 사진들이 계속 숨을 쉬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닐까. 기억의 저장고인 사진 속의 그릇이 텅 비어 있는 것도, 기억의 "없음"과 "있음"을 동시에 포착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누군가의 손으로 빚어진 후 다시 엄마의 손길이 적(籍)을 둔 것들, 시간의 갈피에서 빠져나온 이 사물들은 환유적이다. 입술과 숨과 눈길과 손이 매번 닿았을 그릇에 빛이 어루만지고, 그 빛은 다시 필름을 태웠다. 이 사진이 '존재의 있음'으로 현현하는 것은 물리적인 접촉 때문이다. 그릇이 지닌 접촉의 기억이 이 사진을 완성한다. 한 때, '분명히 있었던' 것들의 자취. 나는 이 사진을 한참 바라본다. 그곳에 무엇이 담겨 있어서라기보다는 무언인가 계속 일어나는 것 같아서 그저 바라보게 된다. 그릇들마다 '엄마'의 마음이 맑은 연못의 물처럼 고여 있다. 그리움이 일렁이기도 한다. 오래된 것들을 어루만지는 작가의 젖은 눈길을 따라가다 보면, 잊었거나 잃어버린 삶의 시간들이 나타나기도 하고, 안타까운 유한 속에 거처할 수밖에 없는 사진-존재의 한계와 모든 것을 담아낼 수 없는 작은 그릇의 한계를 보게 된다.
정현주의 신작 「breath」의 아름다움은 텅 빈 그릇들 속에 온갖 기억들이 숨 쉬는데 있다. 은빛으로 넘실대는 흑백사진의 프로세스는 작가의 삶을 반추하는 거울이자, 작가의 삶을 담은 그릇이 된다. 거울이 빛을 받아 없는 것을 있게 하듯이, 사진 속 그릇들은 비어있기에 무언가로 채워질 수 있는 허무와 풍요의 상징이자 적막한 인생의 은유이다. 정현주의 사진으로 비로소 각인(刻印)된 기억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사멸하지 않을 것 같다. 불러오지 않아도 층층이 쌓인 기억들은 사진 속에서 숨을 이어가기에 언제든 재생 가능하다. 어쩌면 작가가 엄마와의 탯줄을 잇기 위해 피난처로 삼은 것이 사진의 시·공이 아니었을까. 작가의 몸에 새겨진 엄마의 흔적을 노출시켜 수많은 네거티브필름에 저장하고, 이 필름의 기억을 소환하여 인화하려는 것도 기억의 숨-구멍을 찾기 위한 것이다. 빛처럼 부드럽게 끝없이 쌓이는 무한한 수용력이 사진의 저장고이고, 엄마의 그릇도 지속적 흔적으로 유지되고 숨을 쉴 것이다. 기억도 그러하지만 사진은 감광성을 띤 판에 머물러 있다가(잠상) 그것을 깨워내야만(현상) 드디어 살아날 수 있고, '살림'의 미덕으로 완연한 이 사진들은 엄마와 작가가 동시에 머물 새로운 집이 된다. ■ 최연하
Vol.20170829d | 정현주展 / JUNGHYUNJOO / 鄭賢珠 / photograph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