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일시 / 2017_0816_수요일_04:00pm
참여작가 강호성_나광호_박병일_박희자_신정희_안진국 이시내_이주형_이호영_장고운_조문희_조은주
주최 / 양주시_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_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관람시간 / 10:00am~06:00pm / 월요일 휴관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777 RESIDENCE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03-1 3층 Tel. +82.(0)31.8082.4246 changucchin.yangju.go.kr www.facebook.com/777yanju
므네모시네의 마지막 귀환 - 클리오 이전의 므네모시네 ● 역사는 어떻게 탄생하는가? 고대의 그리스 신화에서 역사의 여신으로 알려진 클리오(Clio)는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νημοσύνη)가 낳은 아홉 명의 뮤즈(Muse) 중 하나이다. 그리고 므네모시네는 하늘의 신 우라노스(Uranus)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Gaea)의 사이에서 탄생한 여신이다. 그리스 신화대로라면 하늘(우라노스)과 대지(가이아) 사이에서 기억(므네모시네)이 생기고, 기억은 역사(클리오)를 낳는다. 2013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 레지던스'는 어느덧 햇수로 5년이 되었다. 그동안 므네모시네가 클리오를 낳듯이 그렇게 777 레지던스는 탄생의 비화(祕話)와 형성기에 있었던 여러 우여곡절에 대한 기억을 역사의 한 단면에 안착시켰다. 역사의 여신 클리오는 레지던스를 안정시켰고, 모든 불안을 역사의 뒤로 감춰버렸다. 그렇게 기억은 역사가 되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억의 여러 부분은 깎여나가고 정제되고 축적되어 서술 가능한 내용만 남았다. 이것이 역사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다. 바로 '전(前)-역사'로서 기억과 '전(前)-기록자'로서 기억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역사 이전에, 역사를 초과하는 기억이 있고, 몇 사람의 기록자(서술가) 이전에, 기억하는 다수의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다. 777 레지던스에서도 그 탄생에 대한 역사 이전의 기억, 그 '전-역사'적 기억을 소유한 기억자가 존재한다. 바로 1기 입주작가들이다. 그들은 레지던스가 세워지는 과정을 도왔으며, 그 과정의 어려움을 경험했고, 안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 그들을 777 레지던스에서 호명함으로써, 어쩌면 공식적으로는 마지막 소환이 될지도 모를 전-역사적 기억을 다시 이곳에 소환한다.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를 그들의 추억과 작품으로 다시 한번 이곳에 불러드리려 한다. 작가들은 이곳에서 '부메랑 모텔'을 상기(想起)하고, 욕정의 음란함이 배어있던 벽지와 눅눅한 장판, 내려앉은 천정을 뜯어냈던 기억을 자랑하고, 한 차례의 검게 그을린 작업실에 대한 가슴 아팠던 기억을 평온하게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러한 과거에서 생성했던 작품을 전시하며 역사로 각인되지 못하고 깎여나갔던 기억들을 다시 한번 읊조린다. 그렇게 '부메랑 모텔'에서 '체크인'했던 그들은 '777 레지던스'에서 마지막 『체크아웃(Check Out)』을 한다.
토포필리아(TopoPhilia, 장소애, 場所愛)의 기원 ● 2013년 10월 이전까지 장흥면 권율로 103-1에 있는 6층 건물은 '부메랑 모텔'로 불렸다. 2009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 6층 건물에서는 숙박을 원하는 많은 관광객이 오갔다. 모텔 주인이 이곳을 '부메랑'이라고 이름 붙인 것은 아마도 이곳에 거쳐 간 많은 관광객이 다시 이곳을 찾아주길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바람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다. 경영난으로 도산했기 때문이다. 도산한 이곳을 2009년에 양주시에서 예술에 대한 큰 기대와 포부를 가지고 구매했다. 2008년 리먼 브라더스 파산 사태로 세계 금융 위기가 오기 전까지 미술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기에, 아마도 양주시는 이러한 분위기에 탄력을 받아 부메랑 모텔을 구매했던 것 같다. 하지만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국내 미술시장이 크게 왜소해지면서 부메랑 모텔을 통한 예술 활성화 계획은 동력을 잃고 한동안 묘연해졌다.
부메랑 모텔이 변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 10월부터다. 777 레지던스 1기로 선발된 입주작가는 사실상 폐허가 된 부메랑 모텔에 가장 먼저 체크인하여 '재생프로젝트'라는 키를 받아 들고 굳게 닫힌 모텔의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들은 욕정이 배어있던 벽지를 뜯고 외설로 눅눅하진 장판을 걷어내고 고단함으로 내려앉은 천장을 들어낸 후, 예술의 열정으로 모텔방을 작가의 작업실로 바꿔나갔다. 그러한 그들의 열정이 대외적으로 공식적인 첫 역사로 기록된 것은 2015년 4월에 리모델링을 위해 발가벗겨진 부끄러운 건물 전체 공간에 의미 있는(실험적인) 옷(예술)을 입힌 『비어있는 실험』 전시를 통해서였다. 『비어있는 실험』은 여전히 곳곳에 숙박 안내문과 주의사항 등 모텔의 흔적이 있는 상태에서 열린 부메랑 모텔의 '마지막 전시'이자, 777 레지던스라는 이름으로 열린 '첫 전시'였다. 그 후 진행된 7개월에 걸친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는 부메랑의 흔적을 거의 지워내고 완전한 777로 재탄생시켰다. 그리고 『별다른 방』이라는 재개관전으로 새로운 777 레지던스를 시작하였다. 이로써 외관상 모텔은 사라졌다.
부메랑의 기억: 므네모시네의 귀환 ● 외모가 변한다고 모든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외모도 중요하지만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기억이다. 영화 『메멘토(Memento)』(2000)에서 순행성기억상실증을 앓고 있는 주인공 레너드가 현재를 잊지 않기 위해서 가학적 방식으로 현재를 기억할 단서를 자신의 몸에 새기는 것도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자신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과거의 그가 여전히 현재의 그가 될 수 있는 것은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그에게 있기 때문이다. 777 레지던스는 2015년의 대대적인 리모델링으로 과거의 모텔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예술창작 공간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그러나 여전히 부메랑 모텔은 공간의 정체성처럼 이곳에 머무르거나 거쳐 간 사람들의 내면 깊숙이 존재한다. 그것은 리모델링 이후 이곳에서 열린 단체 전시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2016년 3월에 1기 입주작가 13인이 참여했던 『체크인(Check in)』 전시가 "숙박업소에 묵기 위해 프런트 데스크에서 신원과 투숙 기간 등을 밝히고 기록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전시 소개 글)인 '체크인'을 전시명으로 사용한 것처럼, 올해(2017년) 2월에 있었던 입주작가 소개 성격의 프리뷰(Pre-view) 전시 『부메랑 : 성공할 때 실패하는 사람들, 실패할 때 성공하는 사람들』이 부메랑 모텔에서 추출한 '부메랑'을 전시명으로 사용한 것처럼, 그렇게 이곳의 부메랑 모텔에 대한 기억은 부메랑처럼 되돌아왔다. 그리고 이번에 '체크인' 상태를 마무리 지으려는 듯 『체크아웃』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되돌아왔다. 더불어 이미 퇴소한, 부메랑 모텔의 기억을 지닌 7명의 1기 작가들까지 소환되었다. 『체크아웃』 전시는 『체크인』 전시가 그랬던 것처럼 1기 작가들 ―2014년부터 입주해서 올해 퇴소할 예정인 이시내, 조문희, 박희자, 신정희, 이호영 작가뿐만 아니라, 이미 2016년에 퇴소한 강호성, 나광호, 박병일, 이주형, 장고운, 조은주, 안진국 작가가 참여하여 총 12명― 의 작품과 기억이 모인다. 마치 작은 요동이 물의 바닥에 가라앉은 침전물을 부유(浮遊)하게 하듯이, 그렇게 『체크아웃』은 그 '체크아웃'이라는 전시명만으로도 다른 기억으로 덮여 보이지 않던 부메랑 모텔을 들춰내 기억 속에서 다시 한번 춤추게 한다. 그렇게 므네모시네는 귀환한다.
사실 '현재'는 수시로 '과거'를 소환한다. 현재는 과거를 딛지 않고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므네모시네는 언제나 귀환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부메랑 모텔의 귀환은 어쩌면 공식적인 '마지막' 귀환일지도 모르겠다. '체크인'과 대구를 이루는 '체크아웃'이 '무장소'(placeless, 에드워드 렐프)나 '비장소'(non-place, 마르크 오제)였던 '모텔'이라는 과거의 정체성을 이제 마무리 짓겠다는('아웃'시키겠다는)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이제 뜨거운 욕정의 장소는 사라지고, 예술가들의 숨결이 숨 쉬는, 치열한 작업의 뜨거움이 스며있는 온전한 예술 공간이 되었음을 알리는 완전한 선언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므네모시네의 귀환을, 부메랑 모텔의 귀환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그들(기억자)과 그들의 작품은 777 레지던스의 기원(紀元)으로 우리를 소급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모두 기록(역사)될 수 없기에 기억하는 사람이 사라지면 기록되지 않은 많은 것은 사라진다. 1기 입주작가들은 리모델링되기 전의 부메랑 모텔을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 중 절반 이상의 1기 작가들(7명)은 지금도 777 레지던스에 거주하며 작업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도 올해 하반기에 퇴소할 것이다. 이로써 부메랑 모텔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은 모두 777 레지던스를 떠난다. 부메랑 모텔에 '체크인'했던 작가들 모두 '체크아웃'한다. 하지만 부메랑 모텔은 아마도 1기 작가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체크아웃되지 않을 것이다. ■ 안진국
Vol.20170815d | 체크아웃 Chcek out展